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17
“검존 자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다니, 무슨 일인가?”
“내 열두 제자에게 요령의 문 안에 들어가 비밀리에 처리하도록 지시한 일이 있지. 그 임무가 끝날 때까지 내 제자들을 무사히 보호해준다면 나도 자네를 돕겠네.”
능천후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탐랑이 흠칫했다.
“날 돕겠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능천후는 다시 탐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에 담긴 차가움에 탐랑은 몸서리를 쳤다.
“탐랑, 이 능천후는 자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주를 누비고 다녔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인단 말이야. 아마도 그 구슬을 가진 자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면 이 먼 천운성까지 나를 찾아왔겠나? 내 도움이 아니면 오래 살기는 힘든 상황인 것 같은데 내가 틀렸나?”
탐랑은 한참 뒤에야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게. 이 탐랑이 있는 한 자네 제자들은 안전할 걸세! 한데 나의 수준으로 이곳에 들어갈 수는 없을 텐데…”
“걱정 말게. 자네는 지금 상처를 입어 약해졌으니 말이야. 게다가 이번에 요령의 문을 여는 게 바로 나일세.”
능천후의 덤덤한 목소리에 탐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 저 멀리서 일곱 빛깔의 구름이 조용히, 하지만 놀랍도록 빠르게 다가왔다.
그 구름을 본 탐랑은 흠칫 놀라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허나 멀리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 그림자가 되어 검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었다.
조석(潮汐)
일곱 빛깔의 구름이 당도하기도 전에 상서로운 기운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천운자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 수련자들에게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나누는 천운자의 뒤로 아홉 명의 수련자가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 같이 수준이 높았다. 그중에는 한제와 천운칠자의 봉호를 놓고 겨루었던 자계의 여섯째, 진도도 있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진도에게서는 강한 위엄이 발산됐다. 가만히 있는데도 검처럼 예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천운자 일행이 여유롭게 이곳에 이르자 사방의 수련자들이 포권을 하며 길을 비켰다. 능천후가 왔을 때보다도 더욱 융숭하고 공손한 모습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천운자 일행은 동해 요령의 문 코앞에 이르렀다. 검존 능천후와 겨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에 자연히 그곳에 모인 수많은 수련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이로써 천운성과 그 인근 수련성에 기거하는 대부분의 수준 높은 수련자가 모두 모인 셈이었다. 지금 동해 요령의 문 밖에는 7성 수련국 천운성의 최대 역량이 응집되어 있었다.
★ ★ ★
요령의 문이 열릴 때까지 하루를 남겨둔 날, 천운자는 수많은 수련자들의 인사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천운자는 무언가를 찾듯 수시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아홉 명의 천운종 제자들 또한 다른 수련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나, 오직 진도만은 주위를 살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마침내 요령의 문이 열리는 날이 밝았다.
동해라고 불리는 부유물들의 바다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부유물의 일렁이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주위에 모인 수련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 녀석, 설마 오지 않는 것인가?”
여전히 주위를 살피던 진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는 번득이는 눈으로 저 먼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어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저 멀리서 여러 갈래의 붉은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련자는 그 빛들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진도만은 그중 유일한 보라색 빛 한 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칠사제⋯⋯.”
진도가 이제 확연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었다.
천운자 역시 인자한 눈으로 그 보라색 빛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부터 순식간에 다가온 한제는 천운자를 발견하고는 허운산에게 포권을 했다.
“허 형, 스승님을 뵈러 가야 하니 여기서 헤어집시다. 인연이 닿는다면 요령의 문 안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그대 허운산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쉬지 않고 최대의 속도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호쾌하게 웃었다.
“그러시지요, 이 형. 문 안에서 꼭 만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빙그레 웃고는 몸을 돌린 한제는 한 줄기 푸른 연기가 되어 곧장 천운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번개처럼 움직이는 그의 침착한 눈빛에서는 한 줄기 회색 기운이 스쳐 지나갔는데 진도의 날카로운 기운에 비해도 결코 약해보이지 않았다.
많은 수련자들의 이목이 한제에게 집중됐다. 그들은 한제의 보라색 옷과 허리춤의 보라색 영패를 보고 단박에 그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천운종 자계의 일곱째, 이한제다!”
