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88
“천우, 네게 또 어떤 수완이 있는지 보자!”
거인의 이마에 나타난 홍접은 이를 악문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반으로 줄어든 얼음 거인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민첩해졌다. 발을 한 번 구른 거인의 거대한 몸은 쾅 소리와 함께 지면에 균열을 일으키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줄곧 도망쳤다. 전장이 넓어 다행이었다. 계속해서 날아가는 와중에도 끄트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등 뒤에서 쫓아오며 포효하는 거인에 대해서는 신경을 접은 채 단약을 꺼내 복용하는 동시에 체내의 영력을 조절하는 데 힘썼다.
홍접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천우에 대한 원한은 뼈에 사무칠 정도였다. 방금도 얼음 거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천벌을 일으킬 수 있는 법보를 또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야. 그랬더라면 아까 곧바로 썼겠지. 그랬더라면 제아무리 얼음 거인이라 해도 절대 견뎌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홍접은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순간 거인의 가슴팍에서 채찍의 허상이 미친 듯이 번득이더니 거인의 손에 나타났다.
“죽어라!”
홍접의 외침에 거인이 손에 든 채찍을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후려쳤다.
채찍이 빠르긴 했지만 줄곧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한제는 순간이동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허나 1백 리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곧바로 한 움큼 선혈을 토해냈다. 순간이동을 하는 순간 채찍 끝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법보로구나!”
한제는 대량의 단약과 약초를 꺼내 씹어 삼켜 영력을 회복시키며 다시 달아났다.
홍접은 광기어린 눈으로 거인을 조종해 미친 듯이 상대를 추격했다.
“천우, 마치 상갓집 개 같구나! 당시의 위엄은 다 어디로 갔느냐!”
홍접은 한제를 추격하며 차갑게 비웃었다. 그러나 한제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하하 웃으며 말했다.
“홍접, 그 잘린 팔에 건 저주를 아직 풀지 못해 영력을 이용해 억제하고만 있구나. 초장부터 가장 강력한 법보를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
홍접은 코웃음을 쳤으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는 단 한 번도 한제를 말싸움으로 이기지 못했다. 이에 그녀는 입을 다물고 거인을 조종해 채찍을 휘둘렀다. 짝, 짝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체내의 영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한제는 홍접의 팔을 꺼냈다. 그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결인을 그린 후 홍접의 팔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 잘린 팔에서 요사스러운 빛이 번득이더니 그 위에 부호가 하나하나 떠올랐다.
“폭발!”
한제는 왼손으로 그 잘린 팔을 때리며 외쳤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있던 홍접의 팔이 펑 소리와 함께 폭발해버렸다. 단 한 방울의 피도 남아 있지 않았던 팔은 폭발과 함께 검은 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홍접 체내에 걸려 있던 저주가 모두 활성화됐다. 홍접은 한 움큼의 검은 피를 토해냈다. 얼굴에 드리운 검은 기운도 더욱 짙어졌다.
자리에 우뚝 멈춰선 한제는 더는 도망치지 않고 그 기회를 틈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가 오른손 손목에 차고 있던 구수권은 곧장 한 줄기 잔영이 되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차로 바뀌었다. 전차 위의 혼수는 붉은 눈으로 한제와 거인을 노려보며 포효했다.
이제 자신의 밑천을 숨기고 말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당장은 홍접에게 승리를 거두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전차가 활성화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선검을 휘둘렀다. 선검에서 빠져나간 검광이 공기를 가르며 얼음 거인을 내리쳤다.
펑!
뒤로 한참 밀려난 거인의 가슴팍에 한 줄기 상흔이 남았다. 홍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전력을 다해 체내의 저주를 억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제는 앞으로 나아가 또 한 번 선검을 휘둘렀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거인은 다시 물러났다. 이때, 홍접이 발버둥 치듯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한이 어린 눈빛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저주를 중얼거렸다. 순간, 거인의 두 눈이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더니 거인의 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접은 거인의 조종을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 체내의 검은 기운을 억제할 모양이었다.
