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99
손 장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 대번에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천운자와 달리 그의 눈빛에는 아련함보다 두려움이 컸다.
“천운자 선배님, 그 사람이 누굽니까?”
“천운자 도우, 좀 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겐가?”
“천운자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질문은 모두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한 것이었다.
“됐네, 천운자. 그만하게!”
손 장로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허나 천운자는 그런 손 장로를 힐긋 보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무척 기뻤지. 벽에 가로막힌 듯해 정신도 차리지 못하던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났으니 말이야. 그 사람은 이미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섰을 게야.”
주위는 다시 고요했다. 모두 천운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손 장로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자네의 성미는 그대로군. 계속해보게!”
천운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수련 연맹은 오랜 시간 이어져오는 동안 단 한 번 쓴맛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사람 때문이었지. 사실 별일은 아니었어. 그 사람은 내가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선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잠깐 나타났다가 곧장 사라져버려 그 후로는 소식조차 알 수가 없게 됐지.”
그 자리에 있던 수련자 대부분의 마음에는 모두 ‘그 사람’에 쏠렸다. 허나 천운자는 더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설교를 이어갔다.
설교는 사흘 후에야 끝이 났다.
한제는 조용히 설교를 들었고 이를 통해 얼마간의 깨달음을 얻게 됐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러 와준 그대들에게 선물 하나를 주지. 중급 선술을 한 번 부려보겠네. 깨달음은 각자의 몫이지.”
천운자의 말에 모든 수련자가 정신을 집중했다. 몇몇 수련자는 천운자와 수준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그들 또한 집중했다. 선술은 굉장히 희귀한 존재였으며 중급 선술은 그 중에서도 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천운자의 생일 축하연에 이렇게 많은 이가 온 것은 그 명성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도우들과 연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렇게 설교를 마친 뒤 진행되는 선술 시연이었다.
한제는 눈도 깜짝 않고 집중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선술을 본 적 없는 그로서는 선술이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천운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때…
콰르릉!
갑자기 하늘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수많은 검광이 마치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규모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검광들이 일제히 휙휙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갈랐고 콰르릉 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한제는 이러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선계에서 보탑에 잠들어 있던 여인이 깨어나 우(雨)의 선검에 들어 있는 검혼들을 소환했을 때, 선계는 이렇게 검광으로 뒤덮인 적이 있었다.
천운자는 침착한 얼굴로 하늘 끝을 쳐다보았다.
그 무렵, 수많은 검광에서 피어오른 서늘한 검기들이 예리한 칼날처럼 몰려들었다. 이에 수준이 높지 않은 수련자들은 감히 그 서늘한 검기를 가로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재빨리 비켜섰다. 그로 인해 제법 넓은 길이 하나 생겨났다.
“천운자 자네의 생일에 내가 어찌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포악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돌연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멀리서 질주하듯 달려든 비검이 빠른 속도로 흔들거리며 갈라졌고 그 뒤로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의 길게 늘어진 흰 눈썹이 하늘로 솟구쳤다.
노인은 매우 여위었음에도 엄청난 위엄이 느껴졌다. 특히 그의 등 뒤에 매인 네 자루 검의 허상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의 발아래를 떠받친 뱀 모양 보검이 하늘을 뒤덮을 듯한 흉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 보검에서는 짙은 피 냄새가 나는 듯해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려왔다.
수많은 수련자가 창백하게 질려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그 뱀 모양의 보검을 알아보았다. 선계에서 검존 능천후가 빼앗아갔던 우의 이검(二劍)이었다.
“검존 능천후다.”
수련자 중 누군가가 놀라 소리쳤다.
천운성에서 개인의 수준으로든 문파의 실력으로든 천운종에 버금가는 대나검종의 종주, 검존 능천후의 등장이었다.
능천후의 여윈 얼굴에는 음침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무수히 많은 비검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채운 채 웅웅 우는 소리를 냈다.
“제자들아, 나와서 천운자 선배님을 뵙도록 하라!”
능천후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수많은 비검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뒤이어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나면서 비검들이 안개로 변했다. 눈 깜짝할 사이 능천후의 뒤쪽은 푸른 안개로 가득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그 푸른 안개 속에서 수많은 냉랭한 눈빛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푸른 안개가 완전히 흩어졌을 때, 능천후의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채 등에 칼집을 맨 수많은 제자가 각자의 비검을 밟고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번개처럼 번득이는 눈으로 천운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1만 명은 넘어 보이는 수였다.
“하하, 적지 않은 친우들도 다 와있구먼. 응? 손 장로도 와 있고!”
능천후와 눈이 마주치자 손 장로는 피식 웃었다.
“천운자의 생일 축하연에 내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능천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운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천운자 내가 반갑지 않은가?”
천운자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마침 잘 왔네. 자네를 선술 시연 대상으로 삼아 이곳에 있는 여러 도우들에게 보이려 하는데 괜찮겠나?”
“크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군!”
천운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오른손을 들어 올린 뒤 결인을 그렸다.
