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98
“허나 그전에 수련 연맹에서 온 귀인을 맞아야겠군.”
그 말을 끝으로 사위가 고요해졌다. 수련자들은 천운자 위쪽의 상공을 바라보았다. 특히 수준이 높은 이들은 놀란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하하하하!”
허공에서 긴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고요했던 하늘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수만 리 안에서 돌연 수많은 금색 광채가 나타났다. 1만 척 길이의 그 금빛 광채들은 곧장 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응집됐다. 마치 온 하늘에 거대한 진을 배치해두는 듯했다.
결국 모든 금빛 광채가 한데 모여든 순간, 태양이 빛을 잃고 하늘과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 한 줄기 금빛뿐이었다.
그 금빛 속에서 한 사람이 긴 머리를 뒤로 나부끼며 나타났다. 늠름한 체구의 그는 마치 한 명의 전선(戰仙) 같았다.
마흔 정도로 보이는 얼굴은 강직했고 두 눈은 번개 같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만들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는데도 위엄이 느껴졌다.
수련자들 중 수준이 높은 자들조차 하늘에 나타난 상대의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보라색 옷을 입고 선 그의 어깨에는 눈이 세 개 달린 보라색 담비가 앉아 번개처럼 번득이는 눈으로 싸늘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천운자는 평온한 얼굴로 그 중년 남자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손 장로였군! 고작 이 늙은이의 생일일 뿐인데 손 장로가 올 줄은 몰랐군! 영광일세.”
허나 천운자는 공손해 보이는 말투와 달리 미동도 하지 않았다.
중년 남자는 그런 천운자의 태도에는 개의치 않는 듯 빛 속에서 걸어 나온 뒤 오른손을 까딱였다. 그 가벼운 손짓에 금빛은 곧장 어두워져 한 자루 금색 비검이 되더니 그의 손에 들렸다.
“자네의 생일 축하연에 내가 어찌 참가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하!”
중년 남자는 호방하게 웃으며 오른손에 쥔 비검을 던졌다. 비검은 천운자 쪽으로 날아갔다.
“급하게 오느라 선물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군. 이 비검은 중상급 선기(仙器)일세. 내가 1만 년 동안 제련해놓았으니 제법 쓸 만할 걸세. 더구나 이 비검은 금색이라 일곱 빛깔을 좋아하는 자네 마음에 들 것이라고 생각하네.”
천운자는 빙긋 웃으며 그 비검을 받아 황계 일맥의 제자 중 한 사람에게 건넸다.
“곤붕자 이 검은 네게 주겠다.”
곤붕자는 얼른 그 비검을 받아 들고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애써 내리누르며 공손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중년 사내는 천운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쓰게 웃었다.
“자네의 패기는 여전하군!”
천운자는 미소를 짓더니 주위의 수련자들을 훑어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내가 오늘 설교할 것은 천명의 도일세. 나의 설법에 동의하지 못하는 도우가 있다면 이의를 제기해도 좋네. 함께 검증해나가면 될 테니까.”
말을 마친 천운자는 소매를 휘두른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상서로운 구름 한 조각이 나타나 그를 떠받쳤다.
수련 연맹에서 온 중년 사내 역시 한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설교를 들을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어깨에 올라앉은 담비는 번쩍 하고 그의 어깨에서 날아오르더니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한제는 내심 헛숨을 들이켰다. 담비의 속도는 굽은 칼이 전력을 다해 낼 수 있는 속도에 비견할 만했기 때문이다.
한데 돌연 그의 어깨가 묵직해졌다. 고개를 틀어 보니 세 개의 눈이 달린 담비가 언제부터인지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담비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는 세 개의 눈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한제를 살폈다. 한제 역시 자신의 어깨에 올라탄 그 담비를 바라보았다. 수련 연맹의 손장로가 나타났을 때부터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제 어깨에 올라 있는 담비를 보자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한제는 담비의 미간에 있는 세 번째 눈을 자세히 살폈다.
