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64
한제는 한숨을 내쉬고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십억존혼번이 나타났다. 곧장 혼번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한제는 한 줄기 검은 연기가 되어 불규칙적으로 번득이며 전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움직였다.
앞에서 달려들던 비검들은 애꿎은 허공을 가른 뒤 곧장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한제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제의 뒤로는 셀 수 없이 많은 비검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고 그 비검들이 발산한 검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심지어 그로 인한 한기 때문에 주위의 온도가 내려가 서늘했다.
우우웅!
검의 울음소리가 허공을 메웠다. 하늘을 무너뜨리고 대지를 뒤흔들 것처럼 엄청난 소리였다.
그 기세에 반경 수십만 리 안의 수련자들은 모두 이 광경을 보게 됐고 대부분은 재빨리 뒤를 쫓았다. 이 상황의 결말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비검과 그 비검들이 우는 소리, 한기로 피어오른 서리…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먼 옛날 검선(劍仙)이 된 것 같았다. 그 비검들의 검기는 한제를 둘러싼 사방에서 미친 듯이 번쩍거렸다.
한제는 존혼번에 둘러싸인 채 연기처럼 구불구불 그 검의 기운들을 피하며 질주했다. 모든 검광을 피할 수는 없었으나 존혼번이 그것들을 막아주었다. 그 굽은 칼의 공격에만 한제는 선검으로 대적할 생각이었다.
“끈질긴 검들이로군. 포기할 생각은 없는 건가?”
한제가 작게 한숨을 내쉬던 바로 그때, 갑자기 전방에서 두 갈래의 긴 무지개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무지개들은 한제로부터 1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러 제자리에 우뚝 멈추었다. 그러더니 비검들의 기세에 눌린 듯 두 무지개는 곧장 방향을 틀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웃더니 순간이동을 해 곧장 1만 리 밖에 나타났다. 한데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비검들 역시 번쩍하더니 허공을 가를 듯한 기세로 거리를 바짝 좁혀 다시 한제를 쫓기 시작했다.
한제는 좀 전에 방향을 틀어 도망친 두 무지개 안의 남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들 또한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리라.
“주 형,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없이 어딜 가는 겐가?”
한제는 수많은 비검에게 추격을 받는 사람답지 않게 여유로운 얼굴로 웃으며 농을 건넸다. 이에 무태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재수가 없으려니…”
그는 한제의 말을 무시하고 속도를 더욱 높였다.
무태와 함께 있던, 얼굴에 보라색 면사를 두른 여인은 한제를 보자 두려운 듯 살짝 몸을 떨더니 이를 악물고 달아났다.
이렇게 해서 무태와 여인이 맨 앞에 한제가 중간에 그리고 하늘을 뒤덮을 듯 빽빽한 검광이 맨 뒤에서 쫓고 쫓기는 형국이 됐다. 특히 그 거대한 굽은 칼은 수시로 한 줄기 섬광을 쏘아 보냈다.
그 섬광은 한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번 그것이 나타날 때마다 재빨리 피했다. 그러면서도 신식으로 그것을 살핀 한제는 그 굽은 칼의 속도가 일정 정도에 이른 뒤로는 사방에서 나타난 기이한 힘이 그 속도를 늦춘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따라잡혔을 것이다.
그런 형세로 두 시진쯤 지났을 때, 멀리서 분지 지대의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곧장 순간이동을 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분지 지대의 가장자리였다. 그는 그곳에 이른 뒤에도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무태는 곧장 한제를 뒤따랐고 보라색 면사를 두른 여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방향을 바꿔 그들과 갈라졌다.
그들을 뒤쫓던 비검들은 분지 지대의 가장자리에 멈춰 섰지만 그 굽은 칼만은 계속해서 쫓아왔다. 더구나 분지 지대를 벗어나자 그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그것을 제한하던 기이한 힘이 약해진 듯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굽은 칼은 무태의 곁을 지나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그 굽은 칼이 자신의 곁을 스치고 지나갈 때 이를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저 거센 바람이 훅 끼쳐갔다고 느낀 순간, 검은 점 하나가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저건 무슨 영물이기에 저토록 빠른 거지? 아까보다 적어도 열 배는 더 빠른 것 같은데…”
무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앞으로 달려나갔다.
