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12
은혜는 소백과 놀고 있었고 뇌와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으며, 철암은 가부좌를 튼 채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수준은 이미 화신기에 가까워져 있었고 최근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의 경지를 응결시켜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뇌와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거대한 눈으로 산골짜기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서 하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은혜는 눈을 비비며 재차 확인하더니 환호하며 소백의 등에서 뛰어내려 내달렸다.
“아저씨! 아저씨!”
한제는 환하게 웃으며 은혜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 무렵, 철암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말했다.
“은인님을 뵙습니다.”
“화신기를 목전에 두고 있군. 초나라 도시에 머물면서 일반인들의 생활을 좀 보고 느끼도록 해. 3년 안에 화신기에 반드시 이를 수 있을 거야!”
한제가 말했다.
철암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은혜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저씨, 큰 호랑이는? 떠나기 전에 큰 호랑이 잡아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은혜는 한제를 끌어안은 채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연신 물었다.
소백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마침내 이 고생길이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새로운 호랑이를 잡아왔다면 자신을 풀어주지 않겠는가?
“큰 호랑이라⋯⋯.”
한제가 곤란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작거렸다. 그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은혜는 작은 입을 뾰족하게 내밀며 중얼거렸다.
“그때는 분명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소백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 가득 피어올랐던 기대감도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는 우울함으로 금세 채워졌다.
한제는 웃으며 은혜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어딜 좀 갈 건데 큰 호랑이는 거기 가서 잡아줄게. 어때?”
아직 어린 은혜는 이곳을 떠난다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어디? 아저씨, 우리 놀러가는 거야?”
“아는 사람을 좀 만나러.”
소백은 다시 희망에 부풀었다. 저 인간들과 두꺼비가 가버린다면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소백은 할 수만 있다면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은혜야,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준비를 좀 하자. 알았지?”
한제의 말에 은혜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이곳을 떠난다니,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소백, 이리와.”
소백의 기대감은 다시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고개를 쭉 뺀 채 못내 아쉬운 눈으로 저 멀리 숲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국 녀석은 은혜의 재촉에 마지못해 보탑 안으로 들어갔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한 뒤 보탑을 가리켰다. 그러자 보탑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한제는 그 보탑을 저물대에 소중히 챙겨 넣었다.
이어 한제는 오른발로 땅을 굴렀다. 순간 엄청난 힘이 땅 깊은 곳에서 발산되었고 그와 동시에 지하의 고치 안에 들어 있던 본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고치에서 훌쩍 빠져나와 곧장 지면 위로 솟아올랐다. 본체의 미간에서는 세 개의 보라색 반점이 끊임없이 회전하며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본체와 분신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훌쩍 날렸다. 순간,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진정한 한제였다. 본체의 강건한 몸에 분신의 수준을 가진 그에게서 짙은 위압감이 풍겨 나왔다.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별안간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퍼지더니 콩알만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며 지면을 때렸다.
빗속의 한제는 마치 마신(魔神)처럼 서서 설역국 쪽을 주시했다.
“설역국의 이원봉, 거마족 선조, 그리고 그 기회를 틈타 나를 봉인한 손태. 네놈들이 저지른 짓을 잊지 않고 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석주가 천천히 그의 미간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이어 한제는 저물대에서 푸른빛에 휩싸인 주먹만 한 결정을 꺼냈다. 이것은 홍접과의 결투 당시 주작산 장로의 눈앞에서 억지로 빼앗은 나무의 령(靈) 반쪽이었다.
“금속, 나무, 물, 불, 흙 오행의 령 중 석주는 이제 금속의 령과 나무의 령 일부만 채우면 가득 찬다. 사도환의 말에 의하면 오행을 가득 채워야만 석주가 주인을 알아보고 더 강한 위력을 낸다고 했지. 그날이 머지않았군.”
한제는 손에 든 나무의 령 결정을 석주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나무의 령은 빠르게 석주에 흡수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석주에 새겨진 나뭇잎이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하나하나가 펼쳐져 마침내 열 개가 모두 나타났다.
“이제 금속 속성만 채우면 된다.”
한제는 흡족한 얼굴로 석주를 거둬들인 뒤 몸을 훌쩍 날려 뇌와 위에 내려앉아 웃으며 말했다.
“가자!”
뇌와는 환호하며 몸을 훌쩍 날렸다. 녀석이 디뎠던 바닥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겼다. 뇌와의 몸은 마치 유성처럼 바닥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한제는 하하 웃으며 저물대에서 흡혈 마수를 꺼냈다. 흡혈 마수는 나타나자마자 쉭 소리를 내며 거대하고 예리한 주둥이로 뇌와를 괴롭혔다. 뇌와는 눈을 까뒤집으며 긴 혀를 내어 흡혈 마수를 놀렸다.
