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18
말을 마친 그가 손을 꽉 쥐자 허이국은 실실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욕을 지껄이며 선검 안으로 돌아갔다. 거마족 선조는 선검을 다시 저물대에 넣었다.
‘이렇게 기이한 검혼은 잘 다뤄줘야지. 영석이든 여자 수련자든 원하는 것은 전부 줘야겠어. 그럼 나를 배반하지 않겠지. 게다가 봉란의 혼을 가진 이상 이 검혼은 절대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지.’
거마족 선조는 속으로 냉소하며 두 눈을 감고 수련을 시작했다.
봉란의 혼은 그가 우연히 얻은 어느 법보 안에 들어 있던 영혼으로 그 아름답고 음란한 기운에 하마터면 그 자신도 미혹될 뻔했다. 다행히 그 영혼은 여기저기 망가진 상태라 위험은 면했지만 아직도 그 영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컸다.
선검을 얻은 후 그는 허이국을 통제하기 위해 봉란의 혼을 불러낸 적이 있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허이국은 봉란의 혼을 보자마자 미혹되어 늑대처럼 변해 달려들었다.
선조가 나타나다
거마족 선조가 코빼기도 비치지 않자 한제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거마족의 땅은 너무 넓고 산도 많아 마음먹고 숨은 자를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를 뒤져볼 각오까지 한 그 순간, 한제는 북쪽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담겼다.
“허이국⋯⋯.”
한제는 곧장 북쪽을 향해 질주했다.
3성급 고대신의 몸으로 비행한 덕분에 속도는 한층 빨라져서 순식간에 거마족 땅 북쪽의 평원에 도착했다.
신식으로 사방을 훑은 한제는 지하 1만 척 깊이에서 얇은 한 층의 장애물을 발견했다. 신식을 통해 그것에 접근할 때마다 약간씩 비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제는 오른손을 꽉 쥐며 작게 기합을 넣었고 순식간에 지면을 뚫고 들어갔다.
쾅!
하늘을 뒤흔들 듯 거대한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대지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일었다. 그 균열들은 미친 듯이 퍼져나가며 눈 깜짝할 사이에 1천 척 반경까지 확산되었고 동시에 아래쪽으로도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지하 깊은 곳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참 뒤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다시 한 번 주먹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격렬한 진동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대지는 용이 포효하는 듯 거대한 소리를 냈다.
한제는 또다시 주먹을 내리쳤다.
펑!
거마족 평원은 곧장 붕괴했다.
움푹 파인 구덩이에서 한 줄기 푸른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천우!”
중년의 그 사내는 한제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이렇게 일찍 만날 줄은 몰랐거늘. 허나 네가 찾아온 이상 너를 죽여 버리고 말겠다.”
말을 마친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번개 같은 속도로 한제에게 달려들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한제는 물러나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며 거마족 선조를 향해 돌진했다.
펑!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무수히 많은 지면의 돌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수십 척 뒤로 물러난 거마족 선조의 오른손 뼈에 줄무늬가 나타났다. 그는 무척 당황한 모습이었다.
한제 역시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주먹 쥔 손도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거대한 힘이 체내로 밀려들며 온몸을 찢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얼른 원신을 통해 그것을 저지했다.
“거마족의 신체 단련술은 과연 현묘하군!”
한제는 피식 웃더니 다시 앞으로 달려들었다.
거마족 선조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아직 육신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라 실력의 8할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8할이라고 해도 그의 몸은 거마족 특유의 기질 덕에 매우 강건했다. 심지어 법보들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었다.
한데 한제와의 충돌로 자신의 가장 단단한 뼈에 줄무늬가 나타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공법을 수련한 것이냐!”
거마족 선조는 어두운 낯빛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한제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가 주먹을 날리자 기류를 타고 견고하고 질긴 실들의 허상이 나타나 그의 몸을 속박하기 시작했다.
거마족 선조가 눈을 번득이고 크게 기합을 넣으며 몸을 날리자 그 기류와 실들은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그는 땅을 박차 몸을 날려 한제를 향해 또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쾅!
또 한 번 하늘을 뒤흔들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충돌로 거마족 선조는 얼굴을 붉히며 빠르게 물러났다. 한제 역시 오른손에서 통증을 느꼈고 수십 척 물러난 후에야 겨우 멈추었다. 그는 내심 감탄했다.
새로운 육신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니… 심지어 3성급 고대신보다 조금 약한 수준으로 그가 새로운 몸에 적응을 마친다면 3성급 고대신이라 해도 그를 대적할 수는 없을 터였다.
거마족 선조의 얼굴은 더욱 어두웠다. 그가 상대의 도발에도 끝까지 나서지 않았던 것은 상대가 열두 개의 검은빛 기둥을 해치운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힘을 가진 상대에게 대적하기 위해 새로운 육신에 적응을 마칠 생각이었다.
한제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거마족 선조가 낮게 기합을 넣자 그의 몸이 부풀더니 1백 척이 넘는 거인이 되었다. 그는 체내의 선력을 조정해 금색 빛 한 줄기를 밖으로 쏘아 보냈다. 그의 선력은 이원봉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거마족 선조는 자신의 힘으로 영변기에 이른 자였다.
“육신에 적응을 마치기 전까지는 선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네놈이 날뛰는 꼴을 보자니 죽이지 않을 수 없겠구나.”
