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05
한제는 연혼봉 위를 걸으며 신식을 거두었다.
“화신기 수련자는 모두 폐관수련 중이고 지금 연혼종은 저 세 사람에 의해 보호받고 있군.”
한제는 편전에서 제자 복식과 영패를 받은 후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장경각으로 향했다.
연혼봉의 장경각(藏經閣)은 세 개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리 넓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별다를 것이라고는 없는 건물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간 한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각 안에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는데 거의 원영기에 달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얼굴은 누런빛이었고 몸은 바짝 말라 맥이 없어보였지만 한제가 들어서자 눈을 까뒤집더니 말했다.
“영패!”
한제가 영패를 내밀자 노인은 힐긋 살핀 뒤 말했다.
“3층을 제외하고 어디든 살펴봐도 된다. 기한은 사흘이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에는 선반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옥패, 죽패, 심지어는 석패도 있었다. 그것들을 찬찬히 훑어본 한제는 그 안에 있는 공법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몇몇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허나 그 안에 혼번을 제조하는 방법은 없었다.
한 바퀴 돌아본 한제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의 옥패는 1층보다 훨씬 적었고 사방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각 옥패 옆에 붙은 간단한 설명을 훑어보던 한제의 시선이 어느 순간 멈췄다. 그 옥패 옆에는 ‘혼번 제작’이라고 써 있었다. 허나 그 옥패를 집어 들고 신식으로 살핀 한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 옥패에는 분명 혼번을 만드는 방법이 담겨 있었으나, 외부에 흔히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만약 연혼종이 정말 이 방법대로 혼번을 만드는 것이라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쌓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2층을 훑어본 뒤에도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한제의 눈빛이 3층으로 향했다.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1층의 노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선배님, 어째서 3층에 올라가서는 안 되는 겁니까?”
노인은 하품을 하며 한제를 힐긋 보더니 말했다.
“올라갈 수 없다면 그런 줄 알지 어찌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느냐.”
한제는 물끄러미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은 혼자 몇 마디 구시렁대더니 귀찮다는 듯 말했다.
“뭘 쳐다봐. 혼번 제작 방법을 얻으러 온 것 아니냐? 그 공법은 이곳에 없다. 3층에도 없어. 금번 제작 방법만 열 개 정도 있지. 어디 원한다면 가져가봐라. 저기 동굴에 딱 하나 있으니 빼앗아갈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알게 되겠지.”
한제의 시선은 노인이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분명 동굴이 하나 있었다.
“연혼종에는 별다른 규칙이 없다. 누구를 죽일 능력이 있다면 죽여. 마음에 든다면 가져라. 눈에 들어오는 여자 수련자가 있거든 그 역시 빼앗아버려. 허나 능력이 없다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 너희가 함께 수련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강탈당하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야.”
노인의 눈에 비웃음이 담겼다.
“규칙이란 없으니 생각대로 하라⋯⋯.”
한제가 빙그레 웃었다. 이 연혼종이라는 곳이 마음에 들었다.
한제는 갑자기 오른손을 휙 휘둘렀다. 그러자 노인의 몸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붙잡힌 듯 공중으로 붕 솟아올랐다.
흠칫 놀란 노인은 이내 하하 웃었다. 이전의 짜증스러운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전의를 불태우며 웃었다.
“좋아, 좋아. 너는 지난 1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게 전투를 걸어온 다섯 번째 녀석이다. 어디 한 번 놀아볼까.”
말을 마친 그가 몸을 훌쩍 날렸다. 몸을 감싼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듯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노인의 몸은 엄청난 힘에 이끌려 쾅 하고 옆쪽의 돌벽에 부딪혔다.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던 노인은 이내 정신을 차린 뒤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지만 곧 그의 몸은 다시 어떤 힘에 붙잡혀 다른 곳으로 집어던져졌다.
쾅, 쾅, 쾅!
계속되는 공격에 노인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입가에서 어느덧 선혈이 흘러내렸다. 결국 한제를 향해 애걸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어…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또다시 던져버리신다면 이 늙은 녀석의 뼈는 모두 부서지고 맙니다.”
한제가 손을 놓자 노인은 풀썩 쓰러졌다. 한참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킨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얼른 옥패를 가져가십시오. 우리 연혼종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누구도 관여치 않을 것입니다.”
한제는 그 노인을 힐긋 본 뒤 몸을 돌려 노인이 가리켰던 동굴 앞에 이르렀다. 이 동굴에는 금제가 몇 개 걸려 있었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동굴 안에는 중년 남자 한 명이, 그 옆쪽의 석실에서는 여자 수련자 두명이 좌선을 하고 있었다.
한제가 잔영의 원들을 쏘아보내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천학석과 금제들이 함께 모두 무너져 내렸다.
이 모습을 본 장경각의 마른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연혼봉에 건드려서는 안 될 주인이 한 명 늘었구나.’
동굴이 무너지자 그 안에 있던 중년 남자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튀어나와 저물대를 두드려 작은 보라색 깃발을 꺼냈다. 이어서 그 깃발을 흔들자 수백 개의 혼백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는데 모두 목청이 찢어질 듯 소리를 지르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동굴을 망가뜨리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그 중년 남자는 장경각의 노인과 마찬가지로 결단기 후기 절정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혼번은 매서웠다. 한제는 그 깃발에 그어진 금색 선 한 줄을 볼 수 있었다. 그 금색 선 안에서 튀어나온 혼백들은 모두 검은 기운을 발산했다. 훅 불면 흩어져버릴 것 같은 보통의 혼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 백 개의 혼백들은 모두 힘이 넘쳤다. 그중 몇몇은 심지어 결단기 수련자에 맞먹는 기세를 보였다.
