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25
천도(天道)의 강림
주작성의 이번 난리는 한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지금 그는 모완의 원영을 무사히 깨우기 위해 천도에 대한 두 번째 저항을 준비하느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완의 원영이 깨어날 때까지는 아직 2년이 더 남아 있었다.
은혜는 지난 2년 동안 거의 말이 없었다. 그녀와 한제 사이에 한 층의 깊은 골이 생긴 듯했다.
한제는 그녀의 몸에서 모완의 원영이 깨어나려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은혜의 육신이 가진 생기도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생기가 모두 사라지는 그 순간이 바로 모완의 원영이 은혜의 혼백을 모조리 흡수할 때였다.
하지만 모완의 원영이 자라나는 속도는 최근 1년 동안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자라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듯, 은혜의 혼백을 흡수하고 싶지 않다는 듯…
한제는 그것이 모완의 원영이 약간의 지능을 회복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그녀는 무고한 아이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이 살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제의 선택은 아니었다.
한제는 자신의 영력으로 모완의 의지를 막았고 그녀의 원영을 계속해서 자라나게 했다.
“모완아, 네가 이 아이를 흡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날 믿어. 내가 다 잘 처리할게.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할게. 네가 깨어나고 나면 함께 이 아이를 아이의 부모 곁으로 돌려주자.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의 몸이 아닌 네 원영이야.”
이것이 한제의 약속이었다.
한제는 모완에게 거짓말을 했다.
모완을 보호하면서도 은혜의 혼백을 흩어지지 않게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사전에 은혜의 혼백을 뽑아내 버리면 혼백을 잃은 육신은 그 순간부터 죽음의 기운을 생성할 것이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모완이 그 기운에 버텨내기도 힘들거니와, 버텨낸다 해도 신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심지어 원영이 붕괴되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에 은혜의 혼백을 뽑아버릴 경우 천도윤회가 강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은혜의 혼백이 사라지면 모완의 원영은 발가벗겨진 듯 천도의 눈에 띄게 되기 때문이다. 모완의 원영이 미처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도의 영향을 받는다면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모완의 원영으로 갓난아이의 육신을 점거해두고 아이의 성장에 따라 모완 자신의 혼백을 점점 성장시켜 나감으로써 천도를 피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이제 은혜의 혼백을 흡수해야만 이 모든 변수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제는 4년이나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지만 커다란 응어리가 남았다.
은혜와 모완 중 그에게 누가 더 중요한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한제는 이미 은혜를 희생시켜 모완을 살려내기로 결심했다.
잔인한 선택이었지만 한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5백 년 동안 수련을 해온 그의 마음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굳었다. 4년 동안의 고민을 거친 끝에 그의 마음은 무쇠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은혜, 네가 죽은 뒤 너희 주 씨 가문을 10대에 걸쳐 부귀하게 만들어주고 초나라의 권력도 쥐어줄게. 그게 너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한제는 멀찍이 떨어진 돌 위에 앉아있는 은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한제의 목소리에 은혜는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 멀리 떨어진 곳에 서있는 한제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2년마저 하루하루 흘러갔고 천도가 강림할 날도 점점 가까워졌다.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월성(月星)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제는 그동안 주작성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주작성은 전쟁의 화마에 뒤덮였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선유족은 처음부터 구엽(九葉) 이상의 수련자 넷을 출동시켰다. 그들은 문정기 수련자에 상당하는 강력한 힘으로 주작성의 수련국과 맞섰다.
동시에 놀라운 소식이 연이어 주작성에 퍼져 나갔다. 그 대부분은 누군가의 배반이었다. 각 수련국의 거물과 각 종파의 시조 몇몇이 주작국을 배반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배반으로 주작국은 대부분의 중요한 전투에서 번번이 패퇴했다.
이때 또 하나의 소식이 주작성에 퍼져나갔다.
아주 오래 전 선유족은 한 가지 비술(秘術)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량의 선유족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한 명의 선유족을 보통의 수련자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선유족은 총 아홉 명의 부족원을 전환시켰고 이들은 선유족을 떠나 각자 다른 수련자 문파로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선유족의 이번 거동에서 발휘할 수 있는 필살기였다.
지금 월성은 주작성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평안했고 그러는 사이 2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앞으로 3개월만 더 있으면 천도의 날이었다.
은혜는 지난 1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하루의 반 이상을 잠으로 보냈다. 소백은 슬픈 눈으로 시종일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소자는 이런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한쪽에 엎드려 멍한 눈으로 소백과 은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제는 줄곧 신식을 은혜에게 고정한 채 모완의 원영을 살폈다. 동시에 그는 체내의 영력을 조정하여 자신의 몸을 매순간 최고의 상태로 만들었다. 언제든 천도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용암이 흐르는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본체 역시 자신의 상태를 최고조로 조절했다.
은혜는 잠을 자는 동안 항상 중얼중얼 잠꼬대를 했다. 때로는 ‘아저씨, 나 무서워’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이런 말조차 점점 줄어들었다.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고 웅얼거리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살이 된 은혜는 절세의 미녀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수하고 티 없는, 맑은 소녀였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은혜는 긴 잠에서 한 번도 깨어나지 못했다. 모완의 원영은 이미 그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소백과 소자 역시 한제에 의해 봉인되었다. 모완의 소생에 영향을 끼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신이 은혜 곁을 지켰다.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찌르는 듯 아팠다.
