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38
말을 마친 그가 손을 앞으로 뻗자 수많은 붉은 빛이 사방에서 응집되어 거대한 붉은 손이 되었다. 그 손은 둔천을 내리누를 듯 쭉 뻗어나왔다.
“망할!”
둔천은 욕설을 내뱉으며 십억존혼번을 휘둘렀다. 순간 혼번이 펄럭이며 10억 개의 혼번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네 번째 주요 혼백을 제외한 나머지 35개의 주요 혼번도 맹렬히 그 혼번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반경 1백 리를 뒤덮은 검은 혼백들로부터 절규와 비명이 흘러나왔다. 10억 혼백이 내는 소리는 강력한 음파가 되어 1백 리 안의 대지에 균열을 일으켰고 몇몇 작은 산맥은 순간 붕괴했다.
35개의 주요 혼백은 더욱 흉악한 표정으로 주작을 향해 달려들며 그 붉은 거대한 손을 조각냈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매서운 눈으로 주작을 노려보았다.
“둔천, 이렇게 어리석고 고지식하게 군다면 네게 따끔한 교훈을 남길 수밖에 없다. 잠시 빌렸다가 돌려줄 테니 혼번을 내놓아라!”
주위를 가득 메운 혼백들을 훑어보던 주작이 꾸짖듯 말했다.
“빌려간다? 그래, 얼마 동안 빌려갈 생각인가?”
둔천의 비웃는 듯한 물음에도 주작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만 년 후에 자네에게 돌려주겠네. 물론 자네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혼번이 있어야 우리 연혼종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잔말 말고 가져가고 싶으면 덤벼라!”
둔천은 싸늘한 표정으로 묵묵히 결인을 그려 허공을 두드렸다.
“응집!”
순간 10억 개의 혼백은 미친 듯이 35개의 주요 혼백으로 응집되었다. 뒤이어 35개의 주요 혼백 역시 저들끼리 융합하기 시작했다.
허나 주작은 혼백들이 응집되도록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쥐어 붉은 깃털 하나를 꺼내더니 앞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그 깃털이 타오르며 어스름한 빛을 냈다.
“주작성화(朱雀星火)!”
주작의 노련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타오르던 깃털은 움찔 경련하더니 펑 하고 붕괴했고 미친 듯이 타오른 화염은 깃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 눈 깜짝할 사이 반경 1백 리를 뒤덮었다. 연혼종의 세 봉우리가 불타버려 검은색의 끈적이는 액체만 남았고 그 액체 또한 불타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한제가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동굴도 그 화염에 사라지면서 한제 역시 자취를 감췄다.
순식간에 연혼종이 소멸되어 버렸다. 모든 공간과 건물, 그 안에 있던 제자들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융합 중이던 35개의 주요 혼백 역시 화염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고통에 신음했다.
“주작의 화염⋯⋯.”
둔천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그의 주변에서는 지금 세 개의 오래된 옥패가 맴돌고 있었다. 온화한 빛을 발하는 옥패는 화염이 그에게 미치는 것을 막아주었다.
“둔천, 나 역시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모든 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나를 탓하지 마라!”
주작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느릿하게 말했다.
둔천은 이를 갈더니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선혈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며 외쳤다.
“혼(魂), 둔(遁)!”
둔천(遁天)은 그의 본명이 아닌 그의 별칭으로 그의 스승이 하사한 것이다. 십억존혼번을 소유한 역대 연혼종 수장에게는 각자의 사용 방식이 있었고 둔천의 방식은 바로 둔술(遁術)이었다.
35개의 주요 혼백이 푸른빛을 번득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이글이글 타오르던 주작성화에서 벗어나 둔천 앞에 나타났다.
“이런!”
주작의 눈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융합!”
둔천은 다시 한 번 한 움큼의 선혈을 뿜어 그중 하나의 주요 혼백에 뿌렸다. 순간 그 주요 혼백은 경련을 일으켰고 나머지 34개의 주요 혼백들이 그 체내로 녹아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작에게 대적할 수 있을 법한 힘이 나타나면서 하늘이 누군가에 의해 쪼개진 것처럼 두 조각이 났다. 그 왼편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과 주작이 있었고 오른편에서는 하늘을 가르는 검은 빛이 나타났다. 35개의 주요 혼백과 10억 개의 혼백들이 한데 응결하여 만들어낸 문정기 후기 수준의 혼백이었다.
