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48
“그저 달콤한 시간이나 즐기려 했을 뿐, 너를 힘들게 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이리 문전박대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우리 선유지는 총 19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층을 지나면 아래에는 우리 선유족이 가진 힘의 비밀도 숨겨져 있고 선유족 1대 족장의 잔혼으로 보호되고 있지. 십억존혼번을 가졌으면서 선조의 잔혼도 거두지 않을 생각인 게냐?”
한제는 상대를 바라보며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셋을 세겠다.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믿는다.”
여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좀 전에 사라졌던 출구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 쌀쌀맞게 군다면 보내주는 수밖에… 허나 네가 가진 내 경지의 잔혼은 두고 가라.”
한제는 몸을 뒤로 물리며 덤덤하게 답했다.
“선유지를 떠나기 전 풀어주겠다. 네 신통력으로 그 잔혼을 거두는 것쯤은 어렵지 않겠지.”
말을 마친 한제는 발을 굴러 출구로 향했다.
여인은 냉소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어떻게 스스로 그물에 걸려들지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은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출구에 이른 한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뚝 멈추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체내의 선력을 동원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발밑에 흰색 빛을 번득이는 진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신중한 녀석 같으니,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 저 녀석을 흡수하면 내 문양의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겠지.”
여인은 음란한 눈빛으로 입술을 핥았다.
“녀석이 방금 공격을 했다면 분명 골치가 아팠을 거야. 잘못하면 녀석을 죽여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큰 낭비지. 일단 도망치도록 해주고 나중에 산 채로 잡아 실컷 즐기겠어. 내가 점찍은 사람은 절대 도망치지 못하지.”
여인은 머리 위에 떠 있는 족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자를 잡아와!”
그녀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족자는 순간 후루룩 말리더니 번쩍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영변기 수준이면서 여태 여색을 맛본 적이 없다니⋯⋯.”
여인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고 그녀의 눈은 한층 음란하게 빛났다.
부수(符獸) 지도
열한 번째 층에 진입하기 전 배치한 진으로 되돌아온 한제는 신식으로 주위를 잔뜩 경계하며 이동했다. 그는 상대가 이렇게 쉽게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의 속도로 내달린 한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층으로 되돌아왔다. 시야에 첫 번째 층으로 향하는 입구가 들어왔다.
한데 순간이동을 하려던 순간, 한제는 갑자기 손에 든 선검을 뒤로 맹렬히 휘둘렀다.
칭 하는 소리와 함께 선검의 검광이 뒤쪽의 허공에 떨어졌다. 이어 허공 한쪽이 번쩍 하더니 여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그림 족자가 나타났다.
한제는 긴장한 얼굴로 그 족자를 바라보았다.
요사스러운 검은 빛을 발하던 족자가 천천히 펼쳐지면서 검은 그림이 드러났다. 그림 위에는 열 개의 보랏빛 점이 원형으로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빛의 점은 기이한 힘을 발산하며 돌기 시작했다.
순간 뱀 모양의 문양 하나가 그 열 개의 점 가운데 나타나 족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길이가 약 1만 척에 이르는 흉악하고 거대한 교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교룡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황수(荒獸)에 상당했다.
교룡은 포효하더니 한제를 향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그 이마에서는 아까 족자에서 나타났던 뱀 모양의 문양이 번쩍이고 있었다.
한제가 선검을 휘둘러 검광을 쏘아 보냈지만 그 검광은 그대로 교룡을 통과해 버렸다. 실체가 없는 존재인 것 같았다.
“선력도 소용이 없는 건가!”
한제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교룡이 포효하자 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금제 하나를 만들어냈다. 선력이 깃든 금제는 하얀 섬광을 번득이면서 달려드는 교룡의 입에 찍혔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교룡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웅크렸다. 흰색 금제는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녀석의 입을 막았기 때문에 교룡은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낮게 그르렁 대던 교룡은 몸을 날려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선검으로 녀석을 막았고 충돌에 못이겨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단박에 첫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출구에 이른 후, 번쩍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족자 위의 보라색 점들이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호랑이 모양의 문양이 나타냈다. 그 문양에서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검은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발톱을 휘둘러 교룡의 입을 막은 금제를 찢어버렸다.
호랑이와 용은 순식간에 휙 하고 날아가 첫 번째 층까지 쫓아갔다. 그들 뒤에서 족자는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며 천천히 따라갔다.
한제가 첫 번째 층에 이르자마자 호랑이와 용이 그를 추격해왔다.
“이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의 손에 여태껏 한 번도 통제할 수 없었던 그림 족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그를 쫓아오던 용과 호랑이는 우뚝 멈추더니 감히 나서지 못하고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그들은 제자리에서 의심어린 눈빛으로 힐끔거리며 끊임없이 포효했다.
한제가 두드리자 족자가 스르륵 풀렸고 그 족자에 붙은 시커먼 바탕의 그림에 보라색 별 하나가 나타났다.
그 그림이 펼쳐진 순간, 교룡과 호랑이는 포효를 멈추고 멍하니 그 족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자신들의 뒤로 열 개의 보라색 빛이 맴도는 그림 족자가 쫓아오자 혼란스럽다는 듯 둘을 번갈아 봤다.
열한 번째 층에 머물고 있던 삼조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부수(符獸) 지도! 어떻게 저자가 선유족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거지? 설마 어느 선조가 바깥에 유출한 것인가!”
여인은 눈을 번득이며 작게 외쳤다.
“회수!”
그녀의 말이 떨어진 순간 열 개의 보라색 빛이 나타난 그림 족자가 바르르 떨었고 교룡과 호랑이는 두 개의 새까만 문양이 되어 그 족자로 향했다.
