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2
그중 중년에 접어든 검은 옷의 남자는 허공에 멈춰 서서 자신의 기운을 사방에 풍겼다.
그의 발아래 번득이는 녹색 비검은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마음이 들게 했다.
“사형, 나 꼭 도와줘야 해요. 흑수정 마수를 잡으면 뒷산의 수련장을 이용할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중년 남자 곁에 선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목소리가 낭랑했다. 그녀는 바로 이산을 남몰래 좋아하던 서 씨 성을 가진 여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풋풋했던 소녀는 이미 여인이 되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중년의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 힘내라고. 난 사매를 도와주고 다시 속세와 연을 끊은 채 수련을 해야 하니까.”
곁에 있던 여덟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은 여자에게 딱 붙은 채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사형, 사저! 너무 빨리 날아서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우리 얼른 내려가요.”
서 씨 여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제, 죽어도 따라오겠다고 야단 피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불만이야?”
중년 남자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고난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해서야 어찌 신선이 될 수 있겠어?”
소년은 그 중년 남자가 두려운지 얼른 순순히 대답했다.
“사저, 제가 잘못했어요.”
서 씨 여인은 소년의 이마를 톡톡 건드리며 웃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흑수정 마수만 잡고 돌아가자.”
소년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끝내 한마디 내뱉었다.
“사저야 우리 현도종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니까 이해 못 할 거예요. 4년 만에 응기 4단계에서 7단계로 진입하다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이번에 흑수정 마수를 잡으면 문파의 고수로 도약하실 텐데 그럼 또 오산해 사형이 저를 속이려고 하면 도와줄 수 있죠?”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쓰게 웃었다.
“진짜 천재는 류풍 사형이지. 류풍 사형은 곧 대사형의 수준에 이르러 13단계를 돌파할 거야. 류미 사저도 12단계에 진입했다지? 그들은 현도종의 원년 제자이니 뒷산에 들어갈 자격이 있지만 난 아냐. 대산파 출신이라 쟁탈전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어야 하지. 이번 시합에 이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곁에서 듣고 있던 중년 남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류풍이야 뒷산 수련장을 이용했으니, 그리 발전이 빠른 거지. 당시 시조님께서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류풍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수준을 올리지는 못했어.”
서 씨 여인은 우아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사형, 여기 말이에요, 4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어째서 4년 만에 이렇게 많은 마수들이 이곳에 모여들게 된 걸까요?”
★ ★ ★
중년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아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저기는 원래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영기가 풍부해졌으니 말이야. 덕분에 마수들도 모여들고 있고…”
소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사형, 이곳에 보물이 있는 건 아닐까요?”
중년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 생각하시는 장로도 있지. 허나 아무리 찾아봐도 지하에 영기가 분출되는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뿐.”
소년은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쉽다. 정말 무슨 보물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중년 남자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주의를 돌렸다.
“너무 시간을 끌었군. 어서 흑수정 마수를 잡아서 돌아가지.”
말을 마치고 신식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땅에 있는 여러 마리의 마수들 중 예닐곱 마리의 흑수정 마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때, 땅 위에 있던 마수들이 뭔가에 깜짝 놀란 듯 우왕좌왕하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처음에는 몇 마리가 그르렁거리는 정도였으나 이내 모든 마수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마수들의 눈은 모두 한곳, 이끼로 가득 덮인 바위벽을 주시하고 있었다.
흠칫 놀란 중년 남자가 일행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려던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그의 신식에 포착되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다른 누군가가 신식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응기 12단계인 그가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곁에 있던 서 씨 여인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충격 때문인지 그녀의 발아래 있던 빛이 순간 흐려졌고 그녀는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소년을 끌어안았다.
중년 남자를 받치고 있던 빛도 깜빡거렸다. 자기 자신도 건사하기 힘들었으나, 그는 전력을 다해 추락하던 두 사람을 붙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서 땀이 솟았다.
땅에 내려선 그는 곧장 포권을 취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현도종의 제자 인해입니다. 선배님께서 이곳에서 참선하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몽매한 후배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서 씨 여인도 얼른 상황을 파악했다. 좀 전에는 자신을 훑고 간 신식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얼른 마음을 진정시키고 공손히 입을 열었다.
