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44
한제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뇌까렸다.
“나 이한제의 목숨이 어찌 다른 이의 손에 들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주작성에 선유족이 나타난 것도 수많은 수련국이 배반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주작이 6성 수련국으로 승급할 가능성이 있는 5성 수련국을 몰살하려던 것에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한제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주작이 수성의 결정을 장악한다면 선유족의 기세는 지금과 같지 못할 터. 또한 주작이 수성의 결정을 장악했다면 둔천 선배의 십억존혼번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거야. 그러니 아직 장악하지 못한 건 분명해. 만표가 나를 속였을 리는 없지만 당시 그의 말투에는 확신이 없었지.”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후 몸을 훌쩍 날렸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수성의 결정에 있는 내 명혼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주작성을 떠나 천운자를 찾아가는 거야!”
물론 그 전에 준비가 필요했다. 역외 전장에서 유혼들을 모아 십억존혼번의 위력을 보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가능하다면 탄혼들을 주요 혼백으로 삼아 십억존혼번의 위력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당시 거마족 선조에게서 찾은 그 피가 담긴 작은 병도 있다. 고대 신의 신통력을 발휘하게 하는 재료인 그 피는 월성에서 수련 중인 본체에게 매우 중요했다. 조나라 시음종에서 그에게 구원을 요청했던 사람이 당시 거마족의 선조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곳에서도 피를 가져올 수 있을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본체를 4성급 고대 신으로 높이는 데 필요한 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성인인 고대 신의 기운 또한 필요하지. 이것을 어떻게 구할지도 생각해봐야겠군. 일단 4성급으로 올라선다면 서사의 기억에 따라서 문정기 수련자에 상당하는 수준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대 신의 땅에 있던 탁삼이 떠올랐다. 그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다. 만약 탁삼이 그곳에서 벗어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올 것이. 지금 수준으로는 본체와 합체한다 해도 탁삼에 대적할 수 없다. 심지어 사도환의 도움이 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탁삼은 서사의 힘의 유산을 승계한 자로 당시 서사가 8성급에 이르렀을 때에는 한손으로 수련성 하나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탁삼은 줄곧 손톱 밑의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그가 다급히 주작성을 떠나려는 데는 탁삼의 영향도 있었다.
“우선 초나라에 가서 은혜를 집에 데려다줘야겠군.”
한제는 방향을 틀어 초나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본 하늘은 검은 안개로 가득했고 그 안에는 선유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검은 안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주작대륙을 향해 이동했다.
그 광경에 한제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선유족인들을 죽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에 어느 순간부터는 모습을 숨긴 채 최대한 빨리 초나라로 향했다.
3성 이하 수련국들은 대부분 이미 함락되었거나 멸망했고 선유족의 포로가 되었다.
두 번째 전쟁을 위해 주작성 여기저기에 선유족이 몰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수련국을 공격했고 이에 다수의 4성 수련국이 함락되고 말았다.
온 주작성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수련자들의 모습을 보기는 갈수록 힘들어졌으며, 하늘에는 거의 온종일 검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수만 년을 침묵했던 선유족이 마침내 주작성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주작국에서는 선유족과의 두 번째 전쟁을 맞아 격렬하게 반격했다. 건풍이 이번 전쟁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주작국의 모든 수련자가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다.
수많은 수련자가 각 지역으로 파견되어 선유족인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제 모든 5성 수련국은 전장이 되었고 주작국이 선유족의 공격에 계속해 밀려나면서 주작성은 금방이라도 붕괴할 듯했다.
매일 수많은 수련자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와중에 끔찍한 소식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5성 수련국 수묵국(水墨國)의 모든 종파가 배반했다.”
“5성 수련국 모단국(牡丹國)이 배반했다.”
“5성 수련국 진나라가 배반했다.”
세 5성 수련국의 배반은 주작국에게는 치명타였다. 이미 패퇴하고 있던 주작국은 어쩔 수 없이 주작대륙으로 방어선을 끌어당기고 최후의 방어에 나섰다.
한데 그때,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남은 수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현 주작의 사제이자 당시 주작의 이름을 건 경쟁에서 패한 운작이 나타났다.”
“운작이 돌연 전장에 나타나 주작을 습격해 그에게 중상을 입혔다.”
“운작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선유족의 이조(二祖)였다.”
초나라로 항하던 길에 그 소식을 들은 한제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머지않아 운작이 반드시 자신을 찾을 것이라 예감했다.
하지만 운작보다 먼저 그를 찾은 사람이 있었다.
한제는 초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오래된 전송진을 가동했다. 한데 전송진에 발을 들인 순간, 한제의 안색이 변했다. 하늘 끄트머리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금빛을 발하는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한제, 1년 만이군. 날 기억하고 있나?”
사내는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더니 밀짚모자를 벗었다.
★ ★ ★
주작대륙 동부, 초운비가 탁한 안색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일전에 조령수로부터 받은 충격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그동안 억지로 참아가며 선유족과의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사흘 전, 선유족의 오조(五祖)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맞선 초운비는 내상이 더욱 심해져 곧장 천옥종으로 돌아왔다. 그는 완전히 회복하기 전까지는 주작을 돕지 않기로 결심했다.
