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
“너 미쳤냐? 본좌가 조금만 늦었어도 넌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게다.”
그러자 한제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그 자를 죽일 기회는 그때뿐이었어요. 만약 그 자가 떠나도록 뒀다면 앞으로 더 큰 골칫거리가 됐을 거예요. 그러니 도박을 해볼 수밖에… 그리고 그 자도 영력을 거의 소진한 상황이라 그 거대한 비검을 움직이는 속도가 내 비검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사도환은 한참 침묵했다. 한제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합격이다. 그런 마음 상태라면 신선계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게야.”
사도환의 목소리에서 방금까지만 해도 있었던 건방진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한제에게 처음으로 존중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사도환은 만약 자신이 그 상황이었다면 그런 대범한 도박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탈기(奪基) (4)
한제는 말없이 등력을 감싼 얼음 조각을 들여다보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자로 탈기법을 행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사도환이 약간 기뻐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당연하지. 게다가 그 녀석은 축기에 이른 녀석이니 그 녀석을 제물로 삼으면 축기에 이르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게다. 그리고 그 녀석이 가진 영기의 뿌리를 차지하게 되면 네 타고난 자질도 변하게 될 게야. 이 녀석이 저 나이에 저런 실력을 보였다는 건 타고난 자질이 엄청날 테니까. 도박으로 얻어낸 결과치고는 아주 훌륭하구나. 하하!”
말을 마친 사도환은 탈기법의 구결과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었다.
설명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벌려 녹색 비검을 토해낸 뒤 오른손을 흔들었다. 작은 비검은 곧장 옆에 있던 높이 솟은 나무를 찔러 커다란 구멍을 낸 후, 그 구멍으로 한제가 등력이 든 얼음조각을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녹색 비검이 그의 주위에서 맴돌았다.
나무 구멍은 좁고 축축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조롱박에 든 물을 이마의 상처에 부은 그는 정신을 집중한 채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았다.
다음 날 아침,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영기를 토해냈다. 영기는 안개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결인을 해 파란색 빛을 뿜어냈다.
푸른색 빛은 서서히 안개로 스며들어 흩어졌다. 영기가 깃든 안개는 끓어오르는 듯 소용돌이치며 기이하게 축소되었다가 다시 팽창했다.
한제는 끊임없이 푸른빛을 뿜어냈고 안개의 영기는 점차 짙어지면서 수축과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어 한제는 오른손을 휘저어 등력을 감싼 얼음 조각을 공중으로 띄웠다. 한제의 가슴팍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는 재빨리 등력이 든 얼음을 녹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푸른색 얼음 결정이 사라졌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안개 형태의 연기를 통제했다. 그 안개 형태 영기는 등력의 얼굴에 있는 일곱 개 구멍으로 스며들어갔다.
등력의 몸에서는 급격한 경련이 일어났다. 두 눈을 감고 고통에 찬 표정을 짓던 그의 온몸은 안개 형태의 영기로 채워졌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한제는 검지를 깨물어 피를 낸 후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허공에 기괴한 붉은색의 부호가 나타나더니. 한제의 오른손을 따라 곧장 등력의 가슴팍에 찍혔다.
등력의 몸이 덜덜 소리를 낼 정도로 격렬하게 떨렸다. 손발이 경련을 일으켰고 입과 코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하지만 흐른 피는 떨어지지 않고 둥실 떠올라 한 데 모였다.
이어 등력의 몸에서 쟁쟁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그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고 그와 동시에 드러난 그의 모든 근육이 기이한 붉은색을 띄었다. 그러더니 한 방울씩 선혈이 똑똑 소리를 내며 피부를 통해 분출되었다.
한제의 얼굴은 한층 진지해졌다. 그는 눈도 깜짝 않고 다시 허공에 피로 부호를 그려낸 뒤 그것을 등력의 가슴팍에 찍어냈다. 그러고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는 멈추지 않고 다시 안개 형태의 영기를 뱉어낸 뒤 몇 갈래의 푸른빛을 뿜었다. 그 안개 형태의 영기는 다시 안면의 일곱 구멍을 통해 등력의 체내에 스르르 스며들었다.
