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47
한데 그가 막 그 윤회수 곁에 이르렀을 때, 그의 신식에 뭔가가 걸렸다. 이에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1천 척 밖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면의 해초들이 기이하게 뻗어 나와 좀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를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다섯 번째 층 전역에 깔려 있는 모든 해초류들이 기이하게 자라나 서로 한데 얽히더니 수많은 인영으로 변해갔다.
이 사람 형태의 생물은 기이한 기운을 발산했다. 또한 그들의 다리는 해초와 연결되어 있어 요사스럽게 허공에서 흔들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는 그 생물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였다.
“외부 침입자여, 이곳을 떠나라!”
남녀를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기이한 생물은 모두 원영기 수준에 상당해 그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는 한제는 곧장 저물대에서 십억존혼번을 꺼냈다.
“혼(魂), 산(散)!”
한제가 가볍게 외치자 순간 수많은 혼백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존혼번의 혼백들은 6억 개 남짓이었고 둔천의 혼백을 포함한 주요 혼백은 총 26개였다.
이 정도 혼백을 융합해서는 문정기 후기 수준의 혼백을 형성할 수 없었으나, 문청기 초기 수준의 혼백이라면 가능했다.
“융합!”
한제의 외침에 5억여 개의 혼백과 열 개가 넘는 주요 혼백이 융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문정기 수준의 혼백으로 변했다.
그 혼백이 나타나자마자 다섯 번째 층 전역이 진동했다.
삼조(三祖)의 정체
남은 혼백들과 주요 혼백들은 한제의 주위를 맴돌며 찢어질 듯 구슬픈 곡성을 냈다.
한제는 이 상태를 오래 동안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곧장 명을 내렸다.
“죽여!”
혼백은 두 눈을 번득이더니 몸을 훌쩍 날리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순간 대지가 우르릉 진동하더니 모든 해초류 식물들이 낫에 쓸린 듯 소멸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훌쩍 날려 윤회수를 향해 달려들며 주위를 맴돌고 있던 혼백들을 이용해 윤회수를 흡수했다.
윤회수는 순식간에 붕괴했고 그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팔엽 술주사는 피를 토해내며 죽었다.
이어 한제는 다섯 번째 층을 한 바퀴 돌면서 같은 일을 반복했고 팔엽 술주사들의 머리를 잘라 문양이 찍힌 두개골을 거두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장 여섯 번째 층에 들어섰고 그곳에서 마주친 선유족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의 목표는 윤회수였다.
여섯 번째 층에 있는 윤회수도 세 그루였다. 문정기 수준인 혼백의 위엄에 여섯 번째 층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던 세 술주사도 모두 죽음을 맞았다.
한제는 파죽지세로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층을 지나 열 번째 층에 진입했다. 그곳에서 문정기 수준의 혼백은 흩어져 사라지더니 존혼번 안으로 들어갔다. 기운을 소진한 상태라 더 이상 소환해낼 수도 없었다.
한제는 존혼번을 거두었다. 선유지에 오기 전 존혼번을 자세히 연구한 결과 문정기 수준의 혼백은 강대하지만 유지시간이 짧으며 실제 문정기 수련자의 수준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한 번 융합을 시킬 때마다 혼백에 미치는 손실이 상당해, 이 손실을 회복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한제는 총 열아홉 명의 팔엽 술주사를 죽였다. 각 층은 여섯 번째 층처럼 기이한 존재로 보호되고 있어 만약 그가 문정기 수준의 혼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여섯 번째 층에서 전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운작을 제외하면 주작성에는 문정기 수련자가 셋뿐이었다. 주작은 주작산에 있었고 초운비는 주작성을 떠났으며, 지백문의 문정기 수련자는 심한 부상을 입고 숨어서 회복 중이었다.
그러니 선유족은 설마 문정기 수련자가 자신들의 소굴로 들어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문정기 수련자가 아니라면 선유지의 방어를 뚫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여섯 번째 층에서 열 번째 층까지 휩쓰는 동안 수확은 상당했다. 낙인이 찍힌 두개골의 작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선유족이 그토록 많은 영석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상식적으로 영석은 선유지에서 쓸데가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문양의 힘은 마수를 흡수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영석의 영력은 그들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이제 영석은 한제에게 그리 귀한 것이 아니었지만 수련자들 사이에서 거래 수단으로 쓰이기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여기서 한제가 모은 영석은 한 4성 수련국 종파에서 1천 년을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제는 영석보다 팔엽 술주사들의 두개골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각 두개골에 그려진 부호는 모두 달랐고 그 문양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영변기 수련자가 발산하는 기운과 같았다.
한제는 이 두개골이 분명 영석보다 훨씬 가치가 클 것임을 직감했다.
이는 사실이었다. 수련자들과 전혀 다른 체계의 힘을 가진 존재들의 힘의 정수는 천운성에서 큰 가치를 가졌다. 그리고 선유족의 힘의 정수는 두개골에 있었다. 두개골에 그려진 문양을 분리해내면 그 문양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당연히 구엽(九葉) 이상의 술주사의 두개골은 더욱 가치가 컸다.
