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6
한 줄기 영력이 체내로 들어와도 그 막에 가로막혀 밀려나는 식이었다. 이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물 감옥 속의 영기는 점점 더 많아졌다.
화운 마을은 깊은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흥겨운 노랫소리 사이로 이따금 여인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마을의 화려한 누각에는 건장한 사내가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은상자 하나가 열린 채로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주먹만 한 야명주(夜明珠) 하나가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내는 야명주를 들어 자세히 살피더니 탐욕스러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상당히 큰 구슬이니 분명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야!”
잠시 후, 그는 구슬을 내려놓고 은상자를 닫은 뒤 탁자 위에 놓인 다른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것은 회색 주머니였다. 사내는 그 주머니를 들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주머니는 그냥 헝겊처럼 가벼웠다. 무엇보다도 그 주머니에 주둥이가 없다는 게 이상했다.
“이건 뭐지?”
잠시 고민하던 사내는 주머니를 두 손으로 찢어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주머니는 찢어지지 않았다.
“이⋯⋯ 이건 설마 천잠사(天蠶絲)?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안 찢어질 리 없지. 가만 천잠사는 불에 약하다던데… 그럼 안에 뭐가 들었는지 태워볼까?”
사내는 옆에 놓인 촛대를 들어 주머니에 가져다 댔다.
허나 한참이 지나도 주머니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사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심지어 예리하기가 그지없는 칼로 베어도 주머니는 멀쩡했다.
“이건 보물이로구나! 이것을 가슴팍에 달면 중요한 순간에 내 목숨을 구해줄 거야. 그 추한 녀석이 이런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니… 하나뿐이라 안타깝군. 여러 개를 하나로 이어 옷을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는 주머니를 조심히 품에 넣어 가슴팍에 붙인 뒤 중얼거렸다.
“그 못생긴 녀석이 어디에서 이 보물을 얻었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는 벌떡 일어나 누각 밖으로 나가서는 곧장 마을 뒤 감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던 두 졸개는 다가온 사내를 보고 얼른 크게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큰형님.”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번에 데려온 그 못생긴 녀석은 어디에 뒀느냐?”
그중 한 졸개가 얼른 답했다.
“북쪽 방에 있습니다.”
“열어!”
사내가 말했다.
그 졸개는 얼른 옆으로 달려가 어느 철망 앞에 이르더니 철망을 열며 웃었다.
“큰형님, 여기⋯⋯.”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철망 안에서 풍덩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청년 하나가 떠올랐다.
청년의 두 눈에는 서늘한 한기와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분노가 가득했다.
멍한 눈으로 청년, 한제를 바라보던 사내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하지만 두 걸음 옮겼을 때, 그의 몸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붙잡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를 틈도 없던 펑 하고 피범벅의 살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그의 가슴팍에 달려 있던 주머니는 청년의 손으로 떨어졌다.
물 감옥 안의 영력을 전력을 다해 흡수한 한제는 겨우 체내에 자리한 봉인과 경지에 틈을 하나 냈고 그 틈을 통해 체내에 영력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가 몸에 마련한 영력은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감옥에서 빠져나가서 두 사람을 죽인 뒤에는 또 다시 거의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얼른 남은 영력을 저물대 안에 불어넣었다.
“흡혈 마수!”
순간 저물대는 푸른빛을 번득이며 검은 빛 한 줄기를 쏘아 보냈다. 검은 빛은 허공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언덕만 한 흡혈 마수가 됐다.
옆에 있던 다른 졸개 하나는 두려움에 오줌까지 지리며 덜덜 떨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뒤로 나자빠졌다.
흡혈 마수는 한제의 허약한 모습을 보자 분노하여 포효를 내질렀다. 순간, 다른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흡혈 마수의 분노에 찬 포효만이 들려왔다. 이어 흡혈 마수는 한제의 분부가 떨어지기도 전에 거대하고 긴 주둥이로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졸개를 찔렀다. 졸개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해골로 변해버렸다.
흡혈 마수를 내놓은 한제는 겨우 한시름 놓았다. 체내의 영력은 다시 완전히 소모된 상태였지만 흡혈 마수가 곁에 있으니 안전만큼은 보장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몇몇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마수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치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자도 있었다.
“괴물이다.”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그 칼자국이 난 사내를 주시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흡혈 마수는 휙 하고 날아가 그 커다란 몸뚱이로 사내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에 사내는 비참한 절규를 내지르며 뭉그러진 살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가 부딪힌 집까지도 펑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흡혈 마수는 한제 위로 날아올라 음산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광경에 온 마을 사람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 역시 떨고 있었으나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저희가 선인을 몰라 뵀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한제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느 나라인가?”
문인이 얼른 답했다.
“이곳은 비로국 북부입니다.”
“비로국이라⋯⋯ 주작대륙의 북쪽이군.”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곳에 있는 감옥을 파헤쳐 그 안에 있는 물을 흘려보내는 데 며칠이나 필요하지?”
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 아니, 하루, 하루면 됩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작해.”
그는 흡혈 마수로 하여금 공격을 시키는 대신 자신의 곁에 머물면서 보호하게 했다.
문인은 겨우 한시름 놓았다는 듯 얼른 뒤돌아서서 소리쳤다.
“다들 움직여! 이곳을 파헤쳐라!”
