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92
그 순간, 중년 남자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한제를 마주보았다. 그러더니 흠칫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제자 장향범, 일곱째 사조(師祖)를 뵙습니다!”
무릎 위에 놓여 있던 벽옥색의 검은 그가 일어나자 한 줄기 녹색 빛이 되어 그의 체내로 들어가 사라졌다.
한제는 장향범의 미간을 잠시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자네의 비검을 내가 좀 봐도 되겠나?”
장향범은 잠시 머뭇거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흔하디흔한 물건일 뿐입니다. 산 아래 시장에서 얻은 것이라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사조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보여드려야지요.”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리자 한 줄기 녹색 빛이 미간에서 튀어나와 7척 길이의 긴 검이 되었다. 모습을 드러낸 검이 가볍게 떨렸다.
한제는 덤덤하게 손을 뻗어 검을 움켜쥐더니 자세히 살폈다.
좀 전에 장향범이 비검을 거뒀을 때 그 비검에서 흘렀던 검기는 씻은 듯 사라졌었다. 그리고 다시 비검을 본 순간, 한제는 아까 느꼈던 검기가 장향범의 것이 아니라 이 비검의 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왼손으로 벽옥색 검을 가볍게 쓸어보던 한제의 심신이 살짝 떨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선검의 검기를 알아차리기 힘들지도 몰랐다.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저 이 검이 뭔가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만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한제는 이 검기를 감지한 순간부터 익숙함을 느꼈다.
“주일⋯⋯.”
한제가 중얼거렸다.
이 비검에 어려 있는 한 줄기 깨달음은 주일이 당시 검혼이 되었을 때 발산하던 그 검기였다.
검존 능천후를 추격하여 떠난 지 1백 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주일로부터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한제는 처음으로 주일의 검기를 느끼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주일이 준 문정기 수준의 경지가 어린 보탑이 없었다면 한눈에 이 검기의 내력을 알아봤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비검이 품고 있는 검기는 한 줄기뿐이었다. 한제는 그 한 줄기 검기를 느끼며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오른손으로 검을 한 번 쓸었다. 그러자 순간 그 벽옥색 검의 색이 더욱 짙어지면서 번득이더니 한 줄기 녹색 빛이 검에서 튀어나와 떠올랐다.
그 빛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쉰 한제는 오른손을 움켜쥐어 그 빛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멍한 표정의 장향범에게 말했다.
“이 검에 내가 아는 사람의 검기가 어려 있구나. 하여 내가 거두었다. 대신 18개의 금제가 들어 있는 이 옥패를 주겠다. 이 옥패에 들어 있는 금제를 탁본한 뒤 상급 이하의 어떤 비검에라도 적용한다면 그 검의 위력을 몇 배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한제는 저물대에서 꺼낸 옥패 하나를 꺼내 벽옥색 비검과 함께 장향범에게 돌려주었다.
장향범은 공손하게 대했으나 내심 비통해하는 기색이었다. 허나 옥패를 받아 들고 그것을 살핀 후 그의 표정이 변했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일곱째 사조님!”
장향범은 상대가 건넨 옥패에 들어 있는 18개의 금제가 결코 범상치 않은 것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금제들은 모두 공격 속성의 금제들로 무엇보다도 중첩이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했다.
장향범은 잔뜩 흥분되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당장이라도 폐관수련을 하며 이 18개의 금제를 모두 비검에 쏟아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하면 화신기 수련자 중에서 그의 비검에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없을 터였다.
이 18개의 금제는 한제가 운작의 밀짚모자가 가진 효능을 깨달은 뒤 얻어낸 19개 조 중 두 개 조에 해당하는 금제에 불과했다. 금번을 만들 때 필요한 금제가 999개 조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한참 모자랐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선옥을 얻기 위해서다!”
한제는 사족 없이 본론을 말했다. 그러자 장향범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째 사조님은 매달 1백 개의 선옥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영패를 보여주시면 전송진을 열어드리겠습니다.”
한제는 말없이 손을 휘둘러 영패를 내보였다.
장향범은 그것을 받아 들고 공손하게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지면을 한동안 살피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또 한참 계산하더니 영패로 지면 한쪽을 꾹 눌렀다. 그곳은 진 안의 세 갈래 하얀 흔적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곳이었다.
영패가 지면에 닿은 순간, 그 세 갈래의 하얀 흔적이 맹렬히 튀어나왔다. 장향범은 영패를 챙기지도 못한 채 몸을 크게 떨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세 갈래 하얀 흔적은 지면을 뚫고 나오더니 한제의 영패를 관통했다.
검기(劍氣)
영패는 강렬한 보라색 빛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이에 세 갈래 흔적은 쉭쉭거리며 한데 모여 품영각으로 날아가 7층에서 멈추었다. 그러더니 그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 채 하나의 거대한 문을 이루었다.
장향범이 공손하게 말했다.
“일곱째 사조님, 영패를 들고 들어가시지요.”
한제는 두말 않고 허공에 떠 있는 영패를 쥔 채 한 줄기 빛이 되어 품영각 7층으로 올라갔다.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문이 전송진 역할을 하는 듯했다.
그 안으로 들어간 순간,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지더니 잠시 후 선계와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곳곳에 꽃향기가 가득했고 물이 졸졸 흘렀으며, 일곱 빛깔 구름이 둥실 떠 있는 하늘에서는 이따금씩 학이 날아다녔다.
