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4
류산은 얼토당토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선생의 실력이 보잘것없다면 그 누가 박학다식하다 하겠습니까? 이 선생은 말하자면 살아 있는 신선 아닙니까? 천문부터 지리까지 모르는 것이 없고 특히 관상을 보는 실력은 절대 예사롭지 않지요.”
중년의 서생을 자세히 살핀 한제는 미소를 띤 채 포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얼굴이 환하고 두 눈이 빛나는 것을 보면 분명 매우 총명한 분인 듯합니다.”
중년의 서생은 의아하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와 비슷하게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이 납니다만 은연중에 용의 기세가 깃든 것이, 장래가 아주 무한하십니다.”
그의 말에 한제가 웃으며 겸손한 말투로 말했다.
“고향의 스승님께서 관상을 연구하신 터라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혔을 뿐입니다.”
중년의 서생이 호쾌하게 웃자 옆에 있던 검은 얼굴의 사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 선생, 저도 좀 봐주십시오. 나이도 찼는데 결혼 운은 있습니까?”
그러자 류산이 웃으며 말했다.
“벌써 몇 번째 묻는 것이냐. 이 선생께서도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시느라 진이 빠지셨을 테니 너는 좀 참아라.”
검은 얼굴의 사내는 류산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입을 비죽거리며 중년 서생을 바라보았다. 서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은 너도 좀 봐주마. 양삼, 너도 내게 몇 번이나 물었지? 오늘 너도 함께 봐주겠다.”
그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한제는 왠지 궁금해져 신식으로 그를 살펴보았다. 중년 서생의 가슴팍에서 매우 특이한 모양으로 맴돌던 영기가 두 눈에 모여들었다.
중년 서생은 검은 얼굴의 사내를 바라보며 중얼중얼 뭔가를 외는 듯하더니 오른손을 휘저었다. 잠시 후 얼굴이 약간 붉어진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오동,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핏빛 재앙이 보일 듯 말 듯하구나. 머잖아 큰 화를 입을 것이다. 이 화를 잘 넘기면 세 달 안에 혼인을 맺을 수 있을 게야.”
검은 얼굴의 사내, 유오동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화라니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표국에서 일을 하다보면 언제든 칼과 도끼에 둘러싸이게 되니까요. 핏빛 재앙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중년 서생의 시선은 양삼에게 닿았다. 한참 뒤 그는 안색이 약간 변해 말했다.
“이상하군. 왜 너한테도 핏빛 재앙이 보이는 거지?”
말을 마치고 류산까지 살핀 그의 얼굴에 순간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상하군. 내 관상술은 여태 틀린 적이 없었는데… 류 국주에게도 핏빛 재앙이 드리워져 있소이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한 번 씩 살폈다. 하지만 갈수록 그의 얼굴은 어두워져만 갔다.
“류 국주, 뭔가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핏빛이 드리워져 있어요. 이럴 수는 없습니다!”
류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주변을 살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의 말은 우리 모두가 곧 화를 입을 거라는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중년 서생의 시선이 한제에게 닿았다. 순간 흠칫 놀란 그는 눈을 비비더니 다시 집중했다. 묘하게 굳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의 입에서 시뻘건 선혈이 분출되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한제를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넌…?”
다시 만난 적
류산을 비롯한 사람들은 처음 보이는 중년 서생의 모습에 모두 놀라고 말았다. 손바닥을 비비던 류산은 떨리는 눈빛으로 한제가 있는 곳을 향해 살짝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선생, 이분이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우리에게 핏빛 재앙을 드리운 게… 이분이라는 말씀입니까?”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중년 서생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귓가에서는 사도환의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관상술을 이 정도 수준까지 발전시키다니. 허나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현묘한 기술이겠지만 나 같은 신선의 기준으로 볼 때는 별것도 아니지. 본좌가 이전에 사람을 죽였던 기억을 저 녀석에게 전달했더니 저렇게 견디지를 못하는구나.”
중년 서생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한제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은근한 경외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류산의 말을 듣고 연거푸 손을 내저었다.
“이분과는 무관합니다. 그저… 이분의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어서 당황했을 뿐입니다. 제 관상술이 형편없는 탓이겠지요.”
말을 마친 그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씁쓸한 얼굴이었다.
그는 방금 보았던 아수라 지옥의 광경에 적잖이 놀랐다. 그 속에서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었으며 모든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온 관상술을 익힌 이 중년 서생은 신선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그런 것들과 연관되면 죽음에 휘말리기 쉽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류산이 미간을 구긴 채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언가가 날아와 땅바닥에 떨어져 몇 바퀴 데굴데굴 구른 뒤 모닥불 근처에 섰다. 그것은 사람의 커다란 머리였다.
