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27
그러나 은혜의 얼굴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외려 그녀는 잔뜩 흥분해 손에 쥐고 있던 열매를 내팽개치고 소백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소백, 이번에는 제대로 봐야 해. 아저씨를 찾아내자고!”
소백은 눈을 까뒤집은 채 낮게 포효하며 거대한 지렁이를 보았다.
백 척이 넘는 지렁이는 몸을 훌쩍 날리며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녀석의 속도는 너무도 빨라 비린내가 실린 바람이 먼저 훅 끼쳐왔다. 쩍 벌린 녀석의 커다란 입 안에는 예리한 이빨이 셀 수도 없이 많아 한 번 물리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은혜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흥분한 듯 고개를 들어 커다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심지어 소백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그 거대한 지렁이가 쉭 소리를 내며 달려든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붕붕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은혜의 앞에 떨어졌다.
그것은 거대한 흡혈 마수였다. 흡혈 마수는 서늘한 빛이 번득이는 예리한 주둥이를 지렁이의 몸에 꽂아 넣었다. 지렁이는 지면 아래에 남아 있던 반 정도의 몸까지 드러내 흡혈 마수를 하늘로 밀어버렸다.
흡혈 마수는 다시 몸을 움직여 주둥이를 휘둘러 지렁이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쭉 빨아들였다. 지렁이는 곧장 쪼그라들었다. 녀석은 피와 살, 정화까지 모두 흡혈 마수에게 흡수되었다.
흡혈 마수는 지렁이 시체를 쾅 하고 내던지더니 고개를 숙여 은혜와 소백을 힐긋 본 뒤 다시 날아올랐다.
“소백, 쫓아가! 빨리 쫓아가!”
은혜가 얼른 외쳤다. 소백 역시 망설이지 않고 얼른 달려갔다.
도심(道心)
흡혈 마수는 1년 전 한제가 떠날 때 은혜의 안전을 위해 남겨둔 존재였다.
한제는 은혜를 보고 싶지 않았으나 이 위험한 곳에 아이 혼자만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1년 동안 흡혈 마수는 이미 수차례나 은혜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은혜 역시 처음에는 그것을 보고 상당히 무서워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 흡혈 마수를 한제 보듯 하고 있었다.
은혜는 1년 전의 일은 물론 자신의 체내에 모완의 원영이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그런 일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한제가 그녀의 혼백을 다시 그녀의 육신에 돌려놓을 때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다.
은혜는 무고한 아이였다. 그녀는 모완의 소생이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 한제 역시 아무 데나 화풀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에 은혜의 기억을 지우고 그녀에게 완전한 인생을 주기로 했다.
다만 한제의 마음만은 여전히 1년 전 그날에 잠겨 있었다. 그는 아직 은혜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1년 전 깨어난 은혜는 직접 한제를 찾아 나섰다.
월성은 한제에게는 좁은 곳이었지만 은혜에게는 매우 넓은 곳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소백과 함께 월성의 반 정도를 돌아다녔다. 여태 한제의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었지만 은혜는 자신이 그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백의 속도는 흡혈 마수에 비하면 한참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흡혈 마수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은혜는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 저 커다란 마수가 가장 먼저 달려올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흥! 정말 빠르네. 아니면 소백 네가 너무 느린 건가?”
은혜가 화가 난 듯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백은 비굴하게 포효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하늘에서 날으니까 그렇지. 땅에서 달린다면 내가 더 빠를 걸.
은혜가 막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미풍이 불어왔다. 그 미풍은 따뜻했다. 은혜는 흠칫 놀라며 사방을 둘러보더니 소리 죽여 말했다.
“소백, 이상하지 않니? 사나흘에 한 번씩 이렇게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몸에 닿을 때마다 몸이 따듯하게 데워지고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아.”
