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26
혼수는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사내의 원신을 뒤쫓고 싶었으나 사신차에 묶여 있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사신차가 질주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혼수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더욱 늘어났다. 그러자 혼수는 기쁨에 겨운 모습으로 빠르게 사내의 원신을 뒤쫓았다. 모처럼 둘의 마음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허나 한제는 혼수가 혼자 멀리 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기에 사신차를 더 멀리까지는 이동시키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 사내의 원신을 쫓던 혼수는 낮게 그르렁거리더니 한제를 향해 맹렬히 다가왔다.
한제는 침착한 표정이었으나, 내심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덧 코앞까지 온 마수를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곧장 벌을 내릴 작정이었다.
그때, 혼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풀이 죽은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혼수의 모습을 본 한제는 경계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으나, 눈에서 뿜어내던 서늘한 빛을 흩어 사라지게 했다. 그러더니 혼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혼수는 얼른 더 다가오더니 한제 앞에 넙죽 엎드렸다.
한제는 조심스레 혼수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혼수는 곧장 사내의 원신이 도망간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제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혼수가 나서서 자신을 태워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신차를 제작한 선인이 남긴 옥패에 따르면 사신차는 보통의 법보와 달라 주문이나 진언(眞言)으로 혼수가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혼수가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게 하려면 혼수가 사신차의 사용자에게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제는 생각을 정리한 끝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 혼수는 나에게 공동체 의식을 느낀 게 아니라 그저 저 원신을 빨리 삼키고 싶을 뿐이야. 사신차에 묶인 채로는 쫓을 수 없으니 나를 태우기로 마음먹은 게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할 수 있다!’
혼수의 속도는 매우 빨라 성라반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앞서 도망가던 원신의 단전에 있는 손톱 크기의 결정에서는 요력이 천천히 확산되고 있었다. 한제에 대한 원한이 하늘을 뒤덮을 듯 커진 그는 육신을 찾고 수준을 회복하면 곧장 잔인하게 복수하겠노라 맹세했다.
그러나 바드득 이를 갈던 그의 안색이 순간 딱딱하게 굳더니, 맹렬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혼수가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맹렬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의 원신은 겁에 질려 방향을 바꿔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그때 혼수가 돌연 포효를 내질렀다.
“크윽!”
혼수의 포효는 무형의 예리한 검처럼 날아들었고 사내의 원신은 바르르 떨더니 우뚝 멈춰 섰다. 그 사이 혼수는 이미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혼수는 사내의 원신을 삼켜 힘을 더 키운다면 사신차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에서 벗어날 것이라 여겨 곧장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비릿한 바람이 불어 닥쳤고 사내의 원신이 움찔했다.
“어딜 감히!”
사내의 원신은 곧장 방향을 틀어 빠져나왔다. 그리고 원신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더라도 온 힘을 다해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가 움직였다. 그의 손에서 곤극 채찍이 춤을 추더니, 사내의 원신을 감쌌다.
“크악!”
사내의 원신은 비명을 남기고는 혼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다 잡은 먹이를 빼앗긴 혼수는 격노하여 몸을 부르르 떨고는 단숨에 한제를 삼키려 들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가볍게 짧은 주문을 내뱉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혼수의 두 눈이 새빨개지더니 원한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제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사신차로 돌아갔다.
한제는 구수권을 손목에 차며 쓰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듯하더니 곧바로 자신을 삼키려 들다니, 골치가 아팠다.
그때, 구수권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생겨났고 한제는 저물대에서 선옥을 꺼내 그 안에 담긴 선력을 구수권으로 흘려보냈다.
구수원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선력을 흡수했다. 아무래도 그 안에 봉인된 혼수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한참 뒤에야 혼수가 힘이 다한 듯 구수권의 흡입력이 사라져갔다.
구수권을 거둔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좌선을 통해 체내의 선력을 다 보충한 뒤에야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무렵, 하늘은 이미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요령의 밤이 끝나 가는 중이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혼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원신이 튀어나왔다. 한제는 재빨리 그 원신을 손에 쥐었다. 그와 동시에 체내의 선력을 실처럼 만들어 손을 따라 그 원신 안으로 흘려보냈다.
