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8
“선배님, 이건은 제가 몇 년 전 우연히 얻은 비검입니다만 여태 줄곧 쓰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부디 이 검을 받으시고 저를 외부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한제는 노인이 결단기 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런 수준의 수련자에게 이 비검은 굉장히 진귀한 물건일 것이다.
노인은 걸음을 우뚝 멈추고 알 수 없는 얼굴로 한제를 힐긋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떠돌이 수련자라더니, 수련자 가문에서 보낸 제자들보다 세상사를 잘 아는구나.
은상자를 손에 넣어 열어본 노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놀람과 기쁨이 스쳐갔다. 하지만 곧 그는 그 표정을 거둔 뒤 침착하려 애쓰며 물었다.
“어디에서 얻은 물건이냐?”
한제가 공손히 말했다.
“몇 년 전,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결단기 수련자를 도운 일이 있습니다. 그가 선물로 이 검을 주었으나 제 수준이 부족해 사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음? 무슨 부상을 입었는지 소상히 설명해보아라.”
노인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한제는 5백 년의 수련 경험을 통해 진짜 있었던 일인 양 이야기를 꾸며냈다. 한참 동안 그 이야기를 듣던 노인의 마음에 더 이상 의심은 없었다. 눈앞에 있는 한제는 겨우 축기기 수련자에 불과했다. 직접 본 일이 아닌 이상 이렇게 실감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야기의 몇몇 군데는 약간 허술하기도 했지만 그 편이 오히려 더 정상이었다.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했다면 그것이 더 의심스러웠울 것이다.
“좋다. 네 성의를 봐서 이번 한 번은 기회를 주도록 하지. 따라오너라!”
말을 마친 노인은 옥패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민 후 몸을 훌쩍 날렸다. 그러자 보호진의 막은 곧장 흩어져 버렸고 한제는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와라. 우리 연혼종 안에는 금제가 많아 길을 잘못 든다면 나도 널 구제해줄 수 없다.”
노인은 말을 마친 뒤 앞을 향해 날아갔고 한제는 저물대에서 비검을 꺼내 올라탄 채 그를 따라갔다.
잠시 후, 노인은 어느 산봉우리 중턱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화려한 궁전이 하나와 그 궁전을 둘러싼 사방에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노인은 그곳에 착지하자마자 소리를 쳤다.
“상대위!”
“여기 있네, 홍모주. 무슨 일로 소리를 치는가?”
나른한 목소와 함께 옆쪽 방 안에서 한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그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씻지 않은 것 같았다.
붉은 머리 노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내가 오는 길에 만난 자인데 외부 제자로 좀 받아주게.”
중년 남자는 하품을 하며 곁눈으로 붉은 머리의 노인 뒤에 서 있는 한제를 흘겨보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홍모주의 말을 내가 어찌 거절하겠나.”
붉은 머리의 노인, 홍모주는 씨익 웃으며 인사를 남기고 떠나갔다.
“너, 이름이 뭐냐?”
중년 남자가 물었다.
“청목이라고 합니다.”
한제는 공손히 답했다.
“이 산에 있는 1090번 동굴을 사용하도록 해라. 중급 영석 하나를 지불하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중년 남자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영패 하나가 한제의 손에 쥐어졌다.
한제는 애통한 표정으로 이를 악문 채 중급 영석 두 개를 건넸다. 중년 남자는 그 영석을 받아 든 뒤 더는 한제에게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한제가 막 떠나려고 하던 때, 그 중년 남자가 불쑥 물었다.
“홍모주에게 뭘 주었느냐?”
“어느 선배님에게서 선물받은 비검을 한 자루 드렸습니다.”
한제가 솔직히 답했다.
“어쩐지 홍모주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했다. 청목, 축기기 수준이라고 해도 방자하게 굴지는 말아라. 외부 제자들 중 축기기 수련자가 많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적지도 않다. 내년 6월, 우리 연혼종의 시합이 열리니 잘 수련하도록 해. 만약 능력이 있다면 핵심 제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류미는 연혼종으로부터 50리 밖에 있는 어느 절벽 위에서 연혼종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옥패 하나가 들려 있었다. 주작이 한 달 전 누군가를 시켜 보낸 것으로 천우를 정확히 찾아낼 수는 없어도 상대가 반경 1백 리 안에 있으면 반응하는 옥패였다.
지금 그녀의 손에 들린 옥패에서는 푸른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연혼종인가?”
류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주작성 동부, 한 줄기 푸른빛이 유성처럼 빠르게 휙 하고 스쳐갔다. 그 푸른빛 속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하지만 날고 있는 것은 그의 육신이 아니라 원신이었다.
얼굴이 잔뜩 구겨진 원신에는 세 개의 주먹 자국이 나 있었고 맑은 빛이 그 안에서 발산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거마족의 선조였다. 당시 손태의 마동(魔童)이 가한 공격에 그의 원신은 어쩔 수 없이 저물대를 쥔 채 육신을 떠났다. 한데 그 마동은 여태까지 한 마디도 않고 전력을 다해 추격만 해오고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주작성을 꼬박 한 바퀴 돈 것 같았다.
