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07
곽동건의 말에 한제의 마음이 흔들렸다. 추백봉의 제자는 그가 예상한 대로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을 뽑아 혼번을 제작하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추백 옥패를 찾아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상대가 말한 혼백의 소용돌이는 연혼 옥패에 나와 있는 세 가지 신통술인 응결, 혼백의 소용돌이, 피의 제사 중 하나였다.
응결은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자 연혼의 근본이기도 했다. 이 신통술을 펼쳐야만 무형의 혼백을 응결시켜 혼번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혼백의 소용돌이는 비교적 희귀한 신통술이다. 최소한 연혼종에서는 그랬다. 이 신통술을 수련하려면 원영기 이상의 수준은 되어야 했지만 원영기 수준이라고 해서 모두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곽동건만 해도 여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신통술을 부리면 대량의 혼백을 흡수할 수 있다. 전투를 할 때에나 혼백을 빼앗을 때 강력한 술법이었다.
마지막 술법인 피의 제사는 연혼봉 혼번의 최종 신통술로 이 술법을 펼치면 혼번의 위력을 순간적으로 몇 배나 증폭시킬 수 있다. 제자의 수가 적은 연혼종이 명성을 떨치는 데 상당히 큰 기여를 한 술법이기도 하다.
허나 이 술법은 수련하기가 매우 어려워 원영기 후기 제자들도 대부분 파악하지 못했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둘러 혼백의 소용돌이를 흩어버리자 혼번 하나가 그의 손에서 나타났고 그것을 휘두르자 대량의 혼백이 그 안으로 흡수됐다.
곽동건의 얼굴이 구겨졌다. 갖은 고생 끝에 만든 혼번을 이렇게 빼앗기다니. 속으로는 한숨이 나왔지만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연혼종의 규칙이었다. 어차피 그도 한제의 혼번을 빼앗기 위해 온 것이니 실패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한제에게 포권을 취한 뒤 얼른 자리를 떴다.
한제는 손에 들어온 원영기 수준의 혼백을 혼번에 집어넣었다. 순간 그 혼백과 혼번 안에 원래 들어있던 주요 혼백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혼번을 더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그 두 원영기 수준의 혼백이 승부를 낼 것이며, 승자는 새로운 주요 혼백이 되고 패자는 승자에 예속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허은과 유미는 내심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한쪽 옆에 서서 가만히 기다렸다. 허은은 유미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사실 확신은 없었다. 더구나 청목이 혼백의 소용돌이까지 손에 넣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한제는 청아아고 탈속적인 풍경을 훑어보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멋대로 내 동굴 밖을 꾸며놓았군. 그만두고 썩 꺼져.”
그러자 허은이 애걸하듯 말했다.
“청목 사형, 이대로 떠나면 우리는 그동안 고생 끝에 모은 혼백들을 분명 다 빼앗길 거예요. 저희가 원하는 것은 안전하게 수련할 장소일 뿐이에요. 절대 사형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테니 떠나라고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한제는 말없이 그저 냉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눈빛을 본 허은은 심장이 덜컥했다.
허은보다 담이 작은 유미는 더욱 불안해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자질이 천부적이고 성장이 빨랐기 때문에 결단기 중기의 수준으로 외부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시합을 통해 정식 제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식 제자가 되어 연혼종 본관에 들어온 그녀는 이곳이 자신이 상상했던 곳과는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그녀가 생각하던 종파와는 전혀 달랐다.
싸늘한 표정으로 소매를 휘둘러 막 두 여인을 멀리 밀쳐내려던 순간, 한제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저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푸른 옷을 입은, 선녀 같은 여인이 우아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는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류미!”
그 여인을 본 한제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류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수준이 많이 회복됐군. 축하해.”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허은과 유미가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대체 내게 접근한 목적이 뭐지? 과거의 류미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어. 그 기억을 해치고 싶지는 않군.”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류미는 한숨을 내뱉은 뒤 조용히 말했다.
“이한제, 네 앞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그러니 주작성을 떠나.”
