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70
한제는 흠칫 놀랐다. 방금 신식을 뻗었을 때 그는 오직 1대 주작과 수성의 결정만 느낄 수 있었을 뿐, 다른 자에 대해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듯해 한제는 한참이나 고민에 빠졌으나,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 끄트머리의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신식으로 살폈을 때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수천 척 높이의 탑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 멀리 가부좌를 틀고 앉은 운작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가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한제를 발견하고는 생기 없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가 제대로 봤구나. 네가 이곳에 들어온 세 번째 사람이다.”
한제는 신중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그자는요?”
운작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진법으로 가두어놓았으니 아직 그 진에 갇혀 있을 게다. 한제야, 난 중상을 입어 수성의 결정을 얻으려면 네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 선유족과 수련자들을 위해서 난 이 수성의 결정을 무너지게 둘 수 없어!”
“흠.”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운작을 훑어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저더러 수성의 결정을 가져오라는 겁니까?”
운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연히 꺼려지겠지. 허나 나는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다. 그 노인은 주작성 사람이 아니다. 그자가 부리는 법술의 신통함은 기이할 정도야. 나는 그자를 오랫동안 묶어둘 수도 없다. 그자가 진에서 빠져나와 수성의 결정을 손에 넣으면 우리 주작성의 모든 사람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탑 위에 있는 1대 주작 엽무우와 그 앞에 놓인 보라색 빛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곧장 몸을 뒤로 물렸다.
한제는 들어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통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때, 운작이 눈을 번득이며 사라지더니 통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딜 도망치느냐!”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던 한제는 운작을 노려보며 십억존혼번을 꺼내 들었다.
“전 아직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운작은 착 가라앉은 얼굴로 한제를 주시하며 냉소했다.
“어떻게 알아본 것이냐?”
한제는 운작을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은 수성의 결정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순간이동을 할 능력이 있는 걸 보니 선배님께서는 내상을 입긴 했어도 그리 심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운작은 껄껄대더니 감탄한 듯 말했다.
“과연 내가 선택한 자답구나. 그래, 저것은 수성의 결정이 아니다. 저것은 성인(星引)이다. 명혼을 되찾으려거든 저것에 접촉만 하면 되지.”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말없어 운작을 바라보며 십억존혼번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이렇게 됐으니 솔직히 말하마. 성인을 이용해 명혼을 되찾는 데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너를 통해 내 명혼을 되찾으려 한 것이지. 만약 네가 그리해준다면 귀중한 보물로 보상하마. 우리 선유족의 지하 깊은 곳에 오래된 제단이 하나 있다. 당시 우리 선유족의 허조가 십일엽에서 십이엽으로 승급될 힘을 얻은 곳이지. 네가 내 명혼을 찾아준다면 너를 그곳으로 데려가주마. 그곳에서 너는 더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어떠냐?”
뜻밖의 제안에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 모습을 본 운작은 약간 초조한 듯 재촉했다.
“한제야, 굳이 내가 나서서 손을 쓰게 하지 말고 가서 수성의 결정을 가져오거라.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한제는 운작을 향해 약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한 번 나를 속이셨으니 쉽게 믿을 수는 없지요. 내가 선배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일단 그 밀짚모자의 사용법을 알려주십시오.”
한제는 운작에게서 받은 밀짚모자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 깃든 진법은 많았지만 사용법을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운작은 한제를 노려보다가 옥패를 하나 꺼내 잠시 정신을 집중하여 무언가를 입력한 후 한제에게 던져주었다. 한제는 그것을 받아들고 힐긋 살피더니 사용법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몸을 훌쩍 날려 곧장 탑 위로 솟아올랐다.
1대 주작 앞에 이른 그는 그 전설적인 인물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뒤로 늘어진 그림자를 살짝 살피던 그의 시선이 이내 보라색 빛 덩어리로 향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한제 역시 보라색 빛 덩어리 옆에 서 있었으나 그의 그림자는 생기지 않았다.
“거기에 손을 대고 내 이름을 불러라. 공연히 다른 꾀를 부린다면 내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운작이 엄한 목소리로 협박을 해오자 한제는 고개를 숙여 그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선배님을 제 은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유족인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요. 저 역시 선배님과 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주작성을 떠나 제 도를 찾고 싶을 뿐이지요. 한데 선배님, 오늘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군요. 이 성인이 정말 그런 역할을 하는 건 맞습니까? 그렇든 아니든, 이걸 이용하는 대가는 아마도 죽음이겠지요? 그러니 저를 죽이지 않겠다는 선배님의 말은 사실이겠지요. 이 성인이 저를 죽일 테니까요.”
“네 이놈!”
운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튀어 오르려 했다. 동시에 한제는 십억존혼번을 휘둘렀다. 수많은 혼백이 쏟아져 나와 사방을 뒤덮였다. 이어서 한제가 손짓을 하자 모든 혼백은 곧장 1대 주작 뒤로 이어진 그림자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순간, 그 그림자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괄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한 줄기 붉은 빛이 그 안에서 번쩍이며 튀어나왔고 그림자가 있던 곳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그 안으로부터 음산한 기운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원숭이는 빠른 속도로 운작을 향해 돌진했다.
