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78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사흘 뒤, 한제가 눈을 떴을 때 그 네 개의 검집과 그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손을 휘둘러 검집들을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다음으로 꺼내든 것은 곤극 채찍이었다.
이 채찍에 걸려 있는 한 줄기 신식은 현재 그의 실력으로는 파괴할 수 없었으나, 그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한제는 주일의 신식이 함유된 보탑을 소환했다. 순간 문정기 수준의 신식이 곧장 확산되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두 손으로 결인을 한 뒤 곤극 채찍을 향해 한 줄기 빛을 쏘아 보냈다. 채찍은 한 번 파르르 떨리더니 하얀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나타나자마자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한제가 쏘아 보낸 빛을 산산이 흩어버렸다.
한제는 덤덤하게 보탑에 걸려 있는 주일의 신식을 응집시켜 만들어낸 푸른 빛으로 곤극 채찍을 감쌌다. 그러자 하얀 빛이 그 푸른 빛 안에 갇혀버렸다.
한제는 이어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그의 원신이 진동하면서 육체 밖으로 빠져나와 곤극 채찍을 향해 달려들어 제련을 시작했다.
7일 뒤, 주일의 문정기 수준 신식에 한제의 원신이 더해진 위력은 마침내 곤극 채찍에 걸려 있던 신식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제의 원신은 그 채찍에는 자신의 낙인을 남겼다. 그 순간, 한제는 곤극 채찍이 자신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곤극 채찍 안에 수많은 진법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운작에게서 받은 밀짚모자처럼 여러 진법으로 응결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인 듯했다.
그간 한제가 밀짚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게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라는 점과 모습을 숨겨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뿐이었다. 허나 다행히도 운작이 넘겨준 옥패를 통해 나머지 기능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효능은 그 안에 깃든 진법 중 금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금번의 위력은 훨씬 강력해질 것이다.
9999개의 조의 금제로 이루어진 금번을 만드는 것이 현재 한제의 목표였다. 그러려면 매우 많은 금제를 파악하고 있어야만 했다.
한편 곤극 채찍은 상당히 기묘했다. 선력을 응집시켜 발휘할 수는 있지만 그 위력은 어째서인지 영력을 불어넣어 사용하는 것만 못했다. 한제는 도저히 이 점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영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곤극 채찍에는 분명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음이 분명했다.
이 곤극 채찍은 어쩔 수 없이 주작성을 떠난 초운비의 물건으로 사실 그에게도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주작성을 떠날 때 이것을 회수할까 고민하던 그는 주작의 제자이기도 한 건풍과 불화를 일으키기 싫어 포기한 바 있다.
곤극 채찍을 저물대에 챙겨 넣은 후, 한제는 그림 족자를 꺼냈다.
족자를 한참이나 말없이 살피던 한제는 천천히 그것을 다시 저물대에 넣었다. 이 족자는 그의 법보 중 비밀스럽기로는 석주와 곤극 채찍에 버금갔다.
한제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저물대를 문질렀다. 그러자 가시가 가득 돋은 흉악한 생김새의 전차가 나타났고 동시에 사방에서 모래바람이 일었다. 무엇의 접근도 불허한다는 듯한 광경이었다.
전차에 다닥다닥 솟은 가시가 서늘하게 빛났다. 보기만 해도 겁이 덜컥 날 정도였다.
한제는 그 전차를 바라보며 저물대에서 구수권을 꺼냈다.
사신차 중 하나는 사도환에게 넘겼으니 이제 한제에게 남은 사신차는 두 대였다. 그중 가장 큰 사신차는 지금의 수준으로는 조종할 수 없다는 점을 한제는 잘 알고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 허나 두 번째 사신차라면 구수권 안에 집어넣을 자신이 있었다.
보름 뒤, 한제는 평원을 떠났다.
지난 보름 동안 평원 위에서는 거의 매일 거대한 마수들의 포효가 끊이지 않았다. 이 포효는 하늘을 뒤흔들 정도여서 선유족인들의 땅에서도 많은 이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제는 흡혈 마수의 등에 올라 날았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손에 선옥 한 조각을 쥐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옥에는 쫙 금이 가면서 재로 변해 흩어졌다.
한제는 곧장 또 한 조각의 선옥을 꺼내 들어 선력을 흡수했다.
그 두 번째 사신차에 나타난 혼수의 힘은 한제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특히 녀석으로부터 느껴지는 불굴의 의지와 하늘을 찌를 듯한 고고함은 비할 바가 없었다.
결국 한제는 갖은 힘을 들인 끝에야 겨우 그 사신차를 구수권에 봉인했으나, 구수권에 한 줄기 균열이 생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혼수를 구수권에 집어넣었을 때, 한제에게는 조금의 선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충분한 대비를 해두지 않았더라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손목에 감긴 구수권을 매만지는 한제의 두 눈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법보다. 만약 존혼번이 이전처럼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다면 사신차를 가동했을 때 생기는 허점까지도 완벽하게 덮을 수 있을 텐데… 허나 내가 가진 법보들이라면 영변기 중기 수련자는 물론이고 영변기 후기 수준의 수련자라 해도 사신차를 활성화시킬 시간만 있다면 당해낼 수 있어. 다만 선옥을 가지고 있거나 영변기 후기 절정에 이르러 문정기를 눈앞에 둔 자에게는 대적하지 못하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의 눈빛이 더욱 결연하게 변했다.
“나는 여전히 너무나 약하다. 더구나 천운성은 분명 주작성을 능가하는 곳. 그곳에는 주작성보다 훨씬 많은 고수가 있겠지. 신중해야만 한다!”