몇몇 별의 원주민들은 수련자들의 힘과는 완전히 다른 기이한 힘을 가졌다. 수련연맹은 이들을 경계했고 이 원주민들을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는 방식으로 몇 세대에 걸쳐 키웠다가 다시 몇 세대에 걸쳐 소멸시켰다. 이를 통해 끝없는 힘의 정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 19개의 두개골을 저물대에 잘 챙겨 넣은 한제는 열한 번째 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이 선유지에 총 몇 개 층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문정기의 혼백이 없었다면 이곳까지 오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열한 번째 층에서도 무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보통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마음을 접는 것이 한제의 성격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뭔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열한 번째 층에 있는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한제는 지면에 진 하나를 배치했다. 거마족 선조와의 싸움에 앞서 둔천이 준 옥패에 기록되어 있던 작은 전송진이었다.
익숙하게 진을 배치하고 선옥 한 조각을 놓은 후에야 한제는 열한 번째 층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다른 층 입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제는 손에 쥔 선검에 선력을 응집시키며 훌쩍 그 안으로 뛰어내렸다.
구멍은 깊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열한 번째 층에 이르렀다.
한데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한제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열한 번째 층은 넓지 않았고 지면 곳곳에는 고랑이 파헤쳐져 있었다. 그 고랑들은 한데 연결되면서 기이한 부호를 이루었고 붉은 액체가 그 고랑 안을 흐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붉은 부호가 땅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서늘한 기운이 지면을 뚫고 나와 삽시간에 주위를 가득 메웠다.
부호의 중앙 부분 허공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여인의 머리카락은 하늘거리며 요사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여인의 몸은 매혹적이었고 온몸 어디에도 문양 없이 희고 깨끗했다. 오직 이마에서만 아홉 개의 이파리를 가진 식물이 번득일 뿐이었다.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한제가 본 여자들 중 보탑에 잠든 선인의 시체를 제외하면 류미 정도만이 비견할 만했다. 한데 어째서인지 그는 처음 보는 눈앞의 여인에게서 익숙함을 느꼈다.
여인의 위쪽에는 펼쳐진 그림 족자가 있었다. 그 그림 안에는 아홉 개의 밝은 빛이 번쩍이며 하나의 원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수많은 검은 기운이 그 족자에서 발산되어 여인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족자를 보는 순간 한제는 덜컥 했다. 저 족자는 그의 저물대에 들어 있는, 아직 어떤 조작도 할 수가 없었던 그 족자 법보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면의 붉은색 부호가 피처럼 붉은 빛을 번쩍였고 허공에 떠 있던 여인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여인의 눈은 굉장히 맑아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그 안에 깃든 요사스러움은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순간, 한제의 머리가 뒤흔들렸다. 그는 그제야 왜 그 여인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제의 손에 들린 선검이 웅웅 소리를 내며 허이국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눈앞의 여인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선녀 동생⋯⋯.”
“고맙군. 수련자로 만들어진 나를 경지를 깨달은 잔혼으로 만들어 데려와주다니⋯⋯.”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허이국은 선검에서 빠져나와 그 여인을 향해 날아가면서 중얼거렸다.
“무서워하지 마. 이 오라버니가 간다.”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옥처럼 고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손이 허이국의 미간으로 향했다.
여인의 손가락이 미간에 닿으려는 그 순간, 허이국은 피식 비웃으며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한 줄기 검광이 휙 달려들었다.
“망할 것, 한 번 속은 것도 짜증나는데 또 속을 것 같으냐!”
그러나 여인은 여유로운 얼굴로 가볍게 후 하고 숨을 불었다. 그러자 검광은 펑 하고 붕괴하여 흩어져 버렸다.
허이국은 깜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떨며 선검으로 들어갔다.
“넌 누구냐?”
한제의 담담한 목소리에 여인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련자들은 나를 매희라 부르고 선유족은 나를 삼조(三祖)라 부르지!”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조님이셨군요. 저는 길을 잘못 들어 예까지 흘러들었을 뿐이니 이제 떠나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말을 마친 한제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여인이 눈을 번득이며 교태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삼조라고 부르지 마. 난 매희라고 불리는 게 좋거든. 여기까지 온 이상 가고 싶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할 거야.”
여인이 고운 손을 뻗어 허공을 두드리자 열 번째 층으로 돌아가는 입구가 봉쇄되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에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여인은 고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곱게 휘며 웃었다.
“뭐하는 짓이겠어? 너한테 인생의 아름다움을 한 수 가르쳐주려는 거지. 네 몸에서 깨끗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여태까지 여색을 맛보지 못한 모양이구나. 잘됐어.”
한제의 눈에 서늘한 빛이 어렸다.
“이걸 알아보겠나?”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에서 십억존혼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깃발에서는 끝없는 곡성이 흘러나왔다. 영혼을 관통하여 혼백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소리였다.
여인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십억존혼번!”
한제가 왼손으로 선검을 두드려 선력을 불어넣자 검에서 눈부신 흰색 섬광이 번득였다. 그것을 휘두르자 순간 선검은 하늘과 대지를 갈랐다.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깊은 고랑이 하나 생겼다.
“내가 가진 선력 중 1할만 썼을 뿐이다.”
한제가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보(仙寶)였구나!”
여인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흥! 그깟 법보들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네가 완전한 상태였다면 당연히 그럴 수 없겠지. 허나 여기 있는 걸 보니 큰 내상을 입은 게 분명하겠지. 나를 겁박해봤자 서로 좋을 것 없다. 오늘은 내가 순순히 물러갈 테니 너는 치료를 계속하는 게 어떻겠나?”
한제는 덤덤하게 말했으나 사실 눈앞의 여인에게 이길 자신은 전혀 없었다. 상대는 문정기 수준에 해당했으니 내상을 입은 상태라 해도 자신이 상대할 수준은 아니었다.
여인은 마치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듯 교태어린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