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88
한제는 코웃음을 치며 한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어느새 나타난 선검이 그의 손에 들렸다. 한제는 선력을 선검에 응집시켜 가볍게 휘둘렀다.
쐐애액!
순간 한 줄기의 검광이 바람을 가르며 용암을 향해 달려들었다.
펑!
검광과 용암의 충돌에 지축이 뒤흔들렸고 용암에는 균열이 일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균열로 빠져나가더니 오른손 엄지를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순간 하늘의 색이 변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이 한제의 검지에 흡수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것은 사도환이 떠나기 전 한제에게 알려준 세 가지 필살기 중 하나, 적멸지(寂滅指)였다.
세 가지의 필살기는 사도환이 지난 수만 년 동안 수련해낸 결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법술이었으며, 오직 한제에게만 알려준 법술이기도 했다.
화마지(化魔指)
순간 여인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그녀의 눈에 드리웠던 광기도 사라졌다. 그녀는 곧장 순간이동을 하려 했지만 사방의 공간이 순간이동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이런 상태에서 순간이동을 한다면 허무 속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더욱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휘둘러 여인의 미간을 꾹 눌렀다.
여인은 이를 악문 채 몸을 훌쩍 날렸다. 순간 그녀의 체내에서 분신이 하나 갈라져 나왔다. 한제의 손가락에 억눌린 채 신음을 흘리던 분신은 이내 바짝 쪼그라들다가 하얀빛으로 변해 한제의 손가락을 통해 그에게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한제의 엄지가 내는 위력은 더욱 격렬해졌다.
“쿨럭!”
여인은 더욱 창백해진 얼굴로 선혈을 한 움큼 토해내더니 휘청거리는 몸으로 또 하나의 분신을 만들어냈다.
“폭발!”
여인이 찢어질 듯 소리쳤다.
펑!
여인의 분신이 자폭하면서 엄청난 힘이 퍼져나갔다. 사방에는 모래바람이 일어났고 대지 곳곳에는 균열이 생겨났으며, 자한각도 반쯤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안개가 나타났고 보라색 옷의 여인은 사방의 공간이 느슨해진 틈을 타 즉각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한데 그때, 안개 손에서 요사스러운 손가락이 나타났다.
“이런!”
여인의 눈에 충격과 절망감이 나타났다.
손가락에 뒤이어 나타난 것은 한제의 냉랭한 두 눈이었다. 그를 향한 여인의 눈빛은 마치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을 본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한제는 천천히, 그러나 엄청난 압박감을 뿜어내며 그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섰고 어느새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멈춰라!”
멀리서 여러 갈래의 빛이 나타나면서 누군가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한제는 싸늘하게 웃으며 순식간에 여인의 미간을 눌렀다. 그러자 여인의 두 눈이 어두워지더니 몸을 부르르 떨던 그녀는 곧장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원신은 한제의 엄지에 갇힌 상태였다.
이때, 사방의 짙은 안개가 흩어져 사라졌고 한제는 엄지를 입에 대고 훅 빨아들였다. 여인의 원신은 그의 체내에 자리한 존혼번에 봉인되었다.
허공을 가르며 달려온 네 사람은 한제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허나 이들의 등장에도 한제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이는 한제가 기다리던 바였다.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인이었다. 그중 한제는 두 명을 알고 있었다. 한 명은 조성살, 다른 한 명은 교역성에서 보았던 백미였다.
처음 보는 중년의 사내는 평범한 외모였으나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몸 밖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한제를 노려보던 그가 이를 악문 채 소리쳤다.
“동문끼리 서로를 공격하다니, 오늘 나는 스승님을 대신해 이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세 남자 뒤로 선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한데 그녀는 마치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살피는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힐끗거리며 한제를 훑었다.
멀리서 수많은 빛들이 뒤이어 달려오고 있었다. 한제는 신식을 통해 지금 다가오고 있는 이들은 모두 자종(紫宗)의 제자들로 이곳에서 풍기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무슨 일인지 살피러 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들은 모두 1만 척 이상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머지않아 사방은 자종의 제자들로 빽빽하게 에워싸인 상태가 되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제에게 닿아 있었다.
앞으로 나섰던 중년 사내가 한제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조성살이 그를 막아섰다. 중년 사내는 굳은 얼굴로 조성살을 바라보았다.
“대사형, 왜 막으시는 겁니까?”
조성살은 엄숙한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제, 이제 자네를 칠(七)사제라 부르겠네. 칠사제, 오늘의 일은 어찌 된 것인가?”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조성살을 마주보았다.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다. 이 상황은 암암리에 천운자가 벌인 선동의 결과일 것이다. 한제는 천운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인지도 대략 짐작이 갔다. 허나 그럼에도 전혀 두렵지는 않았다.
