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00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잡념을 몰아낸 뒤 전심을 다해 영력을 흡수했다. 점차 그 곤정암 안에서 흘러나오는 영력은 안정되어갔고 더는 이전처럼 맹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도 천천히 수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설역국 빙설 신전 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이원봉의 주위에는 다섯 개의 거대한 얼음덩이가 놓여 있었다. 그 얼음덩이들은 오색 광채를 번득이며 은은한 선력을 풍겼고 이원봉은 그 선력을 흡수했다. 그 얼음덩이들 깊은 곳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선옥이 하나씩 박혀 있었고 얼음 안의 진을 통해 모종의 기이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이원봉은 풀이 죽은 표정이었고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한참 뒤, 그는 눈을 번쩍 떴으나, 그 눈빛에는 두려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손태가 쏘아보낸 번개는 실로 대단했다. 계속해서 도망치면서 그 번개에게 함유된 선력을 반으로 줄인 후에 적중됐는데도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사실 그는 주작국의 도움으로 영변기 초기에 겨우 이른 자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영변기에 이른 수련자들에 비하면 그는 상당히 약했다.
이원봉은 지금 그 어떤 화신기 수련자보다 강했지만 보통의 영변기 수련자보다는 약한 상황이었기에 손태의 일격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그 천우라는 녀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지 않았다 해도 내 차(茶)의 경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이원봉은 냉소하며 눈을 번득였다.
“그나저나 그 거마족 선조는 왜 천우의 시체를 원했던 걸까?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인가?”
이원봉은 한참 고민해보았지만 결국 답은 찾지 못했다.
★ ★ ★
비로국 연혼종의 외부 제자 수련지에서 눈을 감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며 깨어났다.
“축기기 후기의 절정!”
한제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한 번 떨자 그의 몸을 뒤덮고 있던 영력의 서리는 녹은 듯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체내로 흡수되어버렸다. 동굴의 바닥과 벽을 뒤덮었던 서리들도 녹더니 옅은 남색 기체가 되어 한제에게 흡수됐다.
얼굴을 뒤덮은 흉터는 전보다 훨씬 옅어졌지만 여전히 흉측했다.
“영력이 더욱 짙은 곳, 진정한 영안이 있는 곳을 찾아야겠어.”
한제는 바닥의 진을 원래 상태로 복구해놓은 뒤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햇살이 눈부셨다. 봄의 기운이 피어올라 산은 옅은 녹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살랑 불어오는 산바람에는 아직 한기가 어려 있었지만 이전만큼 시리지는 않았다. 그 서늘함 속에서도 한 줄기 온기를 찾을 수 있었다.
막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려던 한제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백 척도 넘게 떨어진 어느 동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옅은 남색 옷을 입은 그녀가 어깨에 두른 하얀 면사가 가벼운 바람에 살랑이며 하늘을 수놓았다. 새카맣고 긴 머리는 양 어깨 위로 흘러내려 바람에 흩날렸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해사한 아름다움에 탈속적인 느낌마저 풍겼다.
한제의 시선을 느낀 여인이 고개를 돌렸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한제의 시선에 응답하듯 살짝 웃어 보인 뒤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한제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석양 속에서 보았던 여인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사람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군.”
한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시 현도종의 류미는 천환술(千幻術)로 만들어낸 하나의 분신에 불과해 본체와는 거리가 있었고 지난 5백 년 동안 류미의 외모 또한 당시 한제가 보았던 때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현재 류미의 외모는 모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고 홍접보다도 아름다웠다. 허나 한제는 더는 그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허공에서 연혼종의 산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한 동굴에 그의 시선이 멎었다. 그냥 봐서는 전혀 특이할 게 없는, 743번 동굴이었다.
“저기로군!”
한제는 그 동굴로 다가가 몇 번이나 살폈다.
이곳이 바로 진짜 영안이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동굴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에 누군가 있었다. 한제는 동굴 입구가 천학석(天壑石)으로 막혀 있는 것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했다.
그가 동굴로 돌아가려던 바로 그때, 갑자기 산중의 방 안에서 그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사실 그는 동굴에서 나온 순간부터 한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청목, 이리 와라!”
중년 남자는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한제의 눈에 미처 알아차리기 힘든 살기 한 자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중년 남자로부터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축기기 후기의 절정이라⋯⋯.”