그 혼백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1백 리를 뒤덮었던 화염이 쓸려나가 주작이 있는 쪽으로 밀려났다. 이제 땅 또한 하늘처럼 붉은색과 검은색의 구분이 명확했다.
주작은 긴장감이 어린 얼굴로 혼백을 주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그 정도라면 이 주작의 법보가 되기에 충분하다.”
둔천의 얼굴은 창백했다. 본래 1년 남짓 남아 있던 그의 수명은 혼번의 융합술을 사용하면서 빠르게 줄어들었다. 허나 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저자를 죽여!”
혼백은 제자리에 선 채 오른손을 휘둘렀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더니 1백 리 안의 구름층이 몰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 그 육신은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언뜻 보면 인간과 같았다.
혼백은 발을 굴러 구름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합체했다. 그러더니 두 눈을 번쩍 떠 어스름한 눈빛으로 주작을 응시했다.
“구름으로 몸을 만들다니, 과연 문정기 후기 수준답구나! 허나 그 몸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주작은 냉소하며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순간 붉은 빛 한 줄기가 번쩍 하고 나타나 붉은색 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검이 나타나자 지면의 화염이 솟구쳐 올라 그 검으로 녹아들었다.
“이 검의 본명은 유원이나 누구도 알지 못한다. 1대 주작께서 이것을 손에 넣은 뒤 주작검이라 명명하셨지.”
주작은 말을 마친 뒤 오른손으로 그 검을 두드렸다.
붉은색 검은 순간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거대한 선력을 내뿜었다. 진정한 선인의 검이나 다름이 없는 이 검 역시 선보(仙寶)였다.
구름 인간은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변화를 일으키더니 하얀색 비검이 되었다. 그 검은 주작의 검과 색만 다를 뿐 모양이나 솟아오르는 선력까지도 똑같았다.
그가 그 검을 두드리자 흰색의 검이 휙 하고 날아가더니 붉은 검과 충돌했다. 콰르릉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검은 힘에 부치는 듯 뒤로 밀려 났고 주작검 역시 속도가 약간 느려졌다.
구름 인간은 주작을 노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내 몸을 훌쩍 날린 그는 몸을 흩어 아까 같은 모양의 검 9개를 만들어냈다. 이제 총 9개의 하얀 검 중 4개는 주작검을 향해, 나머지 5개는 주작을 향해 돌진했다.
주작은 긴장한 얼굴로 수십 척 뒤로 물러나면서 저물대를 두드렸고 이내 붉은 조롱박을 꺼내 들더니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흡수!”
5자루의 비검은 곧장 거대한 힘에 둘러싸인 채 그 붉은 조롱박 안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주작은 눈을 번득이며 나머지 4자루의 비검 역시 그 조롱박으로 흡수하려 했다. 바로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조롱박이 깨져버렸고 5개의 비검은 곧장 주작을 찌르려 들었다. 동시에 나머지 4자루의 비검들도 주작검을 밀쳐버린 뒤 주작에게로 달려들었다.
주작은 안색이 크게 변해 다시금 몸을 뒤로 물렸다.
이 혼백은 문정기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공격력 역시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맞서 싸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러려면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고 이는 이미 넉넉지 않은 수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선유족과의 두 번째 전쟁을 앞두고 있었으니 부상은 피해야 했다.
총명하기로는 제왕을 이길 수 없다
9개의 비검은 번개보다도 빠르게 다가왔다.
주작은 오른손으로 결인을 해 허공으로 쏘아 보냈다. 그 결인은 나타나자마자 강렬한 기운으로 주작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때, 비검이 그를 공격했다.
쾅!
하늘이 흔들릴 듯 거대한 소리가 주작대륙 전체에 울려 퍼졌고 주작의 몸은 마치 유성처럼 빠르게 밀려났다. 그가 쏘아 보낸 결인은 흩어져 버렸다. 육신에 부상은 없었지만 얼굴이 창백해진 그에게서 더는 이전과 같은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9자루의 비검은 사라졌고 다시 하나하나 혼백이 되어 하늘을 휘저었다.
주작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외쳤다.
“주작현인(朱雀玄印)!”
주작현인은 오직 주작만이 배울 수 있는 신통술로 수련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 주작의 무덤 안에 있는 유물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작현인은 주작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6성 수련국이 된 나라에 수련연맹이 하사하는 신통력이었다.