한편 한제는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분지 지대를 빠져나온 뒤 차원의 균열이 다시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에 착지했다.
저 멀리 드문드문 일곱 빛깔 광채를 발하는 산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형태가 사도환이 말한 영산과 일치했다.
“정말로 영산이 있었단 말인가?”
한제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순간, 뒤쪽에서 번개가 달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한제는 곧장 순간이동을 해 1만 척 밖에 나타났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그가 방금까지 머물렀던 산봉우리는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돌조각들 사이에서 짙은 남색 빛이 번쩍이더니 굽은 칼이 나타났고 동시에 그 안에서 신식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내놔!”
한제는 다시 몸을 훌쩍 날렸다. 그 순간, 통증이 왼팔을 타고 전해졌다. 순간이동을 통해 1만 척 밖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왼쪽 소매는 사라져 있었고 왼팔에는 한 줄기 상처가 나 있었다.
“굉장한 속도구나!”
한제는 감탄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곧장 다시 순간이동을 했다. 허나 잘못했다가 차원의 균열 옆에 도착하게 될까 두려워 멀리 이동하지는 못했다.
푸른빛이 번득일 때마다 한제는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고 그 푸른 빛이 적중한 곳은 곧장 무너져 내렸다.
“정말 지칠 줄을 모르는 검이로군.”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번쩍하고 사라져 1백 리 밖에서 나타났다. 한데 그 순간, 옆에서 차원의 균열이 나타나더니 초승달 모양의 아가리를 드러냈다.
한제가 이를 피해 얼마 이동하기도 전에 짙은 남색 빛이 다시 번쩍이더니 그가 좀 전까지 있던 곳으로부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빛은 닿는 것들을 모두 무너뜨렸고 심지어 차원의 균열마저 붕괴해버렸다.
“헛! 이런…”
차원의 균열이 붕괴하는 모습에 경악하기도 전에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상처를 쓸었다. 그러자 상처가 아물고 피가 멎었다.
“저건 대체 무슨 법보지?”
한제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굽은 칼의 속도는 십억존혼번의 네 번째 주요 혼백과 비슷했다. 하지만 위력은 굽은 칼이 더욱 강력했다. 네 번째 혼백의 바늘에 찔리더라도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굽은 칼의 공격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저 명혼의 주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막강한 금속 속성의 영물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라니, 저것은 분명한 보물이다.”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방금까지 그가 있었던 곳이 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고운 붉은빛
굽은 칼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반면 한제의 반응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해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상처를 입었다. 마침내 그는 당시 지금의 주작이 네 번째 혼백을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반드시 손에 넣고 말겠다.”
한제는 서늘한 눈을 번득이며 곧장 선검을 소환했다. 그러자 허이국이 선검으로부터 튀어나왔다.
“허이국, 잠깐 부탁 좀 하지. 거마족 선조에게 했던 것처럼 하면 돼. 내 명혼을 찾은 뒤에 꼭 구하러 오마!”
한제는 말을 마친 뒤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허이국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주인니이이이임!”
허이국은 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려 했지만 어느새 굽은 칼이 나타나 그를 말아 쥔 채 자취를 감추었다.
멀리서 허이국의 슬픔과 원한이 담긴 절규가 들려왔다.
“주인님, 꼭 구하러 오셔야 합니다. 이 허이국을 잊으시면 안…”
한제는 그 굽은 칼 안의 검혼이 허이국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럴 거라면 방금 당장 죽여 버렸을 것이다. 또한 허이국은 마혼이기에 쉽게 소멸되지 않았다.