거인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채찍의 허상이 나타났다. 허나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의 몸은 뒤로 한참 밀려났다. 선검은 어떤 손상도 입지 않았지만 그 엄청난 힘을 그대로 맞은 한제는 선혈을 또 한 움큼 토해냈다.
거인이 발을 쿵 구르더니 단번에 한제 앞의 상공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포효를 내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에는 허상의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한제는 잔뜩 굳은 얼굴로 긴 잔영을 남기며 거인에게 달려들어 선검을 휘둘렀다. 거인의 주먹이 한제의 몸에 내리쳐지던 그 순간, 선검이 빛을 번득이며 거인의 오른팔을 가로로 그었다.
검광에 의한 공격과 선검에 직접 베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선검은 거인의 몸을 뚫고 1천 척 밖의 땅 깊숙이 꽂혔고 오른팔이 단번에 잘려나간 거인은 포효했다.
한제도 무사하지 못했다. 몸 곳곳이 부러지고 피가 낭자한 상태로 저 멀리 내던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크게 웃었다.
“홍접, 너와 거인은 천생연분이로구나. 둘 다 내게 한쪽 팔을 잃었으니 말이야. 하하하!”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거인의 잘린 팔이 그에게로 향했다. 한제의 손에 푸른빛이 생겨났고 그러자 거인의 잘린 팔은 펑 소리와 함께 조각이 되어 떨어지면서 크기가 반으로 줄어버렸다.
이때, 전차에 달린 수많은 예리한 가시에서 검은 빛을 번득였다. 그 검은 빛들은 혼수에게 응집되었고 혼수는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두 눈에서 흉악한 빛이 번득였다.
경지의 위력
거인은 분노로 포효하며 한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한제는 입을 벌려 한 줄기 흰색 빛을 토해냈다. 그 빛은 거인의 잘린 팔을 감쌌고 그러자 그 팔은 또 한 번 균열이 일며 대폭 줄어들었다.
거인은 빠르게 달려들며 남은 손을 휘둘렀다.
쾅!
한제는 몸을 뒤로 물리며 번쩍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선검 옆에 나타났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곳에는 쩍 하고 균열이 일어나 있었다.
한제는 한손으로 선검을 쥔 채 외쳤다.
“파괴!”
빛으로 뒤덮인 거인의 잘린 팔에서는 또 한 번 균열이 일더니 어느새 보통 사람의 팔 크기까지 줄어버렸다.
거인이 맹렬히 몸을 돌리더니 또다시 번개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질주했고 한제는 손에 쥔 선검을 들어 맹렬히 내리쳤다.
그때, 거인의 가슴팍에서 채찍의 허상이 번득였다. 한제는 순간 안색이 변해 선검으로 앞을 막았다. 하지만 채찍은 선검을 빙 둘러 한제를 내리쳤다.
펑!
선혈을 토해낸 한제의 몸이 수백 척 밖으로 밀려나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의 원신은 다시 몸 밖으로 튕겨나갔다. 거인은 한제의 원신은 내버려둔 채 한제의 육신을 향해 접근했다.
“열려라, 전차!”
한제의 원신이 외쳤다. 그러자 이미 활성화될 준비를 마친 사신차에서 혼수가 포효하며 튀어나갔다. 녀석의 몸을 옭아매던 사슬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한데 녀석은 거인이 아니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의 원신을 삼켜버리려는 듯했다.
“머저리 같은 자식!”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해서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한 줄의 사슬이 전차로부터 뻗어 나와 혼수를 단단히 옭아매었다.
혼수는 힘껏 발버둥 치며 포효하는 와중에도 방향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한제를 삼키는 것이 간절한 모양이었다.
이때, 이미 한제의 육신에게로 다가온 거인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허이국!”
한제의 원신이 소리쳤다.
한제의 육신이 쥐고 있던 선검이 웅 소리를 냈고 그 위에 피어오른 검은 기운이 선검을 조종하여 곧장 한제의 육신 앞을 가로막았다.
쾅!
거인의 주먹이 선검을 때렸지만 강력한 저항력에 거인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선검 안의 허이국 역시 비명을 내질렀다. 선검은 팍 하고 바닥에 떨어져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았다.
