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21
그러나 빛은 곧바로 산골짜기 밖 반경 1만 척 여기저기서 솟아나 다시 주위를 가득 메우더니 서로 하나로 연결됐다.
그 순간, 금제로 이루어진 창의 속도가 약간 늦춰졌다.
한데 그때, 한제의 두 눈이 변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계속되던 금제들의 조합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나, 그의 두 눈은 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제의 눈에 보이는 반경 수만 척의 공간은 수많은 푸른 빛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거대한 새장과도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 또한 그 새장 안에 들어 있었다.
새장을 이룬 수많은 푸른 빛들이 미친 듯이 번득였고 그 순간 금제로 이루어진 긴 창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둘로 나뉘었다.
그러나 한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창으로 이 진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은 그저 그가 금제의 조합을 진행하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합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곧 진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그때, 산골짜기 안에서 구양화의 냉랭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외부자여, 우리 부족의 진이 어떠한가?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자르고 우리 부족원들이 흡수할 수 있도록 원신을 내놓는다면 풀어주마!”
한제는 고개를 들어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문양의 허상이 하나하나 번득이더니 어느 순간 미친 듯이 하나로 응집됐다.
‘83번째! 이제 한계로군. 이 정도면 진을 파괴하기에 충분해!’
한제는 진을 파괴할 금제의 조합에 대한 연산을 머릿속으로 진행했고 마침내 답을 얻었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이 더없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런 오만방자한 말을 잘도 하는구나!”
한제의 차가운 목소리에 구양화가 껄껄댔다.
“크하하! 오만방자한 것은 네놈이다! 청영, 끝을 내거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수만 척 안에 퍼져 있던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그물이 산골짜기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조여든 그것은 순식간에 한제의 주변 수백 척을 완전히 둘러쌌다.
“외부자 넌 우리 부족 산골짜기의 두 번째 요영(妖影)이 될 것이다!”
구양화의 진득하고 잔인한 목소리가 산골짜기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허나 한제는 두 눈을 덤덤하게 번득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푸른 빛이 30척 앞까지 다가왔을 때, 그의 두 눈에서 기이한 문양이 번득이며 튀어나오면서 요사스런 빛이 번득였다. 그 금제의 문양은 순식간에 허공에 녹아들더니 파문이 됐다.
파지직!
그 파문이 확산되면서 엄청난 기세로 모여드는 푸른 빛의 그물에 부딪혔다. 그러더니 그물에서 풍겨 나오던 살기 어린 기세가 곧장 누그러졌다.
한제는 눈을 다시 번득였고 이번에는 완전한 금제의 문양 열 개가 튀어나와 곧장 허공에서 파문으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이미 한 차례 누그러졌던 푸른 빛의 그물에서 점점 격렬한 파지직 소리가 이어졌고 마치 금이 간 것처럼 그물 여기저기에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만함은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한제는 싸늘하게 내뱉으며 다시 한 번 두 눈을 번득였다. 이번에는 30개의 금제 조합이 쏟아지듯 흘러나와 허공에 녹아들었다.
파스스.
별다른 소리는 없었으나, 푸른빛의 그물은 30개의 금제 조합이 쏟아져 나간 순간 무너져 내리면서 하늘을 뒤덮은 별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황용
“이… 이게 무슨…”
구양화의 경악한 목소리를 들으며 한제는 차게 미소를 지었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게 해주마.”
으스스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한제의 두 눈이 다시 한 번 번득이더니, 이번에는 40개가 넘는 금제의 조합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한제의 손짓을 따라 번쩍하고 산골짜기 안으로 쏘아졌다.
꽈르릉!
한제가 만들어낸 진 파괴 전용 금제의 조합 83개의 힘이 합쳐지자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산골짜기에서는 대량의 푸른 빛이 끓어올라 산골짜기를 감쌌다. 그러나 금제의 문양들이 하나하나 번득였고 그때마다 푸른 빛들은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사라졌다.
“마… 말도 안…”
구양화의 경악한 목소리가 듣기 좋은 노랫소리라도 되는 듯 한제는 미소까지 지은 채 느긋하게 산골짜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제가 다가옴에 따라 더 많은 푸른 빛이 산골짜기 안에서부터 튀어나와 한데 뭉치더니 굵직한 푸른 빛기둥이 되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제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고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콰르릉!
맹렬히 돌진하던 빛기둥이 한제로부터 열 걸음 정도로 다가온 순간, 수많은 금제가 쏟아져 나왔다. 빛기둥은 곧장 어두워지더니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제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쿠르르!
한제가 진 앞에 선 순간, 산골짜기가 뒤흔들렸다. 그 위에 드리워져 있던 보호의 힘 또한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요⋯⋯ 용서하십시오. 이 구양화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산골짜기 안에서 구양화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양화의 뒤를 이어 수십 명이 산골짜기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의 나이는 다양했으나 모두 남자였고 반라의 몸은 녹색 액체로 칠해져 있었다.
