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96
조성살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거대하고 괴이한 허상이 하나 나타나 있었다. 그 허상은 형상이 흐릿했으나 키가 1천 척에 달했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그 허상에서는 강력하고도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거대한 몸에서는 짙은 남색의 요사스러운 줄무늬가 번득였고 커다란 손에는 비검처럼 예리하고 음산한 손톱들이 달려 있어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두 눈은 감겨져 있었으나 그 거대한 머리가 미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허상은 아래로 갈수록 흐릿해졌는데 그 맨 아래 서 있는 조성살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이 술법이 상당한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조성살의 미간에서 기괴한 문양 하나가 불규칙적으로 번쩍였고 그때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진 반면 마물의 허상은 점차 응결되어갔다.
마물이 나타나자 각 종파의 손님들은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섯 명의 문정기 수련자만이 기이한 눈으로 마수를 살폈다.
“설마… 고대 마물?”
문정기 후기 수준이자 수운문(水雲門)의 대장로인 강천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표정이나 말투로 미루어 스스로도 자신의 추측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강 도우, 저것이 정말 전설 속에 존재하는 상고 시대의 마물이라는 말인가?”
강천존의 곁에 있던 노인이 경악하며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매우 비슷하군!”
강천존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러는 동안 혼번에서 나온 혼백들은 그 마물을 보고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 조성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성살은 번득이는 눈빛으로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거대한 허상이 그의 동작을 따라 했다. 그러자 기이한 기운이 조성살, 정확히는 그의 뒤에 있는 허상의 손가락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요력(妖力)!”
강천존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기운은 선력은 아니었으나 그 위력만큼은 선력과 엇비슷했고 심지어 마화의 자폭이 만들어낸 마력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를 본 한제는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조성살의 손이 닿은 곳에서는 한 줄기 붉은 회오리가 일어나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존혼번의 주요 혼백들은 한제의 통제에서 벗어나 그 회오리로 빨려 들어갔다.
조성살의 뒤에 선 거대한 허상의 얼굴에 푸른빛이 돌았다. 허상의 두 눈이 마치 언제든 치켜 뜰 듯이 바르르 떨렸다.
한제는 존혼번을 꺼내 휘둘렀다. 혼번은 순식간에 1천 척 길이로 늘어나더니 주요 혼백들을 회오리로부터 소환해냈다.
“캬오오!”
그 순간, 거대한 허상이 하늘을 뒤흔들 듯 포효하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에서는 감히 마주보기도 힘든 빛이 발산됐다. 그 눈빛은 서늘하기가 무정의 도를 수련한 사람의 경지보다도 몇 배는 강했다.
한제는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모완의 원신을 두고 격돌했던 고대 신의 화신, 천도의 사자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 거대한 마물의 환영은 한손을 들어 올리더니 곧장 한제를 움켜쥐려는 듯 팔을 뻗었다. 그 순간, 조성살의 몸도 허상과 마찬가지로 팔을 뻗었다.
“번거롭군.”
한제는 혀를 차며 몸을 뒤로 물림과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해 사신차를 두드렸다.
“크아아!”
거대한 포효가 사신차에서 흘러나오더니 강력한 투지로 똘똘 뭉친 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혼수는 흉악한 두 눈으로 마물을 노려보더니 곧장 튀어나갔다.
마물의 허상은 한제를 포기하고 뻗은 손을 틀어 혼수를 잡아채려 했다.
“크오오!”
혼수는 분노한 듯 다시금 포효하더니 마치 유성처럼 사신차를 끌고 마물의 허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엄청난 충격음이 반경 1만 리 안에 울려 퍼졌다. 혼수의 몸은 마물이 뻗은 오른손을 무시하고 관통하여 마물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
그 거대한 마물의 허상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파헤치더니 혼수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냉랭한 눈으로 혼수를 바라보다가 입을 쩍 벌려 집어삼키려 했다. 그러나…
“몹쓸 놈! 멈추거라!”
저 멀리 천운종 본부에서 누군가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에 마물은 움찔 멈추더니 잠시 갈등하는 듯하다가 혼수를 풀어주었다. 그러더니 몸이 급격히 줄어들어 푸른 빛이 되더니 조성살의 미간으로 되돌아갔다.
조성살의 미간에서 번득이던 문양은 다시금 격렬하게 움직이더니 천천히 사라졌다. 조성살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선혈을 한 움큼 토해낸 뒤 한제를 주시했다. 그의 입가에 음산한 웃음이 한 자락 걸려있었다.
한편 마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혼수는 조용히 조성살을 노려보다가 몸을 훌쩍 날려 사신차 안으로 되돌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사신차는 이내 구수권 형태로 돌아왔다.
이때, 한 줄기 붉은 구름이 하늘 끄트머리에서 끓어오르더니 상공에 모여들었다. 이어서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등에 거대한 조롱박이 하나 맨 노인은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붉었다. 노인은 딸꾹질을 하더니 역시나 술에 취한 듯한 눈으로 욕을 지껄였다.
“뭐하는 짓들이냐? 네놈들 때문에 천운성의 다른 늙은이들에게 설명하고 타이르느라 술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단 말이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구수권을 잡아채더니 몸을 훌쩍 날려 본래 자신의 내정된 자리로 향했다. 그러더니 여유로운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조성살은 노인을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적열 사숙을 뵈옵니다.”