★ ★ ★
등력이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빛이라곤 없는 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이를 악문 상태였지만 입술은 달달 떨렸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복잡한 부호를 하나 더 그려낸 뒤 손가락 끝을 깨물어 피를 흩뿌렸다. 피 묻은 부호는 붉은색 빛을 번쩍이며 등력의 이마에 찍혔다.
등력의 온몸이 이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모든 근육이 기이하게 꿈틀거렸고 몸 곳곳이 미친 듯이 가슴팍을 향해 모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력의 몸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말라갔고 그의 모든 근육과 경맥은 가슴팍으로 응집되어 거대한 공 모양으로 뭉쳐졌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다시 법결을 그었다. 등력의 살로 이루어진 공은 쾅 소리를 내며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등력의 뼈와 가죽은 완전히 들러붙어 마치 해골과 같은 몰골이 됐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영기를 뱉어냈다. 이 영기가 근육과 경맥으로 이루어진 공으로 스며들자 그 공 모양의 살덩어리는 빠르게 수축했다. 한참 뒤, 그 살덩어리는 핏빛의 작은 구슬이 됐다.
완전히 지친 한제는 조롱박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들이킨후, 눈을 뜨고 등력의 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쾅 하는 작은 폭발음과 함께 등력의 뼈가 조각조각 부러지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또 하나의 구슬을 이루었다.
피와 살, 뼈로 이루어진 주먹만 한 세 개의 구슬은 오묘한 광채를 번득였다.
“탈기법을 진행하려면 제물의 피, 살, 뼈, 혼,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제물이 죽어서는 안 된다니, 굉장히 잔인한 작업이야.”
한제가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게 뭐 어때서? 마도에 몸담은 사람들은 심지어 탈단법(奪丹法)까지 썼는데? 그것이야말로 잔인한 작업이지.
제물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수명까지 대가로 바쳐야 하지. 그 성공률은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사도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대답 대신 법결을 연달아 그으며 주문을 외웠고 그러자 잘게 다진 고기처럼 변한 등력의 몸에서 흰색 기체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체는 점점 짙어지더니 작은 사람의 모습이 됐다. 그리고 그 모습은 등력과 똑같았다.
그 작은 사람의 눈빛은 아득했고 온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바람 한 번에 흩어져버릴 것처럼 나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멍한 표정은 점차 사라져갔다. 그는 원한이 어린 눈빛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고함을 마구 내질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제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오른손을 휘저어 붉은빛을 내뿜었다. 그 작은 사람은 붉은빛이 두려운 듯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하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는 듯 3척 너머로는 달아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붉은빛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제가 오른손을 들자 그 붉은빛은 마치 밧줄처럼 등력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이어서 그 붉은빛이 움츠러드는가 싶더니 천천히 바깥쪽을 향해 당겨졌다.
한제는 혼을 뽑아내는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혼백을 완벽한 형태로 3척의 범위 바깥으로 끌어내야만 다음 단계인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상대의 뿌리로 자신의 타고난 자질을 개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아진 등력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빛이 걸렸다. 붉은빛이 조금씩 바깥으로 당겨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 정도가 3척 범위 바깥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리고 그 순간, 등력의 몸에서 노란 빛이 번쩍이더니 붉은색 빛이 기척도 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등력은 곧장 3척의 범위 안으로 돌아갔다. 그의 몸에서는 노란색 빛이 계속해서 번쩍였고 흐릿했던 그의 몸도 점점 형태를 갖춰가듯 또렷해졌다.
한제는 그늘진 얼굴로 작은 등력을 노려보며 오른손을 휘저었다. 다시 그를 끌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등력이 두려운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날 죽인다면 나의 증조부께서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은 원영기에 이른 고수야. 네가 날 죽이면 너 역시 죽게 될 거라고!”
한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영기를 토해내며 두 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그었다. 농축된 영기는 점점 하나의 얇은 줄 모양을 갖췄다.
등력의 얼굴에 걸린 두려운 빛은 더욱 커졌다.
