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66
한제는 놀란 눈으로 구양자를 바라보았다.
구양자는 얼른 옥패 하나를 꺼내 한제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 세 약재는 이미 절멸된 상태지요. 하지만 34가지의 약재를 적절히 배합하면 원재료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차이 없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한제는 옥패를 받아들고 신식으로 그것을 훑어 마음에 새겼다.
“이 약재들 역시 흔치는 않습니다. 운천종에도 네 개 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4성 수련국에서나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구양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옥패를 쥐고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석실 안에 있던 모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아쉬움이 어린 눈빛이었다.
‘가가는 영원히 가장 고독한 상태의 나를 볼 수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가장 고독함을 느끼는 건 그가 곁에 없을 때니까.’
모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이마에도 미세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지금 그녀는 2년 전보다 10살은 더 먹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제가 이번 여정에 소요한 시간은 7개월이었다. 7개월 후, 한제는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7개월 동안 한제는 조금도 쉬지 않았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4성 수련국과 몇몇 5성 수련국까지 한 바퀴 돌아온 상태였다. 그는 구매하거나, 교환하거나, 빼앗아서 필요한 약초를 결국 모두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차례 살육을 저질렀는데 가장 위험했던 두 번은 5성 수련국 안에서 있었다. 한 번은 특수한 경지인 망각의 경지를 다루는 화신기 중기 경지의 수련자와 맞붙었을 때였다. 한제는 결국 이겼지만 정말이이지 위험한 순간이었다. 망각의 경지가 가진 엄청난 힘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웠다.
또 한 번은 일반적인 경지를 지닌 화신기 후기의 수련자와 붙었을 때였다. 허나 화신기 후기의 절정 수준에 이른 자답게 일반적인 경지라고 해도 그의 손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모습으로 발휘됐다. 후에 한제는 그자의 실력이 홍접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고 분석했다. 둘은 결국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7개월 동안의 경험을 통해 한제는 주작국 안에 거주하는 화신기 수련자 중 홍접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보다 높은 수준의 사람도 분명 존재했다. 아직 영변기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으나 가진 힘만큼은 굉장히 강한 이들이었다. 특히 몇몇 특수한 경지를 가진 이들은 탈속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초나라로 돌아온 한제는 멈추지 않고 빠르게 산골짜기를 향해 내달렸다.
산골짜기 안에 들어온 한제는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었다. 여비와 철암은 이미 1리 정도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거대한 압력에 맞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의 수준은 처음보다 어느 정도 높아져 있었다.
한제의 모습이 석실 밖에 나타났다. 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의 몸은 우뚝 멈춰버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누군가의 뒷모습이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 중 절반은 이미 회백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한제는 아려오는 마음을 안은 채 앞으로 몇 발짝 나서 모완의 곁에 섰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7개월 전보다 훨씬 늙은 상태였다.
“완, 내가 돌아왔어. 재료는 이미 다 구했어.”
한제가 조용히 말했다.
모완은 빙그레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한제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다시는 떠나지마. 내 곁에 있어줘.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넌 안 죽어!”
한제는 모완을 바라보며 진중하게 말했다.
모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제에게 기댄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한제가 돌아온 후 구양자는 곧장 단약 제조에 돌입했다. 6품 단약을 만드는 것은 그가 가진 일생의 목표였으며 꿈이었다. 지금 그 단약을 만드는 그는 자신의 심신과 영혼을 불태울 듯 온 정신과 마음을 다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대체 재료에 대해 그는 직접 오랜 시간 동안 계산한 끝에 사용해도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백 가지가 넘는 대체 재료들은 각 재료의 특성에 따라 각각의 분량과 시간에 맞춰 넣어야 했다. 단약 제조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구양자라고 해도 마음대로 덥석 달려들 수는 없었다. 그가 이 단약을 만드는 것은 모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이 가진 일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다짐했다. 지금껏 만들어온 단약들은 몇 번이고 실패해도 상관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단약 제조는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일이었다. 단약 제조에 깊이 빠져듦에 따라 구양자의 성질은 점점 포악해졌고 심지어 한제가 물을 때에도 짜증을 내곤 했다. 이는 그가 한제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속세에 대한 모든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고급 단약을 만드는 데에만 목을 매고 전념하는 게 바로 구양자였다.
