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85
인의 관문, 정원 안에 있던 노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84번째가 시작되었구나. 정말 계속하기를 원하느냐?”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83번째의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완성해내지 못한 나무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한 여인의 조각상이었다.
“계속 하라. 그것이 진리를 찾는 것이자 인의 관문의 진정한 의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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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종 내부 깊은 곳.
검은색 제단 중앙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수련하던 천운자가 불쑥 두 눈을 떴다. 그의 입가에는 만족한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훌륭한 녀석이군!”
★ ★ ★
열흘 뒤, 인의 관문 안의 도원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첫걸음을 내디딜 때만 해도 아직 아이였던 그는 두 번째 걸음을 내딛는 순간 소년으로 변했고 세 번째 걸음을 내디뎠을 때는 완연한 청년이 되었다.
청년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천천히 도원경 밖으로 걸어 나온 그의 손에는 나무 조각상이 하나 들려 있었다. 마침내 완성된,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찬란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눈에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청년은 한제였다.
“백 번이 안 되는 윤회를 통해 어찌 진리를 얻을 것이며 천 년이 안 되는 수련을 통해 어찌 하늘에 진리를 물을 것인가? 인의 관문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혼잣말을 내뱉는 한제에게서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과 약간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 다만 이 변화는 아주 깊은 곳에서 일어난 까닭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으나, 그의 눈빛이 이전보다 훨씬 맑아졌다는 것만은 자명했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 허무의 공간에서 사라진 그가 인의 관문에서 빠져나왔다.
“지(地)의 관문은 수준을 시험하는 곳이다. 준비가 되었다면 도전하라!”
“어찌 도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地)의 관문이 있는 곳은 시뻘건 불의 세상이었다. 붉은 화염 줄기가 지면의 균열에서 하늘을 꿰뚫을 듯 수시로 솟아올랐다.
한제는 침착하게 그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수준을 시험하는 곳이라고 했지? 어떤 방식이려나?”
한제는 걸으며 잠시 고민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의 땅에 있던 균열에서 화염이 솟아오르더니 허공에 녹아들며 붉은 인영으로 변해갔다. 그 인영의 붉은 머리카락은 촉수처럼 휘날렸고 얼굴 부분은 흐릿하여 이목구비를 제대로 살필 수 없었지만 눈이 있는 부분에는 기이한 두 개의 어스름한 빛이 나타났다.
“지의 관문의 열 번째 호선(護仙)이다. 나를 이겨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붉은 인영이 냉랭하게 말했다.
한제는 멀거니 상대를 바라보다가 두말 않고 앞으로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앞으로 쏘아 보냈다. 순간 엄청난 힘이 한제의 체내로부터 흘러나와 응집되었다.
“파괴!”
한제가 외치자 그의 온몸에서 빛이 번득였다. 붉은 인영의 얼굴에 있는 어스름한 빛이 순간 밝아지더니 뒤로 물러나면서 팔짱을 끼고 있던 두 팔을 펼쳐 휘둘렀다.
콰르릉!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래바람이 사방을 휩쓸었다. 지면의 균열이 쩌적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미친 듯이 확산되었다. 붉은 인영은 뒤로 한참 밀려난 뒤에야 겨우 멈춰 서서는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제자리에서 뒷짐을 진 한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물러나라!”
붉은 인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제를 향해 허리를 굽히더니 몸을 훌쩍 날려 다시 화염으로 되돌아가 지면의 균열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는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그곳에는 저런 존재들이 더 있을 터였다.
“천운종의 세 관문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터.”
한제는 피식 웃더니 더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지의 관문은 포기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제의 모습이 지의 관문에서 사라졌다.
★ ★ ★
천운종 안의 보리수 아래, 선량한 얼굴의 청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포기하겠다는 판단 역시 단호하군. 저자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제아무리 신통해봐야 영변기 초기 아니겠는가.”
그의 눈은 다시 맑아졌고 표정이 풀어지며 다시금 선량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셋째 사제,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대사형이 이리 생각해주시니 당연히 잘 지냈지요.”
어디선가 유순한 목소리가 화답했다. 그러더니 하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허공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몇 걸음 만에 그곳에 이르렀다. 그는 일전에 교역성에서 한제와 마주쳤던 백미였다.
선량한 얼굴의 청년은 몸을 돌려 백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셋째 사제, 이번 여정에서 스승께 드릴 선물은 찾았나?”
백미는 먼 곳의 허공을 슬며시 살피더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준비한 선물이라고 해봐야 작은 성의일 뿐이죠. 사형이 준비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엇? 저자는⋯⋯?”
말을 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 한제를 발견한 백미의 눈이 커졌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은 의아해하며 설명했다.
“스승님이 다른 수련성에서 거둬온 수련생이네. 몇 달 전 이곳에 와서 세 관문을 거치는 중이지. 이제 세 번째 관문에 이를 것이네.”
“그렇군요.”
“스승님은 저자를 자운각에 들일 계획이시네!”
선량한 얼굴의 청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운각이라!”
백미는 기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형, 저는 일이 있어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3천 년 된 오엽초(五葉草) 하나만 주실 수 있습니까? 대신 화염정(火炎晶)을 드리지요.”
선량한 얼굴의 청년은 유쾌하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게 하세. 내 동굴에 가서 동자에게 달라고 하면 될 걸세.”
백미는 포권을 취한 뒤 다시 한제가 있는 곳을 돌아보더니 몸을 훌쩍 날렸다.
그가 사라진 후, 남아 있는 청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스승님이 저자를 자운각에 들이시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에게 자운각을 차지하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자운각(紫雲閣)
지금 천(天)의 관문 안에서 한제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곳은 경지를 시험하는 곳이었다.
지의 관문을 포기한 뒤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30일이 되었다.
그동안 한제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천의 관문에는 대체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이곳은 천도와 지척이라 한제는 손만 뻗으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한제는 천의 관문 안에서 시간마저 잊은 상태로 그저 조용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 이른 이래 경지의 힘을 방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제는 조급하지 않았다. 인의 관문과 지의 관문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한제의 원신에는 ‘도(道)’라는 글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의 관문에 들어온 지 51일째 되는 날,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좌선에서 깨어났다. 밝았던 그의 두 눈에는 기이한 빛이 계속해서 번득였다.
잠시 더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인, 지, 천, 세 개의 관문은 시험이 아니라 우연이었군.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곳이었어.”
한제는 두 손을 뻗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천의 관문도 포기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온 세상이 번쩍거리면서 한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더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제가 서 있는 곳은 천운종의 십만대산 밖이었고 앞에는 보라색 옷을 입은 누군가가 선량한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제, 나는 조성살이라 하네. 스승님이 자(紫) 자를 하사하신 제자들 중 가장 일찍이 입문한 사람이기도 하지. 대사형이라 부르게.”
한제는 그를 보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대사형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