노인은 조성살을 한 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를 아느냐?”
조성살은 다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1천 년 전 천운종에 들어왔을 당시 사숙을 뵌 일이 있습니다.”
노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입을 열었다.
“나를 기억하는 것은 가상하다만 그렇다 해도 네 체내에 있는 마물의 령이 쌓이기 시작할 때 억지로 사용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움켜쥐어 조성살을 잡아채더니 흥미로운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네 사부가 기이할 정도로 네게 큰 기대를 걸더구나. 네 대사형은 천운칠자의 쟁탈전에 참여할 수 없을 테니 너는 안심하거라.”
말을 마친 노인은 주변에 자리한 각 종파 손님들을 향해 포권을 한 뒤 히죽 웃었다.
“그대들 중 나를 아는 이들도 있겠지. 오늘 자종에서 벌어진 이 사소한 다툼에 술맛이 떨어졌겠지만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라네.”
강천존은 얼른 포권을 하며 답했다.
“아닙니다, 선배님. 어찌 술맛이 떨어졌겠습니까? 천운종 자계 일맥의 밝은 미래를 본 듯하여 오히려 안심이 되고 또 기뻤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다른 이들도 얼른 동감의 뜻을 밝혔다.
적열은 여전히 히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깟 말썽 가지고 그리 미화하지 말게. 내일이면 천운자 사형이 설교를 하실 테니 기대하게. 나는 이만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네.”
말을 마친 적열은 조성살을 데리고 다시 몸을 훌쩍 날리더니 붉은 구름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한제는 적열이 나타난 뒤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가 사라지자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조성살이 사용한 신통력은 대체 뭐지? 경지를 이용한 공격보다는 고대 신의 신통력과 비슷해 보여. 저 노인의 말대로라면 조성살은 마물의 령이 막 생기기 시작했을 때 썼다고 했는데 그럼 그것이 마물의 령인 걸까? 어쨌든 멋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모양이군.’
그 무렵, 각 종파의 손님 중 상당수가 한제에게 다가와 술을 권했다.
한제는 방금 싸움에서 자계의 둘째 사형을 가볍게 꺾고 대사형을 위협한 장본인이었다. 그들은 조성살이 그토록 대단한 신통력을 사용했다는 것은 분명 한제에게서 큰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제는 직접 공격한 것이 아니라 법보만을 사용해 대항했다. 그러니 그가 직접 손을 쓴다면 어찌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적열의 말대로라면 천운자는 이 자계의 막내 제자를 매우 중히 여기는 듯했다.
이 축하연에 초청받았을 정도의 수련자라면 무척 영리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은 한제가 미래의 천운칠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고 미리 교분을 쌓아두고자 한 것이다.
한제는 고민을 접고 웃음을 머금은 채 몰려드는 손님들을 응대했다. 그는 천운성에서 안정적으로 발을 붙이고 있으려면 천운종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파에도 많은 벗을 사귀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7일 동안 진행되는 축하연의 마지막 날인 이 날, 자종 연회석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한제는 조성살을 대신하여 상석을 차지하곤 다른 종파의 여러 수련자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전연선결(九轉煉仙訣)
밤이 다가오자 잔치는 슬슬 마무리가 됐다. 한제는 강천존을 비롯한 이들이 떠난 후에야 웃음기를 거둔 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넷째 사저를 바라보았다.
“사(四)사저, 그 나이술(挪移術) 좀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한제의 덤덤한 질문에 넷째 사저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더니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이번 생신 축하연이 끝나면 풀어주러 갈 생각이었는데 칠사제가 알아서 나와버렸군. 나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니 이해해주길 바랄게. 그 옥패에는 금지된 술법 중 나이술 뿐만 아니라 스승님이 내게 전수해주신 다른 술법도 있어. 스승님이 저급 선술을 모방하여 만들어내신 것으로 그 위력이 아주 상당하지. 이걸로 사제에게 진 빚을 갚은 걸로 생각해도 될까?”
옥패를 받아 든 한제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가능하면 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더구나 사사저는 이미 영변기 후기에 이른 데다가 사실 자신에게 악의를 드러낸 적도 없었다. 3개월 전에도 자신을 가두어 두기만 했을 뿐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백미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칠사제, 이번 천운칠자의 봉호는 자네의 것이 된 듯하니 미리 축하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손에 쥔 잔을 한제를 향해 들어 보인 뒤 단숨에 들이켰다.
한제 역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기울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할 일이 있으니 내일 뵙도록 하지요!”
백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게.”
넷째 사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한제가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진 후, 백미와 넷째 사저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백미는 자미각으로 돌아가는 와중 악독한 눈빛으로 천운종 본부가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스승님께서는 참으로 편애가 심하시군. 대사형의 체내에 있는 마물의 령이 깨어나면 그의 수준은 곧 회복될 테고 그렇게 되면 나의 복수는 영원히 미뤄질 텐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미각으로 돌아갔다.
한편, 한제는 이동하는 도중 다른 종파의 수련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포권을 하며 예를 갖추었다.
곧 자한각에 도착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곧바로 3층으로 들어가더니 밀실에 앉아 옥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방금 넷째 사저에게서 받은 것으로 두 개의 금지된 술법이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