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55
주작묘는 주작산을 입구로 한 또 다른 세계였다. 그곳은 너무도 거대했고 수성의 결정이 내뿜는 기이한 힘으로 뒤덮여 있어 주작산 입구를 통하지 않고는 들어설 수 없었다.
이 주작묘는 역대 주작들에게 가장 위엄 있는 곳이자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1대 주작이 막 만들었을 당시에는 이렇게 크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수성의 결정이 봉인한 명혼이 많아짐에 따라 마치 생명을 가진 생물처럼 점점 거대해져갔다. 그러더니 산과 물, 하늘과 땅까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초토화된 령(靈)
한제는 주작묘 외곽에 나타났다. 이곳은 초토화되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이 아니라 스쳐가는 번개와 번득이는 일곱 빛깔 광채, 그리고 수많은 공간의 균열뿐이었다. 이 강력한 법술의 파동이 나타날 때마다 세상은 한 번씩 그 색을 드러냈다.
한제는 신식을 사방으로 펼쳤다. 사방 수만 리 안는 모두 마른 흙으로 뒤덮여 있었고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한제는 긴장한 눈으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사도환은 이 주작묘가 크지 않고 안팎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지. 외부에는 제단이 하나 있어 그곳을 통해서만 내부에 들어설 수 있고 그 중심에 1대 주작의 묘와 수성의 결정이 있다고 했고… 한데 외부가 비록 내부보다는 넓지만 신식으로 뒤덮을 수 있을 정도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넓어서야 신식으로 뒤덮을 수도 없고 제단 찾는 것도 벅차겠어!”
한제는 한숨을 내쉬더니 쪼그려 앉아 마른 흙을 만져보았다. 뜨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불 속성의 영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이건 수련자들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불의 령(靈) 같아.”
한제는 방향을 정해 몸을 날렸다.
“반경 수만 리 내에 사람이라고는 나뿐이야. 이곳에 들어서면 무작위로 흩어지는 모양이군.”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그때, 초토화된 땅에서 기이한 푸른 빛을 띤 눈 한 쌍이 떠올라 한제를 바라보다가 다시 흙 속으로 가라앉았다.
한제는 순식간에 초토화된 땅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한데 바로 그때, 그는 움찔 멈추더니 유성처럼 빠르게 긴 잔영을 남기며 뒤로 물러났다.
쾅!
몸을 뒤로 물린 순간, 방금 전까지 그가 있던 곳에 한 덩이 푸른 화염이 떨어졌다. 족히 한 사람 키에 달할 정도로 큰 그 화염이 나타난 순간 주위의 온도가 삽시간에 올라갔다. 그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땅 여기저기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는 마치 구불거리며 유영하는 유혼처럼 흩어졌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연기로 변했다. 그리고 그때,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1만 리 안의 초토화된 땅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모두 그 푸른 화염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화염은 검은 기운을 마치 촉수처럼 내뿜었는데 그 수가 상당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휘둘렀다. 초승달과 같은 검광이 폭풍처럼 사방을 휩쓸면서 그 푸른 빛의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촉수처럼 뻗어 있던 검은 연기가 기이하게 응집되더니 거대한 방패가 생겨났다.
쾅!
거대한 소리에 하늘이 뒤흔들리면서 방패가 흩어져 사라졌다. 검광 역시 반으로 줄었으나, 그대로 검은 연기를 뚫고 나가 화염 덩어리에 떨어졌다. 그러자 화염 덩어리에 팔 하나 정도 길이의 상흔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염 덩어리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지면의 마른 흙 안에서 대량의 검은 기운이 미친 듯이 올라와 그 상흔을 채웠다. 그와 동시에 화염 덩어리는 천천히 사람 형상으로 변해갔다. 여덟아홉 살 정도에 불과한 아이의 형상이었다.
한제가 검광을 날렸을 때부터 화염 덩어리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순간에 불과했다.
아이는 온몸에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 칠흑처럼 검은 눈으로 한제를 보며 맑게 웃었다.
