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8
원래대로라면 허운산에게 눈에 차지도 않을 법한 작은 일이었지만 이곳에 온다는 그 사람이 자종의 일곱째 사조, 즉 천운자가 새로이 받아들인 제자인 한제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이 동했다.
천운성 부성의 문파인 현연파는 천운자의 제자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었고 그들의 기호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천운칠자에게는 더욱 큰 관심이 쏠려 있었다.
한데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자에 대한 정보는 너무도 적었다. 게다가 현연파 입장에서 한제는 앞으로의 잠재력이 상당한 수련자였으므로 후일을 위해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편이 좋았다. 허운산이 직접 그를 맞이하러 나온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허운산 뒤로도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백발이 성성한 현연파의 장로들로 모두 막강한 수련자들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정오 무렵이 되어 작열하는 태양으로 날이 더워질 무렵, 돌연 전송진이 진동했다.
허운산은 미소를 머금은 채 부채를 접은 뒤 진을 바라보았다.
우르릉!
진의 진동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스름한 빛줄기들이 지면에서 솟아오르면서 거대한 허구의 문양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그 문양의 정중앙에서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 옷을 입은 그의 허리에 달린 보라색 영패에는 칠(七)자가 새겨져 있었다.
전송진에 떠오른 문양이 점점 흩어져 사라지면서 한제가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덤덤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곧 허운산에게 향했다.
허운산은 미소를 띤 채 앞으로 몇 걸음 나서며 포권을 했다.
“천운자 선배님의 제자 이한제 도우이십니까?”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권을 하며 답했다.
“제가 바로 이한제입니다. 그쪽은…?”
“허운산이라 합니다. 지성 현연파의 소종주이지요. 이 형께서 이곳에 온다 하여 접대하고자 찾아왔으니 부디 거절치 마십시오.”
허운산의 수준은 한제와 같은 영변기 중기였다.
“그렇다면 허 형께 신세 좀 지겠습니다.”
한제는 빙그레 웃었다.
그가 천운종을 떠난 것은 조용한 곳을 찾아 수련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천운종 안에서는 갈등이 많아 수련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찾아온 곳에서 다른 이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
허운산은 지성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한제를 위해 현연파 안의 조용한 거처도 안내해 주었다.
안내를 마친 허운산은 내일 다시 방문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안내받은 방은 상당히 우아하고 고요한 곳이었다. 한제는 창문을 열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창밖의 꽃밭에는 생기 가득한 꽃들이 경쟁하듯 활짝 피어있었다.
한제는 방문을 열고 나가 꽃밭을 천천히 거닐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비록 주작성을 떠나왔지만 탁삼은 두려운 존재야. 그는 고대 신의 땅에서 빠져나오면 곧장 나를 찾으려 할 것이다.’
한제의 표정이 굳어갔다. 탁삼에 관련된 일은 언제나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그를 괴롭혔다. 또한 그것 때문에라도 한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켜야만 했다. 그것만이 살아남을 길이었다.
꽃밭에 피어 있는 신비로운 꽃들을 바라보며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석주는 금속 속성만 채우면 완벽해진다. 사도환은 다섯 개 속성을 완벽히 채우기만 하면 석주는 주인을 알아볼 수 있고 그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했어. 석주가 대체 어떤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당시 수련 연맹에서 그런 쟁탈전이 벌어졌을까? 그나저나… 주작성은 지금쯤 어떤 상태일지⋯⋯.’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허공을 꿰뚫고 먼 거리를 뛰어넘어 아득히 멀리 있는 주작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현연파에서 이틀 동안 머문 뒤, 허운산은 한제를 5성 수련국 영악국으로 안내했다.
현연파에 머물렀던 이틀 동안 허운산은 한제를 극진히 대접했고 자주 찾아와 한제와 어울렸다.
일찍이 천운종에서 자계의 사조를 사자로 부임시킨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던 영악국의 각 종파에서는 이 사자를 맞이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영악국 변경에서 비행 중이던 허운산은 빙그레 웃으며 한제에게 말했다.