이에 대해 한제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한제의 생각에 운천종 수련자 중 구양자야말로 화신기에 이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왜냐하면 오로지 단약 제조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천도를 깨닫고 모종의 경지를 깨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지은 여전히 원영기 중기에 머무른 채 진보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원영기 후기 절정에 이른다면 화신기에 이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지났다. 구양자가 만들고 있는 단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어느 단계에서 걸린 듯 갈수록 성질이 포악해져갔고 때때로 그의 포효를 들을 수도 있었다.
한제는 줄곧 모완의 곁에 붙어 있었다. 하루하루 그녀는 빠르게 늙어갔다. 검은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 되어버렸고 죽음의 기운은 갈수록 짙어졌다. 만약 한제가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의 체내에 영력을 끊임없이 불어넣지 않았다면 모완은 지금보다 훨씬 늙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또 다시 3년이 흘렀다. 구양자가 만들고 있는 단약은 어느 단계를 돌파한 듯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완성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짙은 약 냄새가 수시로 그의 석실에서 흘러나왔다.
모완의 몸은 이미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걷지도 못했으며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한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깃든 아쉬움과 미련의 빛은 갈수록 짙어져갔다.
‘나는 윤회의 힘을 피할 수가 없다. 세월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대체 나를 언제 데려가려는지⋯⋯. 내 왼손에는 수마해에 있었던 짧은 순간에 대한 결과가 오른손에는 1백 년에 달하는 긴 고독이 들려 있다.’
모완은 조용히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노쇠했지만 눈빛만큼은 언제나처럼 맑고 밝았다. 그녀는 멍하니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대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영원히…
눈앞의 남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일반인들이 말하는 사랑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1백 년 동안 하루 같이 가야금을 타면서 그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한제는 모완의 손을 쥐고 부드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칼로 에는 듯 마음이 아파와도 그렇게 마음이 피칠갑이 되어도 얼굴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띠었다.
“어제 꿈에 우리 오라버니가 나타났어.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지. 오라버니 뒤로 두 노인이 서 있었는데 꼭 부모님 같았어.”
모완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부모는 일찍이 세상을 떴다. 그녀를 키운 것은 그녀의 오라비였다.
한제는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깊은 밤, 한제는 석실 밖에 서서 조나라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묵묵히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이모완
조나라 안, 대산 산맥의 땅속 깊은 곳에서 평생 녹지 않을 듯 냉랭한 얼굴의 붉은 머리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가 눈을 뜬 순간, 조나라 전역에 벼락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마치 이 세상을 쪼개놓을 듯한 소리에 모든 수련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본체의 눈빛은 냉랭한 무정함으로 가득했고 미간에서는 두 개의 보라색 반점이 회전하며 번득였고 몸에서는 보라색 번개가 피어올랐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치 그 동굴 너머 초나라 전역을 훑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앞쪽을 향해 손을 휘두르더니 초나라가 있는 곳까지 곧장 나아갔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반년이 지나갔다.
모완의 몸은 더욱 약해졌다. 영혼도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천도와 윤회는 끊임없이 그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한제의 곁에서 그녀를 영영 데리고 떠나버릴 것 같았다.
이 날, 구양자는 한 알의 붉은색 단약을 들고 감출 수 없는 흥분된 기색으로 한제에게 달려왔다.
“6품 단약입니다! 이 구양자가 만들어냈어요!”
구양자는 말을 마친 뒤 눈에 빛을 잃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다행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심신이 지쳐 있었던 것뿐이었다.
단약을 받아 든 한제는 멍하니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백발의 노파가 된 모완을 바라보았다. 모완의 얼굴에서 이전의 싱그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늙고 시들었을 뿐이었다.
지난 몇 년간 한제는 모완이 조금씩 늙어가는 것을 지켜봐왔다.
하늘의 뜻과 윤회의 힘을 거스르며 살아온 그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내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런 것들을 받쳐줄 신념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외모는 그대로였으나, 마음은 눈앞의 여인과 함께 하루하루 늙어갔다.