그 세 번째 눈 안에서는 별들이 반짝이는 듯해 보는 사람을 빨아들였다.
‘성흔(星痕) 담비다. 어린 성흔 담비야!’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단박에 그 담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고대 신의 기억의 유산에는 이 담비와 관련된 기억이 있었다. 이 담비는 우주에 존재하는 기이한 생물 중 하나로 성년이 되면 세상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으로도 변신이 가능했기 때문에 꼭두각시를 만드는 좋은 재료가 되기도 했다.
이 담비는 영석을 매우 좋아하고 그것을 먹으며 성장해가는데 비록 공격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그 속도만큼은 상상을 초월했다.
고대 신의 기억에 성흔 담비는 매우 많았다. 어린 담비의 내단을 추출하여 법보를 만들고 그 법보에 순간이동의 진법을 새겨 넣으면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담비는 점점 멸종해가고 있었다.
고대 신이 활동했던 시기에 성흔 담비는 가장 좋은 애완동물이었다. 성흔 담비 역시 어린 고대 신에게서 풍기는 기운을 좋아해 일부러 잡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고대 신들에게 다가갔다.
어린 고대 신과 함께 지내는 것은 성흔 담비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어린 고대 신과 함께 자람으로서 담비는 많은 영력을 흡수해 몇 배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눈 안에서 반짝이는 별빛이 아직 허상의 막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이 담비는 태어난 지 1만 년이 채 되지 못한 듯했다.
담비를 바라보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상급 영석 한 조각을 꺼내 담비의 입가로 가져갔다. 허나 담비는 영석을 본 척도 않고 한제만을 주시했다. 뭔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잠시 더 그렇게 쳐다보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한제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영석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군. 혹시 내 몸에서 풍기는 고대 신의 기운 때문에 내게 왔던 건 아닐까?’
사실 한제의 몸에서 고대 신의 기운이 풍기긴 하지만 그 위력은 너무도 약했다. 그마저도 본체와 합체했다가 다시 분리하면서 남아 있던 기운에 불과했기 때문에 점점 옅어져갔다. 그래서인지 그 기운을 따라 한제에게 접근했던 성흔 담비는 실망한 듯했다.
고대 신이 사라진 지금, 녀석은 그 기운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끌렸던 모양이다.
한제는 영석을 거두더니 이번에는 선옥을 한 조각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보라색 빛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한제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을 때 선옥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한제는 장난스레 웃으며 다시 선옥 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온 정신을 집중했다.
번쩍!
그야말로 빛과 같은 속도였다. 어느새 성흔 담비는 다시 한제의 손에 들려 있던 선옥을 물고 사라져 손 장로의 어깨에 올라 있었다. 선옥을 와삭와삭 씹어 먹으면서 녀석은 수시로 한제를 특히 한제의 저물대를 힐끔거렸다.
손 장로는 뭔가를 눈치챘는지 한제를 향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천운자는 구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설교를 시작했다.
“무릇 술법이란 너무나도 복잡하고 현묘하여 나 역시 모든 것을 꿰뚫는 깨달음은 얻지 못했네. 허나 그 신통력의 본원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깨달았지. 수도(修道). 여기서 수란 무엇이며 도란 무엇인가? 응기, 축기, 결단, 원영, 화신, 영변, 문정. 나는 여기까지의 단계가 곧 수도의 첫 단계라고 본다네!”
한제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천운자를 살폈다. 여태까지 수련해오면서 그가 파악한 공법은 비교적 복잡하고 난잡한 것이었기에 언제나 높은 수준의 깊은 깨달음이 부족했다.
“문정기 후로는 음양이의(陰陽二意)와 쇄열삼경(碎涅三境)이 이어지지. 이 단계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도우도 있을 게야. 여기까지가 곧 수도의 두 번째 단계라네!”
천운자가 말을 잠시 멈추자 주위는 적막에 잠겼다. 모두가 그의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일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사람
이윽고 천운자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이 두 번째 단계가 수와 도 사이의 과도기라고 보네. 수에서 도로 넘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인 것이지! 허나 안타깝게도 나 역시 여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네. 어둠 속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모든 깨달음을 방해하는 듯한 느낌일세.”