조성살과 백미, 중년 사내는 모두 영변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였다. 허나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뒤쪽에 있는 여인이었다.
‘영변기 후기로군.’
한제는 내심 경계심이 치솟았으나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손운이 누구입니까?”
그 질문에 네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조성살은 한제를 주시하다가 잠시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칠사제, 이 일은 자네의 잘못이라 나로서는 도울 수가 없네!”
말을 마친 그는 중년 사내를 가로막았던 팔을 거두었다.
중년 사내는 한제를 노려보며 한 걸음 성큼 나섰다. 그 한 걸음으로 1천 척 거리를 단숨에 좁힌 그는 한제로부터 1백 척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서 차갑게 말했다.
“폐허가 된 수련성에서 온 수련자여, 오늘 내가 진정한 신통력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그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제는 그를 주시하며 오른손을 저물대에 댔다.
그 긴장된 순간, 백미가 갈등하는 불쑥 입을 열었다.
“이(二)사형, 동문들끼리 금지된 법술을 사용하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중년 사내는 백미를 곁눈질하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미, 이자는 오(五)사매를 죽였다! 설마 오사매보다 이자를 더 중시하는 것이냐?”
백미는 기이한 눈빛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사형의 그 말은 사제간의 금기를 어기겠다는 거군요, 기억해두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콧방귀를 뀌더니 고개를 돌려 한제를 주시하며 냉랭하게 말했다.
“네게 삼초(三草)를 양보하겠다. 법술을 사용하든 법보를 사용하든 상관없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이사형이라는 자를 살폈다. 그의 수준은 영변기 중기로 선력 역시 한제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한제에게는 다양한 법보가 있었다. 거기다 사도환이 알려준 세 가지 필살기도 있었다. 영변기 중기 수련자와 맞선다 해도 이길 자신이 7할 이상은 있었다.
“삼초를 양보한다?”
한제는 오른손 엄지로 그를 가리키며 비릿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순간 한제 체내의 선력이 미친 듯이 끓어오르더니 엄지에서 요사스러운 빛이 번득였다. 사방의 빛이 그 손가락으로 흡수된 것 같은 순간, 한제는 앞으로 한 발 내딛어 그 손가락으로 앞쪽을 눌렀다.
이사형은 이미 이 신통력을 본 적이 있기에 냉소를 터뜨리며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금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신 그 금색 기운은 순식간에 그의 온몸을 감쌌고 엄청난 힘이 확산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오른손 엄지가 그 금빛에 닿았고 그 순간 이사형이 외쳤다.
“귀허(歸墟)!”
그의 몸을 감싼 금빛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미친 듯이 꿈틀대더니 한제의 손가락과 똑같은 금색 손가락을 만들어내어 한제를 공격했다.
한제는 피식 비웃으며 손을 거두더니 동시에 왼손으로 저물대에서 곤극 채찍을 꺼내 들었다.
짝!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색 빛으로 뒤덮인 손가락은 곧장 무너져 내렸고 이사형의 몸을 뒤덮고 있던 금빛도 흩어져 버렸다.
“일초(一草)가 끝났습니다. 허나 사형, 이초(二草)는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한제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채찍을 휘둘렀다 잡아당겼다. 채찍은 교룡처럼 미친 듯이 쉭 소리를 내며 강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짜작!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이사형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의 원신은 채찍에 휘감긴 채 육신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의 몸을 감쌌던 금빛은 이미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이어서 한 번의 채찍질이 가해지자 이사형은 뒤로 수백 척이나 물러나더니 황망한 얼굴로 한제의 손에 들린 채찍을 바라보았다.
한제는 상대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마지막 일초가 남았습니다.”
“으음…”
이사형은 어두워진 얼굴로 낮게 신음하더니 저물대를 두드려 거대한 검을 꺼내 들었다. 사내가 그 검을 휘두르자 검에서 한 줄기 검광이 튀어나왔다.
“손가락을 이용한 공격까지 더하면 삼초가 끝났다. 오늘 난 스승님을 대신해 종파를 정리할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달려 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십방팔라진(十方八羅陣)!”
그 검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셀 수도 없이 많아져 하늘을 가득 뒤덮은 채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사형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면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한 줄기 검은 안개가 하늘에서 빠르게 솟아올랐고 주문에 따라 점점 더 빠르고 점점 더 많아졌다. 멀리서 보면 꼭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한제는 침착하게 오른손으로 선검을 두드리며 달려드는 비검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굽은 칼이 뒤를 따르며 사방을 휩쓸었다.
우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