한제는 조용히 류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말할게. 너도 내가 주작국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만 내 스승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지. 내 스승은 주작성 최고 고수, 주작이야.”
류미의 말에 한제의 눈이 커졌다.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던 그는 잠시 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불쑥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홍접은 나와 결전을 벌인 뒤 어떻게 됐지?”
류미는 한제의 질문에 내심 감탄했다.
“홍접은⋯⋯ 나의 사형에게 살해됐어.”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보아하니 나와 홍접의 결투가 누군가에게는 한바탕 소싸움에 지나지 않았나보군.”
류미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조용히 말했다.
“떠나. 최대한 빨리⋯⋯.”
말을 마친 그녀는 한참동안 한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한제, 나는 스승님께 네 도심에 나의 인영을 남기라는 명을 받았어. 스승님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이는 내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야. 내 도심에 네 그림자를 남겨놓지 않는 이상 이 도심의 싸움에서 네가 이길 가능성은 없어. 하지만 난 천환무정(千幻無情)의 도를 깨달았어. 겉으로 보이는 천 가지 환상으로 감정이 있는 것처럼 꾸밀 수는 있지만 사실은 무정하지. 그러니 네가 어떻게 나를 이길 수 있겠어.’
류미는 자리를 떠나며 생각했다. 그녀의 두 눈 깊은 곳에 냉랭한 무정함이 번득였다. 하지만 그 무정함은 그녀의 겉모습에 뒤덮여 간파할 수가 없었다.
한제는 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에는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더 많은 궁금증만을 남겼을 뿐이다.
“기이한 일이야. 류미는 볼 때마다 혼란스러운 감정만을 남긴단 말이지. 이상해.”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더니 허은과 유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두 여인을 동굴로부터 1천 척 밖으로 밀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 그녀들을 내보내려던 순간, 한제는 뭔가를 떠올린 듯 멈칫했다.
그는 두 여인을 가까이 데려와 자세히 살폈다.
의식을 잃은 두 여인의 표정은 각기 달랐다. 허은은 줄곧 결연한 표정으로 강한 의지를 내보였지만 의식을 잃은 그녀의 표정은 유약하고 무력했다. 반면 다른 여인은 내내 나약하게만 느껴졌는데 지금 그녀의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드러났다. 겉으로는 나약해 보여도 속은 단단한 모양이었다.
한제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 스쳐 지나가는 듯했고 두 눈이 밝아졌다. 고개를 들어 류미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던 한제의 입가에 냉소가 담겼다.
“왜 류미를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 이제 알겠군. 그녀는 언제나 감정이 담뿍 담긴 듯 행동하지만 사실 그것은 내면을 가리기 위한 연막이었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정의 도겠지.”
한제는 류미가 향한 쪽을 바라보면서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류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간파할 수 없으나 주작의 제자라면 분명 나보다는 강하겠지. 한데 저 여인이 내게 접근하는 이유는 대체⋯⋯?”
한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둘러 허은과 유미를 수백 척 떨어진 곳에 내려놓았다. 그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두 여인의 표정을 통해 류비의 진정한 내면을 알아낸 이상 두 사람을 아예 몰아내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수준을 회복하기 전에 류미가 공격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나를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걱정하는 듯 하면서 실은 무정한 마음으로 접촉한 것은 분명 이상해. 절대 호의를 가진 건 아니겠지.”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잠시 후 동굴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원신이 회복되기만 하면 화신기 중기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원신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러려면 더 강한 영력의 압박이 필요해.”
한제는 중얼거리며 눈을 번득였다. 이내 그의 몸은 번쩍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연혼봉 아래 영맥의 가장 깊은 곳에 나타났다.
좌측으로 3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는 그 금색 혼번이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그 기린 같은 혼백에게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영력의 위압감이 천천히 응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그는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집중한 채 영력의 힘으로 원신을 제압했다. 원신을 최대한 빨리 아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정신을 차린 허은과 유미는 자신들이 동굴 범위 안에 있음을 깨닫고 기뻐하더니 근처에 작은 동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좌선하기 시작했다.