“나랑 놀자⋯⋯.”
냉랭한 눈으로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던 한제는 단번에 상대가 마수가 아니라 마른 흙 안의 그 뜨거운 영력이 만들어낸 불 속성의 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존재는 죽이기가 어려웠다. 지면에 가득한 마른 흙이 모두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꺼져!”
한제는 냉랭하게 외친 뒤 몸을 훌쩍 날렸고 그러자 아이가 손을 휘저었다.
“가지마⋯⋯.”
콰르릉!
아이가 손짓을 한 순간, 저 앞의 마른 흙이 솟아올라 수천 척 높이의 장벽이 되어 한제 앞을 가로막았다. 한제는 싸늘한 얼굴로 장벽을 노려보았고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초토화된 땅을 벗어나 수만 리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형상을 한 불의 령은 마른 흙이 펼쳐진 땅의 끝에 이르러 그 자리에 서서 한제를 바라보았으나 그 마른 흙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거기까지가 녀석이 이동할 수 있는 범위인 듯했다.
“가지마!”
아이가 길게 포효하며 두 팔을 펼쳤다. 순간 대량의 검은 기운이 아이의 몸에서 미친 듯이 솟아오르더니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마른 흙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수만 리 범위의 마른 흙이 갑자기 우르릉 소리와 함께 기이하게 요동치면서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여전히 냉랭한 눈으로 아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다시 앞으로 날아갔다.
점점 멀어지는 한제를 본 아이의 표정이 초조하게 변했다.
“가지마! 가지마!”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검은 기운을 더 많이 발산하자 지면의 마른 흙의 이동 속도가 더욱 빨라졌으나 한제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시야에서 한제의 모습이 사라지자 아이의 표정이 사악하게 변했다.
“아아아아!”
아이는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어 아이의 몸이 흩어지더니 다시 푸른 화염이 되어 마른 흙 아래로 가라앉았다.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던 마른 흙은 잠시 후 조금 안정되더니 앞으로 미친 듯이 뻗어나갔다. 일직선으로 늘어지면서 앞을 향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움직였다.
한제는 고개를 돌려 지면에서 마치 교룡처럼 꿈틀대는 긴 선이 미친 듯이 추격해오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 긴 선의 가장 앞에는 푸른 화염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아이의 기이한 두 눈동자가 번득였다.
“빌어먹을!”
한제는 저물대에서 선옥 한 조각을 꺼내 흡수했다. 그러자 선력이 곧장 그의 몸에 들어찼고 두 눈에서 빛을 번득였다. 그 상태에서 선검에 선력을 불어 넣자 선검은 보라색과 금색 빛을 내뿜었다.
한제가 선검을 휘두르자 하늘의 위엄이 깃든 듯한 검광이 쏟아졌다. 선력이 깃든 검광은 아까와 달리 엄청난 힘을 안은 채 허공을 갈랐다. 검광은 한 번 번쩍이더니 곧장 그 마른 흙을 내리쳤다.
쩌적!
검광이 땅을 내려치는 순간, 대지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괴!”
한제는 낮게 외쳤다.
콰광!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수만 리 넘게 이어진 마른 흙의 선은 순식간에 붕괴해버렸고 마른 흙은 하나하나의 모래알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각각의 모래알에서 기이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모래알 하나를 잡아채고는 잠시 자세히 살피다가 몸을 돌려 곧장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낱낱이 흩어진 모래알이 서서히 한데 모여들더니 곧 거대한 마른 흙덩어리가 됐다. 그 흙덩어리 속에서 기이한 두 눈이 천천히 나타나더니 슬픈 듯이 한제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가지 마⋯⋯.”
한데 그때, 아이의 두 눈이 갑자기 뒤쪽을 향했다. 그곳에서 한 줄기 긴 잔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초토화된 땅을 떠난 한제의 표정은 복잡했다.