“도우들, 내가 오늘 보여줄 선술은 중급 선술로 어느 폐허가 된 수련성에서 뜻하지 않게 얻은 인선술(引仙術)이라는 술법이네. 난 이 술법을 연구하다가 당시 선계 사람이 사용했던 것임을 알아냈지. 이 술법은 막대한 신통력을 발휘하니 다들 잘 보게!”
능천후는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냉랭한 눈으로 천운자를 주시했다.
결인을 그린 천운자의 오른손에 붉은 빛 한 줄기가 응집됐다. 이어서 그가 왼손을 들어 결인을 그리자 그 붉은 빛은 순식간에 더욱 밝아졌다.
어느 순간, 천운자가 두 손을 들어 허공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손에 응집되어 있던 붉은 빛은 그의 손을 떠나 곧장 하늘 끄트머리로 날아갔다.
“중급 인선술!”
천운자의 목소리는 마치 허공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우르릉!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려오더니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꽈릉!
뒤이어 붉은 하늘에서 구름이 끓어오르더니 성난 용의 포효와 같은 벼락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번개가 구름을 뚫고 수만 마리의 은빛 뱀처럼 사방으로 미친 듯이 확산됐다.
“맙소사!”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선술(引仙術)
하늘은 마치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같았다. 막대한 위압감이 부지불식간에 엄습했다.
이 엄청난 위압감 아래, 수련자 대부분은 창백해진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한제 체내의 선력이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마치 하늘 위에 존재하는 기이한 힘에 이끌린 듯 그는 선력을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유일하게 그의 왼쪽 팔에 머물고 있는, 세 번의 회전을 거친 금선력만이 꼼짝도 않고 안정적으로 그 안에 깃들어 있었다.
한제는 곧장 금선력을 방출해 온몸을 맴돌게 했다. 그리고 최대한 그 금선력이 체내에 존재하는 고유의 선력과 접촉하지 않게 했다.
금선력이 몸을 한 바퀴 돌았을 때, 떨리던 한제의 몸은 천천히 안정됐다. 여전히 얼굴이 좀 창백하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한편 백미는 한참을 버티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착지해 지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계 제자 중에는 한제와 넷째 사저만이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덤덤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여섯 종파에서도 비교적 수준이 높은 몇몇을 제외한 일반 제자들은 대부분 하늘에서 내려왔다. 다만 그 여섯 계열의 사조(師祖) 중 땅으로 내려간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한제의 안색은 체내에 금선력을 세 번 맴돌게 한 뒤에야 원래 상태로 회복됐다. 넷째 사저는 몸을 돌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한제를 한 번 훑어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천운자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능천후를 가리켰다. 한데 그 손은 갑자기 움직이더니 능천후의 뒤에 있는 제자들에게로 향했다.
“어딜!”
능천후의 얼굴에 분노의 기운이 스치는 듯하더니 어느새 몸을 훌쩍 날려 앞으로 나섰다. 바로 그때, 천운자는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외쳤다.
“인도(印度)!”
그 말에 하늘의 구름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고 하늘은 무형의 손에 의해 찢긴 듯 거대한 구멍을 드러냈다. 일곱 빛깔 광채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능천후의 뒤에 있던 수만 명의 제자들을 완벽하게 뒤덮었다.
대나검종 제자들의 표정이 아득하게 변하더니 그들의 몸은 일곱 빛깔 광채를 따라 저절로 천천히 떠올랐다.
“하앗!”
능천후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몸을 훌쩍 날렸다. 그의 발을 받치고 있던 뱀 모양 비검이 번개처럼 날아 곧장 하늘을 갈랐다.
천운자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뱀 모양 선검의 속도가 대폭 떨어지더니 격렬하게 몸부림치면서 거대한 웅웅 소리를 냈다.
능천후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하더니 그의 미간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번쩍이며 미간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이르더니 거대한 기린 마수로 변했다.
“크오오!”
상당히 위풍당당해 보이는 기린 마수는 네 발로 땅을 딛고 서서는 천운자를 노려보며 포효하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그때, 한제의 원신에 봉인된 존혼번 안에서 그 기린의 포효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존혼번에서 터져 나온 포효는 몸 밖으로 터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혼번을 뚫고 한제의 원신에 울려 퍼졌다. 그때, 천운자를 향해 달려들던 기린 마수가 우뚝 멈추더니 거대한 머리를 홱 돌리곤 흉악한 한 쌍의 눈을 번득이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훑어보았다.
하지만 한제는 재빨리 존혼번의 흔적을 지워둔 상태였기에 능천후의 기린 마수는 그 포효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다.
능천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린 마수는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고 뱀 모양 선검은 천운자에 의해 허공에 붙들려 있었다.
일곱 빛깔 광채가 하늘에서부터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고 뒤이어 기이한 환상들이 하늘에 나타났다. 특히 그 중앙에서는 한 사람이 금색 옷을 입은 채 하늘을 뒤덮을 듯한 선기(仙氣)를 풍겼다.
허공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수만 명의 대나검종 제자들에게로 향했다. 입도 열지 않았지만 위엄이 잔뜩 어린 소리가 하늘에서 느릿하게 울려 퍼졌다. 기이하게도 계속해서 바뀌는 듯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