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0
“황천승규결?”
한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으쓱해진 사도환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황천승규결이야말로 우리 6성 수련국에서도 최고의 기술 중 하나지. 반드시 은밀한 곳을 찾아 수련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그 위력은 엄청나다. 특히 결단에 이르러야만 공법의 성공률이 높다. 어서 축기에 들도록.”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역주는 저물대가 아니라 가슴팍 가까이 두어라. 그러면 언제든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필요하면 바로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 ★ ★
꿈속 공간에서 이틀을 보내고 나서야 한제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침상에 앉아 석주를 몸에 지닌 채 영기가 깃든 물을 마신 후 호흡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밖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산파는 지금 큰 위기를 앞두고 있었으며, 자신에게는 비밀이 너무나 많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곳을 떠날 기회인지도 몰랐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대산봉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더니 하늘을 뒤흔드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현도종의 흑천이다. 대산파는 패배를 인정하고 빨리 물러가거라.”
이 소리에 대전에 있던 황용 진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곧 십여 명이 대산파 안으로 들어왔다. 선두의 두 사람이 가장 눈에 띄었다. 한 노인은 백발이 성성한데도 얼굴은 어린아이 같았고 눈빛이 형형했다.
그의 곁에 있는 노부인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뒤로는 열 명의 노인이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 표정이 씁쓸했다. 이들은 모두 축기에 이른 대산파의 장로들이었다.
동안의 노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흑천 선배님, 대산파에서 하려는 일을 명확히 설명해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자 거대한 그림자가 하늘에서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위엄이 느껴질 정도의 체구였다.
“뻔히 알면서 무얼 묻는 게냐? 대산파의 공간은 산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다. 5백 년 전이었다면 나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나 이제는 안 되겠다. 대화는 이 산들을 모두 파괴한 뒤에 나눌 것이다.”
말을 마친 그가 커다란 손을 휘두르자 시커먼 언덕 하나가 나타났다. 이 언덕은 바람을 따라 부풀어 오르더니 순간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봉우리가 되었다. 흑천은 두 손을 휘저으며 입으로는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거대한 봉우리가 폭음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그때였다. 한 줄기 빛이 마치 뒤집어진 밥그릇처럼 장송봉과 대산봉 위를 뒤덮더니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봉우리로부터 대산파를 보호했다.
“과연 5백 년 전의 창천파(蒼天派)답구나! 이 무형의 보호막은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지. 하지만 이 몸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흑천은 냉소하며 오른손을 다시금 휘저었다. 그러자 순간 거대한 봉우리가 빙글 돌며 다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동안의 노인과 노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들은 재빨리 장송봉의 돌로 된 무대 위로 올라가 백색 옥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으로 법결을 그었다.
“쾅”
봉우리와 부딪힌 빛의 장막에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빛의 장막은 꿋꿋이 거대한 봉우리를 막아냈다.
“황용! 빨리 모든 정식 제자들을 이곳으로 불러 와라! 우리 대산파가 만들어진 이래 최대의 재난이다.”
노부인은 말을 마친 뒤 다급히 백색 옥석을 향해 단기(丹氣)를 뱉어내며 손으로 법결을 그었다. 몸을 부르르 떨던 황용은 재빨리 돌계단을 따라 대산봉으로 향했다.
“두 번이나 막아내다니, 제법이군. 하지만 이번에는 막지 못할 것이다!”
허공에 떠 있던 흑천이 냉소하며 원영의 기운을 토해냈다. 순간 산봉우리가 바르르 떨리더니 10배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무섭게 내려왔다.
쾅 소리와 함께 여덟 개의 백색 옥석 기둥 중 하나가 부서지더니 그 위에 앉아있던 장로가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와르르 쏟아내며 그대로 쓰러졌다.
“모두 부서져라!”
흑천은 흉악한 얼굴로 손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산봉우리는 그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끝없이 보호막을 때리며 쾅쾅 소리를 냈다.
근처의 마을과 촌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 나머지 감히 나와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담한 몇몇 사람은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허공에 떠있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끊임없이 아래를 향해 내려오려 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또 하나의 백색 옥석 기둥이 깨지고 그 위에 앉아 있던 장로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자주색 조롱박을 꺼내든 흑천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며 두 손을 교차시키자 조롱박이 살짝 흔들리더니 그 안에서 암적색의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 액체는 흘러나오자마자 번쩍이는 화염처럼 변하더니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봉우리를 감쌌다. 그러더니 화염으로 휩싸인 채 떨어진 봉우리가 쾅 소리를 내며 빛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에 거미줄과 같은 흔적을 남겼다.
동시에 두 개의 백색 옥석 기둥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졌고 그 위의 장로 둘도 쓰러졌다. 이제는 여덟 개의 기둥 중 단 네 개만 남아 있었다.
결단기에 이른 동안의 노인과 노부인을 제외한 장로들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주체 못 할 정도로 떨리는 몸으로 보아 그들도 이미 한계인 듯했다.
