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5
“대담하군!”
일갈한 송행이 한제를 향해 몸을 날리며 머리를 붙잡으려는 듯 오른손을 뻗었다. 그 빠른 움직임에 위무 표국의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한제는 송행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꾸러미를 열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인삼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인삼은 비쩍 마르고 작았으며, 수염이 비정상적으로 세밀하고 빽빽했다. 인삼을 덮은 노랑 종이가 인삼에 깃든 영기를 숨기고 있었다.
이 무렵 송행은 한제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비릿하게 웃으며 한제의 목을 쥐려 했다.
허나 그 순간, 그의 몸이 바르르 떨리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 듯 몸이 뒤쪽으로 확 꺾였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한참이 지나도록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모든 사람들은 넋을 놓고 말았다. 한제는 인삼에 붙어 있는 노란색 종이를 떼지 않고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오랜 친구를 만나고도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을 텐가?”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숲 안쪽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냉혹한 표정의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형태 없는 기류를 풍기는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표국 사람들을 둘러싼 검은 옷의 사람들은 분분히 길을 비키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대연을 뵈옵니다.”
허공에 가만히 떠 있던 세 개의 불덩어리가 청년 곁으로 날아가더니 그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았다. 청년은 옆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송행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한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10년 동안 겉모습에 조금의 변화도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데 넌 대체 누구지?”
한제는 그 청년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저물대에서 노란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 종이를 본 순간, 청년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한제를 다시 자세히 살피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뭔지 모르겠으나, 그 인삼은 내게 넘겨라. 내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흠칫 놀란 한제는 신식으로 상대를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더니 인삼을 던졌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
청년의 얼굴에 복잡한 빛이 스쳐 지나갔으나, 이내 바닥에 떨어진 인삼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고맙군. 그럼 이만!”
말을 마친 그가 몸을 틀어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시커먼 구름 한 조각이 떠올랐다. 그 시커먼 구름이 나타나자마자 기이한 바람이 일었고 그 거센 바람에 위무 표국의 사람들은 분분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시커먼 구름은 빠른 속도로 아래쪽으로 내려왔고 바람의 기세는 더욱 거세졌다. 그 시커먼 구름 속에서 하얀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서서히 내려왔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표사 하나가 비명을 내지르더니 폭발하듯 몸이 터져나가며 피 안개를 일으켰다. 이어 다른 표사들도 하나둘 그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피 안개를 일으켰다. 피 안개는 허공에서 기이하게 꿈틀거리더니 빠른 속도로 한 곳에 응집되어 번쩍이는 피 구슬을 이루었다.
중년의 남자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자 피 구슬은 그의 입가로 사라졌고 이어 그의 얼굴에 미미하게 혈색이 돌았다. 그 남자는 씩 웃더니 말했다.
“장호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찌 알아보지 못하느냐?”
순간 표정이 구겨진 장호가 공손하게 말했다.
“스승님, 저는 저 자를 모릅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신식을 펼친 한제가 흠칫 놀랐다. 그 중년의 사내는 이미 응기 15단계의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더니 한제를 향해 말했다.
“도우, 내 제자를 알고 있나?”
그의 말에 한제는 태연하게 답했다.
“알면 어떻고 알지 못하면 또 어떻겠습니까?”
중년의 남자는 한제를 자세히 살피다가 흉악하게 웃었다.
“상관없다. 응기 8단계에 달한 네놈의 피를 마신다면 나의 수준이 적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이야!”
순간 표정이 굳은 장호가 그 중년 남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스승님, 사실 저 자는 어렸을 적 친구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저 자는 놓아주십시오.”
중년의 남자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음산하게 말했다.
“닥쳐라!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네 할 일은 저놈들의 피를 모아 내게 바치는 것뿐이다.”
장호가 막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중년의 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장호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더니 온몸에서 경련을 일으켰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으며,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다.
지묵 노인
한제가 눈썹을 실룩이며 인력술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으로 붙잡자 중년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렸다. 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입을 벌려 초록색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번득이며 작은 검으로 변해 그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을 베었다.
한제의 인력술은 이미 최고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단숨에 인력술을 둘로 나누어 하나로는 장호를 붙잡고 다른 하나로는 초록색 비검을 붙잡았다.