두 마수가 장난치는 동안 한제는 설역국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 웃음에는 무한한 냉기만 있을 뿐이었다.
한 마디의 위엄
설역국.
이전에는 4파 연맹국의 푸른 땅이었던 이곳은 이제 눈길 닿는 곳마다 하얀 설원으로 변해 있었다.
햇빛이 눈에 비치며 눈부신 반사광을 만들어냈다. 그 빛을 오래 쳐다보고 있다가는 실명이 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설역국이 5성 수련국으로 승급됨에 따라 온 나라는 점점 더 번화해갔다.
그리고 그 설역국의 중심지에 빙설 신전이 하나 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자 설역국 유일의 영변기 수련자인 이원봉이 폐관수련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손태의 선력이 어린 번개에 적중당한 뒤 이원봉의 부상 회복 속도는 더뎠다. 본래도 스스로가 아니라 남의 힘으로 영변기에 이른 자인만큼 그 수준이 안정적이지 못했으니, 당시 수준이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빙설 신전 안, 이원봉 주위에는 선력을 발산하는 거대한 얼음덩이 몇 개가 있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었으나,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최소 1년은 더 있어야 완벽하게 회복될 것 같았다.
좀 더 빠른 회복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몇 차례나 주작산의 홍접에게 사람을 보내 선옥을 얻으려 했으나,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왔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이원봉은 점차 자신의 제자에게 원한을 품기 시작했다. 그가 주작산의 명에도 불구하고 천우를 죽이려고 한 것은 다 홍접을 위해서였다.
어느 날, 하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설역국 변방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설역국을 훑어보던 그의 눈에 아련한 빛이 어렸다.
“4파 연맹국⋯⋯.”
하얀 옷의 청년,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설역국의 수도는 당시 4파 연맹국의 수도가 있던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어느 골목에는 한제의 수십 년 세월이 묻어 있었다.
그 길에 나타난 한제는 익숙한 풍경을 훑어보았다. 머릿속에 대우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 후에 골목을 떠나는 그의 눈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잠시 후, 좌선을 하던 이원봉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들어 신전 밖을 내다보았다.
“이원봉!”
대전 밖, 푸른 돌로 만들어진 광장 위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눈발이 사방으로 휘날렸고 그 가운데에서 인영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처음에는 허상에 불과했으나 점점 실체화되어가더니 결국 대전 문으로부터 1백 척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완연한 모습이 드러났다.
한제는 서늘한 눈길로 대전 안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이원봉을 바라보았다.
홉뜬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던 이원봉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우!”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경지로 깊은 부상을 입었던 천우가 겨우 2년 만에 완전히 회복하여 돌아올 줄이야! 더구나 그가 보기에 한제의 수준은 당시보다 상승해 어느덧 화신기 후기에 이른 듯했다. 고작 2년 만에 부상을 회복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수준까지 상승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세 개의 잔영이 대전 안에 나타나 이원봉과 한제 중간에 섰다. 두 남자와 한 여자로 모두 노인이었다.
“겁도 없이 설역국의 빙설 신전에 쳐들어오다니!”
그중 한 노인이 소리쳤다.
“천우다.”
노파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제를 주시했다.
한제는 냉랭한 눈빛을 유지한 채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제가 발을 디딘 곳에서 수많은 균열이 일어 미친 듯이 뻗어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대전까지 이르렀다.
“붕괴!”
한제의 짧은 외침이 끝난 순간, 콰르릉 소리와 함께 대전의 반이 무너져 내려 재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세 노인은 갑자기 엄습해온 엄청난 힘에 사방으로 밀려났다. 한제를 보는 그들의 눈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서…설마 영변기…?”
한제는 그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훌쩍 날려 이원봉에게 달려들었다.
세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이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한제는 무덤덤한 얼굴로 슬쩍 주먹을 날렸고 주먹은 가장 가까이 있던 노인의 가슴에 꽂혔다.
펑!
노인은 가슴이 움푹 팬 채 피를 토하며 유성처럼 날아갔고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원신 역시 그 일격에 육신을 떠날 틈도 없이 부서져 버렸다.
화신기 중기 수련자가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본체와 분신이 합쳐진 한제의 힘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한제는 그 둘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고 다시 이원봉에게로 몸을 날렸다.
이원봉의 다급히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린 후 사방에 놓인 여덟 개의 얼음덩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순간 그 얼음덩이들이 이원봉을 감싸며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 모습을 본 한제는 냉소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펑,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