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7
해골은 검은 재로 변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물에 녹지 않고 바닥에 쌓여 있었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족자는 그 보라색 빛을 흡수한 뒤 다시 천천히 말려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한제는 족자를 손에 넣고는 곧장 수면 밖으로 나왔고 한참이나 그 족자를 살폈다.
시커먼 막 같았던 그림에 전에 없던 보라색 낙인 하나가 불규칙적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도 없는 변화였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이 그림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그토록 대단한 보물이라면 어째서 당시 결단기 수련자 손에 있었던 것일까?
이내 한제는 족자를 챙겨 넣은 뒤 연못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 감옥 속의 해골은 신비로웠다. 최고급 영석으로 봉인을 해뒀어야 할 정도라면 생전에는 분명 상당한 실력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녀를 그곳에 봉인해 둔 것일까? 그리고 족자에 흡수된 그 보라색 빛은 대체 뭘까?
“흡혈 마수, 그 중년 문인을 불러와!”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흡혈 마수는 즉시 움직였다. 녀석의 포효에 온 산에 쌓인 눈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면 눈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흡혈 마수가 어느 집으로 몸을 날려 그 거대한 주둥이를 들이밀자 한제가 찾던 그 중년 문인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흡혈 마수는 쓰러진 중년 문인을 물고 한제 곁으로 돌아와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충격으로 정신을 차린 문인은 두려운 듯 얼굴이 창백했다.
“이 물 감옥, 어떻게 발견한 거지?”
한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래 전 이곳은 그저 황량한 산이었습니다. 한데 한 차례 지진이 난 뒤로 산이 갈라지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지요. 이 물 감옥 역시 그 지진이 난 뒤 나타났습니다. 고약한 악취가 풍겨 나오는 것을 본 큰형님은 이곳을 감옥으로 만들라 명했습니다.”
중년 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갈라진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중년 문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에 한제는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산봉우리는 아주 오래 전 그 해골을 눌러놓고 있었는데 한참 뒤 지진이 일어나면서 틈이 생겼고 그 틈을 통해 해골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 해골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제는 오른손을 흔들어 중년 문인에게 물러가라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우선은 힘을 회복하는 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물속의 최고급 영석은 거의 힘을 다해 제공할 수 있는 영력도 갈수록 적어졌다. 그 정도로는 한제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저물대에서 세 개의 최고급 영석을 꺼내 사방에 배치한 후 다시 눈을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어느덧 세 달이 지나, 이제 한제가 초나라를 떠난 지 반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겨울에 접어든 비로국에는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왔다.
화운 마을의 졸개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을에 저장해놓은 여분의 식량이 적지 않아 겨울은 충분히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제는 지난 세 달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좌선하며 끊임없이 최고급 영석의 영력을 흡수했다. 이를 통해 체내에 영력을 축적함과 동시에 단 한 번, 일격으로 봉인과 경지를 풀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수준은 지난 세 달 동안 최고급 영석의 도움 아래 응기 6단계에 이르게 됐다.
흡혈 마수는 시종일관 한제의 곁을 지키면서 때로는 흉악한 눈으로 먼 곳을 내다보기도 했다. 마수의 시선은 초나라 방향을 향했다. 심지어 뇌와가 그립기도 했다.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 다투느라 바빴지만 오랜 시간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보고 싶기도 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다시 다섯 개의 최고급 영석을 꺼내 사방에 배치했다.
얼굴에 난 찻잎 모양의 흉터를 만지작거리다 결심한 듯 눈을 번득인 그는 다시 두 눈을 감고 최고급 영석 여덟 개에서 피어오르는 영력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그 영력은 그의 몸 밖에서 응집됐다. 지금 그의 전신에서는 푸른빛이 번득이고 있었고 옅은 영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체내의 영력이 많아지자 한제는 낮게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응기 6단계에 상당하는 체내의 영력은 순식간에 회전하기 시작했고 몸 밖에 응집되어 있는 거대한 영력은 그와 동시에 한제의 몸에 달려들었다.
이 순간 한제의 몸을 한 조각 철판이라고 한다면 체내의 영력은 작은 송곳, 체외의 영력은 큰 송곳이었다.