천운자의 목소리는 느릿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수련 연맹에서 온 손 장로 역시 말없이 앉아 듣고 있었으나 크게 관심을 두는 모습은 아니었다.
“천운자 선배님, 그렇다면 수도의 세 번째 단계는 무엇입니까?”
수련자들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일어나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게서는 흉악한 기운이 넘쳐흘렀고 그 주위로 1백 척 안에는 어떤 수련자도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간에서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비스듬한 형태의 흉측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천운자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 번째 단계는 진정한 도로 접어드는 단계로 수만 년 동안 수련하는 것은 오직 그 도를 위해서일세. 도를 달성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지만 어떻게 그 단계에 이를 수 있는지는 나 역시 알지 못하네. 나의 도는 천명의 도로 하늘이 이끈다면 자연히 달성하게 되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그저 한 줌 흙이 되어 흩어지고 말겠지.”
주위는 다시금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한제는 천운자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수도의 세 단계 중 아직 첫 번째 단계조차 완수하지 못했어. 앞으로의 길은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험하겠구나. 수련이란 본래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던 말은 과연 틀리지 않았어. 천운자조차도 세 번째 단계에 대해 모르다니, 이 세상에 그런 단계가 정말 존재하기는 할까?’
마침 그때 한제는 천운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천운자는 마치 한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제야, 궁금한 것이라도 있느냐?”
천운자의 말에 주위 모든 수련자들의 시선, 특히 여섯 계열 제자들의 눈이 한제에게로 쏠렸다. 이런 자리에서 천운자에게 직접 지목되는 것은 큰 영광인 것이다.
한제는 침착하게 천운자를 향해 포권을 한 뒤 공손하게 말했다.
“스승님,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천운자는 미소를 지은 채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아라.”
“수도라는 단어에 관해 질문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선(修仙), 수진(修眞), 수도(修道) 라는 세 단어 중 스승님께서는 오직 수도에 관해서만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수선과 수진은 무엇입니까?”
천운자는 대견하다는 듯 빙긋 웃어 보였다. 수련 연맹에서 온 손 장로 역시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제를 살폈다.
“수선이라는 것은 원고 시대에 사용했던 것이며 당시의 선계는 수련자들의 성지였다. 그러나 신선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 수선이라는 단어는 더는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진의 진은 무엇인가?”
천운자는 잠시 말을 끊더니 한제에게 향했던 시선으로 주위의 수련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진은 모든 것의 진상이라는 뜻이다. 선계가 사라진 뒤 수련자들은 돌아갈 집을 잃은 것처럼 방랑했다. 수선이라는 단어가 힘을 잃은 이후 진상이야말로 모든 수련자들의 근본이 됐다. 이에 수진이라는 단어는 진정한 수련을 의미하게 됐다. 그러나 진상조차도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도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도는 천도가 아니다.”
여기까지 말을 한 그가 돌연 우뚝 멈춰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수련자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수련자들이 수련해야 하는 것이 천도가 아니라니… 천운자의 말은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또한 이는 이전에 천운자가 한 말과 모순됐기에 수련자들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몇몇 수준 높은 수련자들 역시 난감해하는 기색이었다. 천운자의 말은 그들이 듣기에도 당황스러웠다. 허나 때로는 내뱉을 수 없는 말도 있게 마련이다. 공연히 사달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 장로 역시 곤란한 듯 마른기침을 내뱉더니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천운자는 한참 후에야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수련해야 할 도는 길이다. 세 번째 단계가 무엇인지 모르니 그 단계가 무엇인지 찾는 길 말이다. 이것이 바로 수도라는 단어에서 도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한제야, 이제 이해되느냐?”
한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정말로 세 번째 단계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천운자는 아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3만 년 전, 나 또한 너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 단계의 존재를 믿지 못했다. ‘그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