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53
귀여운 동자의 몸으로 그런 말을 내뱉으니 정말로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해, 보고 있던 한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작의 광분 (1)
주작대륙의 사방에는 선유족 대군이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채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선유국의 동부 대군을 이끄는 오조(五祖)는 서늘한 눈빛으로 외쳤다.
“3개월의 기한이 지났다. 이제 주작국을 멸하겠다.”
말이 끝나는 순간, 그는 검은 안개와 그 뒤의 선유족인들을 이끌고 질주했다. 목표는 주작대륙 중앙, 주작국의 주작산이었다.
동시에 다른 세 방위의 선유족들도 앞 다투어 이동했다. 주작국을 향한 마지막 진격이었다.
주작대륙에 심어진 두 개의 거대한 윤회수는 푸른빛을 번득였고 그 안에는 빛을 뿜어대는 두 개의 조령(祖靈)이 있었다. 이들의 미간에 있는 열 개의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번득였다. 두 조령 역시 주작국을 향해 질주했다.
선유족의 진격에 주작국은 연이어 패퇴하며 곳곳의 방어선이 밀려났다. 주작대륙 전체로 퍼진 수많은 전장에서 땅이 진동했고 법보를 발동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주작은 주작산 위에 서 있었다. 붉은 옷과 성성한 백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초운비는 떠났다. 지백문의 문정기 노인도 숨어서 폐관수련만 하고 있었다. 지금 주작국에 남은 문정기 수련자는 주작이 유일했다.
그의 표정에는 절망과 고독이 묻어났지만 번득이는 광기가 이를 압도했다.
“주작성 수련자들아, 더 이상 이 주작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모든 선유족이여, 어서 오거라! 건풍, 류미, 너희 둘도 오너라!”
주작의 목소리가 신식을 통해 온 주작대륙에 퍼졌다.
주작성의 방어군 역할을 하던 수련자들은 싸움을 멈추었고 깊게 한탄하며 목숨을 구하고자 사방으로 달아났다.
사방에서 몰려들던 선유족인들은 수련자들의 저지가 사라지자 더욱 미친 듯이 주작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작대륙은 사방에서 몰려든 검은 안개로 뒤덮여갔다.
주작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끝나는구나!”
잠시 후, 저 멀리서 두 개의 인영이 다가왔다. 건풍과 류미였다.
건풍은 사악함이 번득이는 기이한 눈빛으로 말없이 주작을 바라보았다. 마치 선녀처럼 온몸을 하얀 면사로 두른 류미는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침묵했다.
“주작성의 실력으로는 선유족을 막아낼 수 없다. 너희 두 사람은 오늘 처음으로 생사를 가르는 위협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너희 능력에 달렸다.”
주작의 뒷모습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하늘에서는 검은 안개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동쪽에서 확산되고 있는 검은 안개에는 단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잿빛 옷을 입은 그 중년인은 단숨에 1천 척 거리까지 다가와 덤덤하게 말했다.
“주작, 나는 오조다.”
서쪽에서 다가온 검은 안개에서도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젊은 그의 온몸은 금색 문양으로 덮여 있었다.
“선유족의 소족장이 주작을 뵙습니다.”
젊은 남자가 덤덤하게 말했다.
남쪽의 검은 안개는 세 사람이 있었다. 그중 두 남자는 실체가 아닌 허상이었고 한 사람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요염한 눈으로 주작을 훑어본 뒤 미소를 지었다.
“삼조(三祖), 주작을 뵙습니다. 제 곁에 있는 두 분은 우리 선유족의 조령이시죠.”
북쪽에서 끓어오르던 검은 안개 속에서 운작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형.”
운작의 조용한 목소리에 주작은 그를 노려보았다.
“운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조(二祖)라 불러야 하나?”
운작은 고개를 저었다.
“사형의 뜻대로 하시구려.”
“이게 다인가? 선유족의 유일한 십일엽(十一葉) 술주사인 일조(一祖)가 안 오지는 않았을 텐데?”
주작의 싸늘한 목소리에 오색광채가 하늘에서 응집되더니 거의 투명에 가까운 허상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천천히 땅에 내려앉았다.
“주작!”
일조의 외모는 평범했으나 그는 손짓 한 번으로 문정기 수련자인 초운비를 놀라 도망가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사형, 우리는 주작성을 멸할 생각은 없어. 그저 공존하려는 것뿐이지. 동의한다면 수성(修星)의 결정을 내놔. 그럼 전쟁 없이 주작성을 둘로 나누고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운작의 말에 주작은 대소했다.
“내가 수성의 결정을 파괴할까 걱정되느냐? 그렇다면 이럴 게 아니라 한꺼번에 달려들어 공격을 하면 될 일 아니더냐?”
“건방지군!”
오조가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순간 문양 하나가 나타났다. 오조는 왼손으로 그 문양을 두드리며 한 움큼 선혈을 토해냈다.
“인장!”
그 문양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어 요사스러운 붉은 빛을 번득이더니 미친 듯이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주작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오조는 주작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이는 그저 떠보기 위한 시도일 뿐,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주작은 싸늘하게 냉소할 뿐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에 금빛이 나타나 문양과 격돌했고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줄무늬가 나타나더니 문양은 펑 하고 붕괴해버렸다. 동시에 오조는 얼른 몸을 뒤로 물렸으나, 안색은 핼쑥하게 변했고 미간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일조가 훌쩍 다가와 앞을 막아서더니 한손을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금색의 얇은 바늘 하나가 나타더니 자취를 감췄다.