“아저씨⋯⋯.”
“아저씨,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아저씨, 약속해. 나한테 큰 호랑이 한 마리 잡아주기로⋯⋯.”
“아저씨, 무서워. 내 몸속에 있는 그 작은 사람 좀 내보내줘.”
은혜에 대한 기억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잠시 후, 한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시간은 천천히 흘러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한제는 모완의 원영이 곧 깨어날 것임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은혜의 혼백을 삼키고 있었다.
이때, 월성의 하늘에 갑자기 회색 구름이 뭉게뭉게 모여들었다. 이 구름은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 곧장 대량으로 응집되었다. 그리고 그 구름층 속에서 익숙한 한 줄기 눈빛이 나타났다. 19년 전 마주했던 천도윤회의 사자(使者)가 다시 한 번 강림한 것이다.
그 눈빛은 한제를 지나 은혜의 몸을 훑었다. 그리고 맹렬히 번득였다. 동시에 거대한 팔이 구름 속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쑥 빠져나왔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리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앞으로 쏘아 보냈다. 순간, 하늘이 번쩍 하더니 생사윤회의 축이 나타났다. 한제가 낮게 소리쳤다.
“사라져라!”
짙은 회색 기운이 그 족자 속 산수화로부터 발산되어 한제 앞에 모여들었다. 이때, 천도윤회의 사자가 뻗은 거대한 팔이 그 회색 기운과 충돌했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생사윤회의 축이 발산한 회색 기운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사자의 거대한 팔은 뒤로 튕겨 나갔다.
한제는 서늘한 눈을 번득였다. 땅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그의 본체가 튀어나와 거대한 팔을 향해 달려들더니 오른손을 매섭게 휘둘렀다.
펑!
또 한 번의 거대한 소리에 대지가 뒤흔들리고 하늘이 붕괴했다. 사자의 팔은 본체의 주먹질에 붕괴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넌 모완의 혼백을 가져가지 못한다.”
구름층 속의 눈빛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으나 이번에는 그 안에서 두 개의 팔이 쑥 빠져나왔다. 그 팔에는 붉은 빛이 흐르고 있었다.
한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번에는 천도윤회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팔은 각각 한제와 본체를 움켜쥐려 했다.
본체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몸을 1백 척이 넘게 부풀렸다. 그의 미간에서 세 개의 반점이 미친 듯이 회전했다. 본체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달려드는 거대한 팔에 맞서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맹렬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본체는 전신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뒤로 밀려나 어느 산봉우리에 충돌했다. 그의 몸에 부딪힌 산은 곧장 재로 변해 흩어졌다.
사자의 거대한 팔 역시 다시 물러났지만 이번에는 흩어지지 않았다.
한제는 다른 쪽 팔이 달려들던 순간 두 손으로 결인을 해 앞을 가리켰다. 순간 하늘에 떠 있던 생사윤회의 축이 휘릭 말리더니 하늘에서 내려와 한제의 앞을 막고 섰다.
그 거대한 팔은 그림을 움켜쥐었다가 살짝 움찔하더니 그 족자를 가지고 가려고 했다.
“진동!”
한제는 새빨개진 두 눈을 번득이며 소리쳤다.
생사윤회의 축은 곧장 진동했고 그 위에서 대량의 회색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림을 움켜쥐었던 팔 역시 덜덜 진동하며 하얀 안개를 한 줄기 피워 올리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림을 놓고 움츠러들었다.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구름 안의 두 눈은 한제 뒤에 있는 은혜를 힐긋 보더니 두 팔을 거두어 앞쪽을 확 찢었다. 그러자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구름들이 둘로 나뉘었고 그의 거대한 얼굴이 드러났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위엄 그 자체였다. 그를 보자마자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주시하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회색 빛 한 줄기가 그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거대한 조종간을 만들었다. 그 조종간이 나타나자마자 하늘의 색이 변하고 대지가 진동했다.
한제를 중심으로 수많은 균열이 수만 리 범위까지 빠르게 뻗어나갔다.
하늘에도 많은 균열이 일어났다. 이 균열들은 하나로 연결되면서 금방이라도 붕괴될 듯한 조짐을 보였다.
한제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본체를 움직여 합체했다.
하늘의 거대한 얼굴은 한제를 본 척도 않고 팔을 뻗어 조종간을 밀었다. 순간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엄청난 힘이 천지를 뒤덮었다. 한제에게는 익숙한 윤회의 힘이었다.
그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 사방을 뒤덮은 윤회의 힘이 갑자기 사방팔방에서 응집되어 모두 한제에게 향했다. 순간 그 윤회의 힘은 철창이 되어 한제의 몸을 속박했다. 한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이때, 그 거대한 팔이 조종간을 민 뒤 빠르게 뻗어 나왔다. 그 목표는 은혜였다.
“안 돼!”
한제는 입도 뻥긋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지난 19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한 것은 오직 이 날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은혜의 몸으로 뻗쳐오는 천도의 손을 뜬눈으로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 손이 모완의 원영을 데리고 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