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14
금영근(金靈根)
방금 빛에 닿은 옥패는 결국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고 이를 본 한제는 표정은 좋지 않았다.
허나 옥패는 무너져 내렸어도 그 위에 떨어져 내린 노란 빛은 오히려 더욱 진해졌다. 그 빛은 훌쩍 자리를 옮겨 다른 옥패에 떨어졌다.
펑! 펑! 펑!
노란색 빛이 옥패에 닿을 때마다 옥패는 번번이 무너져 재로 변해버렸고 이에 터져 나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한제의 표정은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잠시 후, 마지막 옥패마저 무너져 내렸을 때, 빛은 거의 황금색으로 변해 마치 바닥에 깔린 꽃과 비슷해 보였다.
그 황금색 빛은 꽃들을 뒤덮었다. 그러자 꽃들은 천천히 시들어갔다. 꽃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요금과들도 하나하나 갈라지면서 천천히 말라갔다.
이를 본 흡혈 마수는 허공에서 울어댔다. 만약 녀석이 한제를 마음 깊이 따르지 않았다면 억지로라도 열매를 빼앗으려 했을 것이다.
천령 역시 찢어질 듯한 마음으로 요금과가 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나 한제의 표정은 더없이 싸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색 꽃은 전부 시들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각각 한 방울의 금색 액체가 되어 가지를 타고 땅속으로 흘러들었다. 요금과도 마찬가지였다.
가지마저 천천히 스러져 땅속으로 녹아들어 간 후로 결국 지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까아악!”
흡혈 마수는 슬픈 듯 목을 길게 빼고 울어댔다.
한데 요금과가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자세히 살피던 한제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곳에 쪼그려 앉은 그는 오른손을 천천히 흙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가 땅속으로 집어넣었던 손을 꺼냈을 때, 손에는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네 개의 뿌리였다. 엄지 정도의 크기에 인삼처럼 생긴 뿌리는 짙은 금빛으로 감싸인 상태였다.
‘금영근 네 개! 자연 상태로 내버려 두었으면 다섯 개 이상은 얻을 수 있었을 테지!’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공에 떠 있던 흡혈 마수는 동그란 눈으로 한제의 손에 들린 금영근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은 전에 없는 광기로 번득였다.
한편 천령 역시 입을 쩍 벌린 채 금영근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식견이 좁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요금과의 진정한 용법은 저 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한제는 금영근 하나를 미간에 대어보았다. 잠시 후,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금영근은 석주의 금속 속성을 어느 정도 증가시켰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잠시 계산을 해보니 이 네 개의 금영근을 전부 석주에 녹여 넣는다고 해도 금속 속성은 1할 정도밖에 채우지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한제는 허공에서 탐욕스런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흡혈 마수에게 금영근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러자 흡혈 마수는 환호하며 한입에 그것을 집어 삼켰다.
흡혈 마수의 눈에 어린 광기가 점점 사라졌고 온몸에서 또 한 차례 금빛이 번쩍였다. 하지만 이전처럼 몇 차례 깜빡거리다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흡혈 마수의 날개가 천천히 줄어들다가 접혀들었고 녀석의 몸도 함께 줄어들었다. 반면 녀석의 몸에서 번쩍이는 금빛은 점점 더 짙어졌고 또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러다 결국 그 빛은 하나의 금색 막처럼 흡혈 마수를 완전히 감쌌다.
“허!”
한제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흡혈 마수의 몸을 뒤덮은 금색 막은 천천히 혼탁해지기 시작해 이제 흡혈 마수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신식으로 그 안을 살피던 한제는 씩 웃었다.
“좋은 것들을 그렇게 많이 집어 삼키더니 마침내 진화하는군. 다시 깨어날 때쯤에는 더욱 강해져 있겠지!”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흡혈 마수를 금빛 막과 함께 그대로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이어서 저물대를 살짝 두드렸고 그러자 한 줄기 푸른 빛이 저물대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 빛은 작은 언덕 크기의 뇌와가 됐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지면에 떨어진 두꺼비의 거대한 두 눈에는 나태한 빛이 어려 있었다.
허나 그 나태함은 한제의 손에 들린 금영근에 닿은 순간 사라졌다.
“꾸르륵!”
녀석은 한제의 눈과 금영근을 번갈아 보며 요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사탕을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금영근 하나를 뇌와에게 던져주었다.
뇌와는 곧장 배를 불룩 부풀렸다가 붉은 혀로 허공에 떠오른 금영근을 번개처럼 낚아챘다.
우르릉!
금영근을 삼킨 순간, 뇌와의 몸속에서는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뒤이어 녀석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피곤한 듯한 모습이었다.
한제는 뇌와를 저물대에 집어넣은 고개를 돌렸다.
천령은 한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화들짝 놀라 얼른 허리를 굽혔다.
“내가 금영근을 얻은 데에는 네 도움도 있었다. 그러니 네게도 나눠주마.”
말을 마친 한제는 마지막 금영근의 주요 뿌리를 뜯어 본체의 몫으로 챙겨둔 후 남은 잔뿌리를 천령 쪽으로 내던졌다.
