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80
이 성에서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은 북쪽 구역뿐이었다. 그곳은 점포도 총 아홉 개밖에 되지 않았고 하나같이 값비싼 물건을 거래하는 곳이었다. 이 점포들은 선계의 누각처럼 아름다웠고 점원들도 모두 수준이 높았다.
북쪽 구역의 아홉 번째에 있는 점포는 명매성 제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 성의 동문을 통해 한제가 들어섰다. 영석을 지불한 뒤 성 안으로 들어선 그는 눈앞의 점포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한제의 목표는 명확했다. 성라반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두 개였는데 둘 다 보통 점포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점포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며 지나쳐가던 한제는 이따금 멈춰 서서 좌판을 살펴보았고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일곱 번째 점포 앞을 지나치던 한제는 몸을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왜소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명매성에 들어선 순간부터 몰래 자신을 뒤쫓고 있는 자였다.
한제와 눈이 마주치자 청년은 당황한 기색 없이 씩 웃어 보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포권을 했다.
“선배님, 명매성에는 처음이시죠?”
그자의 수준은 원영기 후기 수준으로 화신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청년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내심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명매성에 와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서문으로 진입한다. 그곳이 자유시가에서 가장 가까운 진입로이기 때문이다. 점포에서 구입할 수 없는 보물들이라도 자유시가에서 찾아낼 수도 있고 가격 역시 그 편이 더 저렴했다. 다만 자유시가에서 구입한 물건은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진품이라는 보증서가 있는 점포의 상품들과는 달랐다.
때문에 동문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은 명매성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자이거나 손이 큰 손님이었다.
청년이 얼른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는 이단남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기 명매성에서 자랐지요. 처음 오신 것이라면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상급 영석 열 개면 됩니다.”
한제는 그 청년을 힐긋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영석 열 개라면 저급 법보와 단약 여러 개를 살 수 있는 정도이니 결코 싼 값은 아니었다. 허나 한제는 주작묘에 들어가기 전 선유지에서 대량의 영석을 확보한 상태였기에 여유가 있었다.
이단남은 얼른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법보? 선옥? 단약? 아니면 재료? 혹시 주문인가요? 그도 아니면 법술?”
한제는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곤목석(坤木石)이다. 들어본 적이 있느냐?”
“곤목석이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단남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본래 나무 속성인데 바위 형태로 자라나면서 1천 년에 1촌 정도만 늘어난다는 그 곤목석 말입니까?”
이단남의 대답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제는 무척 놀랐다. 곤목석에 대해 알 정도라면 이자의 식견은 상당한 모양이었다.
고대 신 서사의 기억 속에 있는 곤목석은 성라반을 제련하는 재료였다. 고대 신 일족은 성라반이 없어도 우주를 마음껏 쏘다닐 수 있었으나, 특수한 지역에서는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또는 등급이 낮은 고대 신은 성라반을 사용하기도 했다.
허나 그들이 사용하던 성라반은 현재 수련 연맹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특수한 재료들에 특수한 공법을 더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일단 완성시키기만 한다면 그 속도와 위력은 지금의 성라반보다 몇 배는 높아질 터였다.
“그래, 바로 그 곤목석이다. 이 도시에서 그것을 파는 곳이 있느냐?”
한제의 덤덤한 질문에 이단남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자유시가에 파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가격이 너무 높고 그것은 비행 속도를 조금 높여준다는 것 외에 아무런 쓸모가 없어 누구도 구입하지 않았지요. 선배님께서 원하신다면 길을 안내할 수는 있습니다만…”
“안내하라.”
한제의 짧은 대꾸에 이단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섰다.
서쪽 광장의 자유시가는 매우 넓었으며,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단남은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사람답게 한제를 금방 시가 안으로 안내했다.
바닥 곳곳에 펼쳐진 좌판에는 법보부터 법기, 단약 등이 가득했다. 심지어 상고 시대의 법기를 판다는 팻말이 걸린 좌판도 있었는데 그곳에는 각종 기이한 것들이 가득해 적지 않은 수련자의 시선을 빼앗았다.
안내하는 동안 이단남은 한제에게 자유시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중간중간 농담까지 섞어가며 설명했고 덕분에 한제는 금세 자유시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선배님, 저기 대머리 수련자 보이십니까? 저자는 거의 해마다 이곳에 오는데 파는 물건이 하나같이 귀한 것들이랍니다. 아, 그리고 저기 흑백 옷을 입은 사람 말입니다. 저자가 이곳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파는 것들이라고는 온통 불량품밖에 없습니다. 식견이 짧은 이들을 등쳐먹는 놈이지요. 일전에 어떤 사람이 저자를 뒤쫓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 또 나와 있을 줄은 몰랐네요.”
한제는 이단남의 설명에 따라 그가 가리키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잠시 후, 시가 뒤쪽의 비교적 큰 좌판이 펼쳐진 곳에서 이단남은 걸음을 멈추더니 어느 좌판의 주인을 향해 포권을 하며 웃었다.
“장 선배, 아직 절 기억하십니까?”
좌판의 주인은 붉은 얼굴의 노인이었는데 그는 이단남을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물론 기억하고말고… 그래, 이번에는 또 어떤 보물을 보러 왔느냐?”