“현도종의 제자 서희입니다.”
소년은 사색이 되어 여자의 뒤에 딱 달라붙어서는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수들도 덜덜 떨었고 심지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현도종이라.”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거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중년 남자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혼자였다면 상황을 살피다가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 사부에게 고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거둬야 할 사제와 사매가 있었다.
그는 그저 상대가 현도종이 가까이 있음을 깨닫고 세 사람을 무사히 보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한참 동안 침묵했다. 중년 남자의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만약 상대가 공격을 해온다면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아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희의 이마에서도 땀이 배어나왔다. 그녀도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으나, 한참 망설이던 끝에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선배님의 수련을 방해할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친 목소리는 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가 잠시 망설인 뒤 말했다.
“방금 그 목소리는 서 씨?”
서희는 흠칫 놀라면서도 공손히 답했다.
“예, 제가 서 씨입니다.”
그 목소리는 다시 침묵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그 목소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곳을 떠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이상한 기운이 훅 끼쳐오더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세 사람을 밀어냈고 그 엄청난 힘에 세 사람은 나부끼는 낙엽처럼 붕 날아갔다.
중년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온몸이 굳은 듯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상대에게 공격 의지가 있었다면 자신은 절대 살아나가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는 서희와 소년을 붙잡고는 온몸을 옥죄던 느낌이 사라지자마자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상대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세 사람이 떠난 뒤, 이끼와 덩굴로 가득 뒤덮인 바위가 청아한 소리를 내며 스르륵 열렸다. 그 안쪽의 시커먼 동굴에서 머리가 허리까지 닿은 장발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그가 동굴 밖으로 나온 순간, 엎드려 있던 마수들이 구슬프게 울며 덜덜 떨었다. 그들의 눈에는 애원하는 듯한 빛이 어려 있었다.
장발의 남자는 스물을 갓 넘긴 듯했으며, 표정은 차가웠다.
담담한 눈빛으로 마수들을 훑어본 그는 조용히 대산봉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바로 4년 동안 속세와 연을 끊고 수련에만 몰두했던 한제였다.
“축기로 접어드는 것은 정말 더럽게도 어렵군요. 진짜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는 겁니까?”
한제는 번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결정했어? 내가 알려준 방법을 쓰기로?”
사도환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계속 말했잖아. 축기에 진입하기란 굉장히 어렵지만 내가 알려준 방법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니까.”
한제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축기의 고수를 처리하는 건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역부족인 거 알잖아요. 하물며 생포를 하라니…”
그러자 사도환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내가 힘 좀 써주지. 적당한 기회만 잡으면 상대를 생포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하지만 축기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상대를 골라야 해. 그래야 원영의 정화를 지나치게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 한숨을 내쉬며 쓰게 웃었다.
“그 탈기법이라는 걸 쓰면 당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거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신선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남의 이익을 빼앗아 자신의 그릇을 채우는 건 당연한 일이야. 이렇게 나약한 정신 상태로 언제 영변 단계에 진입할래? 흥! 싫으면 하지 말거라!?
그럼 품질이 좋은 나무 속성의 재료를 구해 천역주의 등급을 올리던가. 아니면 원영기의 고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 어디 한번 잘해봐.”
불만스러운 듯한 사도환의 목소리에 잠시 고민하던 한제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축기에 진입하는 겁니까?”
“보통은 원영기의 고수가 돕지. 내가 육신만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거야. 우리나라에서 원영기는 축기에 해당하거든. 원영기에 이른 사람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각 문파의 제자들을 돕기에는 충분할 정도니까.”
한제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4년의 수련 기간 중 2년 만에 응기 15단계를 꽉 채웠고 그 후의 2년은 축기에 진입하기 위한 수련에 전념했지만 안타깝게도 여태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꿈속 공간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점점 좁혀져 이제는 현실 세상에서도 응기 8단계 정도의 실력자로 보였다.
“축기.”
중얼거리던 한제가 결심한 듯 저물대를 두드리자 호화로운 비검이 나타났다. 이 비검은 영혼이 깃든 듯 한제의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그 비검 위에 올라타 몸을 빙그르르 돌린 한제는 순간 무지개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땅에 납작 엎드려 있던 마수들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얼른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