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40
주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 깊은 곳에는 충격이 어려 있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너는 몇 대 주작이냐?”
거만한 목소리가 한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둔천은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제와 나름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기 때문에 저자가 이한제가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런 끔찍할 정도의 두려운 기운과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함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수련을 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다.
주작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나는 14대⋯⋯.”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한동안 주작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엽무우를 봐서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 썩 꺼져라!”
그 낯선 이름에 둔천은 그저 의아했으나, 주작은 달랐다. 그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너⋯⋯.”
주작은 번개라도 맞은 듯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의 눈에는 충격만이 아니라 짙은 두려움도 어려 있었다.
엽무우. 오직 주작성의 역대 주작들만이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다른 문파의 시조들조차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를 일컬을 때에는 주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엽무우는 바로 선대 주작의 이름이었다.
주작은 한제의 몸에서 발산되는 짙은 남색 빛의 고리를 바라보았다. 역대 주작들의 특성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러던 중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고는 곧장 깊이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선조를 뵙습니다. 당장 물러나겠습니다.”
말을 마친 주작이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둔천이 외쳤다.
“혼백은 놓고 가라!”
우뚝 멈춰 선 주작은 잠시 고민하더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제는 뭔가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엽무우에게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지. 네가 그 혼백을 요하는 것은 선유족에 대항하기 위함일 테니 3년간 빌려주겠다. 3년 후 내게 가져와라.”
둔천은 다급히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한제눈빛을 보고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상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둔천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입을 다물었다.
주작은 한시름 놓았다. 만약 상대가 네 번째 주요 혼백을 놓고 가라고 강요했다면 그는 싸우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전설 속 인물에게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겠지만…
주작은 포권을 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한데 그때 한제가 비웃듯 말했다.
“내 정체를 알아보았다면 나의 습관 또한 알고 있을 터. 그대로 가려는 게냐?”
주작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왼손으로 오른손을 휙 그었다. 그의 손가락 두 개가 잘려나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잊었습니다. 손가락 두 개면 되겠습니까?”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하나 더!”
주작은 이를 악물고 손가락 하나를 더 잘라낸 후 창백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썩 꺼져라!”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주작은 곧장 방향을 돌려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은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10만 리 밖에 이른 주작은 그제야 이를 악물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어찌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어째서! 3대 주작은 그를 처리하기 위해 외부 수련성의 수련자까지 끌어들였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니!”
포효하며 주작국 상공에 이른 그가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비로국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의심의 기색이 어렸다.
“고서에서 본 그 성격대로라면 2대 주작이 이렇게 자비로울 리 없어. 설마… 허장성세였던 것인가?”
주작은 잠시 고민했으나, 다시 돌아가 상대의 내막을 확인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는 이를 갈며 다시 움직여 주작산으로 향했다.
★ ★ ★
비로국 연혼종.
한제의 몸은 주작이 멀리까지 떠난 것을 확인한 뒤 한번 휘청거리더니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둔천은 깜짝 놀라 얼른 한제를 받쳐 들었다.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은 꼭 감겨 있었으며 고통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둔천은 그를 자세히 살피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몸을 빼앗긴 건가!”
그는 한제가 몸을 빼앗으려는 존재로부터 저항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간을 누르려 했다. 한데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흑백의 구분이 명확한 그의 두 눈에서 좀 전의 오만함은 보이지 않았다.
“선배님, 저는 괜찮습니다.”
한제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질문을 던진 둔천은 깜짝 놀랐다. 한제가 아닌 그의 미간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이 경솔한 녀석, 앞뒤 재지 못하고 달려들다니! 예전의 나였다면 단번에 네놈을 죽여 버렸을 것이다.”
푸른 빛 한 덩어리가 한제의 미간으로부터 빠져나오더니 거친 외모에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중년 남자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몸으로부터 웅대한 기운이 발산되었다.
하늘의 색이 변했고 구름이 모여들어 꾸물거리더니 비가 쏟아졌다.
중년 사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흩어져! 내가 언제 비를 내리라고 했더냐!”
그의 호통에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말끔히 흩어졌고 비도 뚝 그쳤다.
둔천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제는 쓰게 웃으며 마른기침을 했다.
주작의 화염이 엄습하기 직전 그는 영변기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둘의 결투에 끼어들 수는 없어 밀려드는 화염을 피하기 위해 석주 공간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사도환이 깨어났다.
막 깨어난 사도환의 위엄은 대단했지만 사실 무척 약해진 상태였다. 둘 사이에 회포를 풀 시간도 없이 사도환은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한 뒤 한제의 육신을 조종해 주작을 쫓아냈다.
사도환의 기세가 어찌나 대단했는지, 주작이 손가락을 끊을 때에도 잔뜩 긴장한 한제와 달리 사도환은 오만한 모습 그대로였다.
한제는 그에게 왜 주작의 손가락을 잘랐느냐고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당할 것이 두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사도환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사도환이니까!”
그리고 지금, 사도환은 둔천을 마구 꾸짖고 있었다.
“방금 네놈은 하마터면 나의 일을 망칠 뻔했다. 그깟 혼백이 무어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만약 그놈이 눈치채기라도 했다면 나는 깨어나자마자 다시 잠들었을 수도 있다. 그깟 혼백, 내가 육신을 되찾고 수준을 회복하면 곧장 찾아올 수 있단 말이다.”
사도환의 호통에 둔천은 두려운 와중에도 쓰게 웃었다. 지난 1천 년 동안 자신을 이렇게 어린아이 대하듯 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사도환은 고개를 들며 오만하게 말했다.
“설명하기 귀찮구나. 한제야, 네가 대신 소개를 좀 해주거라.”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입을 열었다.
“이 분의 함자는 사도환입니다.”
“사도환?”
둔천은 기억을 더듬었지만 그런 이름의 초고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한제가 덧붙였다.
“2대 주작이시기도 하지요.”
그 말에 둔천은 몸을 바르르 떨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는 충격으로 말도 잇지 못했다. 그제야 왜 주작이 그렇게 기겁을 하고 달아났는지 알 수 있었다. 2대 주작이라는 이름은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1대 주작의 위엄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났던 것이다.
잠시 후, 둔천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사도환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연혼종의 둔천, 선배님을 뵈옵니다.”
사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제를 보호해주고 십억존혼번을 준 것이 기특하니 내 약속하마. 후에 연혼종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겠다.”
사도환은 기억을 더듬었다. 연혼종에 있었던 친우에 대한 기억이었다. 만약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당시 외부 수련성의 수련자들과의 싸움에서 석주로 숨어들 기회도 없이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둔천은 진심으로 감격하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일생을 연혼종에 바친 그로서는 연혼종의 미래가 가장 큰 걱정이기도 했다. 수명이 끝에 이른 그가 무엇도 아끼지 않고 한제를 도운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혼종을 잊지 않고 기릴 사람이었다.
주작의 방문에 둔천은 절망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연혼종이 멸망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2대 주작의 약속에 둔천은 만족할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띤 채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사형, 사형의 점괘가 맞았습니다. 이 둔천은 웃으면서 사형을 스승님을 그리고 역대 선조님들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혼종의 새로운 희망을 찾았으니까요. 저는 앞으로 연혼종이 6성 수련국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둔천이라는 이름은 연혼종의 역사에 남아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스승님, 저는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둔천은 이번 생을 여기서 마치고 기쁘게 존혼번의 혼백이 되어 웃으며 구천을 떠돌겠습니다.”
동자
비오는 길, 강도들의 습격에 쓰러진 사람들의 시체 속에서 소년 하나가 울고 있었다.
빗속에서 노인 하나가 다가와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나를 따라가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