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0
하지만 한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오행의 령을 처리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나, 지금 그는 화신기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게다가 이미 오행의 령에 대한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세월의 경지를 품은 아홉 개의 나무 조각상이 나타났다. 그중 일곱 개는 윤회수로 조각한 것으로 그 조각상에서 발산되는 힘은 청송이 발휘했던 경지의 힘을 뛰어넘었다.
“세월!”
한제가 가볍게 외쳤다.
순간 무형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면서 령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한제는 단숨에 금속의 령을 움켜쥐었고 곧바로 이동해 나무의 령도 속박했다. 그러더니 남은 두 개의 령은 본 척도 않고 곧장 달아나고 있는 홍접을 뒤쫓았다.
홍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토록 길고 치열한 결투가 이어졌건만 천우에게 저리 강력한 법보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홍접은 오늘 어떻게든 상대를 죽이고 그가 가진 모든 법보를 거둘 생각이었다. 어찌됐든 영력으로 따지자면 자신이 우월하니 해낼 자신이 있었다.
홍접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금속의 령, 폭발!”
그러자 한제의 손에 붙잡혀 있던 금속의 령이 진동하더니 엄청난 힘을 방출했다. 한제는 얼른 금속의 령에서 손을 뗀 뒤 순간이동을 했다. 나무의 령은 여전히 손에 붙잡은 상태였다.
펑!
금속의 령이 자폭하면서 엄청난 힘을 발산했다. 한제는 순간이동을 했음에도 폭발의 여파로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냈고 몸도 다시 약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입은 부상으로 인해 그의 경지가 불안정한 상태로 접어들었고 이내 화신기 초기로 떨어졌다.
땅으로 곤두박질 친 한제는 곧장 저물대 안에서 단약을 꺼내 삼켰다. 그리고 다시 홍접의 앞에 나타나서는 흉악한 눈을 번득이며 결인을 한 오른손을 뻗었다.
“죽어라!”
홍접은 눈을 번득이며 다시 외쳤다.
“모두 폭발!”
그녀의 말에 따라 세 개의 령이 경련을 일으키며 파멸적인 기운을 미친 듯이 확산시켰다. 홍접은 냉랭한 눈빛으로 한제를 주시하며 말했다.
“네가 날 죽이려 한다면 같이 죽게 될 것이다.”
허나 홍접의 예상과 달리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결인한 손을 두드렸다. 홍접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한데 그때, 갑자기 부드러운 힘이 하늘로부터 내려왔고 자폭하려던 세 개의 령은 순간 금색 빛에 뒤덮인 채 사라져갔다.
홍접의 눈앞에 조용히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주작국의 공손파였다.
그가 오른손을 살짝 휘두르자 한제의 몸은 곧장 수백 척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어두워진 얼굴로 공손파를 노려보았으나,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 강대한 힘은 그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우, 네가 이겼다. 주작산으로 가 명령을 받아라. 널 안내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너는 우리 주작국의 외부 제자다. 주작국은 외부 제자의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 잘 생각해본 뒤 주작산으로 가 말하라.”
말을 마친 공손파는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순간 세 개의 령이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고 공손파는 세 개의 령을 쥔 손으로 홍접의 미간을 쳤다.
하지만 나무의 령이 날아가려던 순간 한제는 이를 악물고 손에 쥐고 있던 선검을 휘둘렀다.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던 나무의 령 반쪽이 떨어져 내렸다. 한제가 그 반쪽을 손에 쥐고 문지르자 그것은 푸른색의 결정이 됐다. 한제는 그것을 얼른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작업을 마친 한제는 재빨리 공손파를 바라보며 경계심을 높였다.
공손파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흥, 대담한 녀석. 결투에서 이겼으니 봐주마. 하지만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은 취소다.”
이어 그가 허공을 두드리자 아까 자폭했던 금속의 령이 다시 나타났다. 노인은 그것을 쥐어 홍접의 이마에 집어넣었다.
홍접은 혈기가 돌아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공손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허나 공손파는 홍접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한제에게 손을 뻗으며 꾸짖듯 말했다.
“곤극 채찍을 내놔라.”
한제는 공손파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상대의 눈빛을 본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곤극 채찍을 꺼내 넘겼다. 수련계에서는 모든 것이 힘에 따라 결정되는 법이었다.
곤극 채찍을 손에 넣은 공손파가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빛의 문이 나타났다.
“가자!”
공손파가 걸음을 내딛었다.
홍접이 그 뒤를 바짝 따르며 고개를 돌려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음에는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허나 홍접은 자신의 목숨이 단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주작산에서는 한 신비로운 인물의 말 한마디에 비밀스러운 음모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제가 빛의 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마치 모든 사람이 사라진 듯 제단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단 위에 남은 것은 자신뿐이었다. 대신 옥패 하나가 허공에서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제는 손을 뻗어 그 옥패를 쥔 채 신식으로 한번 살펴보았다. 옥패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주작산에 대한 지도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홍접과의 결투로 큰 부상을 입었고 지금은 수준마저 안정적이지 못했다. 단약을 복용한다 해도 단시간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은 급한 조치부터 하고 완전히 회복하려면 폐관수련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흡혈 마수가 튀어나왔고 한제는 흡혈 마수 위에 앉아 신식을 펼친 채 계속해서 좌선했다.