지금 한제가 해야 할 것은 그 굽은 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허이국을 그 굽은 칼에 심어둔 채 그 굽은 칼을 처리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그에 앞서 자신의 명혼을 찾는 것이었다.
선검을 거둔 한제는 저 멀리 영산을 바라보다가 몸을 훌쩍 날렸다. 한데 그때,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제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산봉우리 위에 붉은 인영 하나가 서 있었다. 공허하고 고독한 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인영이었다. 그녀는 마치 붉은 나비 같았다. 바람 따라 마음껏 날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묶여있는 한 마리의 나비…
“홍접!”
홍접이 있다면 건풍도 있을 터였다.
한제는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허나 건풍은 영변기 중기 수준으로 그가 스스로를 숨기려 한다면 한제의 신식으로는 그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침착함을 되찾은 한제는 홍접을 향해 포권을 하며 낭랑하게 말했다.
“홍접 도우, 오랜만이군!”
홍접을 둘러싼 공허함이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한제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몸을 훌쩍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그녀의 공허하고 아득한 눈에 한제가 담겼다.
한제의 얼굴이 구겨졌다. 일찍이 홍접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건풍과 싸울 때도 홍접의 존재를 느낀 바 있다. 하지만 결전을 벌인 이후로 홍접과 직접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홍접의 두 눈은 고요했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했던 당시의 고고하고 거만한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의 홍접은 설역국의 하늘의 딸, 천녀(天女)로 1백 년 만에 화신기에 이른 천부적인 자질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눈에 한제는 한낱 미물 같은 존재였고 둘 사이의 갈등은 점점 커져 결국 일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내심 홍접을 존중했다. 한데 그런 상대가 이렇게 몰락한 모습을 보니 내심 분노가 일었다. 심지어 당시의 그 거만했던 홍접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런 홍접과의 싸움에서 둘 모두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제는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갑게 내뱉었다.
“건풍! 어디 숨어 있는 것이냐?”
홍접은 고개를 들어 텅 빈 두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우, 아쉽지만 내게는 너와 싸울 겨를이 없다. 허나 이곳까지 왔으니 영산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건풍의 목소리가 사방의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한제는 맹렬히 고개를 들어 먼 곳의 산맥을 바라보았다. 검은 인영 하나가 그곳에서 나와 영산을 향해 광풍처럼 이동했다.
한제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훌쩍 날렸다. 그때, 건풍의 방자한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홍접, 천우와 다시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더냐? 오늘 네게 기회를 주겠다. 그를 죽여라! 천우,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났으니 천천히 오도록 해라. 명혼을 되찾은 뒤에 손수 네 목숨을 거두러 가겠다.”
그 말을 끝으로 건풍의 기척이 사라졌다.
홍접은 텅 빈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몸을 훌쩍 날려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더니 저물대에서 붉은색의 긴 검을 하나 꺼내 들었다.
꽈르릉!
하늘은 맑았으나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홍접의 두 눈에 서서히 전의가 차올랐고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운이 홍접으로부터 폭발하듯 발산됐다. 그 기운에는 선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의 수준은 영변기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거의 영변기에 필적하는 듯했다.
“천우!”
홍접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여인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홍접과 싸우는 일이나 건풍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또한 확인해야 할 것도 있었다. 그의 추측대로 이곳이 수성의 결정 자체라면 영산이 나타날 수는 없었으나, 지금 그는 영산을 확인한 상태였다. 뭔가 수상했다.
홍접은 두 눈을 번득이며 손에 쥔 붉은 장검을 휘둘렀다.
꽈릉!
홍접의 손을 벗어난 붉은 검은 강풍을 일으키며 붉은색 번개가 되어 하늘을 가르며 한제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제는 뒤로 물러나며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금제가 쏟아져 나와 그의 앞쪽에 보호막을 이루었다.
콰광!
붉은 번개와 금제의 보호막이 충돌한 순간, 땅이 뒤집히며 모래가 피어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그 모래바람 속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홍접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