“이 형, 이곳이 바로 5성 수련국 영악국입니다. 큰 나라는 아니고 속한 종파도 네 개뿐이지만 영기가 깃든 것들이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우리 지성에서 꽤나 이름이 나 있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운산과 영악국 안을 질주했다.
★ ★ ★
영악국의 중심지에는 거대한 통천탑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은 역대 사자들의 거주지였다.
이 통천탑 밖에는 빽빽하게 모인 수백 명의 수련자가 얌전히 서서 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두 갈래의 붉은 빛이 저 하늘 끝에서부터 빠르게 접근해왔다. 통천탑 아래에 모인 수련자들은 분분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갈래의 붉은 빛이 탑에 이르자 모여 있던 수많은 수련자가 동시에 입을 모아 공손하게 말했다.
“5성 수련국 영악국의 수련자 일동, 사자 어르신과 현연파 소종주님을 뵙습니다.”
허운산은 손을 들어 간단하게 답한 후 한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형,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술이나 한잔하도록 하지요!”
말을 마친 허운산은 몸을 훌쩍 날려 먼 곳으로 날아갔다.
허운산이 떠나고 허공에 혼자 남은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여 있는 수백 명의 수련자 중 영변기 후기 절정에 이른 10여 명이 가장 수준이 높은 자들이었고 나머지 수련자들의 수준은 그보다 조금 낮았다.
그들 중 한제의 시선을 끄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상당히 늙은 자였으나 그 수준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중 가장 높아 이미 문정기에 반 발짝 정도 들여놓은 상태였다.
한제는 천천히 보탑 아래에 내려섰다. 그리고 눈앞의 수련자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사자로 부임했으나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평소 하던 대로 생활하면 된다. 단, 오늘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1만 리 안에는 그 어떤 이의 접근도 금한다. 나는 폐관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그 순간, 수련자들의 표정이 멍해졌으나, 그들은 별다른 항의나 이의 없이 공손히 대답한 뒤 뿔뿔이 흩어졌다.
가장 수준이 높운 노인 또한 한제를 한참 살피다가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적지 않은 수련자가 얼른 그 뒤를 따랐고 삽시간에 통천탑 주변은 텅 비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곧장 통천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가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리자 금번이 나타났다. 한제가 그것을 휘두르자 수많은 검은 기운이 깃발 안에서 튀어나와 통천탑을 중심으로 반경 1만 리를 뒤덮었다.
순간 이 반경 1만 리는 검은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잔뜩 음침해졌다.
작업을 마친 한제는 이어서 미간을 두드려 30척 길이의 존혼번을 토해냈다. 이 혼번 안에 남은 혼백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주요 혼백들은 약간 남아있는 상태였다.
한제는 존혼번을 휘둘러 기린 마수의 혼백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혼백들을 방출했고 이 주요 혼백들은 좀 전에 퍼져 나간 검은 안개 형태의 금제에 녹아들어 방범을 맡았다.
여기까지 마친 한제는 옥패를 하나 꺼냈다. 이는 회색 옷을 입은 천운자가 준, 살육 선결이 들어 있는 옥패였다.
“살육 선결이라⋯⋯.”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신식으로 얼른 그 옥패를 훑었다.
지마북계(地魔北界)
눈 깜짝할 사이 한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영악국의 각 종파에서는 이 새로 온 사자에 대해 여전히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전까지 부임했던 사자들은 모두 영석이나 선옥을 대놓고 요구했고 괜한 난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종파에서는 웬만하면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관례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천운자의 제자라는 이번 사자는 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고 반경 1만 리 안은 검은 안개로 뒤덮여 그 어떤 사람도 그 쪽으로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몇몇 영변기 수련자는 그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고 싶어 하기도 했으나, 검은 안개로부터 1천 척 이내에도 접근하지 못한 채 난색을 표하며 돌아서곤 했다.
이에 영악국 수련자들에게 이 새로운 사자는 점점 더 비밀스러운 존재가 되어갔다.
이 무렵, 한제는 통천탑 안에서 줄곧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한제는 모든 것을 오롯이 회색 옥패에 집중시킨 상태였다.
