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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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청년의 옆구리에 끼워진 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던 저택은 저 멀리 멀어져가고 있었다.
“눈이 멀고 싶지 않다면 눈을 감는 게 좋을 거다.”
잠시 후, 속도가 줄어드는 듯싶더니 청년이 땅에 발을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을 땅에 내팽개치듯 던져버렸다.
세 사람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마치 무릉도원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앞쪽으로는 구름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에서는 이따금 산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정상에는 큰 사원이 있었다.
“장 사제, 이들이 이 씨 가문에서 추천한 아이들인가?”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가오며 물었다.
“사형, 나오셨습니까? 네, 이들이 이 씨 가문에서 추천한 아이들입니다.”
중년 남자는 세 사람을 위아래로 훑더니 이산을 보며 웃었다.
“세 사람은 내가 맡을 테니 자네는 가서 수련을 하도록 하시게나.”
청년은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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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은 눈앞의 광경에 위축된 듯했다. 오만방자하던 그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긴장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때 세 사람 곁에 갑자기 빛이 일렁이더니 대산파의 제자들과 한제 또래의 아이들 몇 명이 나타났다. 그 아이들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세 사람이 막 도착했을 때처럼 눈앞의 광경에 놀란 듯 멍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너희들 중 오직 몇 명만이 대산파의 제자가 될 기회를 갖게 된다.”
한제는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세어 보았다. 대략 50명쯤 되는 아이들이 자신과 똑같은 표정으로 검은 옷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선 각자의 기운이 충분한지 시험해볼 것이다. 내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해라.”
중년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은 잔뜩 긴장한 듯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자 중년 남자가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중년 남자가 덤덤하게 말했다.
“불합격, 왼쪽으로 가서 서도록.”
소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년 남자가 가리킨 곳에 섰다.
계속해서 이름이 불린 아이들이 앞으로 나왔다.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연속으로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곧이어 이산이 호명됐다. 이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 중년 남자는 이산의 머리에 손을 얹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지며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산이 황급히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선인님을 뵙습니다. 소인 이산이라 하옵니다.”
중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네가 바로 도허상선께서 말씀하셨던 아이로구만. 오른쪽으로 가서 서도록.”
다시 아이들의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고 대부분이 시험을 마쳤으나, 중년 남자의 우측에 선 아이는 둘밖에 없었다.
그때 이현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앞으로 나아간 이현은 갑자기 땅에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크게 말했다.
“소자 이현이라 하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시험하느라 힘드실 텐데 잠시 쉬어가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중년 남자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긴장해 덜덜 떨고 있는 판국에 이 아이는 어찌 이토록 당돌하단 말인가?
중년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돌하긴 하나, 자질은 부족하군. 불…”
중년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현이 재빨리 자신의 품에서 옥으로 만든 함을 꺼내 두 손으로 남자에게 건네었다.
“선인이시여. 이것은 제 부친께서 몇 년 전 산에서 우연히 찾은 물건입니다. 몇 번이나 시도를 해보았으나 열 수 없다 하여, 소자가 집에서 챙겨왔사옵니다. 받아주시지요.”
중년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옥함을 다시 한 번 보더니 깜짝 놀란 듯했다. 그는 아예 옥함을 들고 자세히 보더니 얼굴이 밝아졌다.
“오, 족히 300년은 되어 보이는 영지로구나. 옥함의 상태를 보아하니 수행자가 봉인한 것이 틀림없다. 네 아버지가 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도다.”
중년 남자의 말투가 한층 누그러졌다.
“내 곁에 연단을 만드는 아이가 하나 필요한데 보아하니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로구나. 나의 조수가 되어주지 않겠느냐?”
이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인님!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중년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나 나의 조수가 된다 하여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문파의 선인술(仙人術)을 수련해야 하느니라. 저리로 가서 서거라.”
이현은 신이 난 얼굴로 선인 오른쪽에 가서 섰다.
그 모습을 보고는 왼편에 서 있던 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눈물을 흘리는 자는 곧바로 돌려보내도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산파의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때 한제가 호명되었다.
한제는 잔뜩 긴장한 채 중년 남자의 앞으로 가서 섰다. 중년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불합격!”
한제는 자신이 어떻게 왼쪽에 있는 무리로 걸어오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불합격’ 이라는 세 글자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곧이어 남은 아이들도 시험을 마쳤다. 오른쪽에 선 것은 오직 셋뿐이었다.
“도를 닦는 데에는 자질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끈기다. 자질이 부족하더라도 끈기가 있다면 제자가 될 수 있다. 다음은 끈기를 시험하겠다!”
중년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 도착한 사람은 모두 합격이다. 허나 3일째 되는 날에도 도착하지 못한다면 불합격이다.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만약 시험 과정 중 더 이상 버틸 수 없거나 위험한 상황이 오면 ‘포기’라고 크게 외치거라. 그럼 집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말을 마친 중년 남자는 오른쪽에 선 세 아이를 보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는 나를 따라 문주를 뵈러 갈 것이다. 때가 되면 사부를 붙여주마. 이현, 너는 나를 따라 연단 제조실로 가자꾸나.”
말을 마친 중년 남자는 세 사람을 데리곤 사라졌다.
한제는 심호흡을 하고는 망설임 없이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합격자 셋, 눈물을 보이는 바람에 집으로 보내진 여섯을 제외하고 총 39명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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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은 매우 가파르고 험준했다. 옆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뎠다간 그대로 저 세상으로 가버릴 판이었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산 아래에서 보았을 때엔 돌계단이 그렇게 길어 보이지 않았으나 직접 올라와보니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제 앞으로 몇몇 건장한 아이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걷고 있었다. 아직까지 포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자 했다. 힘이 들 때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부모님 모습에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한제의 뒤에 있던 한 아이가 발을 헛디디며 절벽으로 떨어져버렸다.
“포기할래요!”
돌계단을 오르던 아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보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아이는 대산파의 한 제자가 나타나 공중에서 낚아채 산 아래로 데려갔다.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더욱 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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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한제 앞에 있던 그 많던 아이들은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몇 명이나 포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발바닥은 이미 물집이 터지고 피가 흘러 끈적하게 젖어 있었고 벗겨진 상처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에 길은 여전히 무정하기만 하니, 이는 헛수고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먼 산꼭대기에서 탄식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얼굴색이 노란 한 중년인의 그림자가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힘겹게 돌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을 스쳐지나갔다.
중년인은 한제의 곁을 지날 때 발걸음을 늦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