주작은 차가운 얼굴로 몸을 훌쩍 날렸다. 어찌나 빨랐던지 일조와 운작을 제외한 나머지는 잔영조차 볼 수 없었다.
“주작인(朱雀印), 공격!”
허공에서 주작의 노련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면서 주작의 체내로부터 화염이 뻗어 나왔다. 이 화염은 미친 듯한 기세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 1만 척을 뒤덮었고 땅에는 균열이 일었다.
“모두 피해!”
일조의 외침에 그와 운작을 제외한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 화염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불로 이루어진 한 마리 봉황이 주작의 몸에서 나타나 허공에서 길게 울더니 몸을 웅크렸다가 마치 유성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이를 본 일조는 몸에서 짙은 검은 빛을 내뿜으며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킨 채 몸을 날렸다. 순간 그의 미간에서 열한 개의 이파리를 가진 식물이 생겨났고 이파리 하나가 떨어지더니 일조가 가리킨 곳으로 날아들었다.
불로 이루어진 봉황의 울음소리는 곧장 그 이파리를 뚫고 일조의 몸을 관통했다. 그리고는 그 뒤에 있던 오조에게 달려들었다. 너무도 빠른 속도였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봉황은 사라졌다.
“끄아악!”
온몸이 불에 휩싸인 오조는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주작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은 어두웠다. 온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주작인(朱雀印)은 수명을 대가로 발휘하는 것으로 지금 그에게 남은 수명으로는 두 번의 공격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주작인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신식으로 한 번 정해둔 공격 대상을 다시 바꿀 수 없는 대신 세상 그 무엇으로도 그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록 이 일격으로 일조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처음 공격 대상으로 삼은 오조는 단번에 죽여 버렸다.
주작이 일조나 운작을 공격 대상으로 정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이 공격으로는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있어도 단번에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오조를 공격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그러나 선유족인들은 슬픔이나 분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작인!”
일조가 침음했다.
“사형, 이제 주작인을 사용할 수 있는 건 한두 번이겠군. 내가 3개월의 시간을 준 이유는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주작성 모든 수련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우리 선유족을 멸망시킬 것인가 아니면 내 말대로 주작성을 둘로 나눌 것인가?”
주작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는 운작을 광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글쎄? 어떨 것 같은가? 아니, 그보다 우리 내기를 하는 게 어때? 네가 이기면 주작성을 내주지. 허나 내가 이긴다면 너와 선유족은 이 주작성의 모든 수련자들과 함께 매장되는 거야!”
운작은 잠시 말없이 주작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무슨 내기인지 들어보기나 할까?”
주작은 여전히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운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수성의 결정은 영변기 수련자라면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역대 주작의 묘에 있지. 만약 너희가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을 폭파시키겠다. 어떠냐?”
운작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수성의 결정 안에는 모든 수련자들의 명혼(命魂)이 있으니 그것을 폭파시키면 사형의 두 제자 역시 황천길로 가겠지.”
그는 건풍과 류미를 번갈아 보며 말을 맺었다.
그 말에 건풍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류미 역시 가늘게 뜬 눈으로 주작을 힐끗 쳐다보았다.
‘수성의 결정이 그런 역할을 할 줄이야⋯⋯. 이 노인네가 지금껏 그런 사실을 숨겨왔단 말인가?’
건풍은 주작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삶과 죽음은 운명에 달렸다. 건풍, 류미, 너희에게도 주작의 묘에 들어가 명혼을 찾을 기회를 주겠다. 만약 명혼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내 탓 말고 죽음을 받아들여라.”
주작은 말을 마친 뒤 두 손을 휘둘렀다. 갑자기 그의 머리가 흩날렸고 이어 그가 낮은 소리로 주문을 외더니 한 움큼 선혈을 토해냈다. 그러자 한 줄기 붉은 빛이 그의 가슴에서 나타나더니 심장 모양의 붉은색 수정이 됐다.
“파괴!”
주작이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 붉은 수정에 균열이 일었다. 균열이 점차 많아져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했다.
그 순간, 주작성 태생이라면 수준이 문정기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모두 가슴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심지어 주작성을 떠났더라도 주작성 태생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고통이었다. 또한 이는 영혼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이라 저항할 수도 없었다. 도망치고 있던 자나 상처를 치료하던 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던 자들도 모두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을 느꼈다. 조금 더 심해지면 정신부터 무너지고 미쳐버리다가 결국에는 죽고야 말 정도의 고통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작성의 모든 식물과 동물, 마수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같은 통증을 느꼈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주작산을 향해 몰려들던 선유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비교적 약했지만 자신들의 운명이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느낌에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공격을 하던 사람들은 더는 공격하지 못했고 도망치던 사람들도 더는 도망치지 못했다. 온 주작성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멈춰버렸다. 남은 것은 고통에 찬 신음과 짙은 두려움뿐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주작은 불현듯 한 줄기 깨달음을 얻었다.
“수련연맹에서 수성의 결정을 준 것은 그 때문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