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81
두 사람은 상태가 좋지 않았고 기력도 굉장히 허약했다.
한제를 본 그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자심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몸을 훌쩍 날려 두 사람 앞에 이르렀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두 사람의 미간으로부터 선혈이 빠져나와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선배님⋯⋯ 저는⋯⋯.”
자심이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두 사람에게 별 관심도 느끼지 못한 한제는 핏방울을 거둔 뒤 오른손을 휘둘렀다. 성라반이 곧장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고 한제는 작아진 성라반을 저물대에 넣었다.
바로 그때, 본체가 만들어낸 허공에서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한제는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균열은 사라져버렸다. 허무의 공간에 남은 두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둘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였다.
깊은 구덩이 밖으로 나오자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졌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야 살아남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제는 고개를 숙여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를 내려다보더니 몸을 훌쩍 날렸고 본체 역시 그와 함께 사라졌다.
★ ★ ★
한제는 선유지에서 벗어난 뒤 이전에 머물렀던 산골짜기 밖에서 보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본체 역시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좌선했다.
다음 날, 한제와 본체는 동시에 눈을 떴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눈부신 노란 빛을 번득이는 윤회과를 꺼내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상대적으로 이 윤회과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은 본체였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군!”
한제가 던진 윤회과가 본체의 손에 떨어졌다.
본체가 그것을 움켜쥐자 윤회과는 곧장 쪼개졌고 그 안에서 끈적끈적한 금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액체는 곧장 흡수되어 본체의 피부에 난 균열을 따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본체의 몸에는 마치 한 층의 금색 그물이 드리운 것 같았다.
천천히, 금색 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결국 균열을 따라 본체 체내로 스며들었다.
떠나다
본체의 표정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한참 뒤, 그의 눈에서 금색 빛이 번득였다. 그의 전신에 퍼진 경맥은 모두 사라졌고 천지의 영력을 흡수하는 속도는 이전보다 몇 배는 빨라진 상태였다.
이제 본체는 진정한 고대 신의 일족으로 거듭난 것이다.
본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살짝 구르더니 땅 속으로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는 이어 저물대에서 토막 난 윤회수를 꺼냈다. 그러더니 그중 한 토막으로 세월의 나무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주은혜는 이미 세 살이 되어 있었다. 허나 그녀는 여태까지도 말문을 트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수많은 의원을 만나고 적지 않은 약을 먹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은혜는 상당히 침착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촌락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언제나 집안 정원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두 손이 투박한 중년 사내인 그녀의 아버지는 정원에 앉아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벙어리인걸까?’
★ ★ ★
어느 날, 도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촌락에 찾아왔다. 촌락의 연장자들이 나아가 그를 맞이했고 마을 안의 여섯 살 이하 아이들을 전부 데려오게 했다.
얼마 후 열아홉 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마을 중앙에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은혜와 부모도 있었다.
은혜는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이 또렷한 커다란 눈으로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생소한 분위기에 겁을 먹었는지 어머니의 옷깃을 꽉 쥔 채였다.
은혜의 어머니는 쪼그려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달랜 뒤 남편에게 소리 죽여 말했다.
“이 아이는 너무 어려요. 제가 보기에는 안 될 것 같아요.”
은혜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도는 해보자고. 만약 정말 발탁된다면 얼마나 좋아?”
은혜의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포를 입은 노인은 오만불손했고 기다리기 지루하다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몇 개 마을을 순회했지만 영력의 뿌리가 있는 아이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6년마다 영력의 뿌리를 가진 아이를 찾아오게 하는 문파의 규정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하산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는 6년 전에도 12년 전에도 이 마을에 왔지만 영력의 뿌리를 가진 아이는 찾지 못했다.
‘6년 전에는 요 앞의 유 씨 집성촌에서 하나 찾아냈지만 이번에는 틀린 것 같군.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중급 영석 세 개를 받게 될 텐데…’
점점 실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아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노인의 눈이 한곳에 멈추었다. 그곳에는 은혜가 서 있었다.
노인은 단 몇 걸음 만에 은혜에게 다가가 오른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두드렸다. 순간 노인의 얼굴에 광기어린 기쁨이 떠올랐다.
“이 아이⋯⋯ 천부적인 영력을 가졌군! 모든 영맥이 다 트였고 보랏빛이 온몸을 투과했어!”
은혜를 바라보는 노인의 머릿속은 온통 반짝반짝 빛나는 상급 영석으로 가득했다.
그가 소속된 문파가 작기는 하지만 평소 인색한 장문인도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제자를 찾아온 자는 융숭하게 대접해주었다.
“이 아이, 내가 데려가겠다.”
노인은 하하 웃으며 노인들에게 말했다.
은혜는 더더욱 겁에 질린 기색으로 어머니의 옷깃을 꽉 쥐었다. 아이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은혜 어머니의 얼굴에 슬픔이 차올랐다. 그녀는 은혜를 끌어안은 채 애처로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은혜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사님, 이 아이는 태생적인 벙어리입니다.”
“벙어리? 상관없지!”
노인이 오른손을 튕기자 은혜 어머니가 몸을 바르르 떨며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노인은 한손으로 은혜를 잡더니 웃으며 말했다.
“좋아, 따라와라!”
은혜는 몸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렸다. 아직 세 살에 불과한 그녀에게 부모와 떨어진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 은혜의 아버지가 뭔가 말하려 했으나 노인의 차가운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네놈 집안의 아이가 내 눈에 들었으면 복으로 여겨야지, 감히 나를 방해할 참이냐?”
촌락의 노인들이 얼른 다가와 은혜의 부모를 위로했다.
노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너희들의 아이를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에게 하늘의 조화를 알려주려 함이다. 후에 아이를 다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은혜를 안아 든 채 성큼성큼 촌락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은혜는 겁에 잔뜩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버지! 어머니!”
앳된 목소리에 노인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하하 웃었다.
“벙어리가 아니었구나. 더욱 신기하도다.”
“여야!”
아이 어머니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이를 쫓아가려 했지만 남편이 붙잡았다. 그는 멍하니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택된 것은 아이에게 좋은 일이야!”
★ ★ ★
마을 밖으로 나오자 은혜는 더욱 흥분했다. 허나 노인은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상급 영석 하나라니, 이제 난 축기 중기에 이를 수 있어. 아가야, 나도 너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네가 크면 꼭 너를 제자로 받아주마!”
그가 문파로 돌아가기 위해 비검을 내던진 그때, 갑자기 은혜가 노인의 팔을 꽉 물어버렸다. 하지만 세 살 아이가 낼 수 있는 힘은 크지 않았다.
노인은 미간을 구긴 채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은혜를 모르는구나!”
말을 마친 그는 왼손으로 은혜의 뺨을 올려붙이려 했다. 문파까지 가는 내내 자신이 유괴범이라도 된 듯 아이가 앵앵 우는 꼴은 참기 힘들었다.
허나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노인은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전신에 식은땀이 쫙 났다. 앞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하얀 옷의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노인은 얼른 은혜를 내려놓고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 저는⋯⋯.”
한제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노인은 마치 태풍에 휩쓸린 듯 저 멀리 날아가 사라졌다.
한제는 멍하니 은혜를 바라보았다. 1년 전, 철암을 운천종으로 돌려보낸 그는 그 후부터 내내 스스로 은혜를 보호하고 있었다. 오늘도 곧장 나서고 싶었으나, 약간의 자제력을 발휘해 겨우 충동을 참은 그는 노인이 은혜를 그녀의 부모로부터 떼어낸 후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제를 본 은혜의 눈이 두려움에서 아득함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