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63
나와 같은 고대 신 일족의 아이가 자라나는 듯한 느낌이었지. 그건 바로 너희 수련자들이 말하는 수성의 결정이었다. 그것을 통해 나의 봉인은 돌파구를 찾았고 환혼술(換魂術)을 통해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됐다.”
탁삼은 다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킬킬거렸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서사에게 감사해야겠구나. 당시 그는 이곳을 택한 후 토착민들에게 신으로 숭배받았고 그들에게 고대 신의 제사를 지낼 곳을 만들게 했다. 비록 수만 년 전 일이라 그 토착민들은 사라졌지만 선유족의 지하 깊은 곳에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고대 신의 제사 장소가 있다. 그곳을 통해 나의 신통력을 약간이나마 발휘할 수 있었지.”
탁삼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곳에 있는 선유족은 언제나 잠들어 있었지. 수성의 결정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난 어떤 대가도 아깝지 않았어. 남몰래 그 녀석을 십일엽에서 십이엽으로 승급시켜 봉인을 뚫도록 도와줬지. 덕분에 수성의 결정이 숨겨져 있던 곳이 마침내 열렸다.
이한제, 너는 모르겠지만 나의 사자는 너를 만났다. 많이 변했더구나. 허나 이 탁삼이 어찌 너를 잊겠느냐? 이한제, 이 탁삼이 풀려나는 날, 나는 기억의 유산을 차지하고 8성급 고대 신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내게 대적할 수 없을 것이야!”
탁삼은 고개를 쳐들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피바다 안의 성난 파도는 더욱 크게 요동을 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눈에서 번득이는 붉은 빛은 피바다보다도 몇 배는 더 짙었다.
탁삼의 웃음소리를 따라 피바다 안에서 끽끽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마리의 작은 원숭이가 폴짝 뛰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두 원숭이의 눈에서는 요사스러운 붉은 빛이 번득였다.
바로 그때, 주작묘 내부에서는 작은 원숭이 한 마리를 왼쪽 어깨 위에 올린 한 노인이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 어깨 위의 원숭이가 끽 하는 소리를 내자 노인은 붉은 눈빛을 거둔 뒤 몸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온다.”
원숭이가 낮게 소리쳤다.
노인은 순간 우뚝 멈춰 잠시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의 목표는 주작묘 내부의 중심지였다.
노인의 어깨 위에서 원숭이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붉은 빛이 번득였다.
노인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그의 앞에는 수시로 차원의 균열이 나타났지만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노인은 쉽게 그것들을 피해 갔다.
노인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가 그 자리에 나타나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기척 없이 나타나는 차원의 균열 때문에 천천히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곳곳에 자리한 허무를 피해 비행하는 한제의 시야에 수많은 분지가 들어왔다. 그는 신식으로 살핀 결과 이곳의 분지가 수만 개에 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과연 그 끝이 어디쯤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각 분지 안에는 검 한 자루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 검들로부터 강렬한 검광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곳에 진입한 순간, 한제는 음산한 검의 기운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속 속성의 명혼⋯⋯.”
주작묘에서 꽤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한제는 여태까지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만의 분석을 해둔 상태였다.
“어쩌면 이 주작묘 자체가 수성의 결정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나는 수성의 결정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명혼과 그것들로 이루어진 영물을 볼 수 있었던 거고 수성의 결정이 붕괴할 때 그토록 기이한 균열들이 나타난 거야. 이 균열이 곧 수성의 결정의 균열인 셈이지.”
하지만 이는 그저 추측일 뿐이었기에 그는 주작묘 내부의 정중앙으로 가 정말 그곳에 영산이 있는지 볼 생각이었다. 정말 그 산이 있다면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뜻이고 없다면 자신의 추측이 맞는 것이라 볼 수 있으리라.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선력으로 사방을 훑어보았고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중앙에 약간 큰 분지가 있었는데 그 가장자리는 살얼음으로 뒤덮여 반짝였으며, 그 안쪽은 짙은 남색으로 가득 차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그곳의 검기(劍氣)는 분지를 뒤덮은 것들 중 가장 무거웠고 마치 세상을 꿰뚫을 듯 오만불손했다.
