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7
“너는 천운자가 이곳으로 보낸 여섯 번째 사람이다. 나는 일곱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천운자와 해둔 약속이 있는 만큼 네게 가르쳐야 한다. 더 망설인다면 어쩔 수 없다만!”
한제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제 스승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회색 옷의 천운자는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회색 기운 한 줄기가 옥패로 변해 허공에 떠올랐다가 한제 쪽으로 날아왔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옥패가 사라진 곳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이 옥패에 닿은 순간, 사방의 일곱 빛깔 광채가 변하기 시작했고 한제는 잠시 어질했다. 그의 시야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산꼭대기의 보탑 아래로 돌아와 있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선 천운자가 기이한 눈빛으로 한제의 손에 들린 옥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염을 쓰다듬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살육 선결이라… 훌륭하군!”
한제는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천운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그 회색 옷을 입은 자는 내가 어린 시절 만들어낸 두 번째 원신이니라.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 어쩔 수 없이 분리해버린 존재지. 녀석이 수련한 살육 선결은 네가 요구한 생존의 도에 가장 부합하는 술법이기도 하다.”
한제는 말없이 그 옥패를 챙겨 넣었다. 천운자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자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한 줄기 보라색 빛이 나타나 형태가 바뀌더니 보라색 반지로 변했다. 천운자는 그것을 한제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반지는 나의 일곱 가지 광채 중 보라색 빛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문정기 후기 수련자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서도 너를 한두 차례는 지켜줄 게다. 허나 문파의 규칙을 한 번 어길 경우 위력을 반감시킬 것이고 두 번 어길 시 법보를 제거해버릴 것이다. 네 손에 죽은 둘째는 문파의 규칙을 한 번 어긴 적이 있어 법보의 위력이 반감되었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네게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게다. 먼저 공격한 것은 녀석이었으니 그 문제로 너를 처벌하지는 않겠다. 허나 두번의 용서는 없다. 알겠느냐?”
한제는 반지를 받아 들어 저물대에 챙겨 넣은 뒤 공손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천운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소매를 휘날리며 말했다.
“금지된 술법도 얻었고 법보도 받았으니 이제 돌아가거라!”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보탑 쪽으로 걸어갔다.
한제는 그런 천운자의 등을 바라보며 불쑥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는 하산하여 수련하고 싶습니다.”
천운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이 천운자의 제자로서 하산하여 수련을 하는 방법은 사자가 되는 것뿐이다. 나의 영패를 가지고 적종(赤宗)의 성무원(星務苑)으로 가서 6성 이하 수련국의 사자로 부임하거라. 하지만 3개월 뒤 홍성일(紅星日)의 동해 바깥쪽에 있는 독산곶에는 늦지 않게 와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천운자는 보탑 안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하얀색 영패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나 한제의 손에 떨어졌고 부드러운 힘 한 줄기가 보탑으로부터 확산되었다. 한제는 그 힘에 떠밀리듯 곧장 산봉우리 위로 날아올랐다.
1백 리 밖으로 나아간 한제는 허공에서 고개를 돌려 기이한 눈빛으로 흑백의 세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빠른 속도로 길을 재촉했다.
★ ★ ★
한제는 천운종 본부에서 나온 뒤 곧장 적종으로 향했다.
적종산 산봉우리에서는 붉은 빛의 고리들이 끊임없이 사방으로 확산되고 있어 마치 피바다 같았다.
한제가 적종 안에 내려선 순간,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라!”
한제는 두 말 않고 천운자에게서 받은 하얀색 영패를 앞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 영패를 따라 적종 안으로 들어갔다. 목소리의 주인공도 영패를 확인하고는 더 이상 한제를 가로막지 않았다.
한제가 적종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이 한 번 일렁이더니 붉은색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나타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계의 일곱째로군!”
잠시 후, 한제는 적종을 빠져나와 서쪽을 바라보았다.
“5성 수련국, 영악국(靈岳國)!”
천운성은 수련 연맹 휘하에 있는 7성 수련국으로 7성 수련국 중 가장 높은 곳에 가까웠다. 바로 천운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천운자는 1대 극존(極尊)이라 불리는 이로 수련 연맹 안에서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밉보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7성 수련성 중에는 수많은 6성 수련성을 포로로 가짐으로써 세력을 공고히 하는 곳도 있으나 천운성은 예외였다.
천운성 주위를 맴도는 다섯 개의 부성(副星)은 모두 6성 수련성으로 그 이름은 각각 천(天), 지(地), 인(人), 명(命), 운(運)이었다.
다섯 개의 부성과 주성(主星)인 천운성은 거대한 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진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양의 영석이 필요해 보통의 수련자들은 이용할 수가 없었다.
천운성 주위에는 다섯 개의 부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은 별도 있는데 그 별들에도 연결된 전송진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봉쇄되어 있었다.
★ ★ ★
천운성의 동쪽 끝에는 거대한 전송진이 하나 있다.
이곳은 천운종이 관리하는데 항시 누군가 주둔하며 지켰다. 그중 하나인 조사홍은 자신의 당번일을 맞아 진 밖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조사홍은 천운종 녹종(綠宗)의 제자로 7백 여 년 동안의 수련을 거쳐 화신기 중기에 이른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수준과 상황에 꽤나 만족했다. 천운종의 제자는 천운성 어딜 가도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사홍은 두 눈을 번쩍 뜬 채 긴 한숨을 내뱉었다.