“나의 증조부는 이미 내가 위험에 봉착한 것을 알고 계신다. 당장 널 찾아내실 거야. 너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제가 왼손을 휘둘렀다. 얇은 선이 등력을 붙잡고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등력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증조부님, 살려주세요!”
그의 몸에서 노란색 빛이 급격하게 번쩍였다. 어떻게 해서든 한제에게 저항을 하려는 듯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한제는 조용히 조롱박을 꺼냈다. 조롱박 안의 액체가 영기로 이루어진 얇은 선에 스며들자 그 선은 손가락만 한 굵기가 되어 등력을 더욱 매섭게 졸랐다. 그리고 3척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간, 등력의 몸에서 번쩍이던 노란색 빛은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안개가 되어버린 그 노란색 빛은 묘하게 피어오르면서 흐릿한 누군가의 모습을 이루었다. 그 몸은 안개 속에 휩싸여 있어 자세히 살필 수가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도우여, 말로 하게.”
한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도환이 얼른 설명해주었다.
“걱정할 것 없다. 원영기 고수가 허상의 화신으로 나타난 거야. 허상의 화신은 공격을 하기는커녕, 널 보지도 못하고 네가 있는 곳을 알 수도 없어. 그저 네게 말을 할 수 있을 뿐. 게다가 거리에도 제한이 있지.
흐릿한 걸 보니 저 자는 여기서 꽤 멀리 있는 모양이구나. 어쨌든 저 자가 나타났다는 건 등력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거겠지. 줄곧 그 녀석의 혼에 신식을 남겨둔 거니까.”
한제는 말없이 영기의 밧줄에 매여 있는 등력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등력은 더 이상 발버둥치지 못하고 작게 경련하더니 결국 보라색 빛의 구슬로 변했다.
등력의 증조부가 만들어낸 허상의 화신은 등력의 영혼이 변한 것을 알아차린 듯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런데 다음 말을 들은 순간, 한제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감히 등가성의 사람을 죽이다니! 네 놈은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등력의 이름을 듣고 설마 했는데 그는 정말로 등가성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등가성의 명성으로 미루어, 한제는 방금 어마어마한 적을 만든 꼴이었다.
비록 먼저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였으니 살려둘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그 유명한 등가성 사람이었다니…
“나 등화원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네 녀석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나를 만나는 날 반드시…”
한제는 영기를 담은 비검으로 허공을 그었고 그러자 노란색 빛은 사그라졌다. 허나 한제는 가슴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답답해졌다.
★ ★ ★
어느 산의 봉우리. 검은색 옷차림의 노인은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는 눈을 번득이며 주먹을 쥔 채 중얼거렸다.
“력아, 이 할애비가 맹세하마. 황천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검은색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가 손을 휘젓자 그 검은 피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암적색의 파문이 넘실거리다가 무수히 많은 부호들이 되어 사방을 맴돌았다.
뒤이어 온몸에서 보라색 빛을 번쩍이는 작은 사람이 노인의 정수리에서 나와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주, 기(記)!”
그 작은 사람은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두 손으로 결인을 한 그는 신식으로 방방곡곡을 살폈다. 각 부호들은 신식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저주, 승(承)!”
이곳저곳을 살피던 그의 원영에 맥이 빠졌다. 엄청난 원영의 기운을 소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식으로 스며들어간 부호들은 모두 기이한 빛을 번쩍이며 하나둘 하늘로 날아올라 복잡한 진을 이루었다. 이 진은 넓게 퍼져나갔고 그 순간 구름과 바람이 바뀌면서 벼락이 내리쳤다.
“저주, 전(轉)!”
하늘이 크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핏빛 번개들이 진 가운데에서 나타나더니 곧 하나로 연결되면서 기이한 마름모 모양을 이루었다.
“저주, 합(合)!”
작은 사람의 마지막 소리에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시 원영의 기운을 대량으로 토해냈다. 하늘에 떠오른 커다란 진이 점점 빠르게 돌아가면서 붉은색 번개도 점점 더 많아졌으며, 그것들이 이루는 마름모 형태가 점점 밝아졌다. 뒤이어 진의 범위가 조금씩 축소되더니, 마침내 붉은색 번개와 하나가 되어 그 마름모 모양의 도안에 응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