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71
“알겠습니다.”
궁전 안의 목소리에 자오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붉은 빛 한 줄기가 주작산 꼭대기에서 튀어나와 궁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목소리는 떠나려던 자오를 붙잡았다.
“잠깐!”
자오는 자리에서 잠시 대기했고 궁전 안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궁전 안에서 코웃음 소리와 함께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다. 갈 필요 없다. 그자에게 10년의 시간을 주지.”
자오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몸을 훌쩍 날려 주작산에서 사라졌다.
궁전에서는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새하얀 노인 하나가 손에 붉은 옥패를 든 채 중얼거렸다.
“천우라는 자가 대체 어떤 놈이기에 연속으로 세 번이나 간섭하게 하는가.”
★ ★ ★
산골짜기 안, 가시가 가득 돋은 전차 하나가 있었다.
어두운 얼굴로 전차를 바라보던 한제는 한참 후 손목에 두른 구수권을 흔들었다. 순간 그 안에서 뇌와가 펑 하고 튀어나와 옆에 내려앉았다.
완전히 호전된 뇌와는 감격스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만약 한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난번의 부상으로 자신이 죽고도 남았음을 아는 듯했다.
“뇌와, 난 구수권을 회수해야만 한다. 만약 네가 나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앞으로 내 곁을 따라다니면 된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떠나도 좋아.”
한제의 말에 뇌와는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해 구수권 위에 여러 개의 결인을 쏘았다. 순간, 구수권 위로 가득한 부호들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커지기 시작했다. 이내 무수히 많은 부호가 한제 앞에 원형의 막 하나를 이루었다. 바깥의 부호가 가장 컸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작아졌다. 그리고 그 원형의 중심에 구수권이 있었다.
“해방!”
한제의 목소리에 순간 부호들은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한 줄기 푸른 기운이 구수권 안에서 피어올랐다. 그 푸른 기운은 하나하나의 부호를 투과해 나오더니 뇌와의 몸으로 들어갔다.
뇌와는 포효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녀석의 두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구수권의 부호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회전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한 뒤 전차를 가리켰다. 순간 전차 위에서 한 덩어리의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어 안개 속에서 갈수록 밝아지는 두 개의 눈빛이 드러나더니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안개가 사라지자 전차의 혼수(魂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전차 중 가장 작은 혼수는 한제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가 깨어난 상태였다. 혼수의 머리는 세모꼴이었고 몸은 소 같았으며, 교룡 같은 꼬리 끝에는 눈코입이 달려 있었다. 녀석은 흉악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제는 덤덤하게 손가락 끝을 물어 피 한 방울을 구수권에 뿌린 후 손가락으로 전차의 령(靈)을 가리켰다. 그러자 구수권은 맹렬하게 진동했다. 그 진동에 바깥쪽을 두른 부호들이 요동치며 무수히 많은 부호로 이루어진 무지개를 이루어 혼수 주위를 맴돌았다.
혼수는 계속해서 포효했다. 발버둥을 치려 했으나, 몇 줄기의 검은 쇠사슬이 전차에서 빠져나와 붙잡았다.
부호들로 이루어진 무지개가 혼수를 포박하더니 빛을 번쩍였다.
혼수의 포효는 더욱 격렬해졌다. 쇠사슬에 균열이 생겼으나, 더욱 많은 쇠사슬이 전차 안에서 빠져나와 녀석을 더욱 꽁꽁 붙잡았다.
결국 모든 부호가 그 혼수의 몸에 찍혔을 무렵, 혼수는 더는 발버둥을 치지 못했다. 허나 눈빛은 더욱 흉악해져 있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모든 부호가 혼수의 몸에 찍히기를 기다렸다가 작게 외쳤다.
“흡수!”
혼수의 몸에 찍힌 부호들이 격렬하게 번뜩이더니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했고 하나하나 떠올라 구수권 위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부호가 구수권에 들어간 뒤 그 구리 고리 위에 혼수와 똑같은 모습의 마수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그 사신차(射神車)는 곧장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어 구수권으로 흡수되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여덟 개의 최상급 영석이 나타났다. 이어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구수권이 날아올라 그의 오른손에 채워졌다.
순간, 뇌와를 흡수했을 때보다 훨씬 큰 흡입력에 한제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쪼그라들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밝았다. 주위의 영석들이 밝게 빛나며 한제의 몸으로 영력을 주입했다. 그 영력은 한제의 몸을 타고 구수권으로 흘러들었다.
사흘이나 이런 과정이 이어진 후에야 흡입력은 점점 흩어졌고 한제의 몸도 천천히 원 상태를 회복했다. 주위의 최고급 영석 중 하나가 팍 소리를 내며 깨지더니 먼지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한제는 두려운 눈빛으로 구수권을 바라보았다.
“최고급 영석 하나를 부술 정도의 흡입력이라니, 사신차가 과연 그 이름에 걸맞은 능력을 가졌는지 알아볼 기회를 찾아봐야겠군.”
한제는 남은 일곱 개의 영석을 저물대에 넣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구수권은 주기적으로 영력을 흡입하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한제는 구수권을 문지른 뒤 고개를 돌렸다. 뇌와는 사흘 내내 한제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뇌와는 거대한 머리로 한제를 받쳐들었고 한제는 녀석의 머리를 타고 등으로 올라 웃으며 말했다.
“내 곁에 있고 싶은 것이냐?”