중년 남자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청목의 수상함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축기기 초기에 불과했던 자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축기기 후기의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중년 남자는 다음번에 다시 볼 때는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과 같은 결단기 초기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게 대체 어떤 법보가 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중년 남자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한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청목, 어쩌면 다음번에 볼 때에는 너를 도우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한제는 그를 훑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중년 남자의 눈에 불쾌한 기색이 잠시 어렸지만 이내 감정을 숨긴 그가 웃으며 말했다.
“청목, 만약 이곳에서 결단기에 이르게 되면 몇 개월 뒤 열릴 시합에서 정식 제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만약 정말 정식 제자가 되거든 종종 들러다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허나 일단은 지금 제가 머무는 동굴의 영력이 충분치 않으니 다른 동굴로 바꿔주실 수 있으십니까?”
중년 남자는 흠칫 놀란 얼굴로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700번 이내의 동굴에 들어가려면 장로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허나 네가 원한다면 신청을 도와주지.”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743번 동굴입니다.”
중년 남자는 굳은 얼굴로 743번 동굴을 힐끔 보더니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야 쉽지. 허나 저 동굴이 가장 좋은 동굴은 아니다.”
“괜찮습니다.”
한제가 웃으며 말한 뒤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에 두 개의 중급 영석이 나타났다.
“선배님을 여러 번 귀찮게 한 것이 죄송해 이번에는 선배님 몫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부디 받아 주십시오.”
중년 남자는 영석을 받아 든 뒤 기쁜 듯 웃으면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때가 좋지 않으니 밤까지 기다려야겠군. 네가 내게 아무리 많은 영석을 준다 해도 어떻게 그리 빨리 수준을 성장시키는지 반드시 물어야겠다.
그는 곧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옥패를 살짝 두드리자 한 줄기 영력의 빛이 튀어나오더니 중년 남자의 손짓에 따라 743번 동굴로 향했다.
잠시 후, 그 동굴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흉악한 얼굴의 그 남자는 수련자라기보다는 백정 같았다.
그 남자는 눈을 부릅뜬 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네 영패를 다오. 다른 동굴로 바꿔주겠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동굴을 바꾼다고요? 싫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수련하는 게 좋습니다. 왜 바꿔야 합니까?”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곁에 있는 한제를 힐긋 바라보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네가 내 동굴로 바꿔달라고 했느냐? 내게 중급 영석 1백 개를 준다고 해도 바꿀 생각 없으니 허튼 생각 마라!”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훌쩍 날려 동굴로 돌아갔다.
“흥!”
중년 남자는 그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청목을 처리한 뒤 그 자에게도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청목, 일단 돌아가라. 내일 다른 동굴로 바꿔주마.”
중년 남자의 말투는 단호했다. 더는 한제에게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소매를 휘두른 뒤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몸을 훌쩍 날려 동굴로 향했다. 그는 속으로 냉소하며 중얼거렸다. 만약 순순히 말을 들었다면 별 탈 없었을 텐데 화를 자초하는구나. 밤중에 그가 찾아온다면 이제는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회복
깊은 밤, 사방이 고요했다. 중년 남자는 방에서 나와 한제의 동굴로 향했다. 그의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결단기 초기에 머무른 지 오래였다. 정식 제자 신분이었던 그가 도태되어 외부 제자들의 관리를 맡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한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을 본 그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
‘외부 제자의 생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니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그자는 일개 떠돌이 수련자 아닌가. 죽는다고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청목, 날 탓하지 마라.’
중년 남자는 몸을 훌쩍 날려 한제가 있는 동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동굴 밖에 이르렀다.
사방이 고요했다. 허나 중년 남자는 그곳에 이르자마자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동굴 안에 수련자가 있다면 그 앞에 천학석을 놓아 입구를 막아두는데 지금 이 동굴 입구의 천학석은 반만 닫혀 있었다.
중년 남자는 오히려 번거로움을 덜어서 좋다고 여겼다. 상대는 아직 축기 수련자 아닌가? 함정이라 해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돌로 된 침상 위에 가부좌를 튼 한제를 볼 수 있었다. 상대는 덤덤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두 말 않고 손으로 결인을 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한 줄기 푸른빛이 나타나 한제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일단 상대를 사로잡아 심문한 뒤에 죽일 생각이었다.
한제는 피식 비웃으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가 순식간에 나타난 금번을 휘두르자 한 줄기 금제가 번개처럼 빠르게 그 푸른빛에 달려들었다.
푸른빛은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감히!”
중년 남자는 냉소하며 짧은 비검을 한 자루 토해냈다. 비검은 번쩍 하고 금제를 향해 돌진했다. 축기기 후기인 자가 자신의 금단으로 제련해낸 비검의 위력을 당해낼 리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