“이 죽은 자의 여력에 네 수준을 더해 그림자로 날 가두다니, 꽤 훌륭한 진법이구나. 이 그림자 감금술은 상고 시대에도 보기 힘든 것이었으니 익히기도 결코 쉽지 않았을 터. 만약 주인님의 본체가 이곳에 있었다면 단박에 파괴했겠지만 주인님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의식의 한 부분에 불과한 나로서는 꼼짝없이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지. 나를 이렇게 가둬둔 것은 네 남은 생 동안 내내 자랑거리로 여겨도 될 것이야!”
운작은 코웃음을 치며 두 손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그러자 금색 문양이 허공으로부터 튀어나와 그의 앞쪽에서 끊임없이 회전하며 작은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겨우 시체 인형 주제에 말이 많군. 네놈의 본체가 얼마나 강하든 당장 달려오지는 못하겠지.”
운작이 낮게 소리쳤다.
두 노인이 격돌하는 사이 한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한제는 좀 전에 신식으로 탐색할 때부터 엽무우 뒤로 이어진 그림자가 신경 쓰였는데 자신의 그림자는 생기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그 그림자가 무엇인지 눈치를 챘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면 곧장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 숨어들 생각이었다.
어쩌면 성인이라는 것이 정말 운작이 말한 것과 같은 작용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대가라는 것은 아마도 목숨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운작이 어째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겠는가?
음산한 기운의 노인이 그림자를 부수고 나타난 순간, 한제는 존혼번에서 불러낸 혼백들에 감싸인 채 빠르게 물러났다. 두 노인 중 누구도 그로서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수성의 결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최대한 빨리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갑자기 한 차례 진동이 일었다. 하늘과 땅이 갈라질 듯 격렬한 진동이었다. 심지어 중앙에 놓인 보탑에도 갈래갈래 균열이 생겨났다.
“수성의 결정이 또 다시 붕괴되는 것인가?”
보탑의 균열은 하늘을 유영하는 용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확장되었다.
결국 그 균열은 보탑의 꼭대기에 있는 엽무우의 보좌까지 뻗어나갔다.
그때, 맑고 낭랑한 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지더니 엽무우가 깔고 앉은 보좌가 둘로 갈라지면서 보탑이 무너져 내리려 했다. 엽무우의 몸 역시 덜덜 떨리면서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한제의 눈빛이 변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노인과 원숭이까지도 움직임을 멈추고는 재가 되어 흩어지는 엽무우를 바라보았다.
솨아아.
재로 변해 흩어지고 있는 엽무우로부터 맑은 소리와 함께 주먹 반 정도 크기의 하얀색 결정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저것은!”
한제는 그 하얀색 결정을 본 순간, 영혼으로 연결된 듯한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수성의 결정!”
운작은 짧게 외치더니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작은 원숭이와 음산한 노인이 더 빨랐다.
그들보다 느린 한제로서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허나 그는 이내 결심한 듯 이를 악물더니 혼번으로 온몸을 감싼 채 통로 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그의 실력으로는 저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 운 좋게 수성의 결정을 손에 넣는다 해도 자신의 명혼을 빼내기도 전에 저들의 손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주작의 전승
음산한 기운의 노인은 손을 뻗어 수성의 결정을 쥐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웃었다.
“주인께서 자유를 되찾을 날이 머지않았다.”
한데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급변했고 웃음도 뚝 그쳤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는 손에 쥔 결정을 놓았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것인지 노인은 휘청거렸고 그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기는 수성의 결정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노인은 그렇게 사라졌고 한 줄기 붉은 빛만 허공에 나타나 깜빡이다가 작은 원숭이에게로 섞여 들어갔다.
“끼이익!”
원숭이가 괴로운 듯 포효했고 좀 전보다 몇 배는 강한 기세를 내뿜었다. 지금 녀석의 수준은 주작과 엇비슷한 문정기 후기에 달했다.
결정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였으나 원숭이는 섣불리 나서서 그것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는 동안 운작이 훌쩍 날아 다가왔다.
“내놔라!”
운작은 재빨리 결정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한데 결정에 닿기도 전에 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크악!”
어느새 그의 몸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으나, 직접 닿기 전에 재빨리 손을 뗀 덕인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원숭이도 운작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흰색 결정이 진동하더니 갑자기 운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헛!”
운작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비켰다. 그러자 수성의 결정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한제가 있는 방향으로 돌진해왔다.
음산한 기운의 노인이 기이하게 사라져 버린 광경을 본 한제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데 수성의 결정은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한제를 쫓았다.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한 기세였다.
잠시 고민하던 운작이 이내 통로로 들어섰고 원숭이 역시 검은 연기로 변해 빠르게 쫓아왔다.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공터의 보탑 주위에 한 줄기 검은 빛이 응집되더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푸른 가면을 쓴 사내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은 멍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린 것처럼 맑아졌다.
“수성의 결정이 붕괴했다. 주작, 정말이지 담도 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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