이는 금제를 형성한 것으로 상대가 자폭을 할 경우 완화 작용을 해줄 것이었다. 수준이 낮은 관계로 자폭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상대가 자폭을 하려 한다면 미리 알아채 원신을 혼번에 봉인할 수 있을 터였다.
“망할! 저 혼수만 없었어도 오늘 넌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원신이 악독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포효했다.
그는 이렇게 붙잡힌 이상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금제로 인해 자폭도 할 수 없게 됐으니 이렇게라도 울분을 터뜨리며 발악하는 것이었다.
“요력의 결정이 뭐지?”
한제는 사내의 말을 들은 척도 않은 채 물었다.
사내의 원신은 냉소하며 말했다.
“염치없는 녀석이군. 내가 말해줄 것 같으냐?”
한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원신의 얼굴에 고통이 스쳤다.
“끄아아악!”
원신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악독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이 나운은 천귀도(天鬼道) 사람으로 천귀도를 배움으로써 육신과 영을 보호하는 법을 배웠다. 나를 죽인다면 스승님은 그 사실을 알아채실 것이고 네게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 천운자라 해도 동년배인 나의 스승님께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잘 생각해라!”
원신의 반응에 한제는 피식 웃었다.
“네 스승이 누구이건 내가 두려워할 것 같은가?:
이어서 한제는 왼손으로 나운의 원신을 툭 쳤다. 그러자 육신을 잃은 원신은 급격히 허약해저 거의 흩어질 뻔한 상태가 됐다.
“스… 스승님이 결코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운의 원신은 악에 받쳐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허나 한제는 무덤덤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원신의 머리를 툭 쳤다.
“수혼(搜魂)!”
수혼술(搜魂術)은 제한이 크지만 지금 한제의 수준으로는 사용하기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의 원신은 매우 허약해진 상태라 더더욱 쉬웠다.
“크아악! 끄아아아!”
나운의 원신은 연거푸 비명을 질러댔다. 수혼술은 거친 술법이라 과하게 사용하다가는 천리(天理)마저 거스르게 될 수 있다. 특히 원영이나 원신에 직접 사용하면 고통은 몇 배로 커졌다.
약 2각쯤 지났을 때, 나운의 비명은 천천히 약해졌다. 거의 기력을 잃었는지 원신 또한 거의 투명한 상태였다.
한제는 왼손을 들어 나운의 원신 안으로 쑤셔 넣은 뒤 그의 단전에서 뭔가를 쥔 채 손을 다시 뺐다. 그의 손 안에는 결정 한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한제는 그런 나운의 원신을 혼번에 집어넣었다. 그는 나운의 원신을 존혼번의 주요 혼백 중 하나로 삼을 생각이었다.
혼번을 저물대에 넣은 한제는 천귀를 쫓아간 주요 혼백들이 있는 쪽을 향해 몸을 훌쩍 날렸다.
“이 땅은 정말 신기하군. 과연 구양화 말대로 외부자가 진입할 때마다 피바람이 일어날 만해. 그나저나 천귀도라⋯⋯. 나운의 말이 좀 과장되긴 했지만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허나 그런 고민은 5백 년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 안에 나운의 기억에 있는 몇 가지 마금술(魔禁術)도 수련해봐야겠군.
요령의 땅은 아홉 개의 군(郡)으로 분할되어 있고 각 군에는 고대 요괴의 령이 하나씩 봉인되어 있다. 이 고대 요괴의 령, 즉, 고요령(古妖靈)은 막대한 신통술을 가지고 있어 수련자가 그것을 융합한다면 수준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은 물론 강력하고 신통한 술법들도 얻을 수 있다.
나운의 기억에 따르면 각각의 고요령은 매우 보기 힘든 존재들로 그것과 융합할 경우 일정한 확률로 ‘신지시(神之始)의 경계’라는 곳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신지시의 경계는 기묘한 곳으로 일단 그 안에 진입하면 천도를 깨닫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다. 더구나 일정한 확률로 자신의 경지에 근거한 선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한다.
