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14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영변기에 이르고 싶은 욕구가 전에 없이 강렬해졌다.
“죽어버려!”
이원봉은 분노에 차 외쳤다. 그의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온몸에는 푸른 정맥이 울툭불툭 솟아 있었다. 선력이 부족하다는 신호였다.
한제가 뒤로 물러난 순간, 남은 얼음 공들이 미친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펑, 펑!
한제는 두 주먹을 휘둘러 맞섰으나 얼음 공이 너무 많았고 좀 전의 충격으로 위력이 떨어져 다소 힘에 부쳤다.
온 설역국 대지 곳곳에 다시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이원봉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외쳤다.
“이제 죽어라!”
한제는 거대한 얼음 공에 부딪혀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가 떨어진 곳은 마치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파였고 푸른 연기가 그 안에서 피어올랐다가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이원봉의 안색은 도리어 더욱 어두워졌다.
“영변기의 신통력은 과연 신묘하구나. 허나 네 얼음 공에 깃든 선력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그 거대한 구덩이에서 한제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의 옷은 곳곳이 찢어진 상태였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났다.
이원봉은 굳은 얼굴로 한제를 주시하더니 이를 악문 채 저물대에서 한 쌍의 구리종을 꺼냈다. 그러더니 혀끝을 깨물어 구리종 위에 피를 뿌렸다.
그 종을 본 순간, 한제는 그것이 사도환이라 칭하던 자를 소환해낸 그 청년이 사용한 법보임을 알아보았다. 그의 두 눈이 번득였다.
“봉인!”
이원봉이 두 손으로 결인하며 외쳤다.
두 개의 종이 곧장 부풀어 오르더니 그 위에 새겨진 부호들이 끊임없이 번쩍이며 그 위에 뿌려진 이원봉의 피를 흡수했다. 이어 종의 줄무늬에서 비쩍 마른 팔 두 개가 나타났다.
그 두 팔에서는 짙은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검은 안개에서 발산되는 서늘한 기운이 미친 듯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원봉의 표정은 잔혹했다. 이 두 개의 구리종은 그가 가진 최후의 법보였다. 몇 년 전 손에 넣은 뒤 줄곧 원신으로 제련해온 덕분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없애라!”
이원봉이 오른손으로 한제를 가리키자 두 개의 비쩍 마른 팔에서 피어오른 검은 안개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개의 흐릿한 인영을 만들어냈다.
두 인영은 양쪽에서 한제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이 접근하기도 전부터 음산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한제는 냉소했다. 이전에 맞붙었을 때 자신은 화신기 중기에 불과했고 분신으로만 상대하느라 힘에 부쳤으나, 지금은 두렵지 않았다.
그는 몸을 훌쩍 날리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
펑, 펑!
두 번의 타격음에 두 인영은 으르렁거렸고 검은 안개는 광풍에 휘날린 듯 뒤로 흩어졌다. 이에 그 안에 가려져 있던 두 팔이 드러났다.
한제는 결인한 두 손을 휘둘렀다. 순간 두 갈래의 영력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 그 두 개의 팔에 떨어졌다.
“봉인!”
한제가 낮게 외쳤다. 그러자 그가 쏘아 보낸 영력은 빛의 사슬이 되어 잘린 팔을 결박했다. 이어 한제는 금번과 혼번을 날려 보냈다. 두 개의 깃발은 각각 잘린 팔 주위에 꽂혔다.
“봉인!”
한제가 재차 외쳤다.
두 개의 깃발이 나부끼면서 검은색과 보라색의 안개를 피어 올려 잘린 팔을 완전히 감쌌다.
동시에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두 개의 방울이 튀어나오더니 한제의 지시에 따라 부풀어 올라 하늘에서 내려오며 각각 그 팔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원봉은 창백하게 질리더니 두 말 않고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제는 재빨리 몸을 훌쩍 날렸고 고대신의 육신은 빠른 속도로 이원봉을 따라잡았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펑!
이원봉은 피를 토해내며 유성처럼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순식간에 이원봉의 위에 이른 한제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내리 꽂았다. 이원봉은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내며 땅에 꽂혔고 그를 중심으로 반경 1천 척 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이원봉은 여전히 피를 토해냈으나, 눈빛은 여전히 표독스러웠다.
“죽더라도 혼자 가지는 않겠다.”
이원봉이 새빨간 두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그의 몸에서 파멸적인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자폭할 셈인가? 네가 자폭하는 순간 나는 공간의 균열을 열어 도망칠 것이다. 허나 영변기인 네가 자폭하는 순간 설역국은 멸망하게 되겠지. 네 저승길 동료는 내가 아니라 설역국 사람들이겠군.”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손을 뻗어 허공을 죽 찢었다. 순간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이원봉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잠시 후 그는 비참하게 웃으며 자폭을 포기했다. 천우의 말이 맞았다. 자폭으로 천우를 해칠 수 있는지를 떠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설역국의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한제를 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졌다. 하지만 이 일은 설역국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니 설역국은 내버려두길 바란다. 동의한다면 내게 어떤 처분을 내리든 달게 받겠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이원봉을 노려보고는 허공을 두드려 추백술을 펼쳤다. 한 줄기 빛이 이원봉의 미간에 찍혔다.