거마족 선조는 온몸에서 눈부신 금빛을 번쩍이며 몸을 훌쩍 날렸다. 그 순간, 하늘은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 같은 소리를 냈고 주위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일었다. 그 균열에서 소멸의 기운을 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주먹에는 강력한 선력이 담긴 무궁무진한 금빛이 어려 있었다. 영변기 수련자가 전력을 다해 날리는 일격이었다. 거마족에게 가장 좋은 무기는 그들의 몸이었다. 지금 그의 주먹은 거마족 전체에서 가장 강한 공격인 셈이었다. 지금 몸 상태로 선력을 사용하면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그의 육신이 버텨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먹질 한 번에 거마족의 땅 북쪽 평원이 곧장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지는 무수히 많은 모래와 자갈로 부서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한제는 위기감을 느꼈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가 낮게 기합을 넣자 미간에서 세 개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며 보라색 기운을 뿜어냈다. 그 보라색 기운은 한제의 몸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뒤쪽에 고대신의 허상이 다시 나타났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주먹을 가볍게 앞으로 뻗었다. 고대신의 허상 역시 거대한 주먹을 들어 올려 한제와 거의 동시에 공격을 날렸다.
거마족 선조의 주먹과 고대신의 주먹이 연속으로 맞부딪혔다.
쾅, 쾅, 쾅!
거마족 선조는 창백해진 얼굴로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위기에 몰린 순간, 그는 재빨리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거머쥐었다.
“이한제, 죽어라!”
그는 선검을 힘껏 휘둘렀다.
한제의 몸은 마치 유성처럼 저 멀리 밀려 났다. 오른팔 전체가 시큰거리고 저려왔으며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의 선력과 육신의 폭발력이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1백 척에 달했던 한제의 몸은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그 눈빛만큼은 전보다 더욱 번득였다.
선검에서 무수히 많은 검은 빛이 나타나 허이국의 모습을 이루었다. 거마족의 선조는 흉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죽여!”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이국이 날카롭게 외쳤다.
“이한제, 내 복수다.”
선검은 강렬한 검기를 번득이며 하늘과 땅을 통째로 가를 듯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마족 선조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한제, 네 것이었던 법보가 너를 베는 모습을 내 똑똑히 보겠다.”
허나 한제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한제는 달려드는 검기를 피하지 않고 허공에 대고 선검을 가리켰다. 순간, 선검의 검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거마족 선조의 표정이 급변했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겨우 반 발짝 정도 움직이는 데 그쳤다.
검광이 번쩍이고 선혈이 흩날리더니 거마족 선조의 왼팔이 뎅겅 잘려 나갔다. 그는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피범벅이 된 채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허이국! 난 분명 너를 제련했다. 너를 태양의 불로 제련했단 말이다.”
거마족 선조가 미친 듯이 포효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육신에 완전한 적응도 하기 전에 억지로 선력을 쓴 탓에 내상까지 입었다. 그는 재빨리 도주했다.
허이국이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이 녀석아, 네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나의 주인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나 허이국은 충절을 꺾지 않는다.”
말을 마친 허이국은 몸을 돌려 한제를 보며 실실 웃었다.
“주인님, 어떻습니까? 저 잘했지요?”
한제는 웃으면서 한손으로 선검을 쥐고 거마족 선조를 추격하며 외쳤다.
“잘했어. 저자를 죽이고 올 테니까 기다려. 그럼 역외전장으로 가서 충분한 유혼을 흡수하게 해줄게.”
허이국은 너무도 기뻤다. 사실 그는 지난 2년 동안 몇 번 흔들렸다. 거마족 선조는 분명 그에게 잘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제를 떠올리면 그 유혼들과 다른 마혼들이 덩달아 떠오르며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에 변절의 유혹을 접을 수 있었다.
더구나 한제가 돌아오면 분명 엄청난 학살을 저지를 것이고 거마족 선조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공연히 여기저기 들러붙었다가는 죽음을 면키 힘들었다.
거마족 선조가 지난 2년 동안 자신에게 잘 대해줬던 것이 떠오르자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자 한제가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 한스러웠다. 그런 생활을 더 즐길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늦게 오면 좋지 않았겠는가?
특히 그 선녀의 혼을 떠올리자 애가 탔다.
“걱정 마. 내가 반드시 너를 불바다에서 구해줄 테니!”
사실 허이국이 망설임 없이 거마족 선조를 배신한 것은 한제에 대한 깊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봉란 때문이기도 했다. 봉란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반드시 그녀를 거마족 선조에게서 구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그 약속이 떠오른 허이국은 얼른 한제에게 말했다.
“주인님, 저자의 저물대에 법보가 하나 있습니다. 법륜인데 거기에 혼백 하나가 깃들어 있거든요. 저자를 죽인 다음에 그 혼백을 꼭 좀 구해주세요.”
한제는 거마족 선조를 뒤쫓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거마족 선조는 끊임없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분노는 대부분 허이국 때문이었다. 지난 2년 동안 그토록 잘 대해주고 심지어 자신이 봉인하고 있던 음란한 혼백까지 내주었건만 배반을 하다니…
“허이국, 널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
거마족 선조는 고함을 내지르며 더욱 빠르게 도망쳤다.
한제는 두 말 않고 선검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검기가 휙 하고 쏘아졌다.
거마족 선조는 몸을 날려 검기를 피한 뒤 계속해서 돌진했다. 곧 그는 거마족 땅의 동쪽 끝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는 맹렬하게 몸을 돌리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검은색 나무 몽둥이가 나타났다. 그는 기합을 넣으며 몽둥이를 쥐고 휘둘렀다. 그러자 한 덩어리의 검은색 화염이 그 위에서 나타났고 몽둥이는 횃불이 되었다.
“이한제, 이곳이 바로 네가 묻힐 곳이다. 네 몸은 내가 잘 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