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09
“저 사람은⋯⋯?”
핏빛 고리 속으로 사라진 눈빛에 한제는 의아했으나, 이내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제 이곳에 남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원신을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단약이 없는 이상 더욱 강력한 영력의 압박이 필요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한제는 추백과 쇄신 두 개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몸을 훌쩍 날려 추백봉으로 향했다.
그런 한제를 저 멀리 연혼봉에서 지켜보던 류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빠른 회복이군. 저자의 도심에 내 인영을 남겨놓으려면 일단 저자의 도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하지만 두 번이나 접촉을 했음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이한제, 네 도심은 대체 뭐지?”
★ ★ ★
추백봉에 이른 한제는 신식으로 주위를 한 번 훑고는 곧장 어느 동굴로 향했다. 동굴에는 추백봉에서 대장로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제자인 소금세가 있었다.
소금세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한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한제는 조금도 위축되는 기색 없이 덤덤하게 물었다.
“추백 옥패를 가지고 있나?”
소금세는 잠시 한제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대의 수준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자였으나 복장을 보고 그가 연혼봉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연혼종에서 세 봉우리의 제자들은 서로 교류할 수 있었으므로 능력만 있다면 세 봉우리의 연혼 방법을 모두 얻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소금세 역시 몇 년 전 연혼봉을 통해 연혼 옥패를 하나 손에 넣은 상태였다.
“추백 옥패를 줄 수는 있지만 내게는 죽은 영혼 3백 개가 필요하다.”
소금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한제는 잠시 소금세의 옥패를 강탈할까 고민했으나, 이내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천혼번을 꺼냈다. 그 혼번에 봉인된 영혼은 총 2천 개가 넘었다.
한제가 혼번을 흔들자 금세 3백 개의 혼백이 빠져나왔다. 한제는 왼손을 움켜쥐어 그 혼백들을 주먹 크기의 검은 구슬로 만들어 소금세에게 넘겼다.
소금세는 망설임 없이 저물대에서 보라색 옥패 하나를 꺼내 한제에게 건넸다.
“사형은 이름이 무엇인가?”
“청목!”
한제는 옥패를 받은 뒤 신식으로 한 번 훑었다. 그 안에는 어떻게 살아 있는 혼백을 뽑아내고 어떻게 그것들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지,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혼백으로 혼번을 어떻게 만드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추백술(抽魄術)에도 마찬가지로 세 가지의 신통술이 따르는데 각각 집중, 혼백 인도 그리고 독충 먹이기였다.
집중은 혼백을 뽑아내는 근본적인 술법으로 만약 집중 없이 억지로 혼백을 빼낼 경우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
혼백 인도는 진정한 추백술로 살아 있는 혼백을 살아 있는 사람의 체내에서 그대로 끄집어내는 방법이었다.
마지막 독충 먹이기는 가장 잔혹한 술법으로 추백의 술법 중 가장 위력이 강했으며, 연혼의 술법 중 피의 제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독충 먹이기는 상당히 기이한 술법이었다. 살아 있는 혼백을 독충과 같은 존재로 변이시킨 뒤 이를 통해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 심지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다듬어 결국 사람을 독충 혼수(魂獸)로 만들기도 했다. 한 마리의 독충 혼수는 결단기 수련자의 수준에 상당했다.
이것뿐이라면 독충 먹이기 술법이 그리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혼백봉의 어느 제자는 이 독충 먹이기 술법을 통해 스승과 동문들을 배반한 적이 있었다. 그 후 4성 수련국을 횡행하고 다니던 그는 결국 스스로 문파를 세우고 그 문파를 단마도(丹魔道)로 명명했다.
그자는 알 수 없는 각종 방법으로 독충 혼수로 단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시체에서 풍기는 녹색 기운을 녹여 위력을 증폭시킴으로써 녹단(綠丹)을 만들었다. 그는 그 녹단을 만드는 방법을 녹단법(綠丹法)이라고 했다. 또한 그 방법으로 화신기에 이르렀으니 가히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었다.
녹단과 금단은 달랐다. 금단은 한 사람에게 하나만 존재할 수 있었지만 녹단에는 수량 제한이 없었다. 그자가 독충 먹이기 술법을 변이시켜 만들어낸 녹단의 수는 10만 개를 훌쩍 넘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수많은 녹단을 자폭시킬 수 있었던 그 공법의 위력은 무궁무진 했으며, 영변기 수준의 수련자라 해도 그자에 대해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이에 어지간해서는 그를 건드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연혼종은 그 사람에 대해 문파를 배반한 죄를 묻지도 못했고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실종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그 일을 잊어갔다.
소금세는 한제를 힐긋 보며 말했다.
“청목 사형은 쇄신봉에도 가서 쇄신 옥패를 찾을 생각인가?”
한제는 추백 옥패를 챙긴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금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갈 필요 없을 것이네. 쇄신 옥패는 쇄신봉에 있지 않아. 그것은 오직 화신기 어르신들만이 찾을 수 있는 물건이지. 쇄신봉 제자들이 수련하는 것은 우리와 달라. 그들은 그곳에서 연혼과 추백 둘 다 수련하고 있다네.”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몸을 훌쩍 날려 쇄신봉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제자 한 사람을 붙잡아 물어본 결과 소금세가 말해준 것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됐다.
세 개의 선물
추백과 쇄신 두 봉우리 아래의 영맥 깊은 곳에서도 한제는 한 차례 탐색에 나섰다. 쇄신봉 아래에도 혼번이 하나 있었는데 그 혼번의 위력은 크지 않았고 그 안에 봉인된 혼백도 대부분 힘이 약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추백봉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그 깃발을 강탈해간 모양이었다.