주요 혼백의 싸움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한제는 미친 듯한 영맥의 위력에 원신을 제압하다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서 영력이 흘러나왔다.
그의 원신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몇 개월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얼굴의 찻잎 모양 흉터도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3천 척 정도 떨어진 금색 혼번이 있는 곳을 살폈다.
그때, 한 줄기 그림자가 갑자기 혼번 밖으로 나타났다. 순간 검은 안개에서 포효가 들려오더니 그 기린처럼 생긴 마수가 튀어나와 흉악한 눈빛을 번득였다. 녀석의 포효에 그림자는 곧장 뒤로 물러나며 빠르게 응결됐다.
한제는 신식을 통해 그 그림자로 응결된 사람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 날 푸른 돌로 만들어진 대전 안에 있던 그 노인이었다. 경지를 깨닫기만 하면 화신기에 이를 수 있을 법한 수준의 연혼봉 대장로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이 십만혼번의 위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군. 내 수준의 성장하는 속도로 어느 세월에 이 혼번을 장악한담!”
노인이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린과 닮은 마수는 한제를 봤을 때처럼 공격하지는 않았으나, 비웃는 기색이 어린 눈으로 노인을 쳐다봤다.
“멍청한 짐승 녀석!”
노인이 눈을 번득이며 호통 쳤다.
“시조께서 명령하시지 않았더냐! 세 봉우리 아래에 세 개의 혼번을 숨겨놓고 덕이 있는 자가 갖게 하라고 말이다. 언젠가 네놈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마수는 콧구멍으로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경멸하는 기색이 짙게 느껴졌다.
“흥!”
노인이 저물대를 두드리자 그의 손에 옅은 금색의 혼번이 하나 나타났다. 노인이 그것을 흔들자 순간 무수한 혼백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원영기 후기 수준에 해당하는 주요 혼백이 있었고 그 뒤로는 수십 개의 원영기 초기, 중기 수준의 보조 혼백도 있었으며, 다시 그 뒤로는 각기 수준이 다른 혼백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만혼의 흡수!”
노인이 중얼거리면서 손에 든 혼번을 앞으로 뻗자 순간 사방의 모든 혼백들이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대며 그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수는 눈을 까뒤집으며 몸을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전혀 굴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려 달려드는 혼백들을 삼켜버렸다.
노인은 그 마수와 처음으로 겨뤄보는 것이 아닌 듯 얼굴에 놀란 기색 없이 굳건한 표정으로 그 마수가 혼백들을 삼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혼백을 삼킬 때마다 마수의 몸은 조금씩 커져갔다.
노인의 수준으로는 그 마수에 대적할 능력이 없었지만 그는 혼백들을 사냥하는 술법을 아주 깊이 파악하고 있었다.
잠시 후, 노인은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순간 그의 두 손이 붉게 변하더니 선혈이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그 핏방울들은 정신을 집중한 노인 앞으로 모여들어 주먹만 한 피구슬을 형성했다.
“피의 제사!”
노인이 낮게 외쳤다. 그 순간, 그 피구슬이 폭발하며 사방 1천 척을 뒤덮었다. 그러자 마수가 삼킨 혼백들이 마치 환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꼭 그 마수의 몸을 뚫고 나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깥에서도 수많은 혼백들이 주요 혼백의 지휘 아래 끊임없이 진격했다. 이에 마수는 안팎으로 공격받으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비웃는 듯한 기색이었다.
순간, 그 마수가 격렬하게 포효했다. 그러자 아래에 있던 금색 깃발에서 한 줄기 검은 기운이 튀어나오더니 한 마리 마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두 마수의 모습은 완전히 똑같았다.
노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혼번과의 가장 최근 싸움에서는 이 두 번째 마수를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또다시 두 번째 마수를 마주하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노인이 다시 저물대를 두드리자 그의 손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방울이 됐다. 그 방울의 손잡이는 보라색 나무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복잡한 줄무늬가 있었다.
“내 보물을 걸고 쇄신봉에서 이 쇄신 방울을 빌려왔다. 네놈의 그 두 번째 마수에 대적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