피처럼 붉은 옥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요석설도 순간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께서는 천운자가 새로 받아들인 제자를 눈여겨보라고 하셨지. 수준도 높지 않고 특별한 구석도 전혀 없어 보이는데⋯⋯. 허나 천운종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를 동해로 들어갈 진입자로 천운자가 직접 지목한 걸 보면 분명 뭔가가 있겠지.’
요석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한제는 어느덧 천운자 앞에 이르러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스승님을 뵈옵니다!”
천운자는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내 뒤에 서거라. 5천 년에 한 번뿐 이 큰 행사도 잘 봐두고… 어쩌면 운명을 바꿀 보물을 얻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느냐?”
말을 마친 천운자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제를 한 번 바라보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그러겠다고 답한 뒤 천운자 뒤로 선 아홉 명의 동문 옆에 섰다.
아홉 명의 눈빛이 한제를 훑었다. 약간 의아해하는 진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눈빛에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한제 또한 그 세 명의 여자와 여섯 명의 남자 동문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힐긋 살피고 말았을 뿐이다.
능천후는 한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천운자의 생일 축하연에서 봤을 때부터 어쩐지 본 적이 있는 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데 그때, 뒤에서 탐랑이 입을 열었다.
“흠, 저자는…?”
능천후가 조용히 물었다.
“아는 자인가?”
“아니. 하지만 저자의 몸에서 익숙한 느낌이 풍기는군. 알고 지내던 친우의 후손인 것도 같고…”
탐랑의 눈에 빛이 번득였지만 이내 그는 그 빛을 깊숙이 숨겼다.
그 자리에 모인 수련자들 중 특출하지도 않은 한제의 출현에 많은 수준 높은 수련자들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살폈다. 이들이 한제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천운자가 받아들인 제자였기 때문이다. 천운자는 모든 것을 운명에 따라 정하는 만큼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꼈기에 제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다만 그가 느낀 운명이 그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제자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동해에서 미미한 우르릉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뒤이어 잠잠했던 바다는 자갈을 던져 넣은 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끝없이 펼쳐진 부유물의 바다 바깥에 모인 수만 명의 수련자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집중했다.
쿠르릉! 쾅!
밀물과 썰물에 따라 부유물들이 요동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소리도 갈수록 격렬해졌다. 그리고 결국 그 소리는 하나로 이어져 위로는 하늘 끝부터 아래로는 저 아래 우주까지 뒤덮은 채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동해는 이제 끓어오르려는 용암처럼 수많은 부유물이 끊임없이 그 안에서 용솟음쳤다. 수만 년 동안 이곳에 묻혀 있던 유령들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콰르릉!
온 우주를 가득 채우는 소리에 수련자들은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한제는 끝없이 펼쳐진 부유물들의 바다를 덤덤한 눈으로 자세히 살폈다.
동해 요령의 문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듣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과연 기이하구나!”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요란한 소리는 갈수록 격렬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부유물들의 바다 중앙에서 격렬한 쉭 소리가 흘러나왔다.
쉬이익!
귀신의 곡성 같기도 한 그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롭게 흘러나온 순간, 모든 부유물은 진동하더니 이내 천천히 회전하며 회오리를 일으켰다.
그 회오리에서 발산되는 엄청난 기세에 온 우주가 회전하는 듯했다. 수준이 부족한 수련자들은 그 힘에 빨려들기도 했다. 누군가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그 회오리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한편, 한제는 안정된 도심 덕분에 회오리의 기세에도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기에 냉랭하게 그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부유물들의 바다가 회전함에 따라 귀를 찢을 듯한 소리는 점점 더 격해졌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푸른 기체가 바다로부터 천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끝없는 부유물들의 바다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이어 푸른 기체는 미친 듯이 끓어오르면서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사방에서 무형의 힘이 일어나 푸른 기체와 부유물들을 모두 중앙으로 몰아붙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르릉! 콰광!
온 우주가 진동을 일으켰고 푸른 기체와 모든 부유물이 한데 응집되어 샘물이 솟는 구멍 같은 형상이 됐다. 이 샘구멍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응집되어 점차 커지더니 결국 높이만 해도 1만 척에 이르렀다.
“시작됐군.”
검존 능천후가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또 무엇이 흡수될는지⋯⋯.”
천운자 또한 일곱 빛깔 광채로 눈을 번득이며 조용히 내뱉었다.
반면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이들은 정신을 집중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푸른 기체의 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