일을 마친 한제는 고개를 들어 세 봉우리 뒤의 금빛 고리 아홉 개와 핏빛 고리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돌연 그의 눈에 결연함이 어렸다.
“오늘 반드시 원신을 회복한다. 연혼종의 영변기 노인에게 도전하겠어. 그들만이 영맥보다 더 깊은 영력이 미치는 곳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곳에서 원신의 회복을 마친 후 곧장 성라반을 타고 도망가면 저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쫓아온다 해도 날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
한제는 전의를 불태우며 몸을 훌쩍 날려 아홉 개의 빛 고리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왼손에는 금색의 십만혼번을 오른손에는 999개 조의 금제가 걸린 금번을 쥐었다.
아홉 개 빛의 고리 앞에 이르자마자 한제는 두 손에 든 깃발을 휘둘렀다. 순간 왼손에 들린 혼번에서 포효가 흘러나오더니 금빛 기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는 아홉 마리의 검은 기린 마수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뒤쪽으로는 무수히 많은 혼백들이 검은 바람처럼 빽빽이 몰려 있었다. 그 혼백들은 순간 연혼종 하늘을 가득 채웠다. 포효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십만혼번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금색 기린은 포효한 뒤 아홉 개의 금빛 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쾅, 쾅!
몇 차례의 거대한 소리와 함께 금색 기린과 그 뒤쪽의 보조 혼백들은 연이어 금빛 고리에 돌진했다. 아홉 개의 금빛 고리가 곧장 휘청거리더니 아홉 명의 남녀들이 나타났다. 연혼종의 화신기 수련자들이었다.
그들은 금빛 기린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금빛 기린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가 거대한 머리를 흔들면서 두 갈래의 검은 기운을 분출해냈다. 그 검은 기운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금빛 기린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기린 마수는 흉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아홉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담한 녀석!”
아홉 명의 화신기 수련자 중 중년 여자가 외쳤다. 화신기 초기 수준의 그녀는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앞으로 나서 공격을 하려했다.
한제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호통을 쳤다.
“꺼져라!”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운이 한제의 몸으로부터 발산됐다. 이는 그 여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중년 여자는 화신기 초기에 불과했다. 한제가 완전히 회복했다면 어렵지 않게 죽여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제의 호통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를 담고 있었다. 중년 여자는 뒤로 한참 물러난 후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녀는 기겁한 표정이었다.
화신기에 이른 후부터 누군가에게 이렇게 혼나본 적이 없었기에 슬며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한제를 주시했다.
화신기 수준에 이른 사람 중 바보처럼 막무가내로 상황 분간 못할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도발을 해온 사람이라면 그럴 능력이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저 금빛 기린만 봐도 그녀가 대적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두 길을 비켜라.”
한제는 금빛 기린 머리 위에 서서 덤덤하게 외쳤다.
“어딜 감히!”
아홉 명의 화신기 수련자 중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한 줄기 빛이 나타나 허공에서 쇠사슬로 변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묵묵히 오른손에 든 금번을 휘둘렀고 곧 수많은 금제들이 빠져나와 그의 앞에서 서로 얽혀들며 팔뚝만 한 굵기의 검은 창이 되었다. 그 창은 곧장 튀어나가더니 펑 하고 쇠사슬을 찔렀다. 순간 쇠사슬은 마디마디 부러졌고 창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은 기세로 그 푸른 옷의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한제가 왼손에 든 혼번을 휘두르자 그의 발아래 있는 기린 마수가 크게 포효했고 사방에 가득한 10만 개의 혼백들이 우르르 돌진해나갔다. 멀리서 보면 지금 혼연종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노인의 목소리 하나가 핏빛 고리 소리에서 울려 퍼졌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목소리와 함께 벽옥색 옷을 입고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누군가가 핏빛 고리 속에서 나타났다. 한 걸음 만에 불쑥 가까이 다가온 그는 옷이 너무 커서 움직일 때마다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은 잿빛이었고 무척 나이가 들었으나 눈빛만큼은 밝은 달처럼 맑고 밝았다.
그는 한제를 자세히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뒤로 휘둘렀다.
“너희는 물러나거라!”
그의 손짓 한 번에 순간 엄청난 힘이 훅 끼쳐왔다. 아홉 명의 화신기 수련자들은 얼른 알겠다고 답한 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한제는 눈에 전의가 깃들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노인의 수준을 간파할 수는 없었지만 그 자가 영변기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천우, 난 이 날을 벌써 2년 동안이나 기다려왔다.”
노인은 한제를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그 눈빛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류미도 이곳에 와 자신을 찾았는데 이 연혼종의 영변기 시조가 알고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자네에게 작은 선물을 준 뒤에 상세한 이야기를 이어가도 늦지 않겠지!”
노인은 한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불쑥 들어 연혼봉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한제와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와 서늘함이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류미, 10초 안에 이 연혼종 반경 1만 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자네가 아무리 주작성의 제자라 해도 규정대로 처리할 것이다. 물러가라!”
연혼봉 위에 나타난 류미는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제게는 스승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선배님의 심기를 거스를 일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러십니까?”
한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그는 내심 눈앞의 상황을 빠르게 분석해나가고 있었다.
“6초!”
노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외쳤다.
“선배님, 제가 이렇게 돌아간다면 분명 스승님께서는 저를 질책하실 겁니다. 스승님께서 물으신다면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4초!”
노인은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거리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30척 이상의 긴 깃대 허상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이는 허상일 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류미의 표정이 급변했다.
“십억존(十億尊)혼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