소백은 머리를 흔들며 낮게 포효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은혜의 여정은 계속되었지만 한제는 산꼭대기에서 신식을 거두고 있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정신을 놓았지만 은혜의 안전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때때로 신식으로 그녀를 살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은혜의 체내에 한 줄기 영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녀가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매우 맑았다. 이는 생사의 본질을 꿰뚫는 눈빛으로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생사의 경지는 원래 이런 것이구나. 세상 만물 중 내가 파악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파악할 수 있어.”
한제는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하늘의 구름이 움직여 한제의 손안에서 응집되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만 한 구름 공이 만들어졌다. 그 구름 공 안에서는 번개가 번쩍거렸다.
구름 공 안의 거대한 힘을 느낀 한제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후 내쉬었다. 이 구름 공 하나면 모든 화신기 수련자는 물론이고 이원봉이 다시 살아 돌아온대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했다.
“생사의 경지가 절정에 이르렀고 수준이 화신기를 돌파해 이게 영변기 수준을 반 발짝 앞두고 있다.”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구름 공을 흩어버렸다.
“영변기를 준비해야지!”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영변기 수련자는 진정한 신통자로 어느 수련성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거마족 선조는 영변기 초기에 불과했는데도 거마족의 영수가 되었다. 이원봉은 남에 의해 영변기에 이르렀음에도 설역국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했다.
문정기 수련자는 대부분 항상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데다가 그 수도 매우 적으며 세상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때문에 영변기 수련자야말로 한 수련성의 핵심 세력을 이루었다.
그것이 바로 영변기 수련자였다.
아마도 천운자는 자신이 약간의 호감을 느꼈던 화신기 언저리 수준의 수련자가 겨우 2백 년 만에 영변기를 목전에 두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가 지금 이 상황을 알고 있다면 한제를 수련생이 아니라 직계 제자로 삼아 천운종에 뿌리를 내리게 했을 터였다.
“사도환, 영변기에 이르면 당신을 소생시킬 힘이 생길 겁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잠시 후, 그의 몸은 점점 석주 공간으로 들어갔다.
한제는 석주 공간 중앙에 떠 있는 사도환의 원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두 팔을 흡수한 뒤 사도환의 원영은 실체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위압감도 발산되었다. 그 위압감은 이전에 만났던 둔천에게서 느꼈던 위압감보다 수백 배는 더 강했다.
“사도환.”
한제는 묵묵히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석주 공간 동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원영이 하나 있었으나, 이 원영은 두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온몸은 무수히 많은 영력의 액체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액체는 끊임없이 원영 안으로 스며들었다.
“완아.”
한제의 두 눈에 깊은 정이 담겼다.
모완을 감싼 영력의 액체는 석주를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한제는 지난 1년 동안 이 액체들을 모았다. 액체가 있으면 모완의 원영을 회복시키고 더욱 실체화시킬 수도 있을 터였다.
“완아, 너는 나를 3백 년 동안 기다렸는데 나는 네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나는 네가 깨어날 때까지 너를 보호할 거야. 만약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한 번의 기적이 생긴다면 난 기다릴 거고 지킬 거야. 1년이든, 10년이든, 1백년이든, 1천년이든 이 삶이 다 할 때까지, 내 혼백이 다 흩어져버릴 때까지…”
한제는 모완의 원영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부드러운 눈빛은 시종일관 모완의 원영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옛날 모완과 함께했던 장면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억은 손안의 물 같아서 아무리 꽉 쥐려 해도 결국에는 그 틈으로 흘러내려 버렸다. 하지만 그 물의 차가움만은 영원히 잊히지 않았다.
한제는 모완의 원영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모완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한제의 입술을 그의 온도를 느꼈다. 절대 변하지 않을 마음과 의지를 담은 온도였다.
애정은 한 줄기 강과 같았다. 왼쪽 강변에서는 밝은 횃불 아래 천 년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오른쪽 강변에서는 촛불 아래 영원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에서 흐르는 것은 희미한 적막이었다.
