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73
이어 호 씨 노인이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한 줄기 빛이 쏘아지듯 나와 야인의 가슴팍에 찍혔다. 야인의 몸은 픽 고꾸라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호 씨 노인은 앞으로 몇 발짝 나와 오른손으로 야인의 머리를 눌렀다. 검은색 낙인들이 곧장 미간으로 몰려들더니 완전한 나뭇잎 하나가 나타났다.
“보아하니 선유지에 무슨 변고가 생긴 모양인데? 이렇게 잎 하나를 맺는 야인은 당시에는 두 번째 층에나 가야 볼 수 있었는데 말이야.”
호 씨 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루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가슴팍을 매만졌다. 만약 안에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가슴팍은 완전히 찢겨나갔을지도 모른다.
★ ★ ★
사흘 뒤, 일행은 두 번째 층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이르렀다. 지난 사흘 동안 그들은 총 아홉 명의 야인을 맞닥뜨렸다. 그 야인들은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아무리 신식으로 주변을 살펴도 감지할 수 없었다. 또한 그중 여덟 명은 몸에 검은 낙인이 많지 않았고 죽은 후 미간에 응집되는 잎도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입구 쪽에서 나타난 마지막 야인은 몸에 일종의 문양 같은 검은 낙인이 더 많았고 특히 오른팔은 낙인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죽은 후로 미간에서 두 개의 잎이 응집되었다. 그 힘은 결단기 후기 수련자에 상당했다.
두 번째 층은 첫 번째 층과 별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허나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기운이 있었다. 그 기운은 한제를 비롯한 화신기 수련자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나 허루오 등에게는 제법 큰 영향을 미쳤다.
한데 호 씨 노인은 왜 허루오와 연기각의 소녀를 데리고 온 걸까? 그 둘은 결단기에 불과해 까딱하다가는 죽을 가능성이 있는데 말이다.
한제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여력이 있지 않은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두 번째 층에서는 때때로 시커먼 짐승의 뼈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 다 썩지도 않은 마수의 시체도 더러 있었는데 그중 한제가 알고 있는 종은 하나도 없었다. 수마해의 마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한데 두 번째 층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제의 안색이 변했다. 한 줄기 검은 빛이 1백 척 밖에서 나타나 거리를 유지한 채 야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의 모습은 첫 번째 층에 나타났던 야인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이들은 동물 가죽을 두르고 있었고 전신의 4분의 1이 검은색 꽃 모양 낙인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도 붉지 않고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이 명확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눈 깊은 곳에 기이한 빛 한 줄기가 어려 있었다. 첫 번째 층에서 마주한 야인들은 아홉 명 모두 눈에 광기가 가득했던 데다가 한제 일행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던 것과는 분명 달랐다. 그저 먼발치에서 어두운 눈으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진정한 야인이에요! 저 몸의 문양은 이파리 세 개의 기준을 충족하는군요. 원영기 수련자에 상당한 실력일 거예요.”
자심이 불쑥 말했다.
야인은 혀를 내밀더니 입술을 핥았다. 입에서는 쉭 소리가 났다. 순간, 그의 사방에서 수십 갈래의 검은 빛이 나타나 사지에 낙인이 찍힌 야인들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동시에 한제 일행을 바라보았다.
처음의 그 야인은 음산한 눈빛으로 냉소를 지은 채 뒤쪽에 서 있었다.
한제는 단숨에 이파리 세 개를 응축시킬 수 있는 야인에게 달려들었다. 그 야인은 달려드는 한제를 보고도 전혀 겁먹지 않은 듯 오른손으로 자신의 몸에 찍힌 낙인을 문질렀다. 순간 그의 손에서 한 조각 짐승 가죽이 나타났다.
그가 중얼중얼 복잡한 주문을 외자 그의 손에 들린 짐승 가죽이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의 몸은 곧장 그 불덩어리에 뒤덮였다. 야인은 다시 하나의 짐승 가죽을 들더니 손가락 끝을 물어 그 피로 가죽 위에 그림 몇 개를 그린 후 내던졌다. 순간 불덩어리는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한데 그때 한제의 몸은 이미 불덩어리에서 빠져나왔고 이 불덩어리들은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꺼져버렸다.
야인은 놀란 듯 달아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나 한제는 순간이동으로 곧장 그를 뒤쫓았다.
다른 일행들에게 달려들던 야인들은 호 씨 노인이 소매를 한 번 휘두르자 전부 죽어버렸다.
그때 한제가 돌아왔는데 그의 손에는 야인이 들려 있었다. 그를 바닥에 내던진 한제는 자심을 힐끔 쳐다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이 야인의 등급을 알아본 모양인데 그 외에 또 뭘 알고 있지?”