그 기운은 일반적인 비검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한제는 그와 비슷한 기운을 선계에서 직접 본 경험이 있었다. 정중앙의 분지에서 발산되는 검기는 선계에서 보았던 선검의 기운과 상당히 흡사했다.
“어떻게 이곳에 저런 것이…”
한제는 두 눈을 번득였다. 눈앞의 분지들은 광범위해 가장자리를 빙 돌아서 가기에는 시간도 촉박했고 언제 영물을 마주칠지 알 수 없었다. 또한 그 중앙의 분지 안에 있는 것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그 느낌이 명혼 때문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서서히 그 분지들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1백 척쯤 걸어 들어간 순간, 가장 가까운 분지에서 갑자기 짙은 한기가 훅 끼쳐왔다.
파팟!
깊숙이 박혀 있던 검이 쑥 뽑혀 나오더니 바람을 가르며 한제를 베려 했다. 3척 정도의 길이에 손가락 두 개 굵기 정도의 폭을 가진 은백색의 평범한 비검이었다.
“꺼져라!”
비검이 웅웅거리는 소리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신식을 통해 들려왔다. 상당히 포악하고 거만한 신식이었다.
‘금속 속성의 명혼으로 이루어진 영물이 검혼과 비슷한 존재일 줄이야⋯⋯.’
한제는 그 검 안의 신식을 느끼고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들었다.
선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좀 전까지 기고만장했던 비검이 밝은 달 앞의 반딧불처럼 그 색을 잃고 말았다.
“허이국!”
한제가 외쳤다.
선검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허이국으로 변해갔다. 그는 형체가 생기자마자 시선을 돌려 그 거만한 검을 바라보며 히히 웃었다.
“이 녀석아, 이 할아비는 처음부터 검혼은 아니었지만⋯⋯.”
그가 미처 말을 맺기도 전에 그 거만했던 비검이 움찔하더니 곧장 뒤로 물러나 먼 곳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허이국이 흥분한 듯 외쳤다.
“어디 도망가 봐라! 이 할아비가 쫓아가주마!”
말을 마친 허이국은 몸을 훌쩍 날려 선검을 말아 쥔 채 그 비검을 뒤쫓았다.
“검혼은 검혼으로 다스려야지.”
한제는 혼잣말을 하더니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허이국이 앞길을 터주고 있었다. 그가 스쳐가는 분지의 비검들은 달려들다가 허이국을 보고 하나 같이 곧장 물러났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 비검들은 모두 허이국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에 허이국은 흥분해 포효를 내지르며 선검을 이리저리 휘두르고는 크게 기합을 지르기도 했다.
비검들은 하나하나 자리를 떠나 정중앙에 있는 분지로 날아들더니 그곳의 허공에 떠오른 채 짙은 검기와 검광을 발산했다.
한제는 허이국이 터준 길을 따라 여유롭게 중앙의 분지로 향했다.
이곳에는 차원의 균열이 많지 않아 여태까지 단 세 번 마주쳤을 뿐이었다. 아직 이곳은 첫 번째 붕괴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차원의 균열은 적어졌고 결국 한제는 거의 최대의 속도로 정중앙의 분지로 질주할 수 있었다.
기이한 보물
몇 시진 뒤, 그 정중앙의 거대한 분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분지 상공에서는 수많은 비검들이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꺼림칙한 한기가 뿜어져 가까이 가기도 전에 한제는 소름 끼치는 검기를 느꼈다.
허이국은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더는 앞으로 나서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 실실거리더니 한제를 보며 말했다.
“주인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가 얼마나 고분고분하게 굴었습니까? 이 정도 성의를 보여드렸으니 일단 저를 검 안으로 들이시고 저 검혼들을 다 처리한 후에 다시 불러주시지요.”
말을 마친 허이국은 얼른 선검 안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검으로 반쯤 몸을 들였을 때, 한제는 한손으로 선검을 쥔 채 그것을 앞으로 내던졌다. 아직 반 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로 허이국은 선검과 함께 수많은 비검이 가득한 분지 쪽으로 내던져졌다.
“으아악! 주… 주인님!”
허이국은 비명을 지르며 곧장 선검 안으로 숨어들어 선검을 조종하여 달아나려 했다.