그의 눈앞에 있는 여인의 늙은 겉모습은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눈앞의 여인은 언제나 당시 수마해에 있었을 때처럼, 초나라 운천종 누각에서 가야금을 탔을 때처럼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한제는 모완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은 뒤 손에 쥔 단약을 그녀의 입으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단약이 입에서 녹아들어가면서 모완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순간, 무궁무진한 천지의 영력이 초나라 전역으로부터 모완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석실은 그 엄청난 영력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머지않아 돌가루로 부서져 흩어져 버렸다.
여비와 철암은 눈을 감고 있다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때 구양자가 부드러운 힘에 밀려 두 사람 곁에 이르렀다.
“구양자를 데리고 운천종으로 가서 기다리게!”
한제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철암은 구양자를 데리고 여비와 함께 내달렸다.
1백 리 밖에 이르고 나서야 그들은 겨우 고개를 들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석실은 훼손됐지만 모완의 몸은 공중에 떠 있었다. 무궁무진한 영력이 모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완의 얼굴에는 기이한 붉은 빛이 돌았고 점차 그녀의 단전으로부터 어둡고 광택 없는 금단이 천천히 떠올랐다. 금단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장 주변의 모든 영력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한제는 전에 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결인을 하면서 하나하나의 결인을 끊임없이 모완의 금단으로 쏘아 보냈다. 그의 손을 떠난 결인은 점점 더 빠르게 모완의 금단을 향해 나아갔고 금단에는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다.
6품 귀원단은 짧은 시간 안에 복용자로 하여금 영력을 흡수하는 속도를 증폭시켜주기에 병목 현상은 쉽게 돌파된다. 허나 모완의 몸은 지금 너무나 허약한 상태였고 수명도 거의 끝에 이르러 있어서 윤회와 천도의 힘으로부터 견뎌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하늘, 돌고 도는 윤회였다.
모완의 금단은 몰려드는 엄청난 영력에 점점 더 많은 균열이 일었다. 그리고 금빛이 그 균열들로부터 쏘아지듯 나왔다. 그 빛은 밝았지만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오히려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갑자기 모완의 몸에 한 층의 회색빛이 나타났다. 이 회색빛은 갈수록 짙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모완의 전신을 감쌌다.
한제의 생사의 경지는 일찍이 모완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지만 이 회색빛에 비하면 아주 미약했다.
일반인들은 이 회색빛을 볼 수 없었으며 수련자라고 해도 대부분은 보지 못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를 목격하고 생사의 경지를 깨달은 한제만이 그 회색 기운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오직 그만이 이 회색 기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회색 기운은 천도였고 윤회였으며, 한 사람의 수명이 끝에 달했다는 의미였다.
모완은 짙은 아쉬움과 애정이 담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더니 사방을 둘러보곤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가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천천히 떨어져 내려 바닥에 닿으며 낭랑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한제의 귀에 닿았다.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같았다.
그녀가 눈을 감고 숨을 거두려는 그 찰나, 금단의 색이 곧장 어두워졌다. 하지만 곧바로 그 위의 균열이 열리면서 옛날의 모완과 똑같은 작은 사람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그녀가 그 순수한 눈을 뜬 순간, 모완은 숨을 거두었다.
‘가가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늘의 별빛이 모두 쇠한다 해도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가가의 두 눈은 내 마음속에서 가장 밝은 등불이 될 거야.’
‘가가 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어. 전생과 이생의 윤회가 나의 영혼을 꺼버린다고 해도 가가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금할 수는 없을 거야.’
‘가가 난 모든 것을 놓고 싶어. 생명이 사라지고 세월이 적막의 세상으로 날 돌려놓는다 해도 기억으로 남아 영원히 시들지 않았으면 해.’
‘가가 이건 가가와 나의 인연에 대한 결과이자 하늘의 선택이야. 우리는 결국 천도 아래에서 발버둥 치며 배회하던 물과 먹인 거야.’
“하늘이 널 데려간다면 나는 널 빼앗아올 거야!”
한제의 눈에 슬픔이 어린 순간, 그는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의 체내로부터 생사의 경지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산골짜기 밖의 하늘에 생사의 윤회를 그린 흑백의 산수화가 펼쳐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 하나가 춤을 추듯 그림 위에 파문이 일었다.
이 그림이 나타나자 하늘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와 초나라 전역으로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