다시 다짐을 한 후 한제는 석주에 대해 생각했다.
“석주의 금속 속성을 다 채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군. 홍접의 오행의 령 중 금속의 령을 잡아채 넣었는데도 석주의 금속 속성은 3분의 1정도 밖에 채우지 못했으니⋯⋯.”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지금 향하는 곳은 사도환이 있는 곳이었다.
★ ★ ★
4성 수련국 주나라, 일반인 황제의 성 안. 어느 거대한 관저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척 기분이 좋은 사람이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인 듯했다.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사도환이었다.
“하하, 어디 나를 잘 모셔보아라. 나를 편히 모신다면 상으로 영약을 주마. 이 약을 먹으면 너희들의 피부는 30년 동안 희고 깨끗해질 것이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가락 역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 ★ ★
깊은 밤, 달빛 아래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다가왔다.
그림자의 주인은 거대한 마수였는데 생김새가 무척이나 흉측했다. 특히 달빛을 받아 요사스럽게 번득이는 그 긴 주둥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그 마수의 등 위에 선 남자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푸른 옷을 입고 뒷짐을 진 채 흡혈 마수의 등에 서 있는 그는 바로 한제였다.
흡혈 마수는 지금 일반인 도시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주나라 일반인 황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곳곳에는 화려한 건물이 있었고 남북으로 흐르는 중앙의 긴 강 위로 놀잇배가 더러 떠 있었다. 삼경의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불이 밝혀져 있었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사이사이로 여인들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섞여들었다.
한제는 놀잇배들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흡혈 마수와 함께 아래쪽으로 내려가 조용히 긴 강 위를 스쳐 지나갔다.
어느 놀잇배 안에서 술에 잔뜩 취한 사내 하나가 바람을 쐬러 발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가 흡혈 마수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허나 단숨에 술이 깬 그는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헛것을 본 모양이라며 혀를 찼다.
웃음소리와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한 사치스럽고 화려한 건물 앞에서 한제는 흡혈 마수의 등 위에 선 채 덤덤하게 말했다.
“사도환, 이제 가시죠.”
잠시 후, 건물 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가 돌연 뚝 끊겼다. 더 이상 그 건물 안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모든 사람이 그대로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보라색 옷을 입은 동자 하나가 그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한탄하듯 말했다.
“아직 충분히 즐기지도 못했는데… 그냥 평생 여기서 친왕 노릇이나 하면서 편히 살까.”
한제는 대답 대신 심드렁하게 말했다.
“갈 시간입니다.”
“기다려 봐라. 주나라 황제가 내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도 그에 대한 보답은 해야지.”
사도환은 몸을 훌쩍 날리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교역성(交易星)
1각 후, 어느새 나타난 사도환은 한제 옆에 서서 껄껄댔다.
“가자! 이제 이 망할 주작성을 떠나자!”
말을 마친 그는 흡혈 마수 위에 올랐다. 그를 두려워하는 흡혈 마수는 처량한 울음소리를 남기며 앞으로 튀어나가더니 점점 속도를 높여 곧장 하늘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이 구역만 지나면 주작성을 떠나는 셈이었다.
그때, 한제는 흡혈 마수를 저물대로 회수한 뒤 마치 유성처럼 긴 잔영을 그리며 강한 바람이 부는 구역으로 돌진했다. 사도환은 이미 그 강풍 구역으로 진입한 후였다.
엄청난 바람이 불어닥치며 태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이 전해져왔다. 그러자 사도환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흩어져라!”
그 한 마디에 엄청난 기세의 강풍은 형태 없는 거대한 손에 의해 찢겨진 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한 갈래의 통로가 생겨났다.
이 강풍이 양옆으로 밀려나며 수많은 파문을 일으켰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파문은 온 주작성으로 확산되었다. 주작성의 일반인과 수련자 대부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 눈에 하늘은 일곱 빛깔 광채가 끝없이 번득여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주작산에 있던 무태 역시 고개를 들어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는 새롭게 발탁된 주작산의 집사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무태의 명령을 전달할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형, 잘 가시게.”
무태가 중얼거렸다. 한제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4파 연맹국의 일반인들이 사는 어느 거리에서 마주친 그 순간부터 4파 연맹국이 멸망한 때를 거쳐 한제가 자신에게 주작이라는 봉호를 넘겨주었던 그 순간까지… 무태에게는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조나라에 있는 모든 이 씨 가문 사람들 역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산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곁에는 열너덧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수려한 소년이 있었다.
“선조 할아버지, 또 다른 선조 할아버지는 하늘로 올라가셨나요?”
이산은 그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그는 이 할아비가 가장 공경하는 사람이자 나의 동생이지!”
그때, 초나라의 어느 산골짜기 숲속에서는 거대하고 용맹한 호랑이가 포효하고 있었다. 녀석은 갑자기 달려들어 멧돼지 한 마리의 숨통을 끊은 후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그 뒤로는 일고여덟 마리의 암호랑이가 따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포효하던 호랑이가 순간 우뚝 멈추었다. 그의 눈은 하늘 끄트머리의 어느 곳에 멎어 있었다.
잠시 후, 그 호랑이, 소백은 다시 포효했다. 그 포효소리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소백은 은혜가 자신을 부를 때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은혜가 언젠가 그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소백은 몸을 돌려 여러 마리의 암호랑이를 대동한 채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숲속 깊은 곳으로 향했다.
★ ★ ★
초나라 봉황성(鳳凰城).
은혜의 부모는 마당에 앉아 기쁜 눈길로 딸을 보고 있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은혜가 불쑥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