류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머리가 순찰을 맡은 호위병의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류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머리를 집어든 양삼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이견, 내가 복수해주겠다!”
표국의 모든 표사들은 분분히 무기를 뽑아들고 살기등등하게 사방을 살폈다.
유오동은 류산의 곁에 서서 형형한 눈빛으로 외쳤다.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썩 나오거라!”
“껄껄껄.”
음산한 웃음소리에 이어 무언가 땅을 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이 사방의 땅속에서 기어 나왔다. 그들은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냉랭한 눈으로 위무 표국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류산, 가지고 있는 물건을 내놓는다면 당장 물러나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한 사람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장작처럼 빼빼 마른 노인 하나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 노인을 본 류산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독수리 송행이었군.”
노인은 껄껄 웃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류산, 괜한 시간 낭비는 마라. 너희 위무 표국이 이번에 보석을 운송하고는 5백 년 묵은 인삼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것을 넘긴다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낱 물건에 목숨을 거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
류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저 독수리 송행이 어떻게 내가 몰래 숨겨둔 인삼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우리 표국에 끄나풀을 심어둔 모양이군.’
류산의 눈길이 자연스레 한제에게로 향했다. 이어 유오동에게 눈짓을 한 후, 그는 몇 발자국 움직이며 주먹을 쥔 채 말했다.
“내게 무슨 인삼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 있다고 해도 그쪽의 힘만으로는 내게서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을 텐데?”
유오동은 류산의 뜻을 읽고 조용히 한제의 뒤로 다가갔다. 이 움직임을 눈치 챈 한제가 한숨을 내쉬려던 순간, 중년 서생이 유오동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하는 짓이냐? 이분은 끄나풀이 아니다.”
유오동은 다급한 얼굴로 뭔가 말하려 했다. 한데 그때 송행이 호탕하게 웃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하하. 류산, 난 너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지. 우리 대연께서 직접 나선 이상 넌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외쳤다.
“대연을 맞이하라.”
말을 마친 그는 곧장 바닥에 엎드려 극도의 공경을 표했다.
사방을 둘러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엎드려 송행을 따라 크게 소리쳤다.
“대연을 맞이하라!”
순간 사방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삼을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주먹만 한 불덩이가 어둠속에서 나타나더니 표사 한 명에게 적중했다. 표사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손에 쥔 무기와 함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표국의 모든 사람은 넋을 잃고 말았다. 몇몇 사람들이 놓친 무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양삼의 두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저, 저게 뭐지?”
시커멓게 변한 재에서 끼쳐오는 열기에 가까이 있던 표사들이 덜덜 떨었다.
류산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난 그는 멍하니 재로 변해버린 호위병을 바라보기만 할 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오동의 눈에도 공포가 어렸다. 그가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시, 신선의 술법인가?”
송행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그래, 우리 대연은 신선이시다. 빨리 인삼을 내놓지 못하겠느냐?”
모든 표국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류산을 향했다. 상대가 일반인이라면 칼을 뽑아들고 덤빌 엄두라도 냈겠지만 신선이라면 도리가 없었다. 표사들은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씁쓸한 얼굴을 한 류산이 막 입을 열려던 그때, 어둠속에서 기척 없이 세 개의 불덩어리가 떠올랐다.
한제는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린 채 아래턱을 매만지며 신식으로 상대 쪽을 살폈다. 멀지 않은 곳의 나무 위에서 법술을 부리고 있는 사람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음?”
한제는 흠칫 놀랐다. 상대의 법술이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열심히 불덩어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스물 후반의 청년은 이제 고작 응기 3단계 진입을 앞둔 상태에 불과했으나, 그늘진 데다가 험하게 살아온 듯 군데군데 상처로 뒤덮인 그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었다.
중년의 서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류 국주, 넘겨줍시다. 고용주가 알게 되더라도 우리를 탓하지는 못할 겁니다. 상대는 신선이에요.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상대입니다.”
망설이던 류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속에서 조심스레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비단 꾸러미를 꺼내어 땅에 내려놓았다.
그 꾸러미는 땅에 닿자마자 붕 떠올랐다. 하지만 그 꾸러미가 향한 곳은 송행이 아니라 한제의 손 안이었다.
고개를 돌린 류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역시 네놈이 끄나풀이었구나!”
류산은 분노의 빛이 담긴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유오동은 잔뜩 긴장한 채 놀란 눈으로 한제를 힐끔거렸다. 중년의 서생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