좀 전의 그 마른 흙으로 이루어진 아이는 불의 령이 아니었다. 만약 불의 령이었다면 방금 공격에 소멸됐을 것이다. 하지만 선력을 품은 공격으로도 흙덩이만 붕괴됐을 뿐 상대는 어떤 상해도 입지 않았다.
“심지어 그 흙도 잠시 흩어지기만 했을 뿐, 파괴되지는 않았지. 더구나 흙의 낱알마다 영혼이 있는 것 같았어. 설마… 저게 명혼은 아니겠지?”
우뚝 멈춰 선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이 지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약한 비명이 뒤쪽 저 멀리서 들려왔다.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한제는 그 웃음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곧바로 눈치챘다.
‘나랑 놀아줄 사람이 생겼다.’
한제는 손에 쥔 모래알을 신식으로 훑어보려 했지만 모래알은 신식의 진입을 막았다. 한제는 신식에 선력을 불어넣어 선식(仙識)을 만들어냈다. 선식은 곧장 모래알의 저지를 뚫고 들어갔다.
그 순간, 거울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뇌리를 통해 전해졌다. 뒤이어 모래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더니 푸른 불씨가 한제의 손바닥에서 떠올랐다.
불씨를 본 한제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명혼! 역시 그 모래알 하나하나가 명혼이었어!”
허나 이 명혼은 분명 수련자가 아닌 일반인의 것이었다.
“그 아이는 무수히 많은 명혼이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이니 선검의 위력으로도 해칠 수 없었던 거야!”
한제는 심각한 얼굴로 하나의 점과 같은 작은 불씨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모래알 안에 집어넣었다. 명혼이 모래알로 되돌아가자 모래알의 미세한 균열들도 맞물려 처음과 같은 상태로 회복됐다.
한제는 모래알을 다시 마른 흙이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사도환은 명혼이 수성의 결정 안에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내 명혼도 저런 존재 안에 들어 있는 건가?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겠군.”
한제는 더욱 긴장한 채 다시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주작묘에는 바깥세상처럼 산도 있고 물도 있었으며 그 안에서 짙은 영기가 피어올랐다. 바깥세계의 어느 종파 땅보다 몇 배는 더 짙은 영기였다.
한제는 사흘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깊은 곳을 향해 날았다. 허나 그동안 내내 신식을 펼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어느 평원 위를 지나고 있었는데 푸른 풀이 자라나 있는 이 초원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수련자를 마주치지 않았다.
한데 갑자기 한제의 안색이 변하더니 몸을 휙 돌렸다. 뒤쪽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번득이는 두 줄기의 잔영이 나타났다. 이 두 남녀는 멀리서 한제를 보더니 움찔했다.
한제는 자신의 수준을 숨기기 위해 이제 막 화신기에 이른 수련자로 보이도록 했다.
두 개의 신식이 다가와 한제를 훑더니 안심한 듯 천천히 다가왔와 수천 척 거리에서 멈추었다. 겉보기에는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 이들이었다. 청년은 약간 낡고 검게 변한 혈흔이 여기저기 묻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소매에는 기이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소속된 종파의 표식인 듯했다.
여인의 얼굴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굴 여기저기 작은 구멍이 빽빽해 밤에 봤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만 같았다. 허나 몸매만큼은 매우 뛰어났다. 그녀는 하얀 면사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청년이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모용운이라 하네. 도우의 이름은 무엇인가?”
한제는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했다.
“나는 청목이네.”
청년은 화신기 중기 수준이었고 여인은 화신기 초기 수준이었다. 이는 주작묘 안에서는 매우 약한 편이었다. 아마도 이들이 저 정도 수준으로 벌써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작묘가 열렸을 당시 주작국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용운은 한제를 몇 번이나 자세히 살피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도우의 수준은 이제 막 화신기에 들어온 모양인데?”
곁에 있던 여인은 한제를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그렇다네. 방금 막 화신기에 올랐지.”
그 후로도 한동안 한제를 더 살핀 후에야 모용운은 한시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