“내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녀석으로 취급하겠다.”
한제의 냉랭한 목소리에 선검이 우뚝 멈춰 섰다. 허이국은 속으로는 한제를 욕하면서도 더는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에잇, 좋습니다. 이 허이국의 충심을 보여드리죠! 이얍!”
그는 이를 악물고 포효하던 허이국은 비검이 빽빽하게 떠 있는 거대한 분지를 향해 선검을 몰았다. 그러자 분지 위에 있던 비검들은 길을 터주었고 덕분에 분지 안쪽의 짙은 남색 안개가 드러났다. 그 안개는 갑자기 요동을 쳤고 동시에 그 안쪽에서 초승달처럼 굽은 칼 한 자루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 검을 본 한제는 실망감을 숨길 수 없었다. 선계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은 그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금부였다.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느낌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물론 무수히 많은 검혼을 굴복시킨 점만 보아도 그 굽은 칼이 절대 예사 물건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수많은 명혼으로 이루어진 영물일 뿐이니 손에 넣을 수도 없고 손에 넣는다 해도 이 땅을 떠나면 수성의 결정이 가진 기이한 힘을 잃고 곧장 붕괴할 것이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선검을 불러들여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번득이는 눈으로 그 굽은 칼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저 칼의 혼은 대량의 명혼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야. 저것은… 저것은 하나의 명혼이다.”
한제는 놀라움에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주작묘로 들어온 이래 명혼들로 이루어진 영물을 수도 없이 봤다. 허나 그것들은 모두 대량의 명혼으로 이루어져 있었지, 지금처럼 하나의 영물이 하나의 명혼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굽은 칼이 땅속에서 튀어나오자 주위의 모든 비검은 예의바른 모습으로 웅웅 소리를 내며 뒤쪽으로 흩어졌다. 마치 왕 앞에서 예를 차리는 신하들 같은 모습이었다.
선검 안에서 그 굽은 칼을 본 허이국은 긴장감에 덜덜 떨었다. 그의 떨림에 선검마저 와들와들 떨렸다. 태생적으로 담이 작은 그는 다른 검혼들처럼 굽은 칼을 섬겨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그보다는 한제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그 순간, 굽은 칼이 번쩍하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선검 옆에 이르렀다.
챙!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선검은 수십 척 뒤로 밀려났다. 선검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나, 허이국은 비명을 내지르며 선검을 움직여 곧장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허이국이 담이 작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맞서 싸울 엄두조차 못 내고 도망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선검을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그의 손에 들렸다. 순간 굽은 칼이 빠르게 추격해왔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굽은 칼을 본 한제는 몸을 뒤로 물리면서 선검을 휘둘렀다. 검광이 튀어나가 그 굽은 칼과 한데 부딪혔다.
쾅!
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굽은 칼에는 어떤 균열도 일지 않았다. 대신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더니, 누군가가 신식으로 소리를 전해왔다.
“그것의⋯⋯ 혼을 놓고⋯⋯ 너는… 떠나라⋯⋯.”
그 목소리를 전한 뒤 굽은 칼은 순식간에 수백 척에 달하는 크기로 변하더니 섬광이 튀어나와 하늘을 갈랐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뒤로 물러나면서 선검으로 앞을 막았다.
콰르릉!
섬광의 공격은 강력했고 한제의 몸은 저 멀리 튕겨나갔다. 그는 그 힘을 이용해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굽은 칼의 섬광이 가진 위력은 영변기 후기 수준의 수련자가 전력을 다한 공격과 맞먹었다. 십억존혼번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가 대적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온 쪽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을 택한 한제는 곧장 그 거대한 분지를 관통하여 깊은 곳으로 질주했다.
굽은 칼에서 신식을 통해 내보내는 소리에 분지 위에 있던 모든 비검들은 웅웅 소리를 내며 모두가 한제를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비검들의 추격을 받으며 한제는 빠른 속도로 분지들을 지나쳤다. 저 멀리서는 굽은 칼이 섬광을 번득이며 쫓아오고 있었다.
진즉 선검을 거둔 한제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가 가는 방향에 있는 분지들에서도 비검들이 튀어나와 한제는 앞뒤로 끼인 형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