보기에는 별것 아닌 듯해 보이는 그 마동의 주먹질에 거마족 노인의 원신은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었다. 만약 그가 수련해온 세월이 길지 않았거나 거마족의 비법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껏 도망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소북염극(小北炎極)의 땅으로 마동을 유인해 주작성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존재했던 천연적인 금제를 이용한 끝에야 마동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그는 재빨리 거마족의 땅으로 돌아왔다. 치호와 다른 거마족 사람의 생사 문제는 일찍이 그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거마족 땅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어느 거마족 사람의 육체를 빼앗은 뒤 폐관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한제를 찾으러 나설 엄두는 나지도 않았다. 주작국에서는 이미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을 터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비록 한제를 잡지는 못해 아쉬웠으나 기이한 비검을 손에 넣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폐관수련을 하다 두 눈을 번쩍 뜬 거마족 선조는 빼앗은 몸으로 정신을 차렸다. 빼앗은 몸은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만 완전히 정복할 수 있었다.
선조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그의 앞 허공에 비검이 하나 나타났다.
그가 오른손으로 선검을 두드리자 그 안에서 비참한 비명소리가 한 자락 흘러나왔다. 애걸하는 듯한 소리도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나타나라, 검혼(劍魂)!”
선조가 외쳤다.
순간 그 검 안에서 한 줄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허이국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는 거마족의 선조를 본 뒤 큰 소리로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부디 살려주세요! 죽이지 말아주세요! 전 당시 그 망할 이 씨 녀석에게 협박을 당한 자입니다. 그자에 대한 한은 나리 못지않지요. 원한이 뼈에 사무칠 지경이에요!”
거마족의 선조는 허이국의 말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검혼마저도 흥미롭구나. 다른 검혼들은 의지와 충절이 굳건하던데…”
허이국은 억울한 듯 또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어찌 그런 녀석들과 비교하십니까? 형세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자야말로 걸출한 인물 아니겠습니까?”
거마족 노인은 허이국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푸른빛이 번쩍이며 허이국의 몸에 찍혔다. 그러자 허이국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더니 끊임없이 애걸하면서 더 큰 소리로 한제를 욕했다.
노인은 코웃음을 치더니 결인을 거둔 뒤 호통 치듯 말했다.
“앞으로 너는 나의 검혼이다. 알아서 투항했으니 봉인하지는 않겠다.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너도 도망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가 방금 쏘아 보낸 푸른빛은 일종의 봉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허이국은 통증만 느꼈을 뿐, 봉인은 되지 않은 것이다.
노인은 매우 놀랐지만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선 이 빼앗은 육신을 완전히 정복한 후에 자세히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이번 해의 마지막 날
허이국은 감격스럽다는 듯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탕탕 두드리며 아첨했다.
“나리, 안심하십시오. 이 허이국의 충정에 변함이란 없습니다. 사실 제가 일전의 이한제를 배반한 것은 그 녀석이 제게 못되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리는 제게 잘 대해주시니 배반할 리가 없죠!”
거마족 선조의 표정이 누그러지는 것을 본 허이국은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냥 멍청한 녀석은 아닌 모양이군. 흥, 이한제 녀석이 언제 날 구하러 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고집을 피울 수 있겠어? 일단 알랑거렸다가 나중에 결판을 내야지! 이한제가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그 녀석을 배반할 수는 없지.’
거마족 선조는 본래 이 검혼을 처리하고 다른 검혼을 채워 넣을 계획이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원래의 검혼이 아니라면 검의 효능을 완벽하게 발휘하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검혼은 뭔가 달랐다. 먼저 나서서 살려달라고 애걸한 것을 보면 머리가 꽤 돌아가는 듯했다.
이에 거마족 선조는 허이국을 섣불리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 지능을 가진 검혼은 상당히 드문데 아마도 전투 중 특이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허이국이 이 검의 원래 혼이 아니고 지능을 가진 것은 그가 본디 마혼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거마족 노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허이국을 검에 집어넣은 뒤 그 검을 다시 자세히 살폈다. 보면 볼수록 간담이 서늘해지는 물건이었다.
“정말 비상한 물건이구나!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도 알 수가 없어!”
그는 그 검을 조심스럽게 저물대에 넣었다.
한편 한제는 연혼종의 영패를 쥔 채 산봉우리를 따라 날아올랐다. 그리고 1090번 동굴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크지 않은 동굴이었다. 당시 그가 대산파 뒷산에서 머물렀던 동굴과 비슷했다. 동굴 안에는 돌로 된 침상 하나만 있을 뿐 탁자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영력은 충만해, 외부보다 몇 배는 더 짙었다. 심지어 화운 마을의 그 연못도 이곳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최고급 영석이 발산하는 영력은 흡수하기에는 편하나 활력이 부족했다. 특히 곧 폐기물이 될 상태의 영석이 풍기는 영력에는 어떤 활력도 없어 수많은 영석이 한데 모여 이룬 산맥에서 내뿜은 영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제는 돌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하기 시작했다.
사흘 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원하는 것에 비해 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저물대에서 세 개의 최고급 영석을 꺼내 사방에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하여 몇 줄기의 금제를 사방의 벽에 쏘아 보냈다. 동굴 안의 영력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 짙은 영력이 사방의 벽에 닿을 때마다 그 벽에 걸려 있는 금제는 보라색 빛을 번쩍이며 그 영력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한제의 호흡만이 그 영력이 빠져나갈 유일한 통로가 되었고 그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동굴 안에 가득한 영력은 미친 듯이 그의 체내로 흘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