이원봉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주위를 훑어본 그는 이내 두 눈을 감았다.
“추백!”
한제가 외쳤다.
순간 이원봉의 몸이 빠르게 쪼그라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가죽으로 덮인 뼈로 변해버렸다. 이어 보랏빛과 금빛이 도는 빛 덩어리 하나가 그의 미간에서 빠져나왔다.
“영변기 혼백이군!”
한제는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어 봉인한 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이어 방울로 봉인된 두 개의 잘린 팔 역시 거두더니 몸을 훌쩍 날려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둘의 전투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던 설역국의 모든 화신기 수련자들은 이원봉의 사망에 슬픔과 원통함이 차올랐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한제는 신식을 설역국 전역으로 펼쳐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오늘부터 설역국에 화신기 이상의 수련자가 존재하는 것을 금한다. 또한 어떤 문파의 존재 역시 금하겠다. 이를 어길 시, 내가 다시 올 것이다.”
한제의 원신은 경지의 힘을 일으켜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 한 번 생사윤회의 축을 나타냈다. 손짓 한 번에 그 그림 안에서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간 수십 갈래의 회색빛은 설역국의 모든 화신기 수련자 체내로 들어갔다.
“봉인!”
그 한 마디에 모든 화신기 수련자들의 수준은 한제의 경지에 의해 봉인되어 버렸다. 2년 전 한제가 이원봉에게 봉인된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화신기 수련자들의 이마에 각각 두 갈래의 흉터가 나타났다. 그중 하나는 옅고 하나는 진했는데 이는 생과 사를 의미했다.
그들의 수준 역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이어 한제는 저물대에서 흡혈 마수를 불러내 그 등에 탄 채 멀어져갔다.
머지않아 주작성에는 실종되었던 천우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또한 그 이름에는 영변기 아래의 수련자 중 최강자라는 설명이 따라붙었고 심지어 그가 이미 영변기에 이르렀을 거라는 말도 돌았다. 더 이상 누구도 천우의 강력함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5성 수련국이었던 설역국은 단번에 3성 수련국으로 내려앉았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 아연실색했다.
십억존혼번(十億尊魂幡)
어느 3성 수련국의 작은 마을 골목 어귀. 꾀죄죄하고 불결한 노인 한 명이 동전이 몇 닢 든 바가지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기이한 용모의 한 남자가 공손하게 서 있었다. 얼굴이 넓고 귀가 큰 사내였다.
“천우라는 녀석, 대단하군. 영변기 수련자를 죽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다니까. 하하!”
노인은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천우가 너를 도와 설역국을 3성 수련국으로 만들어줬으니 너도 그를 한 번 도와야지. 류미에게 가 봐라. 내 밀짚모자를 쓰고 가면 위기가 오더라도 도망은 칠 수 있을 게다. 가서 그 여인의 천환술과 무정의 도가 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보고 와라.”
사내는 공손하게 그러겠다고 답한 뒤 고개를 들어 설역국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여러 감정이 차올랐다.
그가 떠난 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가지에 들어 있던 동전을 하나하나 챙겨 품에 넣더니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12년 남았구나. 주작, 난 당시 너에게 패한 뒤 1천 년 동안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했어. 그 기한이 이제 12년 남았다. 나의 벌도 이제 끝나는 거야.”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정말 골치 아프군. 내가 선택한 네 사람 중 가장 골치 아픈 건 자심이야. 어쩌자고 천우를 건드려서는 공간의 균열 안에 내던져졌담. 내가 들어가 꺼내왔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 애가 건풍의 도심에 균열을 내놓지 않는다면 나도 더는 도와주지 않을 거야.”
이어 노인은 골치가 아픈 듯 혀를 찼다.
“건풍⋯⋯ 그 녀석은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 가장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녀석이지. 홍접조차도 그 녀석에 비하면 부족할 테니 말이야.”
★ ★ ★
주작산의 금지된 땅. 건풍이 손을 움켜쥐자 그 안에 있던 소리 전달 옥패가 산산이 부서졌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건풍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원봉을 죽이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지. 그 녀석은 남의 손을 빌어 승급된 쓰레기일 뿐이니까. 천우, 만약 네가 거마족의 선조까지 죽인다면 그때는 나의 적수가 될 자격이 있는 자로 봐주마.”
그의 뒤에는 홍접이 얌전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건풍은 고개를 돌려 홍접을 힐긋 보더니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정(絶情), 천우와 한 번 더 붙어보고 싶지 않아? 그게 원신이 소멸되기 전 너의 가장 큰 바람이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