한제로부터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구양화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다소 비굴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처 어르신을 몰라 뵈었습니다. 이전의 일은 제가 다 책임질 테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이 진만은 파괴하지 말아주십시오. 진이 파괴되면 우리 부족원들은 요령(妖靈)의 식량이 되고 맙니다.”
구양화 뒤로 선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제는 그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허공에 파문이 일어났다가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의 진이 곧장 회복됐고 보호력이 빠져나가던 것도 멈추었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구양화는 한제를 두려움과 원망, 존경심이 뒤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르신, 시간이 늦었습니다. 밤에는 요령들이 나타나니 일단 안으로 드셔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구양화는 한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손가락 끝을 깨물어 약간의 피를 산골짜기의 절벽에 뿌렸다.
콰르릉!
순간 산골짜기는 잠들어 있던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 안쪽부터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이내 산골짜기 양쪽의 절벽은 한 폭의 족자처럼 두르르 말리더니 가위로 잘린 듯 중간에서부터 둘로 갈라지며 곧은 통로가 나타났다.
“이쪽입니다.”
구양화가 공손하게 손으로 가리키며 안내했다.
이곳을 더 확실히 알아두고 싶었던 한제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산골짜기 안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주거를 위한 간이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매우 고요했으며, 또 우아했다. 해가 저물어가며 우거진 나무가 길게 늘어뜨린 그늘이 상쾌했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몇몇 사람이 숨어 있었는데 모두 여자나 아이들이었다. 여인들은 남자들과 달리 옷가지로 몸을 가린 상태였다.
아이들은 창문이나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무척 순진무구했고 호기심이 가득했다.
너무도 소박한 광경에 한제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너무 내키는 대로 굴었던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진을 부수는 데 정신이 팔려 골짜기 안에 부락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한제는 우뚝 제자리에 멈춰 신식으로 이 산골짜기 안을 살폈다. 구양화를 제외한 부족원 모두는 일반인이었다.
구양화와 부족원들은 한제가 걸음을 멈추자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두려움에 바르르 떠는 자도 있었다. 허나 남자들은 그 와중에도 결연한 표정으로 한제를 노려보기도 했다. 만약 한제가 돌변하여 공격한다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인 듯했다.
구양화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어르신⋯⋯?”
한제는 몸을 돌려 구양화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부족원들을 살피던 한제는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신세가 많았군. 더는 들어가지 않겠네!”
말을 마친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저물대를 문질러 세 개의 옥병을 꺼내 구양화 앞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이 세 개의 옥병 안에는 단약이 들어 있네. 뿌리를 단단히 하고 원기를 보양하는 효과가 있지. 마을을 어지럽힌 것을 사과하겠네.”
그 말을 끝으로 한제는 조용히 골짜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구양화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바닥에 놓인 옥병들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보던 그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옥병들을 얼른 품에 챙겨 넣었다.
그는 곧장 부족원들에게 한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몇 마디를 했고 그러자 부족원들의 표정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미소를 지어보이며 포권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내 수십 명의 부족원들은 분분히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부락은 곧 활기를 되찾았다. 아이들은 신이 나 밖으로 뛰쳐나와 까르르 웃어댔고 숨죽인 채 숨어 있던 여자들도 조심스레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어르신! 잠시만 잠시만요!”
구양화가 간절한 표정으로 재빨리 다가오며 불렀으나, 한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산골짜기 밖으로 나가서 곧장 서쪽으로 가볼 요량이었다. 구양화가 말한 3천만 리 서쪽의 고요성으로 가볼 계획이었던 것이다.
부족원들의 표정에 호의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인사는 충분했다고 여긴 한제는 구양화와 더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허나 구양화는 그렇지 않은 모양인지, 기어이 한제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어르신, 오늘 밤은 요령의 밤입니다. 홀로 밖으로 나가셨다가는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해도 수많은 요령들에게 대항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곳에 며칠 머물렀다가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드디어 한제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요령의 밤이라는 게 뭐지?”
“자세히 설명드릴 테니 저희 집에서 말씀을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구양화가 공손하게 허리까지 숙여가며 말하자 한제도 더는 사양하지 않기로 했다.
구양화의 집은 산골짜기의 북쪽 끝에 있었다. 그의 집으로부터 반경 1백여 척 안에 다른 집은 없었다.
집은 동그란 모양이 마치 만두 같았고 대부분 푸른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집 안에는 나무로 된 침상과 탁자 의자 몇 개, 그 외에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다. 벽에는 장식품도 걸려 있었다.
방에 들어선 한제의 눈에 벽에 걸린 그림이 들어왔다. 한제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림은 누렇게 변색된 상태로 가장자리는 약간 망가지기도 했다. 족자 전체에 주름까지 진 것으로 볼 때 상당히 오래된 그림인 듯했다.
기이한 도복을 입은 마흔 정도의 중년 남자 그림이었는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눈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또한 오른손을 가슴팍에 얹은 채 기이한 결인을 그린 자세였다.
그림의 반대쪽에 사내의 눈이 닿은 곳에는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그 하늘에는 검은 안개가 어렴풋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림이 너무 오래된 탓인지 그 안개 속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구양화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한제 옆에 공손히 서 있었다.
“그 진은 언제부터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