“교대하려면 아직도 세 달이나 남았군. 종파로 돌아가면 몇 년 동안 폐관수련을 해서 최대한 빨리 화신기 후기에 이르러야지. 그렇게 되면 밖에서 수련하게 해달라고 할 거야. 배급받은 선옥을 가지고 수련에 집중하면 언젠가 영변기에 이를 날이 올지도 모르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조사홍의 눈에 흥분이 차올랐다.
“한데 안타깝게도 나는 운이 잘 따르지 않는단 말이지. 만약 시조 어르신의 사조(師祖)가 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휴, 문정기 수준의 강자가 되어 어느 작은 별에서 군림하며 사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이었는데⋯⋯.”
조사홍은 씁쓸하게 웃었다.
한데 동이 터올 무렵, 갑자기 멀찍이 떨어진 하늘 끄트머리에서 보라색 빛 한 줄기가 나타났다.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며 쉭 소리와 함께 날아든 빛은 눈 깜짝할 새 1만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조사홍은 순간 굳은 얼굴로 냉랭하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속도를 점차 늦추었고 덕분에 조사홍은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긴 머리를 심드렁하게 뒤쪽으로 묶어 올린 그는 보라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여유로운 얼굴로 걸음을 옮겨 눈 깜짝할 사이에 1백 척 앞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냉랭한 눈으로 조사홍을 바라보았다.
현연파(玄淵派)
조사홍의 눈빛은 그 자가 허리춤에 맨 보라색 영패에 닿았다. 그 영패에는 칠(七)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영패를 본 순간 조사홍은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말했다.
“녹종 제자 조사홍, 자계의 일곱 번째 사조를 뵙습니다.”
조사홍은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그는 자격이 없어 시조인 천운자의 생신 축하연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 연회에 참석했던 자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시조 어르신 천운자께서 새로이 받아들인 제자 자계의 일곱째 사조, 이한제였다.
그는 문파에 들어오자마자 자계를 시끌벅적하게 뒤집어 놓았고 심지어는 시조 어르신의 생신 축하연에서 자신의 둘째 사형을 잔인하게 죽여 버렸으며, 천운칠자의 봉호를 놓고 쟁탈전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또한 그는 영변기 중기에 불과한 수준으로 영변기 후기 수준인 자신의 넷째 사조에게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소문과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조사홍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러니 한제에게 두려움과 동시에 존경심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진을 활성화시켜라. 천운성을 떠날 것이다.”
한제는 덤덤하게 말하며 조사홍을 지나쳐 곧장 전송진으로 진입했다.
반경 10리에 걸쳐 있는 이 진에는 복잡한 문양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고 흘러넘칠 듯한 힘이 끊임없이 확산됐다. 멀리서 보면 마치 짙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 이리저리 교차된 수많은 고랑에서 형태 없는 기이한 힘이 흘렀다. 마치 원고 시대의 마수처럼 강력한 생기를 품고 있었다.
또한 이 진은 여태껏 한제가 봐온 모든 진을 합친 것보다도 복잡했다.
조사홍은 얼른 공손하게 답한 뒤 다급하게 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수많은 결인을 그려 한 줄기 푸른 빛을 전송진 위로 쏘아 보냈다.
콰르릉!
거대한 전송진이 떨리며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고 반경 10리의 복잡하게 얽힌 고랑에 흐르는 힘에서 어스름한 빛이 천천히 떠올랐다. 이어 이 빛은 천천히 밝아지면서 서로 연결되어 결국 거대한 하나의 부호가 되었다. 그 부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했다.
한제는 그 부호의 한가운데 섰다.
눈 깜짝할 사이, 그 거대한 부호는 눈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발했고 그 빛이 천지를 뒤덮은 순간 사방의 모든 것이 어스름해졌다.
조사홍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전송진이 활성화된 순간부터 두 눈을 감은 조사홍은 속으로 묵묵히 다섯을 센 뒤 눈을 떴다.
전송진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고 사방의 모든 것도 본래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남아 있는 어스름한 빛만이 반딧불처럼 천천히 떠올랐다가 진 안으로 녹아들었다.
조사홍은 부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텅 빈 진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계의 일곱째 사조가 무엇을 하러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야 나와 상관없지. 나야 그저 전심을 다해 수련해 화신기 후기에 이르는 데 집중해야지.”
조사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이어나갔다.
★ ★ ★
지성(地星)은 천운성 주위를 맴도는 다섯 부성 중 하나였다. 이 수련성은 밖에서 볼 때 황토색을 띠었고 어렴풋이 보이는 수많은 빛 고리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그 크기는 주작성과 비슷했다. 바다가 적고 대부분은 육지로 이루어진 별이었다.
현연파(玄淵派)는 이곳의 유일한 6성 수련국으로 그 자체로 하나의 나라였다. 그곳에는 수련자가 매우 많았는데 특히 그들의 선조인 현명의 수준은 이미 문정기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현연파의 전송진이 있는 깨끗한 공터에 현연파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전송진 밖에는 현연파의 소종주(少宗主) 허운산이 비취 부채를 든 채 간간히 다른 손바닥을 두드리며 한쪽에 얌전히 서 있었다.
사흘 전, 그는 천운종의 벗으로부터 자계의 사조 하나가 영악국의 사자 신분으로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