진동하던 초록색 비검의 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중년 남자는 가늘게 뜬 눈으로 한제를 일별하더니, 검은색 칼집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어 그의 두 손에서 여러 갈래의 붉은색 빛이 퍼져 나오더니, 인력술에 붙잡혀 있던 초록색 검이 진동하며 순간 사라졌다. 비검은 곧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는 인력술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에서 벗어나 칼집과 하나가 된 상태였다.
한제는 침착해 보였으나 내심 심장은 철렁였다. 인력술이 힘을 쓰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제는 결심한 듯 저물대를 두드렸고 그러자 여러 개의 검은 나무 막대기가 튀어나와 하나로 연결되더니 한 마리의 뱀이 되어 채찍처럼 빠르게 날아들었다.
한제는 손대주가 남긴 물건 중 하나인 이 채찍뱀을 동굴에서 수련하는 동안 연구했고 사도환의 도움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중년 남자의 비검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5분의 1정도만 칼집에 들어간 채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고 순식간에 초록색에서 남색으로 변하며 칼집에서 튀어나가더니 채찍뱀에게 맹렬히 날아들었다.
한제는 채찍뱀을 조종해 비검의 공격을 피한 뒤 곧장 중년 남자에게 달려들게 했다. 중년 남자는 차갑게 웃더니 채찍뱀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한손을 비검 쪽으로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비검이 진동하더니 사라졌다가 곧바로 중년 남자 앞에 다시 나타났다. 중년 남자는 음산하게 웃으며 입에서 금빛을 번쩍이는 피 구슬을 토해냈다. 이 피 구슬은 튀어나오자마자 금색 실로 변해 비검에 스며들었다.
속으로 혀를 찬 한제가 막 채찍뱀을 거두어들이려던 그때, 붉은 빛이 번득이며 비검의 그림자가 떠오르더니 검보다 빠른 엄청난 속도로 채찍뱀을 내리쳤다. 둘로 갈라진 채찍뱀은 검은 나무 조각으로 변해 뚝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년의 남자는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오른손을 휘저으며 붉은색 빛줄기를 내뿜었다. 그의 두 손가락이 한제를 향하자 비검의 날카로운 끝이 한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장호를 뒤쪽으로 당김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그때 비검이 붉은 빛을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미미하게 진동하는 칼끝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는 벌써 한제의 눈앞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굳은 얼굴로 오른손을 휘저어 저물대 안에서 옥패 하나를 꺼냈다. 이 옥패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반투명한 남색 빛의 장막이 되어 비검의 그림자와 충돌했다.
푸른색과 붉은색 빛이 교차하는 순간, 푸른색 빛의 장막이 진동하더니 그 위에 거미줄과 같은 흔적이 남았다. 붉은빛을 뿜는 비검의 그림자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한제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영기를 한꺼번에 토해냈다. 그러자 빛으로 이루어진 장막의 색이 남색에서 청색으로 바뀌었고 반투명한 상태 역시 혼탁하게 바뀌었다.
거미줄 모양의 흔적이 빠르게 회복되며 비검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옥패에는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깨진 흔적이 미미하게 남았다.
“음?”
중년 남자는 가늘게 뜬 눈으로 한제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기 8단계가 아닌 모양이구나. 하지만 설령 네가 축기에 이르렀다 해도 내 비검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손을 휘둘렀다. 살짝 진동한 비검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다시 칼집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그 비검은 칼집의 5분의 2정도 들어가더니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중년의 남자가 낮게 소리치자 그 비검은 곧장 칼집에서 튀어나왔다. 검은색으로 변한 비검은 이전보다 훨씬 더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으니, 주희봉으로부터 얻은 방어 옥패로는 버텨내지 못할 터였다.
한제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득였다. 이는 그가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을 시작한 뒤 마주한 첫 번째 전투였고 상대의 수준은 자신과 같았다. 하지만 상대가 가지고 있는 법보는 분명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교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밀리고 있었다.