‘성장!’
깜짝 놀란 한제는 속으로 외쳤다. 저 혼백들은 보통의 혼백과 달리 혼번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 결단기 수련자의 손에 있던 혼번이 빠져나와 한제의 손에 들렸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그것을 문질러 상대의 신식을 지워버린 뒤 자신의 정신을 집중했다. 순간, 뭔가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제가 혼번을 흔들자 좀 전까지 그를 공격하던 혼백들이 곧장 그 안으로 흡수됐다.
결단기 수련자는 경악한 눈으로 사태를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저물대에서 꺼낸 검은색 옥패 하나를 땅에 내던졌다. 그리고 얼른 몸을 뒤쪽으로 물리며 외쳤다.
“졌다, 졌어. 동굴도 옥패도 네가 가져라. 그 혼번도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 동굴에는 두 명의 첩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나도 아직 건드린 적 없으니 원한다면 다 네가 가져도 좋다. 다 넘기겠다. 그러니 규칙대로 나를 죽이지는 말라고!”
말을 마친 그는 얼른 달아났다.
한제는 그를 더는 공격하지 않고 손을 휘둘러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은색 옥패를 손에 쥔 후 정신을 집중하여 살폈다.
그때, 동굴에서 두 여인이 걸어 나왔다. 모두 매우 아름다웠고 전혀 놀란 기색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연혼종의 혼번 제작 방법인가? 더 뛰어난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한제는 신식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그때 두 여인 중 벽옥색 옷을 입은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사형이 이번 외부 제자 시합의 승자인 청목 사형이군요. 저는 허은이라고 해요. 아마도 그 옥패 안의 혼번에 있는 결함을 눈치채셨나 보군요.”
한제는 고개를 들어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두 여인은 모두 결단기 중기 수준이었다.
“결함이라고?”
한제가 묻자 벽옥색 옷을 입은 여인이 얼른 답했다.
“연혼종의 혼번 제작 방법은 총 세 개로 나뉘어 있어요. 세 봉우리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연혼, 추백, 그리고 쇄신으로 나뉘어 있죠. 그 세 가지 방법을 하나로 합쳐야 진정한 혼번 제조 방법을 알 수 있어요.”
한제는 옥패를 거둔 뒤 동굴을 힐긋 살폈다. 딱히 만족스러운 곳은 아니었다. 한제는 신식으로 주위를 훑어본 뒤 긴 잔영을 남기며 산봉우리 바닥 쪽으로 향했다.
두 여인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얼른 한제의 뒤를 따랐다. 이 연혼종에서는 수준이 높은 제자가 아닌 이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연혼종의 정식 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것이다.
전투에서 지면 가진 것을 모두 승자에게 바쳐야 했다. 그럼 승자는 패자를 죽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패자를 죽인다면 장로의 간섭을 받게 된다.
이렇게 불합리한 규칙 아래, 제자들은 소속감이나 충정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도 연혼종이 왜 이런 규칙을 만들어 따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런 상황이니 두 여인이 곧장 한제를 따르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한제가 갑자기 자리에서 우뚝 멈추더니 그녀들에게 외쳤다.
“따라오지 마!”
그는 냉랭한 눈으로 두 여인을 훑어보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색 혼번
“사저, 어떡하지?”
옆에 있던 여인이 초조한 기색으로 묻자 허은은 발을 구르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어쩌겠어. 따라오지 말라고 했으니 따라가면 안 되겠지. 저자가 동굴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옆에 머무르자. 그럼 다른 사람들은 저자 때문에라도 우리의 수련을 방해하지는 않겠지.”
한제는 연혼봉 아래쪽의 큰 바위를 잠시 살피다가 저물대에서 비검을 하나 꺼내 그 아래에 동굴을 하나 만들었다.
훌쩍 몸을 날려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간 그는 손을 휘둘러 금제를 만들어내 입구를 봉쇄했다.
그가 이곳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영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전처럼 미친 듯이 영맥의 힘을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약간씩 흡수하면 문제없을 터였다.
한제의 몸은 번쩍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연혼봉 아래에 있는 영맥 주류 옆에 나타났다.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신식으로 사방을 훑다가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 영맥 가장 깊은 곳에는 검은 안개가 퍼져 있어 신식의 진입을 막았다. 또한 대량의 영력이 그 영맥에서 실 형태로 천천히 피어오르며 그 검은 안개에 흡수되고 있었다.
한제의 신식이 그 검은 안개의 테두리에 닿자마자 그 안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는 혼백들이 하나하나 뛰쳐나왔다.
한제는 그 검은 안개에서 한 줄기의 금제를 감지했다. 그 금제 때문에 신식을 진입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한제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순간 두 눈을 번득였다.
“이⋯⋯ 이건… 설마 상고 시대의 혼금(魂禁)인가?”
한제는 전율했다.
혼금(魂禁)은 상고 시대 금제 중 가장 희귀한 종류로 혼백을 금제로 삼아 변화막측할 뿐만 아니라 그 위력도 일반적인 금제의 몇 배에 달했다.
자물쇠처럼 고정적인 방식으로 열 수 있는 보통의 금제가 무생물이라면 혼금은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의 혼백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금제가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날려 그 상고 시대의 혼금 곁에 이르렀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혼백이 깃든 검은 안개가 갑자기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두 갈래의 어스름한 빛을 번득였다. 동시에 혼백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 포효에 한제는 원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검은 안개를 주시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포효는 일종의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