두 송곳의 협공에 철판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이은 충격에 한제의 얼굴은 갈수록 창백해졌으며, 그의 얼굴을 뒤덮은 흉터에서는 순간 검은 빛이 번득이며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본다면 꼭 진이 회전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진은 한 번 회전할 때마다 대량의 영력을 흡수했다.
한제는 뭔가를 망설이고 주저하는 듯하더니, 이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에서 하얀색 옥을 하나 꺼냈다. 그 순간, 사방의 영력이 어두워지면서 분분히 자리를 비켰다.
“선옥(仙玉)⋯⋯. 이것을 삼키는 것은 독을 삼키는 것과 같지만 체내의 봉인과 차(茶)의 경지 역시 일종의 독이라고 할 수 있지. 독은 독으로 치료하는 법. 지금으로서는 가장 빨리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이야!”
한제는 결심을 굳힌 듯 엄지손가락만 하게 부순 조각을 삼켜버렸다. 그러자 거대한 선력(仙力)이 미친 듯이 한제의 체내를 맴돌았다. 몰아치는 홍수 같기도 하고 하늘을 뒤덮을 것 같기도 한 기세였다. 한제 체내의 영력은 곧장 그 선력에 의해 흩어졌다. 선력에 비하면 그 영력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제는 또 한 조각의 선옥을 삼켰다. 이번에도 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한제는 침착한 눈빛으로 호흡에 집중한 채 그 선력을 조종하여 봉인과 차(茶)의 경지 쪽으로 몰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충격을 가할 때마다 한제의 몸이 떨려왔고 얼굴을 뒤덮은 찻잎 모양의 흉터는 더욱 거세게 떨렸다. 심지어 미세한 균열도 일어났다.
체내의 선력이 충격을 줄 때마다 앉아 있는 땅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그 균열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 마을의 몇몇 집은 곧장 무너져 내렸고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재와 먼지로 흩어져 버렸다.
한제의 체내에서 균열이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얼굴을 뒤덮은 흉터의 10분의 1 정도가 균열과 함께 천천히 그의 얼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 순간, 한 줄기 검은 기운이 그 안으로부터 피어올라 한제의 머리 위에 응집됐다.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가에는 선혈이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그 눈빛만큼은 밝았다. 선옥을 통해 얼굴을 뒤덮은 흉터와 봉인에 가까스로 하나의 틈을 낸 것이다.
그 틈을 통해 순식간에 거대한 영력이 선옥으로부터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와 한제의 체내를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한제 체내의 원신 조각 역시 부르르 떨면서 천천히 맞물렸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더는 흩어지지 않게 됐다.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좌선했다.
★ ★ ★
사흘 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온 산봉우리를 뒤덮었다. 멀리서 보면 꼭 산이 은색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한제로부터 30척 이내로 떨어진 눈은 곧장 녹아내리고 말았다. 한제의 곁에는 점차 고리 형태로 물의 흔적이 하나 형성되어갔다. 그의 얼굴을 뒤덮은 찻잎 모양의 흉터도 이제는 조금 흐려져 있었다. 찻잎 모양의 흉터 10분의 1을 흩어버렸고 봉인도 약간 느슨해진 상태였다.
한제가 눈을 번쩍 뜨자 형형한 빛이 번득였다.
“현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옥은 지금 삼킨 정도가 한계로군. 더 삼켰다가는 봉인을 풀기 전에 내가 먼지로 변해버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결단기에 이르는 데 집중해야겠군. 그래야 또 선옥을 삼킬 수 있고 흉터와 봉인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
최고급 영석에도 한계가 있으니 영력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우선이겠군. 어찌됐든 9년 안에 수준을 완전히 회복해야만 해! 이제 축기 초기까지 회복됐고 저물대의 법보들도 가까스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흡혈 마수도 있으니 화신기 수련자를 마주치지 않는 이상 크게 위험하지는 않겠지.”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흡혈 마수에 올라탔다. 마수는 환호하며 날아올랐다.
한제는 고개를 숙여 화운 마을을 훑어보았다. 저들이 큰형님으로 모시던 자와 얼굴에 칼자국이 난 산내를 죽인 뒤 노기를 어느 정도 해소했기에 더는 저곳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살짝 두드리자 흡혈 마수는 곧장 날아갔다.