주작현인을 배운다고 해서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술법에는 강력하고도 불가사의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여기에는 공격과 방어가 모두 담겨 있는데 공격은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부술 수 있고 방어는 주작진보다 더 견고했다.
이 결인을 수련연맹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이 술법을 장악하면 그자가 죽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그것을 익힐 수 없었다. 이전 세대의 주작이라 해도 다음 세대의 주작이 그 결인을 장악한다면 그 신통력을 잃고 말았다.
소문에 의하면 이 주작현인을 사용할 때 그 사용자 역시 손실을 입는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손실인지에 대해서는 오직 이 결인을 익힌 자만이 알 수 있었다.
주작현인으로 인해 구름 인간은 흩어졌고 둔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허나 그는 별안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수명이 끝에 달한 이때에 네놈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게 되다니, 속이 다 시원하구나!”
주작은 구겨진 얼굴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주작현인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선유족과의 결전을 위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둔천, 너희 연혼종은 본디 주작의 동지였다. 함께 선유족과 싸우기도 했지. 한데 너는 어찌 이리 고지식하게 구는 것이냐? 존혼번을 내놓는다면 연혼종을 재건하고 제자들을 모집하도록 도와주겠다. 원한다면 새로운 나라 하나를 이루어도 좋다.”
둔천은 웃음을 뚝 그치더니 비웃듯 말했다.
“그토록 품위 없이 구는 것을 보니 부상을 당할까봐 두려운 모양이구나. 선유족과의 전쟁이 시작된 마당에 여기서 이렇게 오래 뭉개고 있는 것도 결국은 전장에 나가기 두렵기 때문이 아닌가?”
주작은 자존심이 상한 듯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유족의 십일엽(十一葉) 술주사가 아무리 강하다한들 내게 그자를 죽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둔천, 마지막으로 묻겠다. 존혼번을 정말 내놓지 않을 셈이냐?”
둔천은 덤덤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십억존혼번에 보라색과 금색 빛이 어리더니 불규칙적으로 번득였다.
“주작, 썩 꺼져라! 그러지 않으면 네 번째 주요 혼백을 사용하겠다.”
둔천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작의 얼굴은 살짝 굳었지만 속으로는 냉소했다. 사실 그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존혼번이 아니라 바로 그 네 번째 주요 혼백이기 때문이었다.
역대 주작들은 모두 암암리에 존혼번의 네 번째 주요 혼백에 대해 연구를 해왔고 지금의 주작은 이제 그 비밀의 8할 정도는 알아낸 상태였다.
잠시 침묵하던 주작이 느릿하게 말했다.
“난 아직 네 번째 주요 혼백의 위력을 직접 본 적은 없지. 오늘 이 기회에 그 힘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군.”
둔천은 이를 악물더니 왼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한 덩어리의 반짝이는 하얀 빛이 나와 재빨리 존혼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존혼번은 크게 진동했고 보라색과 금색이 어린 빛이 튀어나왔다.
만물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오행(五行)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은 서로 다른 오행의 속성을 가진 영력의 뿌리가 된다. 각 속성 중 하나를 얻은 자는 수련의 기회를 얻고 둘을 얻은 사람은 총명해지며, 셋을 얻은 사람은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넷을 얻은 사람은 절세의 능력을 가지며, 다섯을 얻은 사람은 절정에 이른다. 허나 한 가지 속성을 둘 가진 자는 드물고 셋을 가진 자는 더욱 드물며, 넷 이상을 얻은 자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
연혼종의 네 번째 혼백은 하나의 속성을 세 개 가졌다. 이 혼백의 주인은 생전 영변기 후기 수준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사후에 연혼종이 비법을 통해 이 혼백을 제련시켜 문정기 후기 수련자도 위협할 힘을 갖게 되었다.
이 혼백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며 수명이 끝에 달했을 경우 수성(修星)의 심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주작산의 서적에 기록된 내용이 주작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삼금(三金)의 영혼!”
네 번째 혼백을 본 주작이 낮게 뇌까렸다.
이때, 둔천의 눈빛은 다소 탁해져 있었다. 마지막 남은 수명이 그의 몸으로부터 빠져나가 네 번째 영혼을 소환할 때 필요한 제물이 되었다. 네 번째 혼백은 수명을 제물로 바쳐야만 소환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