그 무렵, 황용의 부름을 받고 모여든 제자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받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 틈에 있던 한제 역시 흑천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본래도 몸이 약했던 이현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한제 곁으로 다가갔다.
허나 흑천의 얼굴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무형의 보호막이 이토록 강할 줄은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만약 이 보호막이 원영기에 이른 자의 도움을 받았다면 훨씬 더 강한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저 보호막이 지금처럼 수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엄청난 공격까지 동시에 퍼부었을 것임을 흑천은 알고 있었다.
이때, 기둥과 함께 쓰러진 후배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던 동안의 노인이 가슴 아픈 듯 소리쳤다.
“흑천 선배, 현도종과 우리 대산파는 여태 잘 지내왔는데 정말 우리를 모두 죽이려는 거요?”
그러자 흑천은 콧방귀를 뀌며 냉랭하게 말했다.
“유문지, 5백 년 만에 보는군. 당시에는 조무래기에 불과했는데 어느덧 결단기에 이르러 대산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군. 훌륭한 보호막을 망가뜨리려니 안타깝구나. 알아서 이 보호막을 거두면 모두 잘 풀릴 것이다.”
유문지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곁에 있던 노부인이 분노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에 미친 듯이 껄껄껄 웃어대던 흑천은 이내 정색하더니 소리쳤다.
“좋다. 그럼 내가 직접 부셔주지!”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봉우리는 천천히 상승했다. 이어서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깊은 숨을 들이마신 흑천이 입을 벌려 거대한 원영의 기를 뿜어내자 산봉우리는 다시 몇 배나 부풀어 올랐다.
“떨어져라!”
흑천이 두 손으로 법결을 그으며 산봉우리를 가리키자 그 산봉우리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을 보호하고 있던 보호막에 산봉우리가 닿은 그 순간, 균열이 더욱 심해지더니 백색 옥석 기둥 하나가 또 깨지며 그 위로 장로 하나가 쓰러졌다. 이어 축기 단계의 마지막에 이른 장로조차 피를 토하며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마지막이다!”
흑천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산봉우리는 다시 보호막을 때렸다. 장송봉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우르릉 소리를 내며 산에 있던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서 부연 먼지를 일으켰다. 대산봉과 이어진 돌계단도 중간에서 깨지며 산골짜기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대산파를 보호하고 있던 보호막이 마침내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거울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남아 있던 두 개의 백색 옥석 기둥도 폭발하듯 깨져버렸고 유문지와 노부인도 쓰러졌다. 모든 힘을 소진한 듯 그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흑천은 냉정하게 콧방귀를 뀌더니 허공에 떠 있던 몸을 가볍게 날려 착지했다. 그러자 거대한 산봉우리도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아버지
흑천은 냉랭한 표정으로 유문지와 노부인을 향해 말했다.
“너희 대산파에 있던 원영기 시조(始祖)들은 이미 수련성 쟁탈전 중 모두 사망했다. 대산파가 차지하고 있던 이 공간을 너희들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느니 우리 현도종에게 넘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친 표정으로 노부인과 눈을 맞추던 유문지가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선배, 지난 시간 동안 양쪽 문파가 유지했던 좋은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흑천은 유문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못 참겠다는 듯 그의 말을 끊었다.
“헛소리!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은 세상에 없다. 더 떠들었다가는 너희 대산파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분노 어린 표정으로 막 입을 열려던 노부인을 얼른 막아선 유문지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공손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 대산봉은 우리 대산파가 천 년간 지켜온 곳이니 제게는 이곳을 선배님께 드릴 권리가 없죠. 그러니 빌려드리는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흑천은 냉랭하게 웃더니 다시 그의 말을 끊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빌려줘? 좋아, 그렇다면 10만 년간 빌리겠다.”
정식 제자들은 모두 감히 입을 열지도 못한 채 비통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몇몇 제자들은 번득이는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흑천은 그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황용 진인을 발견한 뒤 입을 열었다.
“너는 자악선검(紫嶽仙劍)을 놓고 가도록. 우리 구양 도우가 그 검을 썩 마음에 들어 하더구나.”
황용은 밀려드는 굴욕감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하지만 유문지와 노부인 둘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자악선검을 한쪽으로 내던졌다.
흑천이 오른손을 뻗자 자악선검이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순간 검에서 퍼져나간 자줏빛 기운이 거대하게 응축되며, 자주색의 거대한 용과 같은 모습을 띄었다.
★ ★ ★
이 거대한 용은 순식간에 흑천을 향해 포효하며 그를 해치려 했다. 허나 흑천은 차갑게 웃으며 검지로 검을 튕겼다.
“한낱 미물 주제에!”
흑천의 움직임에 용의 거대한 몸이 흠칫 떨리는가 싶더니 기가 빠진 듯 자악선검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검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유문지와 노부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노부인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했다.
“됐다. 대산파의 제자들아, 나와 함께 떠나자.”
말을 마친 그녀는 못내 미련이 남은 듯 사방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 그녀의 몸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흑천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리 현도종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받아들일 것이니, 현도종에 들어오고 싶은 자가 있다면 이곳에 남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