“천천히!”
한제의 안색이 변했다. 그의 수준은 아직 축기기 초기에 불과해 원영기 후기 수준에 해당하는 흡혈 마수가 전속력을 내게 할 수는 없었다.
흡혈 마수는 속도를 낮춰 느릿하게 날아갔다.
연혼종(煉魂宗)
한제는 지도 옥패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다가 남쪽, 비로국의 연혼종(煉魂宗)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정했다.
“연혼종은 비로국의 3대 종파 중 하나이니 그 안의 영력도 상당할 터!”
게다가 연혼종은 다른 종파와 달리 핵심 제자는 얼마 되지 않지만 외부 제자는 그 수를 셀 수가 없었다. 그래서 3대 종파의 다른 두 곳과 달리 핵심 제자가 적음에도 힘은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핵심 제자의 수가 그리 부족한데도 다른 두 문파와 세력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단지 외부 제자의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뭔가 특수한 방법이 있을 터였다.
연혼종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 뿐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외부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외부 제자들은 3년에 한 번씩 큰 시합을 치러 그중 한 명만이 핵심 제자가 될 수 있다. 또한 핵심 제자가 됐다고 해도 그 자리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부 제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정 수량의 영석을 바치기만 하면 일정 기한 동안 외부 제자 신분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연혼종의 산 밖에는 여러 개의 큰 산이 있는데 이 산맥의 영력은 일반적인 곳의 영력보다 몇 배는 더 진했다. 그곳이 바로 외부 제자의 거처였다.
외부 제자라고는 하지만 사실 영석을 지불해 동굴 한 칸을 빌린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했다.
연혼종과 같은 이런 운영 제도는 주작성 전체를 통틀어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제도를 고수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한제가 연혼종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연혼종에 관련된 정보는 지도 옥패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한제는 아마도 자신에게 이 지도 옥패를 판 사람이 이 연혼종의 외부 제자는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비로국은 5성 수련국으로 수많은 수련자 가문이 있었다. 이 가문들은 세 개 종파에 의탁하여 존재했으며, 십 수 년 주기로 제자들을 세 개의 종파로 보냈다.
그 수련자 가문에 소속된 제자들에게는 아무런 특권도 없었고 신분도 존귀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한제는 며칠 뒤 연혼종이 위치한 산으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흡혈 마수를 회수한 뒤 저물대에서 흔한 비검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조종하여 유성처럼 긴 잔영을 남기며 연혼종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연혼종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으로부터 수십 리 밖에 이르렀을 때 한 줄기의 부드러운 파문이 나타나더니 한제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한제는 그것이 연혼종의 보호진임을 알고 얼른 비검을 거둔 뒤 착지했다.
그때, 갑자기 한 줄기 붉은 빛이 한제 뒤쪽 하늘 끄트머리에서 나타나더니 하늘을 가를 듯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주위 숲의 나무들이 솨아아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온 붉은 빛은 붉은 머리의 노인으로 변했다. 상당히 기이한 생김새의 노인이었다. 코와 입은 매우 큰 반면에 두 눈은 너무 작았다.
한제는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공손하게 한쪽 옆으로 섰다.
곧장 연혼종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돌연 고개를 돌려 한제를 훑어보던 노인은 허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자리한 흉터를 살피다가 소리쳤다.
“어느 문파의 제자더냐?”
한제는 얼른 공손하게 답했다.
“떠돌이 수련자입니다. 연혼종의 외부 제자가 되고 싶어 이리 왔습니다.”
한제를 바라보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떠돌이 수련자가 축기기에 이르기는 결코 쉽지 않은데… 우리 연혼종의 외부 제자가 되고 싶다면 폐관수련을 할 곳을 찾아온 모양이구나.”
한제는 경외심이 어린 눈빛을 드러내며 얼른 말했다.
“그렇습니다.”
노인은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
“늦었다. 외부 제자를 받아들이는 시기는 일찍이 지났어. 돌아가서 몇 년 뒤에 다시 오너라.”
말을 마친 그가 곧바로 자리를 뜨려했다.
한제는 내심 냉소하면서도 겉으로는 애통한 표정으로 저물대에서 은상자 하나를 꺼내며 공손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