말을 마친 노인은 한제를 힐긋 살폈다. 그러더니 순간 동공이 바짝 쫄아들었다. 단번에 한제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선배님, 저는 장화림이라 합니다. 무슨 물건이 필요하신지요?”
“곤목석이 필요하네.”
한제의 말에 노인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곤목석이 있긴 하나 값은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저도 친구 녀석 대신에 파는 것인데 그 친구가 제게 맡기면서 말하길, 조금도 깎아줄 수는 없다면서 최고급 영석 다섯 개를 꼭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단남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최고급 영석 다섯 개라니, 어마어마하군요. 최고급 영석은 7성 수련국에서 아니면 보기 드문 것인데⋯⋯. 7성 수련국에서라면 그보다 더 뛰어난 효과를 내는 재료를 더 싸게 살 수도 있을 겁니다.”
이단남의 말에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분명 비싼 값이지. 허나 친구 녀석이 워낙 완강하니⋯⋯.”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툭 내뱉었다.
“보여줄 수 있나?”
노인은 잠시 망설인 끝에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그의 손에 푸른색 돌 하나가 나타났다. 손바닥 크기의 돌 위에는 나뭇가지처럼 줄무늬가 빼곡했다. 마치 식물이 돌을 뚫고 자라난 것만 같았다.
그 돌은 얇은 한 층의 빛의 장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물건을 사고팔 때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법술의 결과였다. 곤봉주(困封咒)라 불리는 이 법술을 사용한 사람보다 수준이 높지 않은 자라면 그 법술을 푸는 데 10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정도 시간이면 파는 사람은 그 물건을 거두어 저물대에 집어넣고도 남기 때문에 강탈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인 법술이었다.
한제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그 돌은 노인의 손에서 둥둥 떠올라 그의 손에 쥐어졌다. 얇은 빛의 장막은 저항 없이 곤목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뒤 스르륵 사라졌다.
노인은 순간 안색이 변해 헛숨을 들이켰다. 한제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한제는 그 곤목석을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곤목석이었다.
한제는 손을 휘둘러 곤목석을 저물대에 챙겨넣었다.
“선배님⋯⋯.”
붉은 얼굴의 노인이 긴장한 얼굴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허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얀 빛을 발하는 마름모 형태의 영석 다섯 개가 그의 앞에 떠올랐다.
그것이 최고급 영석임을 단박에 알아본 노인은 얼른 거두어들이더니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누구도 이쪽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노인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차린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한제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노인은 곧장 좌판을 거둔 뒤 빠르게 명매성을 떠났다. 그는 귀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다섯 개의 최고급 영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한편 한제는 자유시가를 빠져나온 뒤 침착한 표정으로 뒤쪽을 훑어보았다. 방금 곤목석을 구입한 순간, 세 개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단남.”
“예, 선배님!”
이단남은 한제의 부름에 얼른 다가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공손해졌다. 한제의 수준에도 놀랐지만 그 정도 힘이 있으면서도 깔끔하게 제값을 내고 거래하는 모습에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거래하다보면 승냥이 같은 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수련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이냐?”
한제의 물음에 이단남은 얼른 입을 열었다.
“자유시가 내에서 거래하는 자들은 대부분 강력한 수련자들이고 보통은 홀로 다니지 않습니다. 상대의 전력을 모르니 누구도 섣불리 다른 자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고 반대로 다른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요.
또한 혹시라도 그런 일이 걱정된다면 믿을 만한 점포에 판매를 위탁함으로써 어느 정도 골칫거리를 덜기도 합니다. 아니면 성주의 저택에 영석을 지불하고 경호 수련자를 고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완벽히 안전하지는 않지요. 그러니 운명에 맡길 수밖에요.”
한제는 수마해에서 단로 하나 때문에 추격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처음 방문한 이곳도 주작성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곳에서 묵설액(墨雪液)도 구할 수 있겠느냐?”
한제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묵설액이라⋯⋯.”
이단남은 한참 고민하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말을 마친 그때 이단남은 돌연 눈을 번득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상 씨 일족의 수라만상(搜羅萬象)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한제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고 이단남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상 씨 일족의 점포는 명매성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지요. 듣기로는 7성 수련국의 지원을 받아 교역성 곳곳에 점포를 냈다더군요. 그 점포에서는 판매를 하건 구매를 하건 고객을 이 교역성 밖 1백만 리까지 보호해줍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구매자의 수련성까지 보내주기도 하고요.”
이단남의 대답에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라.”
이단남은 내심 잔뜩 흥분했다. 명매성에서 오랜 시간 지내온 그였지만 북쪽 구역에는 단 두 번만 가보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점포 안에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충분한 자격이 되지 않는다면 구매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백미
이단남의 안내로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북쪽 구역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황궁처럼 호화로운 아홉 개의 점포가 우뚝 서있었다.
“선배님, 가장 안쪽에 있는 저 점포가 수라만상입니다. 일반적인 수련자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이단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색의 파문 몇 개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멈춰라!”
그 파문에서 고고하고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괴이한 바람이 불어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남색 파문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