“정 안 되면 주작성을 떠나고 말지. 어느 수련성에 가더라도 강자로 군림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한데 그때, 초운비의 표정이 변했다. 걸음을 우뚝 멈춘 그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붉은 옷을 입은 그 노인에게서는 강대한 위압감이 풍겨왔다. 노인은 2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는 초운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일세. 풍채는 여전하군.”
초운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운작!”
붉은 옷의 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고맙군. 내 오늘 자네를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작성을 떠나라고 권하기 위해서일세.”
초운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운작은 초운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가게. 자네는 내 적수가 되지 못해. 게다가 이미 내상까지 입었지. 지금 떠나서 1천 년간 돌아오지 말게.”
초운비의 눈빛이 한층 싸늘해졌다.
“싫다면?”
운작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오른손을 휘둘러 검은 나무 조각 하나를 소환하더니 허공으로 던졌다. 그것은 펑 하고 터지더니 검은 안개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빛이 엄청난 기세로 빠져나왔다. 그 빛은 사람 형태의 허상이 되어 순식간에 초운비 앞에 이르더니 손바닥을 뻗었다.
초운비는 안색이 변해 얼른 몸을 뒤로 물리며 왼손으로 결인을 했다. 그러자 선력이 그의 앞에 응집되었다. 하지만 손바닥은 곧장 그 선력을 꿰뚫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초운비의 가슴팍을 눌렀다.
초운비는 피를 토해내며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운작, 내 주작성을 떠나겠네!”
낙담한 초운비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어찌 저자를 죽이지 못하게 하는가?”
허상이 불만스레 묻자 운작은 그 허상을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공격을 했으니 주작이 느꼈을 거야. 이제 가세.”
말을 마친 그는 번쩍 하고 허상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떠나자마자 하늘 끄트머리에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작! 어디 있느냐?”
주작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두 눈은 분노로 타올랐다.
“사형, 사형과 나의 결전은 피할 수 없을 거야. 1천 년 동안 동문이었던 정이 있으니 내상을 회복하도록 세 달의 시간을 주지. 세 달 뒤, 주작산 아래에서 승부를 가립시다.”
운작의 목소리에 주작은 어두워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목적이 뭔지 안다, 운작. 너는 지금 불장난처럼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내 주작 또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주작대륙의 어느 허공에서 운작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다. 그가 소환해냈던 허상이 그의 곁에서 덤덤하게 말했다.
“어째서 세 달의 시간을 준 건가? 내상을 입은 지금이 기회일 텐데?”
운작은 그 허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유족에는 나를 포함해 총 세 명의 구엽(九葉) 술주사와 한 명의 십엽(十葉) 술주사, 그리고 십일엽(十一葉) 술주사인 자네까지 있네. 주작을 죽이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아! 또한 윤회조령수 중 두 그루만 성공적으로 자라났지만 이번 달 안에 두 십엽 조령이 올 테니 더욱 간단해지지. 허나 그 주작을 지금 죽이는 것은 불가능해.”
허상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수련자들 사이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뿌리를 잊은 겐가? 당시 얼마나 많은 부족원이 희생하여 자네를 주작국으로 보냈는지 잊어서는 안 될 거야.”
운작은 굳은 눈빛으로 냉소하며 말했다.
“일조(一祖),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는데 주작을 얕잡아 보지 말게. 주작에게는 수성(修星)의 결정이 있어. 비록 2대 주작에 의해 봉인되어 있지만 수만 년 동안 역대 주작들은 줄곧 그것을 풀 방법을 연구해왔네. 특히 선대 주작은 돌파구를 찾아내기도 했지. 지금 주작을 죽이면 그는 수성의 결정을 파멸하여 온 주작성 수련자들을 소멸시킬 걸세. 그럼 수련연맹에서는 조사관을 보내겠지. 우리가 수련연맹에 대항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허상은 침묵했다.
“만약 내 계획대로 후대 주작이 될 만한 자들을 키워낸다면 우리 선유족은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어. 그게 최선일세. 자네들이 이리 급하게 굴다가는 그 계획은 모두 어그러지고 말아!”
운작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나의 정체도 자네들이 나를 의심하는 바람에 내가 아직도 선유족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폭로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게 우리에게 무슨 득이 되었는가? 일조, 만약 선유족이 이 주작성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면 반드시 그 수성의 결정을 손에 넣어야 해. 그리고 후대 주작을 키워 우리 선유족이 간접적으로 모든 수련자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
운작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일조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난 이미 네 명의 후보를 골라두었네. 자네들이 먼저 나서지만 않았어도 10년 안에 성공했을 계획이었어. 그 오랜 시간에 걸쳐 해두었던 설계를 자네들이 망가뜨린 거란 말일세!”
운작은 분노를 가라앉힌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주작이 택한 두 명의 후계자 중 건풍이 주작결(朱雀訣)을 익힌 것으로 보아 나는 주작이 그 몸을 빼앗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역대 주작은 모두 다른 자의 육신을 빼앗아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해왔으니 지금의 주작 또한 분명 그런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내가 두 번째로 고른 자심은 주작이 건풍의 몸을 빼앗을 경우 임무에 성공할 수 있을 걸세. 혹시라도 주작이 정말 건풍을 후대 주작으로 키워낸다면 그때도 자심을 이용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