자심은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일부러 말씀드리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저 이곳에 들어온 뒤 기억이 난 것뿐이에요. 야인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술주사(術咒師), 다른 하나는 전주사(戰咒士)죠. 이 자는 삼엽(三葉) 술주사예요. 이들 몸에는 힘의 원천인 금색 문양이 붙어 있어요. 문양이 많을수록 강하죠. 이 문양은 짐승의 피로 그려지는 것으로 이를 통해 마수의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때, 저 멀리서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 빛 한 줄기가 질주하듯 달려와 펑 하고 문양이 가득한 거대한 얼굴로 변했다. 그 얼굴은 땅에 있는 야인들을 훑었다.
잠시 후, 그 얼굴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힘에 바닥에 쓰러져있던 삼엽 야인의 몸에 그려진 문양이 요동치더니 마치 살아난 것처럼 몸 위로 떠올라 그 거대한 얼굴의 입으로 흡수되었다.
한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저 멀리서 다섯 갈래의 검은 빛이 나타나더니 하나하나 거대한 얼굴이 되어 음산한 눈으로 일행들을 노려보았다.
“저들은 오엽(五葉) 술주사입니다. 화신기 수준에 상당하는⋯⋯.”
자심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흩어져! 북쪽 끝에 있는 세 번째 층 입구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말을 마친 호 씨 노인은 허루오와 소녀를 데리고 곧장 멀리 이동했다. 구사평은 얼른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한제 또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이를 본 거대한 얼굴은 놓칠 수 없다는 듯 즉각 흩어졌다.
한제를 뒤쫓는 것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 삼엽 야인의 문양을 흡수한 그 얼굴이었다.
어느 정도 이동한 한제는 순간 우뚝 멈추더니 몸을 돌려 자신을 쫓아오던 얼굴과 마주한 채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저물대에서 금번이 튀어나왔고 이를 휘두르자 수많은 금제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뇌와가 저물대에서 튀어나왔다. 녀석은 배를 불룩 부풀리더니 그 거대한 얼굴을 향해 달려들며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순간 콰르릉 소리와 함께 번개공 하나가 뇌와의 입에서 튀어나와 하늘을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돌진했다.
그 거대한 얼굴은 기이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얼굴에서는 곧장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빠르게 한데 응축되더니 거대한 방패가 되었다.
번개공과 방패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펑!
방패는 한 번 진동을 일으키며 한 줄기 균열이 생겨났지만 곧장 검은 안개에 뒤덮였다. 번개공이 지나간 뒤 방패의 검은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중년에 이른 듯한 그의 머리는 아무렇게나 뒤쪽으로 묶여 있었고 몸에는 짐승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몸의 반 정도가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문양들은 몸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살짝 떠 있었다. 복잡해 보이는 문양은 한 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듯했다. 또한 얼굴 역시 반이 문양으로 덮인 상태였다.
“주부성(咒符星)의 외부자 너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백 년의 기한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곳에 진입한 자는 모두 죽일 것이다.”
굉장히 어색한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그에게서는 조금의 영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그 몸에 가득한 문양들만이 위기감을 줄 뿐이었다.
중년 남자는 오른손으로 몸의 문양을 문질렀다. 순간 전신의 문양들이 빛을 발하더니 긴 무지개가 되어 남자의 오른손을 맴돌며 빠르게 회전했다.
그가 왼손으로 빠르게 몇 번 두드리자 문양들은 즉각 위치를 바꾸었고 그 찰나 문양들로 이루어진 무지개는 흘러넘칠 듯한 기운을 발산하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발산되어 반경 1천 척 범위 안을 뒤덮었다.
순간, 문양들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제를 향해 튀어나갔다. 한제를 둘러싼 금제들이 각각 한 마리 용이 되어 포효하며 문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펑, 펑, 펑!
폭발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각 용들은 하나의 문양에 부딪친 뒤 흩어져 사라졌다.
“음?”
중년 남자는 굳은 얼굴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문양 하나가 그의 손에서 한 장의 짐승 가죽이 되었다. 사내는 그 가죽을 내던졌다.
가죽은 곧장 타올랐고 순간 문양의 돌진은 더욱 빨라졌다. 폭발음과 함께 한제의 금제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술주사(術咒師)
한제는 시종일관 움직이지 않고 그 문양들을 관찰했다. 순간 그는 번득이는 눈으로 생각했다.
‘저 야인의 공격은 문양을 위주로 하는구나. 문양들에는 영력이 없지만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어.’
상대가 짐승 가죽을 내던지는 것을 본 한제는 눈에 살기를 번득이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거대한 선검이 떠올랐다. 한제는 한손으로 선검을 쥐고 낮게 기합을 넣으며 맹렬하게 휘둘렀다. 순간 마치 하늘을 깨뜨릴 것처럼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검은 빛이 선검 위에서 번득였다.