마을 사람들은 그 호통에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두려움에 덜덜 떠느라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했다. 특히 한제를 붙잡아온 사내들은 숨도 쉬기 힘들어 보였다.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얌전히 호흡했다. 흡혈 마수는 그의 상공을 한 바퀴 돈 뒤 곁에 내려앉아 흉악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화운 마을에 사는 2백 명 남짓의 사람들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그 감옥을 파헤쳤다. 대량의 오수가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처음에는 지저분했으나 흘러나갈수록 맑아진 물에서 향기가 풍긴다는 사실이었다.
하루가 지나면서 흐르는 물은 점점 적어졌고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한제의 눈치를 봤다.
허나 한제는 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흡혈 마수의 도움 아래 일전의 그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 감옥은 이제 깊은 연못처럼 바뀌어 있었다.
그 안에 앉은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호흡했다. 그러는 동안 흡혈 마수는 시종일관 그의 곁을 지켰다. 감히 접근하려 드는 자는 모두 죽일 작정이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한제의 분부가 떨어지지 않자 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흡혈 마수 역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한시름 내려놓으며 얼른 자리를 떴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 근방에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재빨리 마을을 뜰 채비를 했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의 목소리가 그 깊은 연못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
문인은 속으로 쓴물을 삼키면서도 얼른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화운 마을은 전에 없이 조용해졌다. 하루 종일 아무런 기척도 없는 마을은 마치 지옥 같았다.
이 부근을 오가는 행상들과 표국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이전까지만 해도 오만방자하게 휘젓고 다니던 18명의 사내들도 두 달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깊은 연못 속에서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육신이 입은 상처는 이미 완전히 회복됐지만 이원봉의 경지와 손태의 봉인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두 달 동안 겨우 응기 2단계 정도로밖에 회복하지 못하다니… 영력이 충만한 곳을 찾고 싶어도 원신이 붕괴해 영력을 체내로 모으기도 힘이 들고 석주도 꺼낼 수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최고급 영석이 있으니 당분간은 영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야. 지금 가장 급한 일은 원신을 회복시켜 석주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거지. 그나저나 이곳은 영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물에 이렇게 영력이 가득하다니. 참 신기하군!”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연못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이전까지는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반쯤 뜬 채 호흡해왔으나 힘을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 이곳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아직 자신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위험이 닥치면 곧장 흡혈 마수를 소환하기로 했다.
연못은 물이 아주 맑아 깊은 곳까지 한눈에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저 깊은 땅은 시커먼 진흙이 두껍게 깔려 어두웠다.
물 아래 있는 것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사용한 적 없던 낮은 등급의 술법인 인력술(引力術)이 발휘됐다. 그러자 순간 땅을 덮은 진흙이 피어오르며 맑았던 물이 먹물처럼 변하면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퍼져 나갔다.
한제는 위쪽으로 헤엄쳐갔다. 검게 변한 물은 마치 한제를 추격하듯 빠르게 뻗어 나왔다.
한제는 수면을 박차고 튀어나옴과 동시에 오른손을 아래쪽으로 내리눌렀다. 인력술의 통제 아래 대량의 진흙을 품은 검은 물은 마을 사람들이 파놓은 수로를 통해 흘러나갔다.
한참 뒤, 흐르는 물은 점점 맑아졌고 한제는 몸을 아래로 가라앉혀 다시 연못 바닥으로 향했다.
이렇게 세 번 반복한 끝에 물 감옥 아래 두껍게 깔려 있던 진흙은 말끔하게 흘러나갔고 그제야 그 안의 광경이 드러났다.
연못 바닥에는 원형의 진이 배치되어 있었고 진 안의 세 곳에 영석이 놓여 있었다. 심지어 일반적인 영석이 아닌 최고급 영석이었다.
‘물에 영력이 깃들어 있던 이유는 저것이었군.’
한제는 진을 자세히 살폈다. 그 진에 놓인 세 개의 최고급 영석은 약간 회색빛을 띤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놓여 있었던 듯했다. 금방이라도 수명을 다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제의 시선은 영석이 아니라 그 진 중앙에 놓여 있는 것으로 향했다.
한 구의 해골이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여인의 해골인 듯했다. 그 해골은 기이한 자세로 검은 못에 의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 개의 최고급 영석으로 해골 한 구를 봉인해 놓다니, 씀씀이가 굉장하군.”
한제는 이 진의 목적이 오직 하나, 봉인임을 간파했다.
하지만 그 해골의 오른손 검지는 땅속 깊은 곳에 박혀 있었다.
한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위로 떠올라 그곳을 떠나려 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한제의 저물대에서 노란 빛이 번득이더니 강한 힘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수백 년 전, 얼떨결에 손에 넣었지만 아직 완벽히 연구해내지 못해 사용할 수도 없었던 비밀스러운 족자가 저물대에서 빠져나왔다. 저물대 안의 물건이 제멋대로 발동하는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당시 족자를 꺼냈을 때 등이 굽은 선유족 노인의 반응으로 미루어 저것이 대단한 물건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족자가 천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막 같은 그림 안에서 영혼을 공격하는 듯한 포효가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 물 감옥 바닥의 진에 놓인 해골에서 갑자기 보라색 빛이 발산됐다. 특히 땅속에 박혀 있는 검지 부분의 보랏빛이 더욱 짙었다. 주먹만 한 보라색 빛 한 덩어리가 응집되어 해골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족자에 흡수되어 자취를 감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