“소문대로라면 당시 선계에서 전해져 내려온 선술은 매우 수준 높은 선인들이 이 경계에 들어간 뒤에 만들어낸 것이라지.”
나운의 기억을 모두 파악한 한제는 이 요령의 땅에 대해 전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요령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고요령을 얻은 수련자는 손에 꼽을 정도라 하니, 말 다했지. 그것을 얻으려면 싸워 이기는 수밖에 없겠군.”
한제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시(始)의 경계
고요령은 누구의 통제에도 따르지 않고 각 군의 정신을 상징한다. 10만 년에 한 번씩 진화하는데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융합되어 마을을 떠나면 1백만 년 뒤에 새로운 요령이 그 마을에 나타난다.
“아홉 개 군의 고요령은 서로 등급이 다르다지.”
천요군의 고요는 1백만 년 전에 태어난 녀석으로 등급이 가장 낮고 구절군(九絶郡)의 고요는 태어난 이래 한 번도 다른 수련자들에게 융합된 적이 없어 가장 강하고 등급도 가장 높았다.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람만이 고요를 찾아갈 자격을 갖게 된다. 엄청난 살육을 저질러야만 고요의 주인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거지.”
또한 고요령과 융합하는 데는 요력도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니 외부자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피바람이 불 수밖에 없지. 서로를 죽여야만 요력을 흡수할 수 있으니까. 동시에 경쟁 상대를 하나 줄이는 효과도 있지.”
나운의 기억에 요령의 땅에 대한 정보가 이토록 많은 것은 수만 년 동안 이곳에 들어온 천귀도 수련자가 비록 고요령을 얻지는 못했지만 구사일생의 위험에서 겨우 살아남은 덕이었다. 천귀도로 돌아간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들을 자세히 기록했다.
나운은 그 기록에 따라 빨리 의탁할 곳을 찾아 전공을 세우려 했다. 그래야 고요령을 찾아갈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나운은 고요성에 가서 고요성의 좌익 요장(妖將)의 병부를 얻었다. 요력 3갑을 얻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갑이란 요력의 단위로 3갑의 요력은 축기기에 이르는 데 필요한 영력과 비슷한 양이었다.
한제는 조용히 요력의 조각 하나를 꺼내 보았다. 나운의 단전에서 꺼낸 결정으로 한제의 생각대로라면 요력 2갑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전에 자신이 흡수한 결정은 1갑 정도였다.
“이걸 노리고 나를 죽이려 했지만 오히려 내가 3갑의 요력을 가지게 됐군.”
한제는 냉소하며 속도를 더욱 드높였다. 그는 신식을 통해 전방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요 혼백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한데 한 줄기 푸른 연기가 되어 질주하듯 달려나가던 그는 돌연 심장이 덜컥했다. 그는 재빨리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신지시의 경계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신지시, 신지시, 신지⋯⋯ 시⋯⋯.”
순간,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멍한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始)의 경계… 설마 시의 경계란 말인가?”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의 눈이 밝아졌다.
“극(極), 도(道), 시(始)!”
한제는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한제는 오랫동안 극의 경계에 대해 조사했다. 그러던 중 수마해 어느 평원 지하의 동굴에 숨겨져 있던 오래된 서적들에서 상당한 정보를 얻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두 개의 경계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게 바로 도의 경계와 시의 경계였다.
“신지시⋯⋯ 극의 경계를 영력으로부터 신식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다른 두 개의 경계도 전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신지시의 경계는 시의 경계를 신식으로 전환해놓은 형태일지도⋯⋯.”
극의 경계가 죽음이라면 시의 경계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신식에 적용한다면 끊임없는 생장이나 번식, 창조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생사윤회의 천도에 극의 경계와 시의 경계를 결합해 두 경계가 가진 죽음의 힘과 삶의 힘을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쓰게 웃었다. 자신의 생각이 비현실적이고 너무 앞서간 듯했기 때문이다.