천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든 금영근의 잔뿌리를 받아들었다. 여태까지 겪은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아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감사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한제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천령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금영근의 잔뿌리를 챙겨 넣고는 죽은 사형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붉은 빛이 되어 빠르게 자리를 떠나갔다.
★ ★ ★
한제는 빠르게 날아 지마북계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맥 하나를 넘은 그는 더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그 깊은 산속에서는 대나검종의 키 작은 노인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미간으로부터 1촌 정도 떨어진 곳에 굽은 칼이 서늘한 날을 빛내며 꼿꼿하게 떠 있었다. 또한 정수리로부터 1촌 정도 떨어진 곳에는 마찬가지로 검광을 번득이는 선검이 있었다.
한제를 본 노인은 해탈한 듯한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도우, 우리 대화를 하세.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답해주겠네!”
스스로가 비참했으나, 한제도 아닌 그의 법보 두 개에 미친 듯이 쫓긴 기억을 떠올리면 방법이 없었다.
이 검들은 견고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검광을 뿜어냈다.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떤 신통력을 발휘해보아도 벗어날 수 없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 비검을 빼앗아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특히 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저항조차 포기하게 만든 것은 굽은 칼이었다.
노인에게 이 굽은 칼은 다른 이들의 생명을 수확하러 다니는 원고 시대의 마신 같았다. 시종일관 꼼짝 않고 미간을 노리고 있는 굽은 칼은 마치 목을 틀어쥔 듯 강력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씁쓸했다. 그리고 후회가 됐다. 석방과 함께 이곳에 온 것도 눈앞의 상대를 건드린 것도…
한제는 여러 갈래의 회색 기운이 느릿하게 맴돌고 있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단 한 번 기회를 주지. 머뭇거려도 죽고 답하지 않아도 죽는다. 또한 석방이 했던 말과 달라도 죽는다. 지난 번, 능천후가 선계에서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있었나?”
노인은 흠칫 놀랐으나 얼른 정신을 차린 후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검존께서 돌아오셨을 때 아주 끔찍한 검혼 하나가 하늘을 가르고 달려들어 검존과 몇날며칠을 싸웠다네. 그러다가 결국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붕괴해버렸고 검존께서는 그중 3분의 1 정도를 봉인하여 동해 요령의 문 깊은 곳에 묻어두셨지.”
한제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동해 요령의 문은 어떤 곳이지?”
키 작은 노인은 이번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그곳은 천운성의 3대 금지(禁地) 중 하나라네. 그곳의 통제권은 1만 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지금은 우리 대나검종에서 가지고 있지. 그 문은 5천 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그때면 천운성 각 종파에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여 그 안에 있는 고대 요괴를 잡아오게 한다네.”
노인은 잠시 말이 막혔으나 재빨리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고대 요괴의 포획보다 중요한 목적은 일종의 시험, 피비린내 나는 시험이지. 그 안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거든! 심지어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이 적을수록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많다는 말도 있지. 여기서 이득이라는 것은 그곳에서 나오는 순간에 거행되는 동해 요령의 의식이라네!”
여기까지 말을 마친 노인은 한제의 눈치를 살폈다.
“요령의 의식?”
다행히 한제는 아직 자신을 죽일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래, 그 의식은 수련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지! 만약 문정기에 이르기 전이라면 문정기에 이르려 할 때 맞이하게 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설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든다네. 그러니 안정적으로 문정기에 이를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지. 문정기 후기 수준에서 이 의식을 받는다면 음양이의의 경지로 진입하여 수만 년 동안 죽지 않는 몸을 갖게 된다네!”
한제는 내심 놀랐으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 5천 년에 한 번씩 요령의 문이 열리는 것은 우리 천운성의 가장 큰 행사인 셈이야. 참가하는 사람도 매우 많지. 허나 그곳은 너무도 위험해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강력한 자들뿐이지. 소문에 의하면 가능한 한 마지막으로 나오는 게 좋다더군! 그러면 요령의 문 안에서 여태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던 완전한 하급 선술이 주어진다는 말을 들었지.”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굽은 칼이 곧장 노인의 머리를 뚫고 들어가 반대편으로 나왔다.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굽은 칼과 선검을 저물대에 집어넣고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데 한 시진 쯤 후, 쓰러져 있던 노인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미간에 나 있던 상처는 기이하게 꿈틀거리다 빠르게 맞물렸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노인은 고개를 돌려 뒤쪽의 허공을 매섭게 노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를 죽이는 것이 그리 쉬울 줄 알았더냐! 내가 수련한 신식삼분술(神識三分術)로 얻은 세 번의 목숨 중 마지막 하나를 오늘 써버릴 줄은 몰랐군. 이한제, 반드시 복수해주겠다.”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던 노인은 곧장 하늘로 질주했다.
한데 그 순간, 두 갈래의 회색 기운이 풀숲에서 기척 없이 피어올라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노인은 표정이 급변하더니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