한제는 또 저물대를 두드렸고 그러자 옥패 하나가 천천히 떠올라 한제의 앞에 이르렀다. 이 옥패는 손대주의 저물대에서 찾은 것 중 가장 강한 위력을 가진 법보로 결단기에 이른 사람과 같은 수준의 힘을 가진 단보(丹寶), 즉 결단기에 이른 고수가 제작한 법보였다. 한제는 이 또한 사도환의 지도 아래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영기를 불어넣으며 두 손으로 결인(結印)하자 작은 금색 부호들이 옥패에서 튀어 올랐다.
한제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는 잠시 이를 악물고 두 개의 금색 구슬을 뱉어냈다. 그 구슬들은 실처럼 풀리더니 또다시 비검에 스며들었다.
이제 금빛을 띈 검은색 비검은 하늘에서 한 바퀴 빙 돌더니 강렬한 소리와 함께 한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은색의 회오리가 비검을 감싸며 맴돌았다.
한제는 검은색 비검은 돌아보지도 않고 한손으로 자신의 옥패를 가리켰다. 그러자 옥패 위에서 돌고 있던 아홉 개의 금색 부호들이 한 줄을 이루었다. 이어 결인을 하자 세 개의 부호가 번쩍 빛을 발하더니,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던 비검에게로 다가가 그 공세를 저지했다.
비검은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포효하며 벗어나려 했으나, 부딪힐 때마다 세 개의 부호는 금빛으로 번쩍일 뿐 비검을 놓아주지 않았다.
중년의 남자가 구겨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단보?”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려운 기색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중년 남자는 허공에 떠 있는 칼집을 챙겨 즉각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냉소하며 두 손으로 다른 모양의 결인을 취했다. 순간 남아 있는 여섯 개의 금색 부호가 일 자 대형을 이루며 한꺼번에 와르르 중년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중년 남자의 눈에 깃든 두려움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빠른 속도로 후퇴하며 저물대 안에서 여러 개의 옥패를 연이어 꺼내들었다. 허나 그 옥패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효력을 발휘할 틈도 없이 차례로 부서졌을 뿐, 부호들의 공격을 조금도 막아내지 못했다.
중년 남자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우, 난 지묵 노인의 제자.”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금색 부호는 이미 그의 코앞에 닥쳐 있었다. 첫 번째 부호가 번개처럼 그의 가슴팍에 찍혔다. 얼굴이 붉어진 그의 가슴팍이 순간 푹 꺼지더니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두 번째 부호가 그 뒤를 이었다.
중년 남자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흘렀고 가슴은 기척 없이 뚫려버렸다. 이어 세 번째 부호의 공격에 중년 남자의 몸이 찢어지며, 저물대까지 재로 흩어져 버렸다. 오직 그 칼집만이 아무런 손상도 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옥패를 건드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세 개의 부호는 공격을 이어가려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추더니 곧장 옥패로 돌아와 스며들었다. 세 개의 부호에 붙잡혀 있던 비검은 중년 남자가 죽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더니 결국 서서히 멈추었다.
한제가 손을 뻗자 세 개의 부호는 미약하게 진동했다. 그중 두 개의 부호는 흩어져 사라졌고 하나만이 남아 한제에게 소환되어서는 다시 옥패로 복귀했다.
한제는 신중하게 그 옥패를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이 옥패는 원래 한 번의 공격만이 가능한 물건이었으나 그가 수련을 하던 4년 동안 사도환의 지도 덕분에 한 번의 공격을 아홉 번에 나누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위력은 이전과 같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었다.
정리를 마친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마에는 아직도 땀이 맺혀 있었다. 지금까지 중 가장 험난했던 전투였다.
그는 인력술로 칼집과 비검을 가져와서는 자세히 살폈다.
“방금 내가 나서지 않은 것은 내 원영의 정화에 한계가 있어서 마음대로 써버리면 안 될 뿐만 아니라, 네게는 좋은 경험일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투가 네게는 도움이 될 테니 말이야.”
사도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한제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손에 들린 보물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이 비검은 정말 특이하구나. 아까 그 녀석은 이 비검의 진정한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 칼집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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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가 비검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장호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러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제의 손에 들린 비검과 칼집을 보고 희색을 띄었다.
“그 자는, 죽은 거야?”
한제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