이 옥패에 기록된 살육 선결은 사실 생(生)의 낙인이었다. 이 낙인에는 기이한 신통력이 포함되어 있어 깨닫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한제는 선천적인 자질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기에 천천히 고민하고 자세히 살펴보면서 조금씩 파악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보름이 흘렀다. 그 보름 동안에도 새로운 사자에 대한 영악국 수련자들의 호기심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이런 호기심의 주요 원인은 통천탑을 중심으로 반경 1만 리를 뒤덮은 검은 안개였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죽은 듯 고요했던 안개에서는 지난 보름 동안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다. 또한 중간중간 하늘을 뒤흔들 듯 우렁찬 비명이 들리기도 했다.
문정기에 반 발짝 정도 진입한 수련자이자 영악국의 최고 고수인 노인은 며칠 뒤 마침내 통천탑으로 향했다.
허나 사흘 뒤 돌아온 노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고 두 눈에는 두려움과 놀람이 어려 있었다. 돌아온 그는 각 종파 제자들에게 절대 통천탑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며 혹시라도 접근할 경우 반역 행위로 처리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렇게 해서 통천탑을 중심으로 반경 1만 리 범위는 영악국이 지정한 금지(禁地)가 됐다.
한 달 반 동안 한제는 줄곧 살육 선결을 연구했다. 이 선결의 모든 것은 살육을 통해 얻어졌다. 죽인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낙인은 더욱 강력해졌고 일정 정도에 이르면 이 생(生)의 낙인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방어막이 됐다. 다만 이는 수련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신통력이었다.
한 달 반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한제는 선결의 요령을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연구를 포기하고 천도를 깨닫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 동안 사신차가 처음으로 그에게 반격을 했다. 첫 번째 봉인이 풀린 사신차의 첫 반격이었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한제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혼수와 며칠 동안 싸운 끝에 비법을 이용하여 겨우 그 혼수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바로 영악국의 노인이 통천탑을 찾아왔던 때였다. 그는 두 눈으로 직접 그 혼수를 목격했다.
사신차를 제압한 한제는 며칠 동안 묵묵히 좌선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눈을 떴을 때 그의 두 눈에는 한 줄기 깨달음이 스쳐갔다.
“살육 선결의 모든 것은 살육을 통해 깨달아진다. 나처럼 그냥 앉아서 연구하려 해봐야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지. 정말로 이 선결을 장악하려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구나!”
눈을 번득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앞으로 걸어 나가 통천탑 밖으로 향했다.
한제는 통천탑 밖의 1만 척 상공에서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순간 반경 1만 리를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가 모두 하늘로 솟아올라 한제의 오른손 앞에 응집됐다.
동시에 바람의 기세도 변했다.
끊임없이 모여드는 검은 안개에서 흘러나오는 콰르릉 소리가 온 영악국에 울려 퍼졌다.
검은 안개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모두 응집되어 갓난 아이 머리 크기의 검은색 번개 덩어리가 됐다. 그 안에서는 안개가 유유히 피어올랐고 금제가 끊임없이 번득이며 어두워졌다 밝아지길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강력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한제가 오른손을 움켜쥐자 그 덩어리 안의 금제들은 곧장 무너져 검은색 연기로 변했고 한제 주위를 배회하다가 그 앞에서 서로 교차하며 자금색(紫金色)의 금번이 됐다. 깃발은 퍼덕퍼덕 소리를 내며 나부꼈다.
1만 리는 말끔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한제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반경 1만 리에 퍼져 있던 주요 혼백들이 순식간에 다가와 곧장 한제의 입안으로 들어가더니 그의 원신에 있는 존혼번 안으로 되돌아갔다.
“살육 선결을 수련하는 김에 존혼번도 제련해야겠군. 그럼 천운성에서 목숨을 부지할 확률도 높아지겠지. 게다가 스승님께서 동해로 오라고 말씀하셨던 3개월의 기한의 반이 지났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신식으로 영악국을 훑어보다가 이내 한 걸음 내딛더니 한 줄기 푸른 연기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