거인은 다시 앞으로 나섰다.
바로 이때, 더욱 많은 쇠사슬이 전차에서 나와 혼수를 단단히 옭아맨 뒤 끌어당겼다. 혼수는 달갑지 않은 듯 포효를 내질렀다. 허나 가득 차오른 분노는 거인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거인은 고개를 들더니 이제 한제의 육신이 아닌 혼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쾅!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거인은 혼수를 공격했고 혼수는 포효를 내지르며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혼수의 돌격은 매번 거인의 주먹에 가로막혔고 그럴수록 혼수의 분노는 커졌다.
입을 쩍 벌린 혼수는 곧장 크게 부풀어 올라 단번에 거인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 순간, 거인의 가슴팍에서 채찍이 번득이더니 혼수를 내리쳤다. 혼수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고 몸도 줄어들었다.
짝, 짝!
연속적인 채찍질에 혼수는 격렬하게 포효했고 두 눈은 더욱 흉악하게 번득였다. 이내 혼수는 채찍을 피할 생각도 않고 상대에게 달려들었고 녀석의 거대한 몸은 거인의 체내를 뚫고 나왔다.
거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몸에 쩌적 균열이 일면서 얼음 조각이 한 덩이씩 떨어져 내렸다. 거인의 몸은 다시 줄어 이제 겨우 20척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른쪽 어깨는 녹아내리려 하고 있었다.
혼수가 고개를 돌려 다시 달려드는 순간, 홍접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검은 기운은 미간으로 억제되어 검은 선 형태가 되었다.
“나와라, 곤극 채찍의 본체!”
홍접의 목소리는 촉박하면서도 음산했다.
순간, 눈처럼 흰 채찍 하나가 거인의 왼손에 나타났다. 허나 이 채찍은 허상이 아니라 실체였다.
하얀 채찍이 혼수의 몸을 내리쳤다. 고통으로 신음하며 더욱 흉악하게 달려들려던 혼수가 그 순간 갑자기 안타까운 듯 포효하며 고개를 돌려 전차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혼에 불과해 전차의 제한을 받고 있었고 한제가 혼수를 조종하는 데 아직 미숙한 탓에 전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기에 혼수는 지금 전차의 소환을 받고 있었다.
혼수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점점 흩어져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되어 전차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혼수가 거인에 맞서는 사이 한제의 원신은 육체로 돌아왔고 단약을 복용해 체내의 영력 역시 회복한 상태였다. 또한 선검에 영력을 불어넣어 허이국까지 회복시켰다.
한제는 훌쩍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거인은 포효를 내지르며 주먹을 맹렬하게 휘둘러 검광에 맞섰다. 잠시 후, 뒤로 한참 밀려난 그가 대지를 두드리자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지면의 균열이 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쫓아야해!
한제는 눈빛을 서늘하게 번득이며 검을 쥐고 거인을 쫓아갔다.
홍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늘의 결투는 선계에서의 전투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천우가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다.
홍접은 당시의 선계를 떠올렸다. 자신이 여러 일을 겪으며 약해지기 전, 천우는 자신에게서 도망만 쳤을 뿐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는 애초에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우는 약자였고 버러지였으며, 강자의 발받침이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였다.
홍접은 4파 연맹국의 잔당을 소탕하면서 천우 같은 수련자를 무수히 죽였다. 주작국에 온 이후에도 그런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천우에게 한 팔을 잃은 뒤 무너져 내렸다. 자신보다 약한 수련자에게 기습으로 인해 한 팔을 잃은 그녀는 천우를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로 도심(道心)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설역국의 중요한 법보인 얼음 신까지 챙겨 나왔다.
심지어 그녀의 사형은 천옥종의 중요한 법보인 곤극 채찍까지 몰래 챙겨주었다. 홍접은 사형의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가지고 나왔을 뿐 실제로 그것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투가 시작되고 보니 천우가 가진 법보의 힘은 그녀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방금 나타난 그 혼수는 어찌나 흉포한지, 만약 그 뒷심이 부족하지만 않았다면 자신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