뇌와가 배를 불룩 부풀렸다가 포효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좋아! 앞으로 난 너를 흡혈 마수와 같이 여기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흡혈 마수가 튀어나왔다.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마수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커져 작은 언덕만 했고 거대한 주둥이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흡혈 마수는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뇌와를 바라보며 쉭쉭 소리를 냈다. 반면 뇌와는 도발하는 듯한 눈으로 흡혈 마수를 쳐다봤다.
한제는 피식 웃으며 뇌와의 등에서 내려와 두 마수가 기 싸움을 하도록 내버려둔 채 보탑 쪽으로 걸어갔다.
탑 앞에 이른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집중하더니 포권을 했다.
“선배님, 저는 주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선배님을 1천 년 동안 모시게 됐습니다. 선유지는 매우 위험하다는데 제가 가진 법보가 많지 않아 선검을 한 번 사용해보려 하니 부디 도와주십시오.”
말을 마친 한제는 허리를 깊이 숙이더니 보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옛날의 금부
탑의 최고층에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시체가 있었다. 선옥으로 만들어진 침상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그녀 곁에는 선기를 풍기는 두 자루 선검이 있었는데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
한참 고민하던 한제의 눈은 큰 선검에 고정되었다.
이 검은 선계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형세가 위급하여 자세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주작성으로 돌아온 뒤에도 모완을 살피느라 다른 일에는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이제야 할 일들을 마치고 다시 보게 된 그 거대한 검에서는 한층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분명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디에서 봤지?”
한참 고민하던 선제는 오른손을 뻗었고 거대한 선검은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사실 검이라기보다는 직사각형의 문짝 같았다.
“문짝?”
흠칫 놀란 한제는 잠시 후 퍼뜩 뭔가가 생각난 듯 외쳤다.
“금부!”
한제가 대산파에 있었을 때 검령각에서 비검을 고른 적이 있는데 그때 택했던 것이 바로 조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비검이라는 금부였다.
한제는 멍한 얼굴로 보탑에서 나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손에 든 커다란 검을 바라보았다.
4백여 년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 이 검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한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금부는 전체적으로 금빛을 번득였지만 이는 그 위에 금이 칠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금부의 재질은 일반적인 무쇠였다.
검의 자루를 쥔 한제는 당시 보았던 금부를 떠올렸다. 검에는 두 개의 거대한 수정이 박혀 있었지만 그 수정에서는 어떤 영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금부에 달린 술도 금실로 엮여 있었다.
이 금부는 당시 한제의 저물대가 소멸되면서 공간의 균열 안에서 함께 소멸했다. 만약 이 선검이 아니었다면 한제는 절대로 당시의 금부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이제 보니 손잡이에 박힌 수정과 금실로 엮인 술 외에도 당시의 금부와 눈앞의 선검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한제는 이것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당시 금부를 만든 조나라의 수련자는 일찍이 이 선검을 보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아무리 경지가 높아봤자 원영기에 불과했을 터인데 어떻게 선계에 들어가 이 선검을 보았단 말인가?
한제가 처음 금부를 손에 넣었을 때, 검령각의 사내는 그 검을 만들었던 선배의 일생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대산파는 그에게 기대할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대산파에 한 차례 닥친 재난을 해결하고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그가 남긴 금부 한 자루만이 검령각에 남아 그의 넋을 기렸다.
“대산파에서 기대할것이 없다고 여긴 사람이 목숨 바쳐 문파의 재난을 해결하다니, 이제 보니 그 선배에게도 상당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모양이군!”
한제는 손에 든 선검을 훑어보았다.
“이 선검을 사용하려면 검혼이 필요한데⋯⋯.”
한제는 두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한 줄기 검은 빛이 저물대 안에서 쏘아지듯 나왔다. 이내 모습을 갖춘 허이국 마혼은 두 손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드디어 나왔도다. 드디어! 하하하!”
그때까지 줄곧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뇌와와 흡혈 마수가 퍼뜩 고개를 돌려 마혼을 바라보았다.
허이국 마혼은 입을 다물고 조심스러운 눈으로 두 마수를 바라보았다.
그때, 한제가 오른손을 꽉 움켜쥐자 허이국 마혼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한제의 손에 붙들린 채 선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순간, 선검이 경미하게 떨리더니 그 위에서 발하던 금빛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한제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채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유혼들이 쏟아져 나와 모두 선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선검은 금색에서 다시 검은 빛으로 변해버렸다.
오른손을 선검에 댄 뒤 한참 고민하던 한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유혼으로는 이 검의 위력 중 극히 일부만 발휘할 수 있겠지. 탄혼을 잡아들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안타깝구나.”
한제는 검을 집어넣은 뒤 보탑 쪽으로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보탑이 줄어들어 저물대로 들어갔다. 이어 뇌와와 흡혈 마수도 회수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행화촌의 주 씨 집안. 한 중년 여인이 자애로운 눈으로 품에 안은 어린 여자아이를 내려다봤다.
“여야, 네 아버지가 이번에 장가촌(張家村)에 가서 수확한 인삼을 가지고 돌아오면 꼭 네게 주마. 어쩌면 이렇게 몸이 약한지…”
부인은 아이를 안아 든 채 민요를 흥얼거렸다. 아이는 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아이가 완전히 잠이 들자 부인은 아이를 조심스레 한쪽에 눕혀 놓더니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주방으로 가 밥을 할 준비를 했다.
부인이 자리를 뜨자 방 안에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그 인영, 즉 한제는 멍하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두 눈에는 짙은 애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