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69
검광이 몸에 닿기도 전에 한제의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주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는 불굴의 기세가 담겨 있었다.
앞으로 달려들던 건풍은 그런 한제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번득이는 그의 눈에 망설임의 빛이 어렸다. 지금 한제를 죽이고 십억존혼번을 손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약속했던 대로 힘을 보태 검광에 대항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갈등하던 그는 재빨리 한제를 죽이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리하면 혼번의 위력을 빌려 검광에 대항할 수 있을 터였다.
아주 짧은 순간 결정을 내린 건풍의 입가에 비굴한 미소가 걸렸다.
“하하! 도우, 겁먹지 말게! 내가 가겠네!”
건풍이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단번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한제가 십억존혼번을 꺼낸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총명한 류미는 단번에 건풍의 의도를 눈치챘고 잠시 망설이다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면서 건풍을 따라가지 않고 뒤쪽에서 기다렸다.
이때, 금빛 갑주의 사내가 쏘아 보낸 검광은 한제의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피식 웃었다. 그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이 건풍의 변심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은 그가 바라던 상황이었다.
뒤에서는 건풍이 달려들고 앞에서는 검광이 엄습하는 그 찰나의 순간, 한제는 웃음을 터뜨리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보탑 하나가 저물대에서 튀어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쾅!
보탑에는 문정기 초기 수준인 주일의 신식이 걸려 있었다. 그 신식이 확장되면서 달려들던 검광과 충돌했고 검광은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한제는 곧장 보탑을 거두어들이더니 몸을 훌쩍 날려 바다로 들어갔다. 허나 전속력을 발휘하지는 않고 건풍과 1백 척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금빛 갑주의 사내는 이제 건풍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곧바로 다시 검광을 쏘아 보냈다.
“헛!”
건풍의 안색이 변하며 헛숨을 삼켰다. 그러더니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물대에서 붉은색 송곳을 꺼내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송곳은 빛을 번득이며 튀어나가 검광에 대항했다.
한제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금빛 갑주의 사내는 음산한 기운의 노인과 원숭이를 상대할 때 둘을 모두 공격하지 않고 단 한 번의 검광만을 쏘아 보냈다. 이는 그 둘을 하나로 간주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가정이 옳다면 금빛 갑주의 사내는 한 존재에게는 한 번의 공격만을 하는 것이다. 또한 당시 그 원숭이와 음산한 노인 사이의 거리는 1백 척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정도 범위 안에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대가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제가 둘이 먼저 나서자던 건풍의 제안을 거부한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그랬다가는 건풍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계획을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한제는 자신이 홀로 대응하겠다고 한 것이다.
건풍이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한제는 셋의 연합을 깨고 먼저 금빛 갑주의 사내에게로 달려들 생각이었다.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건풍은 반드시 그 틈을 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상대를 자신으로부터 1백 척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번거롭고 골치 아픈 수법이긴 했지만 한제는 이 계획에 건풍이 끌어들여질 가능성이 8할 이상은 된다고 보았다.
이 모든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보탑 덕분이었다. 문정기 초기 수준인 주일의 신식이 금빛 검광의 속도를 잠시 늦춰준 틈에 검광으로부터 벗어나고 대신 건풍을 새로운 공격 대상으로 삼게 할 수 있었다.
장황한 이야기였지만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광이 건풍을 내리친 그 순간, 한제는 우뚝 멈춰 냉랭한 눈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류미를 바라보았다.
그 무렵 류미는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흠칫 놀란 상태였다. 그러나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그녀는 눈을 번득이더니 몸을 훌쩍 날려 한제를 뒤쫓았다.
류미가 다가오는 것을 본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건풍으로부터 1백 척 밖으로 벗어났다.
그러자 그 순간, 금빛 갑주의 사내가 검을 연속으로 두 번 휘둘렀다. 두 갈래의 검광은 순식간에 쏘아져 나와 각각 한제와 류미에게로 날아들었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그러더니 방향을 틀었고 검광이 달려들던 그 찰나, 순간이동을 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곳은 류미와 1백 척 이내의 거리였다.
류미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녀도 한제의 행동에서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이에 그녀는 순간이동을 해 한제를 검광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두려 했다.
한제는 싸늘하게 웃더니 저물대에서 세월의 경지가 담긴 나무 조각상 몇 개를 꺼냈다.
“세월!”
펑! 펑! 펑!
한제의 짧은 한 마디에 나무 조각들이 연달아 자폭하면서 세월의 경지가 미친 듯이 퍼져 나왔다. 나무 조각상이 품고 있는 세월의 경지는 한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 답게, 류미에게 상해를 입히지는 못했어도 잠시나마 움직임을 굼뜨게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짧은 시간은 곧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어졌다.
“이런!”
류미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한제는 그녀의 아래로 이동했다. 그 순간, 두 갈래의 검광은 하나로 합쳐져 류미에게로 향했다.
한제는 싸늘한 눈을 번득이며 손을 뻗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 줄기 금제가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와 류미에게로 돌진했다. 그러더니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 속에는 금빛을 번득이는 거대한 궁전이 있었다.
한제는 그 궁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바다 속은 기이한 힘으로 뒤덮여 있어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일찍이 이런 기이한 힘을 몇 번이나 경험해봤기에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궁전 안으로 진입한 순간, 바다 위에서 포효가 들려오더니 해수면이 순간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 줄기의 거대한 검광이 빠른 속도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검광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심지어 그 위에서 번득이는 강대하고 예리한 빛을 볼 수 있었고 정수리부터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쳇!”
