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74
한제는 침착한 눈빛으로 포권을 하며 말했다.
“나는 수련자 이한제일세.”
노인은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1백 년의 기한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선유지에 들어온 수련자는 모두 죽게 되어 있네. 방금 내 제자가 피로 기록할 때 자네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자네를 건드리지 않는 것뿐이네. 세 번째 층에는 들어갈 생각을 접고 떠난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허!”
한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자네들은 세 번째 층에서 살아나올 수 없을 걸세. 그곳에는 우리 선유족의 칠엽(七葉) 술주사들이 있다. 그들은 너희 수련자의 영변기에 상당하지.”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군.”
말을 마친 그는 소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방금 마수의 피로 몸에 문양을 그리던데 그게 자네 선유족의 비법인가?”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선유족은 문양을 통해 마수의 힘을 흡수하지. 강한 마수일수록 더 큰 힘을 얻게 된다네.”
한제는 노인을 힐긋 보더니 포권을 취한 뒤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소년은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더니 살기를 띤 눈으로 낮게 말했다.
“사부님, 어찌 저자를 붙잡아 족장님께 데려가지 않는 겁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의 부력(符力)은 충분치 않아 저자의 뒤에 있는 부혼(符魂)을 보지 못했겠지만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자의 부혼은 머묵의 것이다. 오엽 술주사를 죽이고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사람이야. 나 역시 저자를 붙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공연히 달려들었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소년의 눈에 담긴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죽는 것은 문양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노인은 자애로운 눈으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부족의 힘은 충분치 않다. 저자를 죽이는 것은 더 강력한 부족이 할 일이야. 게다가 난 저자의 손목에 둘러진 구리 고리 안에서 강력한 혼의 힘을 느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인 듯하구나.”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젠가 가능한 때가 되면 외부자들을 반드시 쫓아내고 말 겁니다.”
노인은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두 번째 층에서 매우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곧장 떠나지 않고 세 번째 층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그에게 이번 여정의 목적은 윤회과(輪回果)였다. 이대로 떠난다면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하루 뒤, 세 번째 층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고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두 번째 층에 가득한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기운과 한데 섞인 그 느낌과 냄새는 살기(煞氣)같은 물질을 형성했다.
호 씨 노인은 입구에서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무척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뒤로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허루오가 있었는데 안에 받쳐 입은 갑옷 역시이 군데 군데 망가졌고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연기각의 소녀는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얼굴에는 마치 짐승의 발톱에 할퀸 듯한 상처 몇 개가 나있었다.
구사평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양호했으나 호흡이 불안정한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분명 상처를 입은 듯했다.
세 사람 모두 조심스러운 눈으로 호 씨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 공포가 어려 있었다.
그들 곁에는 현무 같이 생긴 거대한 마수가 있었다. 호 씨 노인의 그 마수의 몸에도 상처가 나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녀석의 거대하고 흉악한 눈은 진중하게 사방을 살폈으며 때때로 낮게 그르렁 거리기도 했다.
한제의 접근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마수는 흉악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낮게 그르렁거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한제를 향해 포효했다.
구사평을 비롯한 사람들도 한제를 보고 반가워했으나, 그들은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한제가 물었다.
구사평은 호 씨 노인을 힐긋 보더니 얼른 신식을 통해 말했다.
“선배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 명의 오엽 술주사를 죽였고 이 입구에서 또 한 명을 죽였다네. 허나 결국 그 술주사가 죽기 전 부린 술법에 선배도 큰 상해를 입었지.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한제는 굳은 얼굴로 호 씨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현무와 닮은 마수가 포효하며 입을 크게 벌려 숨을 훅 들이마셨다. 순간 엄청난 흡인력이 몰아치더니 마수의 앞쪽에 거대한 바람공을 이루어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흡혈 마수와 뇌와가 튀어나왔고 뇌와는 곧장 번개공 토해냈다. 그 번개공은 곧장 바람공과 얽혔다.
쾅 소리와 함께 사방에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흡혈 마수는 쉭 소리를 내며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거대하고 예리한 주둥이로 곧장 호 씨 노인의 마수를 찔렀다.
그때, 호 씨 노인이 눈을 떴다. 그 눈에서 붉은 빛이 번득였다. 동공에 문양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는 기합과 함께 몸을 훌쩍 날려 마치 마수처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금번을 꺼냈다. 금번에서 튀어나와 용으로 변한 금제들은 휙 소리를 내며 그의 앞에 응집되더니 우리 하나를 형성하여 호 씨 노인을 그 안에 가둬버렸다.
붉은 눈빛을 번득이던 호 씨 노인은 잔인하게 웃으며 손을 휘두르고 발버둥을 쳤다.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작게 외쳤다.
“감금.”
순간, 많은 금제가 금번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더욱 튼튼하게 감쌌다. 호 씨 노인은 금제를 하나하나 찢어버렸지만 더 많은 금제가 그 안으로 쏟아졌다.
“도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겠는가!”
한제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벼락처럼 금제를 뚫고 호 씨 노인의 귀에 박혔다. 호 씨 노인의 손이 순간 우뚝 멈추었다. 그의 두 눈은 저항하려는 빛을 드러냈다. 그러자 두 눈에 하나의 문양이 나타나 미친 듯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호 씨 노인의 두 눈은 다시 붉은 빛을 번쩍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아까와 약간 달라졌다.