이때 일곱 빛깔의 구름이 서로 한데 모이더니 거대한 인영이 나타났다. 형태는 흐릿했지만 그에게서 끓어오르는 듯한 강력한 선력이 느껴졌다.
“영패!”
엄숙한 목소리가 그 거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제는 침착하게 들고 있던 영패를 내던졌다. 그 영패는 휙 하고 거인을 향해 날아가더니 그 앞에 이르러 우뚝 멈추었다. 이어 소리 없이 빛으로 부서져 거인의 체내로 흡수되었다.
잠시 후, 거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계 일맥의 일곱째는 지난 103년 동안 받아가지 않은 선옥이 있는데 그것까지 한꺼번에 받아가겠느냐?”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한제는 흠칫 놀랐다. 그의 뛰어난 자제력으로도 떨리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셔 호흡을 정돈한 후에야 떨리지 않고 답할 수 있었다.
“전부 가져가겠습니다!”
“총 12만 3600개다!”
거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많은 선옥이 그의 체내에서 튀어나와 한제로부터 1백 척 앞에 쌓이기 시작했다. 작은 산을 이루는 선옥들을 바라보면서 한제는 입안이 바짝 말라오는 것을 느꼈다. 천운종에 이토록 많은 선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100여 년간 받는 선옥이 이 정도라니… 선옥은 본디 매우 희귀한 것인데 어찌 천운종에는 이렇게 많이⋯⋯?’
선옥은 이미 산처럼 쌓인 상태였다. 침착함을 되찾은 한제는 저물대를 열어 최대한 빨리 선옥들을 챙겨 넣었다.
모든 선옥을 챙겨 넣은 한제는 저물대를 문질렀다. 아직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외부 수련성에서 온 촌뜨기라고 하던데 지금 보아하니 맞는 것 같군. 선옥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다니…’
한제가 자조하고 있는 동안 허공에 떠 있던 거인의 인영은 점차 흩어져 일곱 빛깔의 구름으로 돌아갔다. 반짝이는 빛들이 구름 사이에서 반짝이며 응집되더니 다시금 영패가 나타나 한제에게로 날아들었다.
한제가 손을 뻗어 그 영패를 쥔 순간,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이 그를 곧장 수백 척 밖으로 밀어냈다.
품영각 7층 외부에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 줄기의 붉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한제는 빠른 속도로 곧장 자한각으로 향했다. 이제 선옥이 충분하니 폐관수련을 통해 3개월 안에 이 선옥을 모두 흡수하고 영변기 중기 수준으로 올라 천운칠자의 칭호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가 어찌나 빨리 이동했는지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가 날아서 지나간 곳에는 우아한 죽헌(竹軒)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세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종의 집행장로였는데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한제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저 이한제라는 녀석은 너무나 안하무인입니다. 자종 안에서 저리 바삐 돌아다니다니…”
곁에 있던 노인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시조 어르신의 제자 아닙니까. 천운종을 배반하지 않는 이상 공연히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마 우리 셋이 함께 나서봐야 저자를 막긴 힘들지 않겠소?”
마지막 한 사람은 보라색 옥으로 만든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어차피 시조 어르신의 제자들끼리 갈등이 치열한데 걱정할 필요 있겠습니까? 지난 수천 년 동안 이미 숱하게 많이 봐온 일 아닙니까!”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한편, 한제는 어느덧 자한각에 도착해 몸을 훌쩍 날렸다. 허나 바닥에 착지한 순간, 그의 표정이 변하더니 어느 한곳을 바라보았다. 하늘 끄트머리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갑자기 나타나 한제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허공에서 한 바퀴 돈 그 붉은 빛이 흩어지자 그 안에서 영변기 후기 수준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사사저였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왼쪽에서 파문이 일렁이더니 조성살이 온화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에서는 이사형이 음침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제는 덤덤하게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다른 도우들은 어찌 여태 숨어 있는 거요? 그만 나오시지요!”
다른 자들의 기척을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방금 나타난 세 사람에게서 두려운 기색을 조금도 느낄 수 없던 한제는 분명 더 많은 자가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하하하! 재미있는 자로군.”
긴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우더니 짙은 남색 옷을 입은 서른 전후의 청년이 나타났다. 물론 수련자의 나이는 외모로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의 옷 가슴팍에는 흉악하고 사나운 모습의 남색 용 세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특히 그 눈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천운종 남종(藍宗) 일맥의 셋째, 사마여풍일세!”
그는 온화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변기 후기! 사사저보다 조금 위인 걸 보면 후기 절정에 이른 모양이군.’
한제의 눈동자가 살짝 졸아들었다.
“이(李) 사제, 같은 계열은 아니지만 자네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네. 또한 자네에게 소개할 사형이 하나 있지.”
사마여풍이 빙그레 웃으며 낭랑하게 말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
그 서늘함이 깃든 목소리에 한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뒤로 수백 척 떨어진 곳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파란 옷을 입은 그는 세월이 흘러도 녹지 않는 빙산처럼 냉랭하게 한제를 훑어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짧은 순간 본 그 눈빛에는 모든 것을 관철하는 듯한 냉랭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한제는 자신이 대적할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문정기에 이미 반 발짝 정도 들여놓은 자로군.’
한제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명확했다.
한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에 오른손을 올렸다.
이때, 사사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칠사제,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니 부디 양해해주게!”
말을 마친 그녀는 결인을 한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리며 작게 기합을 넣었다. 순간 한 줄기 은색 빛이 그녀의 체내에서 미친 듯이 확산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반경 10리를 뒤덮었다. 이 또한 금지된 법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