그는 이를 악물었다. 궁전까지는 1천 척도 남지 않았으나, 이미 검광은 그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의 정수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찌르는 듯한 통증도 점점 강렬해졌다.
9백 척, 8백 척, 7백 척, 6백 척⋯⋯.
궁전까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지만 머리 위의 검광이 더욱 빨랐다.
“빌어먹을!”
한제는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저물대에서 한 자루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고 도끼를 휘둘렀다.
쾅!
검광과 도끼가 충돌했다. 동시에 원신이 진동하면서 한제는 또 한 차례 피를 토해냈다.
“큭!”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을 뻗어 저물대를 두드렸다. 저물대로부터 보탑이 다시 한 번 튀어나왔고 주일의 경지가 곧장 확산되어 검광의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그 틈을 타 한제는 순식간에 이동해 가까스로 궁전에 들어섰다.
그가 들어선 순간, 검광은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도끼와 보탑을 거둔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대량의 단약을 집어삼켰다. 좌선을 하는 동안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느껴졌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고는 선옥 한 조각을 꺼내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한 입에 삼켰다. 순간 흘러넘칠 듯한 선력이 체내를 가득 채웠고 온몸이 가벼워졌다.
가까스로 내상을 억누른 한제는 다시 궁전 안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한편 돌진해오는 검광과 한제가 쏘아 보낸 금제 사이에 갇힌 류미는 이를 악문 채 한 줄기 하얀 안개를 뱉어냈다. 그러자 안개에서 하얀색 명주 끈이 나풀거리며 금제를 파괴했다. 곧이어 그 하얀색 끈은 류미의 전신을 돌돌 감쌌다. 그리고 검광이 덮쳐들던 순간, 1만 척 밖으로 물러났다. 검광은 한 번 휘청거렸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금빛 갑주의 사내는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의 직무는 이곳을 지키면서 자격이 있는 자만을 궁전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격이란 단 하나, 검광에 저항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건풍은 가까스로 검광으로부터 벗어났다. 다행히 검광도 더는 그를 뒤쫓지는 않았다.
“천우! 하늘에 대고 맹세컨대, 네 시체를 만 조각으로 부숴주겠다. 이 맹세를 지키지 못한다면 난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건풍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해서 포효하고 저주했다.
반면 류미는 침착한 얼굴로 말없이 해수면을 주시했다. 그녀는 건풍이 미친 사람처럼 욕하고 저주하는 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조용히 하세요. 만약 사형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연합을 유지했다면 우리도 벌써 궁전 안으로 들어갔겠죠. 이건 사형이 자초한 거예요.”
건풍은 구겨진 얼굴로 류미를 매섭게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와 그 녀석이 한통속이로구나! 사매, 설마 나와의 약속을 잊기라도 한 것이냐!”
류미는 냉랭한 눈으로 건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작이 있으니 천우가 제 명혼을 되찾기는 힘들 거예요. 운작은 절대 그가 성공하게 두지 않을 테니까요.”
건풍은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저물대를 매만지며 말했다.
“늙은이가 내게 준 물건은 원래 십억존혼번에 대항할 때 쓰려던 것이다. 존혼번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라면 문정기 수준 수련자에 대항해서도 효력을 발휘하겠지. 이것을 운작에게 써야겠군. 그가 내 명혼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차피 죽는 것은 매한가지일 테니 덤벼드는 수밖에…”
엽무우
한제의 눈앞에 거대한 통로가 나타났다. 그 사방에는 깜박거리는 등 몇 개가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나 그 빛은 불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한제로서는 처음 보는 기이한 빛이었다.
어스름한 빛 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구불구불한 그 길에서는 기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제는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도 분위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신식을 펼쳐봐야 마치 어둠 속의 무언가에 잡아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눈과 감으로만 해결해야 했고 자연히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통로 저 끝에서 법술의 파동이 느껴졌다. 한제는 경계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신식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뻗어보았다.
다행히 신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통로의 끄트머리까지 닿았다.
통로 끝에는 거대한 공터가 있고 그 중앙에는 높이 솟은 거대한 탑이 하나 있었으며, 그 탑 위에는 보좌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보좌에는 암적색 옷을 입고 머리는 산발이 된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평범한 외모였으나 어딘가 위엄이 느껴지는 사내로 두 눈은 굳게 감겨져 있었으며, 온몸에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꼭 죽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가 앉은 곳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짙고 빽빽한 기운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한제는 신식으로 그를 본 순간,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뻔했다. 하지만 체내의 선력을 운용하여 그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곳에 차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듯했다.
그의 앞 허공에서는 주먹만 한 빛 덩어리 하나가 보라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은 남자의 몸을 비추어 뒤로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한데 그 순간, 보라색 빛이 갑자기 약간 어두워졌고 마치 금방이라도 꺼질 듯 어두워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한제의 신식이 닿은 순간, 그 빛에서는 강렬한 힘이 피어올랐다. 한제는 얼른 신식을 거두어들였다.
잠시 후,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1대 주작 엽무우!”
그 신비로운 남자의 정체는 분명 사도환에게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엽무우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보라색 빛을 발하던 빛 덩어리는 수성의 결정이리라.
“허나…”
뭔가가 이상했다. 수성의 결정은 사도환이 말한 것과 꼭 같았지만 신식으로 다가갔을 때 그 안에 있을 자신의 명혼과 공명하는 느낌은 전혀 감지할 수가 없었다.
한제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통로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 봐야지!”
운작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