중년 남자는 안색이 크게 변해 두 손을 연이어 휘둘렀다. 모든 부호가 곧장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그의 몸 앞에 여러 개의 방패를 형성했다.
하지만 선검이 허공을 가른 순간 검은 빛이 번쩍였고 중년 남자의 방패들은 하나씩 깨져나갔다.
중년 남자는 깜짝 놀란 듯 비명을 지르며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로 변했다. 그 검은 안개는 거대한 얼굴이 되어 뒤쪽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이때 선검으로부터 쏘아져나간 검은 빛이 그 얼굴 쪽으로 향했고 검은 안개 속에서 비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바닥에 선혈을 남긴 중년 남자의 속도는 잠시 줄어들었지만 이내 더욱 빨라졌다.
한제는 더는 그를 쫓지 않고 뇌와 위에 착지했다.
“검의 위력이 저자를 죽일 정도에 이르지는 못하는군. 이 검으로 화신기 후기 수련자를 저지하기는 힘들겠어. 오엽 야인은 과연 대단하구나!”
뇌와는 몸을 훌쩍 날리더니 허공에서 배를 부풀렸다가 번개공 하나를 토해냈다. 번개공은 번쩍거리며 전광(電光)이 되어 도망가는 중년 남자를 뒤쫓아 검은 안개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쾅!
하늘을 뒤흔들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검은 안개가 흩어졌고 그 안에 있던 얼굴 역시 사라져버렸다. 짙은 피 비린내가 풍겨왔다. 중년 남자는 그 번개공의 공격에 죽어 사라졌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뇌와를 거두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는 동안 신식을 넓게 펼치던 그는 안색이 변해 오른쪽을 흘깃 바라보았고 이내 그는 유성처럼 긴 잔상을 남기며 빠르게 질주했다.
그가 힐긋 본 쪽에는 두 명의 야인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머리가 눈처럼 하얗고 전신의 3분의 2 정도가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곁에는 한 소년이 있었는데 소년은 몸을 뒤덮은 문양은 전신의 4분의 1가량에 불과했다.
그 둘의 앞에는 진흙 늪이 있었는데 기포가 피어올랐다 터져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은 한제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흠칫 놀라 곁에 있는 노인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맑은 눈으로 한제를 힐긋 보더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진흙 늪을 바라보았다.
그때, 교룡과 비슷한 거대한 생물이 늪에서 튀어나와 포효하며 노인을 향해 돌진했다. 노인은 안색의 변화 하나 없이 오른손으로 몸의 문양을 한 번 두드렸다. 순간, 그의 몸을 뒤덮은 문양이 요동치더니 그의 오른손으로 모여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긴 칼로 변했다.
노인은 그 칼을 가볍게 휘둘렀다. 교룡은 포효하며 머리를 휘둘러 칼끝을 피하고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노인의 몸은 펑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문양으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내 노인의 몸은 수많은 문양이 되어 확산되더니 맹렬하게 한데 뭉쳐 곧장 교룡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교룡은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거대한 몸이 늪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대량의 진흙이 튀었다.
야인 소년은 그 진흙을 피한 뒤 형형한 눈빛으로 교룡을 주시했다.
이때, 그 교룡의 몸에서 하나하나의 문양이 튀어나와 한데 응축되더니 그 노인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마치 노인이 교룡의 몸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마지막 부호 하나가 노인의 체내로 들어온 뒤, 그는 교룡을 향해 훌쩍 뛰어오르더니 동시에 오른손으로 교룡의 머리를 쳐 상처를 냈다. 그 상처로부터 엄청난 양의 피가 튀었다.
소년은 환호하며 앞으로 튀어나가 그 피로 목욕을 했다. 그의 몸에 있는 문양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 피를 흡수하는 것 같았다.
한참 뒤, 소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른손을 교룡의 피에 담갔다. 그리고 그 피로 자신의 몸에 문양을 그렸다. 점점 새로운 문양들이 이전의 문양들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본 한제의 머릿속에 등력의 축기를 빼앗을 당시 그 폐허의 땅에서 본 푸른 피부의 괴인이 떠올랐다.
소년의 전신에 가득한 문양은 기이한 빛을 발산하다가 순간 눈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하지만 그러다 곧장 어두워지더니 결국 낙인이 되었다. 소년의 몸을 타고 뻗어나가던 문양은 천천히 확장을 멈추었다.
소년은 흥분한 표정으로 노인을 향해 기이한 언어로 뭐라 말했다.
그 기이한 언어를 들은 순간, 한제는 당시의 그 푸른 피부의 괴인이 이들과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한제의 오른손에 구수권이 채워진 것을 보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더니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외부자여, 나는 선유족(仙遺族)의 육엽(六葉) 술주사 카모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