주작국의 밤은 굉장히 평온했다. 상공에 걸린 밝은 달이 사방의 대지로 빛을 뿌렸다.
류미와 건풍
사흘 뒤, 주작산 뒷산의 금지된 땅에 기이한 막 하나가 나타났다.
주작산은 주작성의 성지였다. 이 산 위에는 주작의 침궁(寢宮)이 있었으며 산 뒤의 금지된 땅은 주작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었다.
금지된 땅은 넓지는 않았다. 거대한 동굴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이 동굴은 네 개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두 번째 층 안에는 두 개의 깊은 연못이 있었다. 이 두 연못에서는 하얀 기운이 풍겼는데 그 기운은 동굴 천장까지 피어오른 뒤 전혀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그중 한 연못에서 피어오른 하얀 기운은 동굴 천장에 닿은 뒤 서리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다른 연못에서 피어오른 하얀 기운은 무수히 많은 붉은색 이슬이 되어 동굴 천장의 벽 안으로 사라졌다.
또한 이 두 연못 중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뜨거운데 찬 연못은 천상성(天霜星)의 3만 년 된 얼음물에서 취한 것으로 당시 주작성은 그것을 취하는 데 막대한 대가를 들였다. 뜨거운 연목은 화염성(火焰星)의 3만 년 된 꺼지지 않는 불에서 가져온 것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한 결과였다.
이 두 연못 사방에는 각각 99개의 최상급 영석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진을 이룬 채 상상을 초월하는 영력을 발산했다.
지금, 두 연못 중 뜨거운 연못에는 남자가 차가운 연못에는 여자가 한 명씩 얇은 옷 하나만 걸친 채 중앙에 앉아 좌선하고 있었다.
남자는 외모가 준수한 것도 아니었고 사악하고 기이한 기운을 풍겼다. 허나 이 기운은 불쾌하거나 짜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여자의 외모는 홍접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아 경국지색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허나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외모보다는 몸에서 풍기는 아름다운 기운이었다. 만약 한제가 봤더라면 그 여인이 낯익다 싶었을 것이다.
이때, 온몸에서 붉은 빛을 발산하는 노인 하나가 동굴로 들어와 두 사람 앞에 멈추었다. 노인의 외모는 한제에게 밀짚모자를 주었던 더럽고 미천한 노인과 똑같았으나, 풍기는 기운은 전혀 달랐다.
한참 뒤, 노인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건풍!”
뜨거운 연못 가운데 앉아 있던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에는 한층 사악한 기운이 드리워 있었다.
“건풍, 선조를 뵙습니다.”
“홍접이 밀실에 있다. 가서 그녀의 영력과 경지를 삼켜라!”
붉은 빛으로 휩싸인 노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건풍은 다소 놀란 듯 물었다.
“홍접이라면 그 설역국의 천녀(天女)입니까?”
천녀라는 말을 내뱉던 그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눈에는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렇다. 홍접은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찾아 여태까지 길러낸 아이다. 그 아이의 경지가 천우와의 전투에서 돌파하여 첫 번째 절정기를 맞았다는구나. 허나 그녀는 스스로 완벽하게 깨닫지 못해. 네가 그 경지를 삼킨다면 네가 가진 경지에 절정의 경지가 추가되겠지. 그렇게 되면 문정기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건풍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얀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뜨거운 연못에서 걸어 나와 사악하고 기이한 눈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우⋯⋯ 지금 네 녀석의 수준으로 내 일격을 견뎌낼 수 있겠느냐!”
“홍접 그 아이가 안타깝기는 하나⋯⋯ 됐다, 가봐라.”
노인이 한숨을 내쉬자 건풍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선조님, 언제나 이리 안타까워하시는군요. 주작이라는 칭호를 그 외부 제자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요. 저와 사매 외의 그 누구도 주작의 칭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흩어져서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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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좌선을 하며 경지를 회복하고 있던 홍접은 한참 뒤 두 눈을 번쩍 뜨며 작게 중얼거렸다.
“천우, 다음에는 널 반드시 죽이고 말 것이다.”
그때 밀실 안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원은 내가 대신 들어주지.”
“누구냐?”
홍접의 눈빛이 굳어졌다.
사악하고 기이한 남자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홍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난 건풍이다.”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앞쪽으로 뻗었다.
홍접은 안색이 변해 왼손으로 결인을 했다. 그러자 붉은 빛 한 줄기가 그녀의 체내로부터 확산됐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웃는 듯한 눈으로 오른손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붉은 빛은 곧장 무너져 내렸고 이어 그의 손가락 끝이 홍접의 미간을 눌렀다.
홍접은 몸을 부르르 떨며 발버둥치려 했지만 남자의 손가락 끝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그녀를 내리 눌렀다. 홍접은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