바로 이때, 한제가 꺼낸 족자 위의 보라색 빛이 번쩍 하더니 그 안에서 흐릿하여 생김새를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는 모호한 인영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손을 들어 교룡과 호랑이가 변한 두 문양을 향해 흔들었다. 그러자 두 개의 문양이 경련하더니 방향을 틀어 그 여인에게 다가와 주위를 맴돌았다. 마치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여인은 천천히 족자 안으로 되돌아갔고 그녀와 함께 두 문양 역시 족자 안으로 들어갔다.
열한 번째 층에 있던 삼조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피를 토해냈다. 그 문양을 상대에게 빼앗기며 본래 입었던 상처가 더 심해진 것이다.
“분명 우리 선유족의 어느 선조일 터. 자신을 부수지도에 봉인하고 스스로 부수가 된 모양인데⋯⋯.”
삼조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이마에서 아홉 개의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나타났다.
“부수지도 회수!”
첫 번째 층에서 그 여인의 통제를 받던 족자가 후루룩 말리더니 어스름한 빛 한 줄기가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제는 그제야 자신의 족자를 챙긴 후 그것을 살필 틈도 없이 저물대에 집어넣고 출구로 향했다.
선유지 입구의 깊은 구덩이서는 다시 혼백들을 소환해 몸을 감싼 뒤 거대한 식물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깊은 밤에 접어든 바깥세상은 캄캄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삼조의 잔혼을 돌려주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 잔혼은 이미 삼조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였기 때문인지 삼조의 통제에서 벗어난 듯했다.
한편 한제는 삼조의 말을 통해 그녀가 이 잔혼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한제에게는 그 잔혼이 언제고 누군가와 대적할 때 좋은 공격 수단이 될 수 있었다.
★ ★ ★
주작은 주작산 뒤편 금지 구역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앞에는 붉은색 수정 한 조각이 떠 있었다. 이 심장 모양의 수정은 바로 수성(修星)의 결정을 통제하는 수성의 심장이었다.
잠시 후, 주작은 그에게서 좀처럼 보기 드문 광기어린 두 눈을 빛냈다.
“운작, 내 비록 선유족에게 원한은 없지만 네놈에게 품은 한은 하늘을 뒤덮고도 남는다. 운작,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고 천부적인 자질도 비슷했지만 어째서인지 선대 주작 건평해는 언제나 너를 더 높이 쳐주었지. 네게는 항상 넘치게 칭찬을 해주면서도 내게는 끊임없는 욕만 쏟아놓았어.
또한 나를 보는 눈빛은 언제나 매섭고 냉랭했다. 그래서 당시 그가 내게 주작진을 주었을 때, 나는 감격한 나머지 그 전의 일은 다 잊었다. 오직 이번 생을 주작성에 바치는 좋은 주작이 되겠다는 다짐만이 남았지.”
주작의 목소리에 점점 분노가 어렸다.
“허나 그 건평해가 그토록 악독한 마음을 품었을 줄이야! 주작진은 양날의 검으로 사용할 때마다 원신에 큰 손상을 입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나는 대체 그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 내가 당시 몰래 힘을 써서 오랫동안 세운 계획에 따라 선대 주작이 죽기 전에 수성의 심장을 손에 넣지 않았다면 현재 주작은 내가 아니었겠지.”
주작의 목소리에는 이제 분노를 넘어 한이 서려 있었다.
“건평해, 이 어리석은 자여. 죽기 전에 운작을 차기 주작으로 임명하다니. 네 분부대로 수성의 심장을 운작에게 넘겼다면 주작성은 한참 전에 이미 선유족 세상이 됐겠지. 흥! 망할 작자 같으니… 네 시체를 주작의 묘에 안장하지 않고 시음종에 팔아 버린 정도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네 후손에게라도 보복을 해야만 내 마음이 풀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작성을 샅샅이 뒤져 네 후손인 건풍을 찾아냈다. 너와 같은 영기의 뿌리를 가졌고 외모 또한 당시의 너와 닮았지. 나는 당시 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녀석에게 주작진을 주었다. 녀석이 주작진을 사용할 때마다 얼마나 통쾌한지 아는가?”
주작은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러더니 다시 광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운작, 너는 수성의 결정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 3개월의 시간을 준 것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겠지. 2대 주작의 봉인 때문에 수성의 결정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이 수성의 심장을 파괴하면 수성의 결정도 파괴할 수 있다.
다만 그 대가가 너무나 커. 나의 명혼(命魂) 역시 수성의 결정에 깃들어 있으니… 수성의 결정이 부서지면 나 역시 죽음을 맞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네놈들이 수련연맹의 공격을 받게 하는 것도 괜찮겠지.”
주작의 목소리가 점차 침착함을 되찾아갔다.
“수련연맹은 절대 수련성의 일에 쉽게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성의 결정이 부서진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들이 왜 그토록 수성의 결정을 중히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주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3개월은 사실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준 것도 나를 조급하게 만들려고 준 것도 아니지. 운작, 나는 너와 내기를 하고 있다. 나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네가 이긴다면 이 주작성을 너에게 줘버려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네가 진다면 나는 이 주작성을 파괴하여 너희 선유족을 순장시킬 것이다. 내가 비록 첫 번째 주작은 될 수 없었으나 마지막 주작은 될 수 있겠지. 그 기회는 다름 아닌 네가 준 것 아니더냐?”
말을 마친 주작은 다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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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대륙 서부의 평원.
지면에는 1천 개가 넘는 간이 가옥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수련자들은 그 가옥 안에든 밖에서든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했다.
이들은 대부분 5성 수련국의 제자들로 이곳은 주작대륙의 서부 방어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