한제는 몸을 돌려 석주 공간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의 마음만은 이곳에 머물렀다.
★ ★ ★
깊은 밤, 별빛이 쏟아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선 고독한 인영은 그 바람에 금방 휩쓸려갈 것만 같았다.
허나 바람에 휩쓸려가는 것은 슬픔이었다. 마음 둘 곳을 잃은 사람의 적막함은 바람도 앗아갈 수가 없었다.
고독한 인영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얼굴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 ★ ★
산꼭대기의 한 동굴에서 한제는 저물대에 들어 있던 모든 선옥을 사방에 꺼내놓고 그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모든 잡념을 거둔 채 호흡했다. 지금 그의 수준과 경지의 수준은 화신기 후기 절정을 넘어 이제 곧 영변기에 이를 때를 앞두고 있었다.
영변기는 모든 수련자들이 갖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목표였다. 영변기에 이르면 경지의 힘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 위력은 불가사의한 정도에 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선력을 흡수할 수도 있었고 신통력 역시 선력을 함유해 그 위력이 무궁무진해진다.
상고 시대 선계가 붕괴하기 전에는 영변기 수련자가 차고 넘쳤지만 선옥이 상당히 희귀해진 현재 영변기 수련자는 일종의 패주와 같은 존재였다.
화신기 수준에서 영변기 수준에 이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옥의 개수였다. 선옥이 많을수록 짙은 선기를 흡수하여 영변기에 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변기 수련자가 되는 데에는 경지의 힘도 큰 관련이 있다. 만약 경지의 수준이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면 절대 영변기에 이를 수 없었다.
천도에 대한 깨달음 역시 영변기 수련자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한제의 경지는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었고 천도에 대한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달랐다. 천도 윤회의 사자가 고대신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도에 대해 약간 의심하기 시작했다.
“천도란 무엇인가?”
한제는 이전까지 천도를 일종의 법칙으로 알고 있었다. 소멸의 법칙처럼 세상에 적용되는 법칙. 일반인들 사이의 율법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천도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수련자는 그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천도의 범위에서 살짝 벗어나 있을 뿐, 자신이 천도를 대체하거나 그것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굉장히 적었다.
하지만 지금, 그 고대신을 본 한제는 천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의 눈앞에는 하나의 커다란 의심이 있었다. 다만 이 의심은 굉장히 컸고 지금 그의 머리로는 상세하게 풀어낼 수가 없었다.
“천도⋯⋯ 흥미롭군!”
한제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온몸의 모공을 열고 전력을 다해 사방의 선옥에서 풍기는 선력을 흡수했다. 사방에서 용솟음친 짙은 선기가 그의 체내로 뚫고 들어왔다.
지난 몇 번의 선기 호흡과 비교해보면 이번에는 느껴지는 고통도 또렷했으며 몸도 미세하게 경련했다. 선력이 체내를 채우면서 원래 그의 체내를 채우고 있던 영력을 억눌렀다.
서로 다른 두 가지 힘은 물과 불처럼 서로 섞이려 들지 않았다. 한제의 체내를 전장으로 삼아 서로에게 힘껏 대항하고 있었다.
한제 체내의 영력은 매우 많고 거대했기에 처음 그의 몸으로 흘러드는 선력은 많지 않았다. 영력에 부딪혀 흩어져 버리는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선기가 흘러들면서 영력은 천천히 저항력을 잃어갔다. 총량은 영력이 훨씬 많았지만 본질적인 힘의 차이가 컸다. 한 줄기 선력의 힘은 결단기 수련자의 체내 영력 전체에 맞먹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력은 자연히 물러나게 되었다.
화신기 수련자가 영변기 수련자로 전환될 때 체내의 영력에 생기는 변화는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영력이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어 사라지는 경우였다. 그러면 체내에는 유일하게 선력만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에 따라 신체 역시 최종적인 변화를 맞으면서 화신기를 돌파하여 영변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