“도우, 내가 마지막으로 죽인 그 야인은 죽기 직전 육엽 주술사로 승급했고 마지막 순간에 기이한 신통력으로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어. 너무도 강한 술법이었지. 수마해라면 몇 년 안에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이곳은 흉포한 기운이 끊임없이 스며들어와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어. 생사의 위기가 닥친 순간에만 이 문양의 신통함을 무너뜨릴 수 있다네. 도우, 나를 공격하게!”
호 씨 노인의 눈에 드리운 저항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그의 몸은 스스로를 강하게 억제하듯 경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한제는 굳은 눈빛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검은색 선검을 꺼냈다. 이 검은 유혼들에 의해 응집된 상태라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윤회수(輪回樹)
한제는 금제에 가두어진 호 씨 노인을 향해 선검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선검에서 검은 빛이 튀어나와 하늘을 가를 듯 쏘아져 나갔다. 금제는 그 빛이 나타난 순간 확산되더니 호 씨 노인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 호 씨 노인의 눈 속 문양이 무너져 내리면서 흩어져 버렸다. 호 씨 노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코끝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선검의 검광은 호 씨 노인으로부터 3촌 거리에서 우뚝 멈추었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선검은 곧장 사라졌다.
호 씨 노인은 저물대에서 병을 하나 꺼내 단약을 몇 알 삼킨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했다.
한제는 상대가 호흡을 마치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구사평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놀란 눈으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호 씨 노인의 마수 역시 몸을 부르르 떨뿐 더는 포효하지 않았다.
흡혈 마수는 이 틈을 타 거대한 몸을 날려 그 마수의 목에 주둥이를 찔러 넣고는 선혈을 삼킨 후에야 만족한 듯 뇌와와 함께 한제의 곁으로 돌아왔다.
1각 후, 두 눈을 번쩍 뜬 호 씨 노인은 맑은 눈빛으로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도우, 고맙네!”
“별말씀을…”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 씨 노인은 침착하려 애썼으나 내심 한제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던 선검이 조금만 늦게 멈췄다면 그는 머리가 갈라졌을 것이다. 비록 자신이 반항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방금 느낀 죽음의 순간은 마음 깊이 새겨져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과연 천우라는 이름이 그토록 큰 명성을 가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군!’
호 씨 노인이 내심 중얼거렸다.
하루가 지나도록 자심과 푸른 옷의 노인은 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호 씨 노인은 더는 그들을 기다리지 말고 윤회수를 찾아보자고 권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들은 세 번째 층으로 진입했다.
세 번째 층은 불처럼 붉은 세상이었다. 이곳의 흙에는 기이한 물질이 있어 붉은 빛을 발했고 덕분에 사방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선유지는 더욱 위험한 곳이 되었네. 두 번째 층에도 오엽 술주사가 있었으니 세 번째 층에는 육엽 술주사가 있을 거야. 최대한 빨리 윤회수를 찾은 뒤 바로 돌아가세.”
호 씨 노인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 뒤 한제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허루오와 연기각 소녀 운맹은 윤회수에서 윤회과를 맺게 할 때 필요한 자들이네. 둘의 수명은 아직 1백 년 정도 남았는데 각자의 남은 수명에서 60년을 들이면 윤회과를 맺을 수 있어. 내가 둘을 이곳에 데려온 것은 그 때문이야. 윤회수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자네와 내가 이 둘을 각자 한 명씩 맡아 최대한 빨리 윤회수가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세.”
호 씨 노인은 허루오를 붙잡고 몸을 훌쩍 날리더니 나이법(挪移法)을 사용해 서쪽으로 날았다. 구사평은 이를 악물고 순간이동을 통해 그를 쫓아갔다.
연기각의 소녀 운맹은 예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소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말했다.
“눈 감아.”
소녀는 얼른 눈을 감았다. 그녀의 두 뺨은 발갛게 물들었다. 한제의 체취가 느껴지자 그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한제는 발을 앞으로 내딛었고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소녀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귀를 스치는 바람의 웅웅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맹렬하게 몸을 스쳐가는 바람은 마치 날 선 칼과 같았다. 하지만 곧 그 예리한 바람도 사라졌다.
운맹은 속눈썹을 살짝 떨면서 두 눈을 번쩍 떴다. 부드러운 푸른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었다.
그녀는 몰래 고개를 들어 한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한제의 얼굴은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기이한 기운이 충만했다. 이는 천지의 영력에 융합되어 천도와 경지를 깨달은 화신기 수련자가 맞는 기이한 변화였다.
한제는 소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녀를 마주보지는 않았다.
화신기 수련자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구사평은 호 씨 노인과의 거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 초조함이 어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에서 쫓아오는 한제를 바라보더니 곧장 소리 높여 외쳤다.
“한제, 나 좀 도와주게! 보물로 값을 치르겠네!”
한제는 그다지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구사평이 수마해 평원의 동굴에서 많은 고서를 얻은 것이 기억났다. 그런 고서들을 통해 얻은 물건은 결코 적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